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근무 도입 시작한 택배사들
“쿠팡 때문에 사회적 합의 깨져”
아버지 장례 때도 하루 쉬고 복귀
ID 공유, 만연한 7일 이상 근무
“택배 당사자 목소리 빠진 공방”
쿠팡은 사회적 합의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업계 매출 1위를 달성했다. 이에 타 택배사들도 사회적 합의를 깨고 순환근무제 도입을 추진하면서 ‘쿠팡에 집중된 산재가 다른 택배사에까지 전염될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온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25명의 쿠팡 노동자가 사망했다. 새벽배송과 속도경쟁 때문이다. 그 대가로 단 몇 년 사이, 쿠팡은 유통·택배 업계 1위에 올랐고 2025년 3분기 순이익은 지난해 대비 20%가 상승했다. 하지만 쿠팡이 2021년 노사가 이룬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며 매출을 올리자, 타 택배사들도 조금씩 사회적 합의를 깨고 있다.
2021년 1차 합의에서 이들은 주 6일 근무를 5~5.5일 근무로 조정, 심야 배송 조정 또는 폐지, 기사들에게 전가되는 분류작업 폐지를 합의했다. 그 결과, 주말에 택배기사들의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간혹 보이는 택배기사는 대부분 쿠팡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다른 택배 업체들이 쿠팡에 밀리지 않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깨기 시작했다. CJ대한통운과 한진에 주7일 배송이 도입됐다. 우체국에서도 ‘2회전 배송’이 건의되고 있다.

박대희 택배노조 서울지부장은 “쿠팡 때문에 생태계가 무너지고 사회적 합의에 금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CJ가 지난해 도입한 주7일 순환 근무는 2인 1조, 4인 1조 등 한 명은 일요일, 다른 한 명은 월요일에 순차적으로 쉬는 사람 배송 구역까지 함께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한진도 올여름부터 같은 시스템을 도입했다. 박 지부장은 “롯데 택배도 올해 12월, 1월에 도입할지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쿠팡이 사회적 합의에 불참하면서 다른 택배사들도 이를 지킬 의지가 사라지는 거다.
쿠팡의 산재가 다른 택배기사에게 전염될 거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0일 사망한 쿠팡 노동자 고 오승용 씨는 8일 초장기 근무에 더해, 휴무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노조가 유족의 허락을 받아 지난 10일 사망한 오승용 씨의 휴대전화를 분석한 결과다.

쿠팡은 야간 택배기사 노동 강도를 낮추겠다며 ‘격주 주 5일제’를 시행한다고 주장했으나, 고인의 경우 다른 직원들의 ID를 돌려가며 8일까지 근무했다. 고인이 카카오톡을 통해 다른 기사들의 ID로 근무한 날을 계산하며 정산하는 내용이 확인된 거다. ID는 대리점 관리자가 돌려가며 권유했다.
휴무도 자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노조와 유가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아버지 장례 때도 단 하루 쉬고 곧바로 야간 업무에 복귀했다. 휴무를 요청하자, 이직을 권유하는 내용도 확인됐다.

지난 9월 택배노조와 소비자 단체, 국회, 정부는 ‘속도보다 생명’을 강조하며 택배 사회적대화기구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대화가 지지부진한 사이 또 한 명의 택배노동자가 사망했고, 정치권에서는 당사자 없이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박 지부장은 새벽 배송을 두고 최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장혜영 전 의원의 공방을 지적하며 “노동자 당사자 목소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택배 노동자도 새벽배송을 없애자는 입장이 아니”라며 굳이 새벽에 받지 않아도 될 물건들까지 새벽배송을 요청하게 돼 있는 시스템을 문제 삼았다. 그는 “이런 시스템을 손봐서 꼭 필요한 사람들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들도 있으니, 사회적대화를 통해 당사자들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