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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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지가 않고... 자기들이 한번 써먹었던 방법이라 방비가 대단해요.
  장면정권은 군대관계는 전혀 백지상태였거던요. 지금 이 사람들은 정보장교 출신들이 아닙니까...”
  안국광대위를 만나기 위해서 강욱철은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혼자서 군부대 주둔 지역인 강원도 철원이나 경기도 포천 등을 나들이 한다는 것은 저들에게 좋은 단초를 주게 된다.
  강욱철은 청량리역에서 윤창현동지가 보내준 젊은 여자와 함께 동행을 했다. 이름은 정민순 나이는 20대 후반, 겉으로 보기엔 이제 사귀기 시작한 초보 애인이었다. 만약 일이 생겼을 경우, 청량리역에서 우연히 만난 현장조달 애인이 되는 것이다. 우연히 서로 만나 발길 닿는데까지 동행을 한 것이다.
  시외 뻐쓰를 타고 포천을 거쳐 안국광대위의 근무지인 철원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까 노처녀 정민순과는 그렇게 친절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고, 밋밋할 필요도 없고, 적당히 초보애인 정도의 행세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백마고지가 건너다 보이는 곳이었다.
 전쟁 때 고지의 주인이 열두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산거죽이 하얗게 다 벗겨질 정도의 포탄세례를 받았다. 전사자가 너무 많아 피아의 시체를 구별할 수 조차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395미터의 이름없는 산이었으나 산봉우리의 흙이 포탄세례에 하얗게 되집어졌었기 때문에 ‘백마고지’ 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더 인상적인 유적도 있었다.
  이곳은 전쟁 전 38 이북 땅이었다. 구 철원지역에 남아 있는 폭격 맞은 노동당사와 부숴진 채 그대로 서 있는 거대한 화차의 모습이었다.
  조선노동당 철원군당 당사는 앙상하게 담벼락만 남아 있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라는 푯말과 함께 새빨갛게 녹이 슬은 화차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포탄에 부숴지고 깨어진 화차 옆엔 총알 자국이 선명한 철모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총알자국, 구멍이 숭숭 뚫린 전쟁의 상처들... 보는 이의 가슴에도 전쟁의 상처가 숭숭 구멍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이 땅 어디를 가도 6.25전쟁의 상흔이, 어느 마을 어느 산야에나 아직 그대로 산재해 있었다. 외세에 의한 국토분단 동족상잔의 핏자국이 우리강산 어디를 가도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그 수많은 상처들은 피묻은 손을 들어 아우성치며 보는 이들을 맞고 있었다.

▲ 철원 노동당사
▲ 철원 노동당사

  강욱철은 그러한 가슴을 안고 안국광대위와 마주 앉았다.
  “어려운 일이니까 천하의 호랑이 안국광대위와 의논하는 것 아니겠소.
  먼저 동문 장교를 찾는 일은?....”
  “그게... 장교치고 정규 대졸자가 거의 없어요.
  육사 출신을 제외하면 거개가 간부후보생 출신인데, 전쟁 때 현지 임관한 장교도 있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말이 안 통해요.
  지금 겨우 영관장교 두어사람과 술 한잔 하는 사이예요.”
  “내가 군대 있을 때는 쫄병이기도 하고 미쳐 생각을 못했습니다만, 제대 후 선배들한테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육사에 신경 써야 한다고 부탁을 했었죠. 자기 자식이나 가까운 친지의 자식들을 사관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여수 14연대 시절 하고도 달라요. 지금 군대 편제가 얼마나 거대 해졌습니까?
  해방직후, 그 때는 세상 분위기가 민족이니, 동포니, 애국이니, 독립이니가 감동을 주고 먹혀 들어갔어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세상이 어쩌다가...”
  안국광대위의 호랑이 눈에 쓴 웃음이 올랐다.
  “장교세계는 내가 좀 어두워서... 어떻게 병과를 바꾸어 정보장교로?....”
  “그게....
  나는 또 육사출신도 간부후보생 출신도 아니라서, 학군단 출신은 우리가 1기 아닙니까. 아직 인맥이 없어요.. 사회나 군대나 빽세상인데 줄이 있어야...”
  “그것 참, 자자... 목이나 축입시다.”
  강욱철이 앙 물었던 입술을 풀고 술사발을 들었다.
  지금 바깥 마당에는 강욱철과 동행한 노처녀 정민순이 있었다.
  그녀는 마루에 걸레질도 하고 마당가에 버려져 있는 허드렛 것들을 치우고 있었다.
  이 집 주인 내외는 농사일을 하느라 집을 비우고 들판으로 나갔다. 남자주인은 안국광대위 중대에 근무하다가 군복을 벗은 김병장의 아버지가 된다. 친구가 애인 데리고 놀러 온다고 촌닭 한 마리를 삶아 달라고 미리 부탁을 했었던 것이다. 전에도 제대한 김병장을 통해서 중대 하사관들과 촌닭을 삶아놓고 술자리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 조용하게 한 잔 하기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그럼 호랑장군, 방향을 좀 바꿔 보는 것으로...”
  호랑장군은 강욱철이 붙여 준 안국광대위 애칭 별호다.
  나중 별을 달면 웅호장군으로 별호를 바꿔 부르기로 지난번 휴가 때 약속을 했었다.
  “가능하면 연대급은 되어야 하는데, 세상일이 어디 마음대로 돼나? 정 어려우면 2개 중대라도... 이놈의 세상에 충격을 던져야지, 도대체가 세상이...”

