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총리의 ‘대만유사시 개입’ 발언이 잘못된 이유
군사대국화로 향하는 일본: 전수방위에서 역외전략으로
한국의 안보환경에 미칠 영향은...

일본의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가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으면서 동북아 정세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7일 국회에서 일본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대만 유사시’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본 총리의 ‘대만유사시 개입’ 발언이 잘못된 이유
일본 총리의 발언은 국제법적·헌법적·역사적 측면에서 모두 상당한 논란을 안고 있다. 일본은 국제법적으로 UN 헌장 제51조에 따라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을 보유하지만, 전범국으로서 제정된 평화헌법 9조 때문에 전후 오랫동안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 자체가 금지되어 왔다.
2014년 아베 내각이 안보법제를 개정해 ‘제한적 집단적 자위권’을 갖추게 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국과 밀접한 국가가 공격받아 일본의 존립이 위협되고, 국민의 생명에 명백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만 엄격하게 적용되는 매우 제한적인 형태다.
대만은 UN 회원국이 아니고 일본과 상호방위조약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만 유사시 일본의 군사개입은 국제법상 집단적 자위권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동시에 이는 전범국인 일본 평화헌법 9조가 명시한 전쟁·무력행사 금지 취지와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나아가 일본은 과거 침략전쟁의 책임을 가진 전범국이기 때문에 주변국의 동의 없이 해외 군사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 자체가 역사적으로 금기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 총리의 ‘대만유사시 개입’ 발언은 법적 정당성과 역사적 정당성이 없는 위험한 주장이다.
이에 중국 정부는 즉각 엄중한 입장을 천명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발언을 “터무니없는 도발”로 규정하며 일본 대사를 초치해 엄중 항의했고,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 자제 권고까지 내리며 대응 수위를 높였다. 중국에게 대만 문제는 핵심 이익이자 ‘레드라인’이기 때문에 일본의 공개적 군사개입 시사는 그 자체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군사대국화로 향하는 일본: 전수방위에서 역외전략으로
이번 발언의 파장이 큰 이유는 법적·역사적 정당성이 없는 위험천만한 주장임에도 일본의 군사적 행동 기준을 구조적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유사시를 ‘존립위기 사태’로 규정할 경우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는 사실상 크게 넓어지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일본의 역외 군사 개입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최근 일본은 장거리 타격 미사일, 항공모함급 전력, 우주·사이버 역량 등 사실상 ‘선제공격 능력’에 해당하는 전력을 빠르게 강화하고 있다. 방위비도 2027년까지 GDP 대비 2%(현재 1.6%)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러한 군사대국화 흐름과 맞물려 일본의 안보 전략은 기존의 ‘전수방위’를 넘어 적극 방위, 나아가 역외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일본 국내 정치의 맥락도 무시할 수 없다. 대만해협 긴장을 ‘직접적인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는 것은 평화헌법(헌법 9조) 개정의 명분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일본 보수 정치권은 오래전부터 평화헌법이 현실적 위협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번 대만 유사시 존립위기 사태 발언은 개헌 논리를 강화하는 기반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일본의 안보정책 방향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긴밀히 연동되어 있다. 미국은 중국을 군사·경제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대만해협 안정 유지, 동맹국 확대와 안보구조 재편, 미·일 동맹 강화, 한·미·일 협력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을 대중국 억제의 ‘전진 기지’로 활용하며,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한국의 안보환경에 미칠 영향
결과적으로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는 동북아의 군비 경쟁을 더욱 심화시킬 전망이다. 일본과 중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주변국들 또한 방위 강화 차원에서 국방비를 증액할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국방비 증액 압력을 받고 있듯이, 주변 국가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될 것이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의에 명분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대만 문제를 사실상 자국 안보 사안으로 규정한다면, 미국은 한국에도 보다 적극적인 대만해협 협력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역외 활동 범위 확대가 쟁점화될 수 있다. 이는 한·중 관계와 한·미 관계 사이에서 한국이 더욱 어려운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가 존립 위기에 따른 판단”이라고 하지만, 일본의 안보 강화가 오히려 동북아 전체의 불안정을 키우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고 있는 만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