응답하라 한총련 1991-1997 (4)

필자의 변 - 

학계와 언론계에서는 2016년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를 불러온 힘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86세대들은 그 특유의 착각과 오만으로 인하여 황당한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망’을 딛고 ‘각성’하고 폭발적 ‘행동’으로 ‘결집’한 한총련 세대의 힘이다.   

머리말. 분단체제와 미국식 양당체제를 뛰어넘을 힘을 어디서 찾을까

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

제1장, 90년대 학생운동은 왜 묻혀졌나?
-  의도적인 외면과 강요된 침묵. ‘민주화 운동’이란 틀 뛰어넘어야

제2장. 주사파? 친북? 종북? 그래서 어쩌라고…
-  주사파의 경계는 어디까지? 대한민국 검사가 브리핑한 20대 당시 나의 사상

제3장. 반수구세력 콘크리트, 70년대생 한총련 세대(현 40대)
-  절망을 딛고, 각성과 행동을 거쳐 결집된 한총련 세대

제4장. 한총련,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기자.
- 당대에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기록은 남기자

제1부,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을 소환한다

제3장. 반수구세력 콘크리트, 70년대생 한총련 세대(현 40대)
- 절망을 딛고, 각성과 행동을 거쳐 결집한 한총련 세대

 

3.1. 한총련 소환, 무용담이나 추억팔이로 흘러선 안돼

 

학생운동은 액션, 무협지가 아니야

한총련을 소환한다고 하니, 화려한 무용담을 바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구나, 오월대로 유명한 남총련 전남대 출신이 이야기를 남긴다고 하니, 언제 액션이 시작되나 기대할 수도 있겠다. 지난 2019년부터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자료 화면을 위해 유튜브 채널도 만들었는데… 거기에 유입되는 키워드가 대부분 한총련, 남총련, 오월대, 녹두대, 화염병 등이다. 요즈음 젊은 세대에게는 학생운동이 액션활극이나 무협지로 보이나 보다.
하지만, 90년대 학생운동은 거리싸움도 치열했지만, 학교 내 학생권력과 대중조직이 더 중요했다. 뉴스로 보았던 모습만으로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 거리싸움으로 결판날 시대도 아니니 무용담만을 너무 기대하지 않기를... 물론, 역사를 정리하니 공권력과 맞붙은 이야기가 중간중간 들어갈 수 밖에 없지만, 제발 ‘오월대가 잘 싸우냐, 녹두대가 잘 싸우냐,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기냐’ 이런 유치한 질문은 하지 마시라.     

꽃병은 괴물 잡는 용도로만 쓰자. 거리에서 쓰이는 일은 없기를...
꽃병은 괴물 잡는 용도로만 쓰자. 거리에서 쓰이는 일은 없기를...

후일담 문학, 난 재수 없었다

한총련이 열심히 싸우던 90년대 중반, 문학계에는 ‘후일담 문학’이 유행했다. 공지영 작가의 ‘고등어’,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등이 대표작인데, 주로 80년대 운동에 참여했던 86세대 개인들의 고뇌와 아픔, 그리고 소련 붕괴로 혁명의 깃발이 사라진 시대를 이야기하는 소설이나 시 들이다. 
그런데, 86세대 입장에서 잔치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한총련 벗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뼛속까지 광주 토박이였던 내 입장에서는 전두환에게 총 맞은 사람들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데, 고작 이십대 초반에 몇 년 동안 데모했다고 추억팔이 하는 꼴이 재수 없었다. 95년까지는 전두환, 노태우에 대하여 검찰이 ‘성공한 쿠테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던 시대였고, 김영삼 정권은 학살원흉과 교배한 집단이었다. 
후일담 문학의 폐해는 우리 사회에 싸움의 시대가 끝났다고 인식시키며, ‘90년대 투쟁은 운동권 출신에게도 외면받고 있다’는 식의 프레임을 만들었다. 후배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추억팔이 했던 후일담 문학, 나는 두고두고 재수없다. 그래서, 한총련을 소환이 추억팔이 후일담이 되는 걸 나부터 경계하려고 한다.  

투쟁은 끝났다 말하지 말라. 후일담 추억팔이에 짜증났던 시기 나를 위로해 줬던 노래. 94년 발표. 

현재적 의미를 찾고 미래를 그려보자
한총련을 소환하는 것은 90년대 한총련 운동의 명예를 회복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한총련의 현재적 의미를 찾고 미래를 그려보기 위함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말은 역사학의 기본 명제다. 모든 역사 연구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모티브를 찾기 위한 것이며, 시대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기록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한총련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과 함께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한총련 세대의 현재 모습도 추적할 것이다.     