  강욱철은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방금 방향을 바꾸어보자는 것은, 서울인근에 주둔한 군부대를 움직여 약 6천명 정도를 동원하자는 계획이었다. 서울 장악 계획을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강욱철은 ‘개미 이론’을 폈었다.
  개미 몇 마리가 뚫은 작은 구멍이 큰 강뚝을 무너뜨린다는 이론 말이다.
  이에 대해 안국광대위의 분석은 이렇다.
  이미 1개 군단 규모의 수도방위사령부가 설치되었다. 명분은 인민군의 남침을 막는다는 서울 방위 계획인데, 사실상 박정희의 잠자리 방어사령부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어떠한 반란부대도 수도경비사의 방어망을 뚫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해 1월21일 박정희의 목을 따기 위한 124군(김신조부대) 부대사껀으로 이중 삼중의 철통방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지엽적인 작전조껀이 문제가 아니고 구조적인 전략환경이 문제라는 것이다.
  첫째는 세계전략에 의한 미국의 조선반도 지배전략, 두 번째는 남조선사회의 민중의 의식 구조, 셋째는 군부엘리뜨의 저질성과 자주성 결여가 군대 봉기의 바탕 장애라는 것이다.
  친일 친미 외세의존 사대매국 노선의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과 조선반도 영구 분단 지배전략에 매우 부합되는 것이다. 남조선 사회는 일제강점기에 혹독한 억압 수탈정책에 주눅이 들고 기가 꺾였다. 미국자본제국주의 24년 동안 이들의 지능적이고 계획적인 식민통치술에 의해 사상의 공백, 정신적 기형성, 주체 독립의지가 말살 되었다.
  무엇보다도 군대봉기의 특성상 의식화된 군부 엘리뜨인데 이것들이 도대체 기본 인격수준 미달이라는 것이다.
  잘해보아야 일본 군대 위관급에 병졸계급 오장급이고 밀정 밀대 끄나풀 출신이었다. 이것들이 별을 달고 설쳐대는 판이니 여기 어디, 나라, 민족, 애국. 통일, 봉기가 먹혀 들어가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별자리들이 부대시찰을 오면 오늘 또 ‘똥별’이 떴다고 사병들이 수근덕 거린다는 것이다.
  명색이 정규사관학교 출신들도 우수마발(牛溲馬勃)이라는 것이다.
  사관학교 교수라는 것들은 대부분 미육군대학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이들은 빠다귀신이 들려 숭미사상의 화신이 되어 귀국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후배 사관생도들에게 앵무새처럼 미육군대학에서 배운대로 숭미정신을 전수한다. 나라는 나락의 둘째 형님이고, 민족은 배반하는 것이고, 통일은 안 되어야 하는 것이고, 자주는 빨리빨리의 사촌동생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미육군대학 교수부 발행 교재에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미국에 대한 맹목적 충성은 너무도 기특하고 가상한 면이 있었다. 미국애들이 너희 아버지를 동생이라 부르라면 제 아비를 동생이라 칭하고도 남을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방향(계획)을 바꿔서라도 한번 문제를 만들어보자는 것 아니오? 충격 말이오, 충격!...
  역사변혁운동, 세상 뒤엎어 바꾸는 일이 어디 그렇게 헐값에 이루어지나요. 성공 실패를 떠나서 시대 상황, 역사 현실의 부름에 어떻게 응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오?.”
  “강동지의 말은... 세상 다 썩고 강산이 적막한데 시대를 깨우는 짹 소리라도 한번 질러보자, 조약돌 하나를 던졌는데 거대한 강바닥의 얼음짱이 갈라질 수도 있다. 통일의 뱃길이 열릴 수도 있다. 역사에 파장을 내자. 성공과 실패는 나중 일이다?...”
  술잔을 든 채 안국광대위가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
  “무모한 건 사실이오. 현재 남북이 대치한 무력규모로 보나 남북 육상전력의 머릿숫짜를 보나, 극히 미세한 파장이 예상되지요.
  남조선 군대 2개중대가 철조망을 뚫고 3.8선을 넘어 북상을 했다! 이것 자체가 세상을 뒤엎는 일이요.
  동원규모가 적다고 해서 혁명이 아닐 순 없는 것이요.
  동학혁명, 3.1만세 동원규모가 엄청났지요. 이 엄청난 혁명자원이 동원 되었는데도 결과는 실패였지요. 아니 실패가 아니고 현실적으로 정권탈취 기존제도를 뒤엎질 못했어요. 그러나 의병투쟁 독립유격군 전쟁으로 확대 재생산 되었지요.”

