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간 관세·안보 합의를 문서화하는 '조인트 팩트시트(JFS·합동설명자료)'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간 관세·안보 합의를 문서화하는 '조인트 팩트시트(JFS·합동설명자료)'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14일, 미국이 팩트시트를 공개하면서,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보도됐던 관세·투자·안보 협상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자국의 관세 체계와 전략자산 관련 문구를 조정하는 수준에 그친 반면, 한국은 대규모 투자와 시장개방, 국방비 인상, 주한미군 지원까지 구체적인 액수를 적시하며 부담을 떠안는 형태가 됐다.

미국이 약속한 것

미국은 우선 관세 구조에서 기준선을 제시했다. 미국은 행정명령 14257호에 따른 상호 관세와 관련해, 한국산 물품에 대해 한미 자유무역협정 또는 미국 최혜국 관세율 중 적용 가능한 세율과 15퍼센트 가운데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한국산 상품 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 또는 최혜국 관세율이 15퍼센트 미만인 품목에 대해서는 기존 관세에 232조 관세를 더해 합계가 15퍼센트가 되도록 설계했다. 의약품에 대해 232조 관세를 부과할 경우에도, 한국산 제품에는 15퍼센트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문구를 별도로 넣었다.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의 232조 관세에 대해서는, 미국이 앞으로 다른 나라와 맺을 수 있는 반도체 교역 합의보다 한국이 불리하지 않도록 한다는 수준의 표현을 사용했다.

안보 항목에서 미국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문구를 나열했다.

미국은 핵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활용한 확장억제 공약을 재확인하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협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 범위 안에서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절차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담았다.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고, 연료 조달 방안은 논의를 이어간다고 밝혔다. 미국 선박의 한국 건조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조항들은 미국의 직접 재정 지출이 동반되는 약속이라기보다, 미국이 승인하고 지지 의사를 표현한 데 그친다.

한국이 약속한 조치들 – 투자·시장개방·군사부담

반면 한국이 약속한 내용은 구체적인 액수와 제도 변화가 중심을 이룬다.

한국은 미국 승인 하의 조선 분야 1,5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유지하겠다고 했고,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을 전제로 2,000억 달러의 추가 투자도 약속했다. 이와 관련해 외환시장 안정 항목을 별도로 두고, 한국이 한 해에 조달해야 할 미화가 200억 달러를 넘지 않도록 하며, 가능하면 시장 매입 방식이 아닌 다른 경로로 달러를 조달하기로 했다. 조달 과정에서 시장 불안 우려가 생길 경우 한국이 금액과 시점 조정을 요청하면 미국이 성실히 검토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총 1,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직접투자를 추진한다는 계획이 부속적으로 붙었다. 대한항공은 보잉 항공기 103대를 360억 달러 규모로 추가 주문해, 2025년 기준 누적 발주가 150대를 넘게 된다. 미국산 상품의 한국 수출 확대를 위해 매년 ‘Buy America in Seoul’ 전시회를 개최하겠다는 약속도 한국 쪽 부담에 포함됐다.

시장개방 조치도 촘촘히 들어 있다. 한국은 미국 연방 자동차 안전기준을 충족한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한국 국내 기준을 별도 적용하지 않고 수입하는 물량을 5만 대로 제한하던 상한을 없애기로 했다.

식품·농산물 분야에서는 기존 양자 협정과 의정서를 제대로 이행하고, 농업 생명공학 제품의 국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며, 미국 측 신청 건에 대한 적체를 해소한다는 방향을 담았다. 미국산 원예 작물을 담당하는 전담 창구(U.S. Desk)를 설치하고, 특정 명칭을 사용하는 미국산 육류와 치즈의 시장 접근을 유지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디지털 분야에서는 망 사용료나 온라인 플랫폼 규제와 관련해 미국 기업이 차별받지 않도록 했다. 또한 위치정보, 재보험, 개인정보 등 각종 데이터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히 허용하기로 했다.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를 위해 특허법조약 가입을 위한 조치를 계속 취하고, 세계무역기구 수산보조금 협정을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의무도 적시했다.

군사·안보 분야에서 한국이 떠안는 재정 부담도 구체적이다. 한국은 국내 법적 요건에 따라 국방비를 국내총생산 대비 3.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공유했다. 이어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250억 달러를 구매하겠다고 약속했고, 주한미군에 대한 포괄적 지원으로 330억 달러를 제공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서는 미국 첨단 무기 체계 도입과 양국 방산 협력 확대를 연관시켰다.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력을 확대하고, 미국 조선 산업 현대화와 역량 확대에도 기여하겠다는 문구를 수용했다.

이번 합의의 의미

미국은 승인·지지·조건 제시를 통해 정치적 성과를 확보했고, 한국은 수치가 명시된 지출이 떠안았다. 특히 1,500억 +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 250억 달러의 미국산 무기 구매, 330억 달러의 주한미군 지원은 모두 한국 재정과 산업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전면에서 정말 힘 센 강자와 우리의 국익을 지키기 위한 협상을 하는데, 그걸 버티기도 참 힘든 상황에서 뒤에서 자꾸 발목을 잡거나 왜 요구를 빨리 안 들어주느냐라고 하는 것은 참 견디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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