 

3.2. 2016년 이후 변화를 이끈 70년대생

기울어진 운동장? 열린우리당 ‘1승전패’의 비밀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제1당이 되고, 2020년 총선에서는 민주당 계열이 180석에 이르는 압도적 의석을 차지했는데, 불과 5년전만 해도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당시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2004년 첫 승리 이후 모든 선거에서 연패한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민주당 진영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네, 새누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 때문에 힘들다며 맥빠진 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1승 전패한 원인은? 당시 40대였던 60년 전후 출생자(86세대 전반부)들이 노무현 정권의 탄생까지는 함께했다가, 참여정부 중반 이후 대거 새누리당 지지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당시 수도권 아파트 값 폭등과 언론들의 노무현 때리기 광풍이 불었고, 86세대의 상당수는 ‘진보는 무능하다’는 프레임에 속아 이명박근혜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들은 계속 수구정당의 지지층이 되어, 열린우리당에 1승전패의 전적을 안겨줬다.  (참고로, 현재 수구언론이 모든 화력을 집중하여 부동산 문제와 무능 프레임으로 문재인 정권을 공격하는 것은 2007년 이명박의 정권탈환 추억을 재현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나는 위대한 86세대의 신화, 87년 6월항쟁 시기 넥타이 부대의 신화는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며 끝났다고 본다. 더군다나, 이들은 자기들 주식이나 아파트 값을 올려줄 거란 기대에 이명박이 사기꾼인줄 알면서도 찍었다.          
 

2016 총선, 새누리당 승리 예측은 왜 빗나갔나

이제 전패의 늪에 빠져있던 민주당이 1당으로 올라섰던 2016년을 돌아보자. 당시 안철수계가 대거 탈당하며 민주당은 위기에 빠졌고, 이 때 민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은 놀랍게도 김종인 할아버지다. (지금 국힘당의 바로 그 할아버지와 동일인이다) 
2016년 총선 당시 수구언론들은 당시 야당 지지표는 민주당과 안철수당으로 표가 갈릴 것이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과반수 의석은 당연하고, 잘하면 180석까지도 가능하다고 노래를 불러댔다. 여론조사 결과도 새누리당이 40% 지지를 받으며 압도적으로 이길 거라는 예측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2016년 총선, 출구조사 발표 당시 상황. 표정 변화가 키포인트.
2016년 총선, 출구조사 발표 당시 상황. 표정 변화가 키포인트.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새누리당 과반수는 커녕 민주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다. 2016 총선 결과를 놓고 여론조사의 무능함이 지적됐고, 당시 새누리당의 공천 파문, 김무성의 ‘옥새 들고 나르샤’ 등이 새누리당 패배의 원인이라고 지적됐다. 이는 결과를 놓고 원인을 짜맞추는 현상적인 분석일 뿐이다.  

새누리당, 옥새들고 나르샤 때문에 폭망한 게 아니다. 
새누리당, 옥새들고 나르샤 때문에 폭망한 게 아니다. 

나는 당시 결과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빠져있다고 본다. 2016년 총선 결과를 바닥에서 뒤집은 것은 당시 40대에 들어선 한총련 세대의 표심이다. 2004년 이후 12년만에 40대가 수구정당을 심판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에는 어렴풋이 느꼈지만, 지금 돌아보니 모든 변화를 이끈 동력은 바로 70년대생의 정치적 각성과 결집이다.    

 

86세대들의 착각과 오만, 아직도 몰라

한겨레는 2020년 총선 후, 5월 9일자 신문에 총선 결과 분석 기사를 올렸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20~30대는 진보, 40대는 반/반, 50대 이상은 보수 이렇게 구도가 짜여져 보수쪽이 유리했는데, 2016년부터 50대가 진보쪽으로 늘어나고, 2020년에는 50대에서 진보가 우세하여 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다. 40대는 20~30대에 동조하여 진보로 기울었다.   

 보수색 강했던 ‘스윙보터’ 50대, 왜 범진보로 기울었나 (한겨레, 2020.05.09)

86세대에 의한 86세대를 위한 한겨레의 헛다리 분석 
86세대에 의한 86세대를 위한 한겨레의 헛다리 분석 

이런 분석을 두고, 전문용어(?)로 ‘헛다리 긁기’라고 한다. 일단, 2020 총선 결과는 40대가 결정지었다. 40대가 주연, 50대가 조연인데, 주연을 빼고 조연을 놓고 분석하니 당황스럽다. 86세대에 의한 86세대를 위한 헛다리 분석이다. 다음으로, 40대가 20~30대 보다 진보 지지 비율이 높은데, 어떻게 끌려간다고 분석할 수가 있지? 끌려가는 쪽의 힘이 더 강한 것을 물리법칙으로 어떻게 설명하려는걸까. 그래서, 기자가 누군지 검색해 보았다. 역시나 62년생 서울대 출신. 예측이 맞았다. 

