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10
“강선생 어쩔 겁니까?”
거듭되는 윤창현의 재촉이었다.
이목구비가 곱상하게 시골선비처럼 생겼다. 그중에서 유난히 톡 불거져서 전체 얼굴 분위기의 조화에 반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의 눈두덩이었다. 제법 간장종지 하나를 엎어놓은 것처럼 불거져 나온 것이다. 역력한 반골의 눈두덩이었다. 반골들의 눈두덩엔 원래 핏종지가 들어있기 마련이었다.
“어저께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쪽발이 새끼덜이 가시네 덜 데리고 여관에서 나오드랑께...”
뒤질새라 고충석이 강욱철을 압박했다.
“기회가 딱 이럴 때랑께, 이럴 때 한방 놔버려야 된당께는...”
곽세정이 누구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한방 놔버려야 한다고 지원사격을 하고 나섰다.
“이럴 때 가만 두어선 않된다는 것은 나도 잘 알아. 모두 고마운 말씀인데, 밥을 먹으려면 반찬도 젖가락도 필요해.”
강욱철이 세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현재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걸 전했다.
“어렵다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바가 아니지오. 박정희 일당이 저렇게 무소불위로 설쳐대니, 이거 성질이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아니, 쪽발이 새끼덜 조선 놈 작은 꼬치 매운맛을 한 번 보여줘야 헌당께!...”
고충석이 또 성질을 못참고 윤창현을 거들었다.
이들 두 사람은 강욱철을 항상 존경하고 깎듯하게 존대를 했다. 동지애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다.
고충석과 윤창현은 동갑내기로 말보다는 행동지향적인 면이 서로 많이 닮았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다른 여러 동지들 입장도 헤아려 줘야죠.”
대부분의 여러 동지들이 한판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팽배했는데 계속 누르기만 하면 동지들 사기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불암당의 딲어병단 넝마병단 사이에서 곽세정은 나이가 좀 들었다.
강욱철과는 터놓고 지내는 사이다. 담력이 너무 드세서 외모가 풍기는 인상도 매우 억세고 완강해보였다. 산에서 다져진 몸인지라 박달나무 방망이처럼 단단해보였다.
그를 강욱철에게 처음 소개한 윤창현의 말에 의하면 오대산의 이름 있는 절의 스님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질이 너무 드세어 방장스님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마 수행에는 뜻이 없고 대 사회적인데 너무 관심이 많아서 절에서 쫓겨난 것 같았다.
그는 스스로 법명을 세정(世正)이라 한 것을 보드라도 산속보다는 속세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다. 서산대사나 사명당 같은 지체 높은 중들도 쪽발이들이 쳐들어오자 목탁대신 창을 들고 나섰다는 것이다.
곽세정이 가장 존경하는 중은 만해 한용운이었다.
아까 곽세정이 말한 ‘다른 여러 동지들’ 이란, 오늘 불암산에서 만난 스물일곱명의 동지들을 말한다. 여기 네 명이 있고 하백만 동지는 사월패 성원이니까 나머지 스물 두 명을 가리키는 것이다.
스물 두 명의 출신성분이 매우 다양했다.
곽세정과 같이 산에서 사는 자칭 ‘산 도적’ 1명, 윤창현의 넝마주이 부랑아 출신 10명, 고충석의 친구로 구두딲이 출신 11명이었다. 고충석의 딲어병단 소속 11명 중에는 현재 연탄공장 직공1명, 청계천 피복점 지게 배달원과 고무신공장 직공이 1명씩 끼어 있었다.
윤창현의 넝마병단 성원은 16세에서 21세 정도의 청소년들이었지만 고충석의 딲어병단에는 나이가 제법 들어 보이는 성원들도 있었다.
윤창현은 처음 서울 땅에 발을 딛고부터 넝마주이 패와 같이 생활을 했었다.
가진 것 없이 맨몸뚱이로 제주도를 떠났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가정의 풍비박산으로 고아신분이 되어 고아원에서 자란 고충석 역시 사회의 밑바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아원에서 같이 생활을 했던 선배들에 의해 고충석은 시설에서 나오자마자 구두닦이 왕초 반렬에 있었다.
윤창현과 서로 알게 된 것은 넝마주이 패와 구두닦이 패가 서로 패싸움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두 패거리들은 약수동 산비탈에 판잣집을 지어 공동 잠자리를 마련할 계획이었다. 서로 자리다툼 싸움이었던 것이다.
윤창현과 고충석은 양측 대표로 만나 패싸움을 그만두고 협상으로 해결하는데 합의를 보았다.
이들은 싸움보다 협상이 났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그 날 이후 서로 뜻이 같은 돈독한 동지가 되었다.
세상은 넓고도 좁아서 윤창현이 데리고 온 고충석의 고향이 강욱철과 같은 군(郡)이었던 것이다. 강욱철의 고향 감나무골에서 이키로 남짓 떨어진 바로 이웃면이었다. 고충석은 윤창현과 자웅을 겨룰 만큼 믿음직한 큰 일꾼이었다.
지리산 지구 빨치산 ‘독수리병단’을 이끌었던 맹봉사령이 아닌가.
