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수 작가가 23일 뉴스토마토 에 출연해 한 얘기를 요약했습니다.
임승수 작가가 23일 뉴스토마토 에 출연해 한 얘기를 요약했습니다.

지난 11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양국의 관세·안보 협상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를 직접 발표했습니다. 특히 안보 분야에서는 미국이 우리나라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했고, 이와 함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논의 의지도 문서에 명시돼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핵잠수함 승인이라는 사안이 국제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왜 주변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지 다뤄보겠습니다.

우선, 대한민국이 핵잠수함을 건조하는데 왜 미국의 승인이 필요할까요? 기존 디젤 잠수함은 배터리가 떨어지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지만 핵잠수함은 원자로를 달고 있어서 몇 달이고 잠수가 가능해 은밀성과 작전반경에서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한 번에 지구 반대편까지 이동해 작전을 수행하고 적을 타격할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원자로입니다. 폭탄 같은 핵무기를 만드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평화적 목적이 아닌 군사적 목적으로 핵기술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한 문제가 되는데요.

실제로 한미 간에 맺은 원자력협정, 그러니까 우리가 미국 핵기술을 사용하려면 지켜야 하는 규칙에서도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처럼 핵무기 생산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공정은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잠수함 추진 동력에 사용된다지만 어쨌든 핵물질의 확보 및 처리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보니 미국으로서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도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는 겁니다.

미국은 핵무기 통제와 비확산에 사활을 걸고 있는데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통해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지요. 핵보유국들의 주도로 1970년에 발효된 NPT 체제는 표면적으로는 핵확산 방지가 목적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핵보유국들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성격이 강합니다. 예컨대 어떤 나라가 자체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원자력 발전소를 지으려면 핵연료, 발전소 부품, 기술 등을 외국에서 도입해야 할 텐데요. 이때 NPT에 가입해야만 국제 공급망에 접근이 가능합니다. NPT에 가입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 나라에게만 핵연료와 기술을 제공해 주겠다는 거거든요. ‘이 나라가 핵무기용 물질을 몰래 만들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신뢰가 확보돼야 국제 핵 산업망이 열리는 거죠. 그러니 사실상 NPT에 가입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NPT 체제를 미국이 쥐고 흔들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의 비확산, 군축, 평화적 이용, 이 세 가지를 약속하는 체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확산은 새로운 나라들이 핵무기를 못 만들게 막자. 핵을 이미 가진 나라는 다른 나라에 핵무기 넘기지 말자는 얘기이고, 군축은 핵무기를 줄여나가자는 것이고, 평화적 이용은 비핵국가들도 원자력 발전 같은 평화적 이용은 할 수 있도록 핵연료·기술은 제공하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를 받자는 거지요.

하지만 NPT 체제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구조적으로 굉장히 불평등하게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조약 체결 당시 핵을 이미 갖고 있던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이 다섯 나라만 소위 ‘합법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렇다고 이 다섯 국가가 비핵보유국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군축의 경우도 ‘핵무기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정도여서 실제로는 유명무실한데요. 결국 이 체제 하에서 비핵국가는 영원히 핵무기를 가질 수 없고, 이래저래 눈치 봐 가며 아주 제한된 평화적 목적 범위 안에서만 허용되는 겁니다. 그러니 사실상 ‘기득권 유지 체제’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NPT 체제가 불평등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어요. 핵을 이미 가진 나라만 합법이고, 나머지는 영원히 핵무기를 못 갖게 묶어두는 구조니까요. 그럼에도 이 체제가 유지되는 진짜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딱 하나입니다. 이 체제를 벗어나는 순간, 강대국들이 경제·외교·금융·안보 분야 전반에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매우 강력한 제재를 가하기 때문입니다. 핵보유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핵무기는 국가 간 힘의 구조를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에, 새로운 나라가 핵무장을 시도하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으려 하는 거죠. 자신들의 군사적·정치적 우위를 유지하려는 동기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NPT에서 공인한 다섯 나라 외에도 핵을 보유하게 된 나라들이 있습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북한인데요. 각 나라가 핵을 갖게 된 배경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안보 불안’이에요. 핵무장은 국제정치에서 최후의 억지력, 그러니까 생존을 보장해주는 수단이기 때문에 이들 국가는 모두 자기 생존이 위협받는다고 판단했을 때 핵개발을 선택했습니다.

인도는 오랫동안 중국과 국경 분쟁을 겪어 왔습니다. 중국이 이미 핵을 가진 상황에서 ‘우리가 핵이 없으면 안 된다’는 판단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1974년에 첫 핵실험을 했고, 1998년에는 사실상 핵보유 선언까지 이어졌습니다. 인도는 애초에 상당 수준의 핵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던 데다가 일부러 NPT에 가입하지도 않았습니다.

파키스탄 핵개발은 거의 100% ‘인도 대응’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도가 핵을 갖게 되자 파키스탄 내부에서는 ‘핵을 갖지 못한 파키스탄은 인도의 하위 국가가 된다’는 강한 위기감이 생겼고, 결국 핵개발로 이어졌습니다. 파키스탄 역시 NPT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인도를 의식한 행보였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소련과 인도를 견제하려면 파키스탄과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핵무기 개발을 반대했지만 사실상 묵인하는 식으로 되었고요.