이는 2020 총선에서 각종 막말 파문으로 미래통합당(난 핑크당 이라 부른다) 후보제명을 당한 김대호 씨의 발언과 묘하게 연결된다. 참고로 김대호 씨는 63년생 서울대 운동권 출신이다. 
[김대호 / 미래통합당 서울 관악갑 지역구 후보 : 깨어있는 50대들, 민주화 세대들의 문제의식은 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30대 중반에서 40대는 논리가 아닙니다. 그냥 막연한 정서입니다. 거대한 무지와 착각입니다.]

서울대 80년대 초반 학번 운동권 출신. 이제부터 피해다니기로 했다.
서울대 80년대 초반 학번 운동권 출신. 이제부터 피해다니기로 했다.

세상이 오직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한국사회 민주화는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착각하는 서울대 80년대 초반 학번들…  이들은 한총련 세대 표심에 대하여, ‘민주화 투쟁도 끝나고 놀기만했던 X세대가 86세대보다 진보적인 투표를 할 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 하다. 거대한 착각과 오만이다. 86세대는 2016년부터 한국사회 변화를 하드캐리하고 있는 70년대생을 안보는건가, 못보는건가.  

 

변화를 만든 힘은 70년대생 한총련 세대

70년대생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일관되게 수구냉전세력을 극혐하는 투표성향을 뚜렷이 보이자 언론사들도 당황하는 것 같다. 수구언론 입장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물고 늘어지고, 무능 프레임으로 공격하면 천하의 86세대도 갈라졌는데, 날라리(?)라고 무시했던 X세대는 꿈쩍도 하지 않으니 얼마나 무섭겠는가. 
일단 40대와 호남이 민주당 정권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며, 변화를 만든 힘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는데, 40대가 왜 그러는지는 원인을 찾기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 같다. 

경향은 오징어 헛다리 긁기 중?  기사 숫자만 많을 뿐, 한총련이 빠진 40대 분석은 '앙꼬없는 찐빵'이다.
경향은 오징어 헛다리 긁기 중?  기사 숫자만 많을 뿐, 한총련이 빠진 40대 분석은 '앙꼬없는 찐빵'이다.

그나마, 경향신문사에서 최근 기획기사를 쏟아냈는데, 양으로만 밀어부쳤을 뿐, 내용은 실망스럽다. 
저 많은 기사들 중에, 한총련 이란 단어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탈권위주의네, 386에게 술자리에서 영향을 받았네, 노무현 키드네, 대중문화와 소비문화의 영향을 받았네 등등 이런저런 찌질한 이야기만 짠뜩 쏟아놓고 핵심은 피해간다. 참으로 놀랍다. 70년대생의 20대 시절을 한총련 없이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90년대 한총련 출범식에 참여한 대학생들만 연인원으로 수십만이다. 
한총련 세대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고 연세대에서 처절하게 짓밣혓는지, 그리고, 수구꼴통들이 만들어 놓은 IMF체제에서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쏟았는지 잊어버린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걸까.   
그래서, 내가 똑똑히 알려주겠다. 우리 한총련 세대가 어떻게 절망을 딛고 결집하여 변화를 이끌고 있는지를…

 

3.3. ‘절망’을 딛고 ‘각성’, ‘행동’을 거쳐 ‘결집’까지
 

꺾여진 깃발을 뒤로 하고 IMF 이후 생존투쟁
한총련 청춘들은 96년 연세대에서 잔인하게 짓밟힌 후, 97년 복수전을 준비했다. 전두환 정권시절 86년 건국대 항쟁 이후 87년 6월항쟁을 맞이했던 것처럼… 97년 선명하게 ‘김영삼 타도’ 깃발을 내걸었으나,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꺾였다. 
꺾여진 깃발과 감옥에 갇힌 동지들을 뒤로 하고, IMF 이후 생존투쟁으로 내몰렸다. 그렇지만, 한총련 세대의 밑바탕에는 연대와 협력의 정신, 공동체 문화가 남아있었고, 이것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다.  
한총련 세대는 직업의 안정성이 사라진 신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묵묵히 바닥에서부터 열심히 일하며 각 분야의 실무 전문가로 성장했다. 특히, 대중문화와 IT분야, 시민사회운동 분야에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96년 연세대항쟁, 아직도 아프다.
96년 연세대항쟁, 아직도 아프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을 보며 ‘절망’
한총련 세대가 숨을 돌릴 때쯤, 615선언과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남북교류가 시작되었다. 노무현 후보 당선을 보며,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청춘 시절 투쟁을 보상받는 것 같았다.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진 진보정당도 꾸준히 성과를 내며 발전하고 있어 흐뭇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출범과 이어진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을 보며 절망했다. 가장 힘있는 세대라는 86세대는 이미 갈라져 있었고, 30대로 접어든 한총련 세대는 아직 대세를 바꿀 힘이 없었다.
사기꾼이 대통령인 세상에서 돈은 종교가 되었고, 통합진보당은 2012 총선 후 분당사태를 거치며 쪼그라들었다. 노무현의 죽음이 있었음에도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에서 국회 과반수를 넉넉히 확보했고, 12월 대선에서는 박근혜가 당선되었다.       
       