  강욱철은 목이 타는 듯 술잔을 들어 안국광대위의 술잔과 쨍그랑 소리가 나게 크게 부디쳤다.
  잔을 들이킨 강욱철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인원이 적다고 역사에 던지는 파장, 혁명성이 모자란 건 아니요.
  김옥균은 채 일천명이 안되는 병력으로 일단 혁명에 성공을 했잖아요. 사람들은 3일천하라고 비아냥거리지만 1일천하라도 혁명은 혁명이오. 우리나라처럼 외세가 초혁명현상을 만들어 내는 불법, 반칙, 국제법위반을 직시해야지요.
  외세가 불법 개입하지 않았을 경우, 외세가 강도적 숫법으로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 우리민족은 여러번 인민혁명을 성공적으로 충분히 수행 완수했을 것이요.”
  “아, 강동지!
  내가 외세를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소.
  외세가 만들어 내는 초혁명상황, 외세개입이나 외세지배로 인한 혁명 와해에 대해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던 것 같소. 혁명 미완상황의 끝없는 전개, 이런 변칙적인 모순이 주는 상황에 대해 눈을 주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오.
  그러니까 외세가 초혁명상황을 생산해내는 조선반도의 역사현실에서의 혁명의 의미....”
  안국광대위도 목이 타는 듯 놓았던 잔을 들어 목을 추기고 있었다.
  “호랑장군!
  녹두장군 전봉준, 지리산 야산대장 이현상, 제주도민의 파랑새 김달삼 이덕구동지, 피아골 영웅 지창수 김지회장군, 이 모두가 혁명성공의 영웅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혁명에 실패하지 않았어요. 지금 이 순간 호랑장군과 이 강욱철의 핏속에 그들이 시뻘겋게 살아있잖아!?”
  “역시 강동지구만...”
  안국광대위가 잔을 들고 강욱철의 팔을 걸었다.

  이렇게해서 어려운 철원일정을 마친 강욱철은 곧바로 서울행 뻐쓰를 탔다.
  구토(舊土)회복, 궁예의 고구려 부활의 웅혼한 꿈이 잠든 철원평야가 그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피곤했었던 모양이다. 긴장이 풀려선지 눈꺼풀이 자꾸 밑으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옆자리에 정민순 노처녀가 앉아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 채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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