이스라엘은 그 나라의 탄생 과정을 보면 분쟁을 잉태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내포하고 있는데요. 태생적으로 안보 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조건이죠. 실제로 여러 차례 전쟁도 겪었고요. 주변에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나라들이 가득하니 핵무기를 가져야겠다는 의지가 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프랑스가 1950~60년대에 원자로와 재처리 기술을 제공한 것이 결정적이었고, 이후에는 자체적으로 플루토늄 생산 능력을 확보하면서 사실상 핵무장에 성공하게 됩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개발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전략적 묵인’을 선택한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유례없는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미국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제재하는 가운데 이뤄졌으니까요. 북한 역시 ‘안보 불안’에서 핵무기를 개발한 건 앞선 나라들과 동일하지만, 안보 불안을 느끼는 대상이 바로 미국이었다는 점이 주목할 부분입니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붕괴하면서 북한은 사실상 핵심 후원자를 잃었고, 중국 역시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북한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는데요. 그러다 보니 북한은 자신들의 생존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이 극도로 커졌죠.

북한은 미국과 직접적인 군사 대치를 지속해온 나라입니다. 주한미군의 존재, 한·미 연합군사훈련, 그리고 미국의 핵우산 전략까지 모두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북한은 “핵만이 미국의 군사적 위협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거죠. 그래서 2003년 NPT를 탈퇴했고, 이후 수차례 핵실험을 거치며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기정사실화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은 모두 어느 정도 국제정치 구조의 틈, 즉 강대국들의 전략적 계산과 묵인 속에서 핵무장을 진행할 수 있었지만, 북한은 그와 반대로 강대국의 직접적인 반대와 제재 속에서 핵개발을 성공한 거의 유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민감한 핵연료를 사용하는 잠수함을, 미국이 이번에 대한민국과의 협상에서 승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게다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도 한국 측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모양새거든요. 이것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을 깊숙이 편입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주고받기', 즉 '빅딜'이라고 봐야 합니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태평양 전역의 전력을 강화하고자 하는데 이번 핵잠수함 건을 통해 그 역할 및 비용 일부를 한국 측에 전가할 수 있다는 셈법입니다. 또한 한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자체 핵무장론'을 무마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북한이 핵과 대륙간탄도탄으로 미국의 심장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는데, 한반도에서 전쟁 나면 미국은 워싱턴이 공격당할 위험을 감수하고 남한을 지원할 수 있겠느냐 이런 문제 제기가 있거든요. 핵잠수함 건조 승인과 핵연료 자율성 지지라는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한국의 안보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하고 미국 중심의 핵 억제 체제(확장 억제) 안에 한국을 더욱 확고하게 묶어두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번 미국의 핵잠수함 승인은 국제정치적으로 상당히 예민한 문제일 수 있는데요. 핵무기를 만드는 건 아니라지만, 어쨌든 군사적 목적에 사용되는 걸 승인한 셈이니까요. 주변국들 반응은 어땠을까요?

10월 29일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잠수함 건조 허용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이재명 대통령은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쪽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며 “미군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한국에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고 밝혔는데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측의 요청을 승인했습니다.

이튿날인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한미 양국이 핵 비확산 의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고, 지역 평화·안정을 촉진하는 일을 하지 그 반대를 하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하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중국은 이미 호주가 미국과 함께 핵잠수함 도입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지리적으로 더 가까운 한국까지 핵잠수함을 보유하게 될 경우 동북아 군사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11월 14일에 한미 공동 팩트시트가 발표되고 4일 후인 11월 18일에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미국이 한국에 핵잠수함 보유를 승인해 준 것은 한반도를 초월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전지구적 범위에서 핵통제불능 상황을 초래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기 전인 2003년부터 비밀리에 핵잠수함 건조 계획을 추진한 일이 있으니, 자신들의 핵보유에 대한 대응조치일 수는 없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핵잠수함 보유는 자체핵무장의 길로 나가기 위한 포석이고 결국 지역에서의 핵도미노현상을 초래하고 치열한 군비경쟁을 유발하게 되어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뉴스 댓글들을 살펴봤는데, 네티즌들의 반응이 흥미로웠어요. 북한을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하는 댓글이 많았습니다. 너네가 가지고 있는 핵무기는 뭐냐는 거죠.

우리가 늘 잊기 쉽지만, 이 한반도라는 공간에서 가장 근본적인 안보 불안 원인은 ‘남북이 적대적 군사 체제를 유지한 채 분단돼 있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남과 북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상대의 붕괴나 굴복을 가정한 전략을 펼치는 한, 군비 경쟁은 구조적으로 멈출 수 없습니다. 냉전의 유산을 청산하지 못한 채 70여 년이 지나도록 정전협정 상태로 남아 있고, 매년 대규모 군사훈련이 반복되며, 대화를 하다가도 정권 변화에 따라 곧바로 끊기고, 신뢰를 쌓아갈 틈이 없는 상태죠. 미국과 주변 강대국은 우리 민족의 분단 상황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활용하고 있고요.

하지만 남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설령 민족 분단의 주요한 책임이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에 있다손 치더라도, 결국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건 우리의 과제니까요. 미국이나 중국이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죠.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겁니다. 결국 군사력 강화만으로 궁극적인 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는 남북이 총부리를 내리고 신뢰를 회복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만드는 주체는 강대국이 아닌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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