고충석은 코가 주먹만 한 맹봉사령의 화신이었다.
타고나길 그렇게 굵직굵직하게 타고 났었다. 코, 눈, 귀가 그렇고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왔다. 쭉 찢어진 입에 구레나룻이 무성하다. 맹봉사령 ‘사촌처남’이 아니고 선배 맹봉사령 찜쩌먹을 정도로 빼어다 박았던 것이다.
생김새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임진무퇴(臨陣無退), 그는 강골이었다. 성격도 호걸풍이었다.
겁 없이 공격하는 만용이 아니고 적을 제압할 능력을 가지고 맹공을 펴는 장수 명장이었다.
강욱철은 항상 고충석을 보면, 그의 머리 위에 투구를 씌우고 어깨에 갑옷을 걸치는 상상을 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그는 위풍당당한 장골풍(將骨風)이었다. 기골 자체가 그렇게 생겼다.
가까운 동무를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을 안다는 말이 있다.
말로만 듣던 고충석 부친의 형상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그 아들의 외모나 성품을 보고 그의 선친의 명성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화순 백아산 전투의 혁명전사 고재명대장의 신화를 다시 한 번 연상해 볼 수 있었다.

화순 백아산 빨치산 고재명 대장의 신화는 1951년 전쟁 이듬해 봄까지 전남지방 일원에 널리 퍼져 있던 전쟁신화였다. 백아산 유격군사령부 직속 제1지대를 이끄는 고재명 대장, 그는 전쟁 전부터 산으로 들어간 구빨치였다. 전쟁 전에는 노령지구 유격군 사령부 소속 불갑산부대의 일원이었다.
그는 처가가 화순이어서 인민군 진주 하에선 화순군당 일을 보고 있었다. 불갑산 부대에 있을 때부터 불갑산의 새끼산인 함평 군유산 지대장으로 여러 신화를 만들어 냈었다. 그는 번개작전의 맹수였다.
주민들 사이에 조직을 둔 세포망을 통한 정확한 상황파악, 상세정보를 종합 결정적인 헛점을 번개처럼 들이치는 것이었다.
병력과 무장의 열세에도 고재명 대장의 섬광작전에는 경찰방어가 속수무책으로 당했었다.
불갑산의 지산(支山) 군유산 밑 함평 손불(孫佛)지서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뗏장과 돌무더기로 철옹성처럼 담벽을 높이 쌓고 유격대의 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유산 지대장 고재명 대장의 번개작전에 두 번씩이나 거듭 부숴지고 말았다. 고재명 지대장의 전광석화처럼 치고 빠지는 섬광작전을 당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서는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었고 지서주임, 면장, 한청단장이 총에 맞아 죽었다. 때마침 학교 운동장에서 청년단 행사가 진행 중 당한 습격이었다. 여기 참석했던 국민학교 교장도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면사무소에도 불끄러미가 올라갔다. 온통 면소재지가 쑥밭이 되었다. 그것도 야간공격이 아니고 백주대낮 허를 찌른 기습공격이었다.
전쟁 이듬 해 봄 백야전사(白野戰司) 토벌군에 의해 백아산이 점령당할 때까지 고재명 대장의 빨치산신화는 계속되었다.
“씨팔 것, 한번 풍덩풍덩허게 뛰어버립시다!”
고충석 특유의 거칠 것이 없는 어법이었다.
역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충석의 부친 고재명대장의 이야기는 집안형님 준배형으로부터 들었다.
머슴살이 하다가 산으로 올라간 준배형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5년 만이었다 모두 죽은 줄만 알고 있었다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체격이 건장한 청년이었다. 그 건장한 체격의 준배형이 팔 하나를 백아산에 내버리고 돌아왔다. 고재명대장의 휘하에 있었다. 서남지구전투사령부 소속 경찰부대와 백야전사 토벌군과의 합동작전에 의한 백아산 전투 마지막 날 고재명대장은 최후를 맞았다.
준배형은 팔에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되었다. 하필이면 오른팔이어서 더 이상 저항이 불가능 했다. 총을 쏠 수가 없었다. 포로재판에서 징역형을 받고 감옥에 있다가 풀려 났다는 것이다. 백아산 빨치산 신화 고재명대장의 전설은 그 때 준배형으로부터 익히 들었었다.
“으쩔 것이여?
일판이 지금 이렇고 생겨버렸는디!?“
강욱철이 잠시 준배형 생각을 하는 사이. 곽세정이 빡빡 깎은 중머리를 긁어댔다.
“저 사람들 너무 씽씽헌디,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이 땡초가 한 발 먼저 나서얄 것 같어....”
평상시 농담 잘하는 땡초 표정이 아니다.
“강선생 보세요, 땡중치고는 공부를 좀 했다니깐...”
하하, 윤창현의 농담에 네 사람이 한꺼번에 모두 웃었다.
강욱철은 곽세정을 향해 불끈 주먹을 들어 보였다.
“곽동지도 적극 협조 해주고, 내일부터 고동지와 윤동지는 일본인들의 관광코스, 숙소, 쇼핑점 등 종합적으로 상세하게 파악하시오. 관광객 규모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