세월호 아이들로 인하여 ‘각성’
절망에 빠져있던 한총련 세대를 일어서고 각성하게 한 것은 세월호 아이들이다. 2014년 40대에 진입하기 시작한 한총련 세대들은 세월호를 보고 경악했다. ‘우리가 힘을 키우지 않으면, 아이들이 죽는다’는 잔인한 현실은 모두를 각성시켰다. 한총련 세대들은 자녀들이 한참 커나가고 있을 시기에,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을 보며, 분노를 뼈에 새겼다. 그러니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세월호 아이들을 보며 각성한 한총련 세대는 반수구세력 콘크리트가 되었다.

한총련 세대는 세월호 아이들을 보며 각성하고, 폭발적인 행동에 나섰다.
한총련 세대는 세월호 아이들을 보며 각성하고, 폭발적인 행동에 나섰다.

촛불항쟁을 통해 폭발적 ‘행동’
각성한 한총련 세대들은 2016년 총선에서 1차로 행동에 들어갔다. 여론조사 때는 조용히 숨죽여 있다가 투표장에서 새누리당을 심판했다. 당시 통합진보당이 살아있었다면, 훨씬 더 탄력을 받았을텐데, 최순실-박근혜에게 강제해산 당한 것이 두고두고 원통하다. 
다음으로 2016년 겨울, 박근혜 탄핵 촛불항쟁에서 한총련 세대의 행동이 폭발했다. 중국에서 막 돌아온 후, 광화문에 나갔다가 아이들 손 잡고 온 후배들 정말 많이 만났다. 그중에서도 92학번 오월대 직속 후배, 아내와 두 아이들, 장인, 장모까지 모시고 집회장에 나온 걸 보고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2017년 박근혜를 탄핵시킨 거대한 힘의 중심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촛불을 든 한총련 세대가 있었다.   

70년대생 ‘결집’은 이제 시작일 뿐
역사적으로 볼 때, 승리의 경험을 가진 민중은 계속 전진한다. 그러니, 한총련 세대의 직접 행동과 결집은 이제 시작일 뿐,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한가지 충고하자면, 앞으로 선거 여론조사 기관들은 40대를 별도 통계치로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번번히 틀린 결과만 나올 것이기 때문에…한총련 세대는 일반적인 통계 변수를 넘어선 몰표로,  여론조사 기관들을 두고두고 괴롭힐 것이다.       
청춘시절 쓰라린 패배를 안고, 묵묵히 자신의 진지를 지키며 살아온 벗들이여 함께 가자. 50대가 되고, 60대가 되더라도 청춘시절 우리의 꿈 자주민주통일을 달성하자.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통일노래한마당에서 처음 발표할 때.

 

3.4. 똥차들 비키시라. 한총련 세대가 간다

수구냉전세력, 당신들 큰일났다
한총련 세대가 결집하였으니, 이제 수구냉전세력들 피똥 싸게 생겼다.  
우리는 수십년간  빨갱이라며 얻어맞고 다녔기에, 웬만한 이데올로기 공세로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20대 시절, 5일간 쫄쫄 굶으면서도 초코파이 하나로 20명이 나눠먹고, 10여대의 헬기, 최루액과 최루탄, 경찰특공대와 3만병력에 맞서 싸운 투지를 안고 40대의 연륜과 경험까지 장착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하더라. 불혹을 넘어 행동하고 결집했기에, 삶이 다하는 날까지 정치적 신념이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수구냉전세력, 당신들 큰일났다.   

 

똥차들 비키시라. 한총련 세대가 간다 
한총련 세대는 실무 현장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전문성, 디테일이 강하다. 그리고, 공동체 의식과 개인주의가 공존하는 90년대에 청춘을 보내 다양성을 수용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감성이 교차하는 90년대 대중문화를 창조하며 문화적으로도 풍족하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탄탄한 힘을 자랑하던 한총련 세대가 이제 정치적 각성과 결집까지 이뤄냈다. 70년대생이 인구구조상 숫자도 제일 많다. 누가 우리를 막겠는가. 
똥차들 비키시라. 한총련 세대가 자주통일시대로 쭉~ 나간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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