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마포나루 한강 뚝에서 총에 맞아 죽은 정인숙여인의 뒷이야기가 시중의 화젯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친오빠의 총에 맞아 죽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한 남자를 사랑했드라면 모르는데 또 두 남자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정여인은 요즘 한창 지체높은 분들이 즐기는 비밀요정의 꽃이었다. 미인단명이라고 얼굴이 너무 이뻐도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보통 남자 두 명을 상대했으면 요정에 나가는 여자가 무슨 별 흠이 될 것도 없었다.
  워낙 지체가 높은 분이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지체높은 최고의 권력자들을 상대했으니 일이 꼬인 것이다.
  그놈의 남자와 여자의 잠자리라는 게 은밀한 일 중에서도 여간 은밀한 것이 아니여서, 둘을 상대했는지, 다섯을 상대했는지 본인이 아니면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 단명한 비밀 요정의 꽃 정여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증거도 보통 증거가 아니었다. 아들이건 딸이건 사랑의 열매인데 말이 많을 까닭이 없었다.
  아니었다.
  이 아들의 얼굴 모습이 지체높은 두분의 얼굴을 절반씩 닮았다는 것이다. 참 묘한 일이었다. 어떻게 해석이 불가능했다.
  해석이 가능했다. 정여인의 비밀수첩에 세상이 다 아는 두 어른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한 해석은 이 정여인의 입이다. 이 여인의 입을 통해서 두 어른을 번갈아 모셨다는 답이 나온 것이다.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지자 이 여자의 친오빠를 시켜 입막음을 했다는 것이다. 진짜로 친오빠가 총을 쏘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정인숙
▲ 정인숙

  강욱철은 몸에 소름이 끼쳤다.
  정여인의 죽음 때문이 아니다. 한참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 이 아이의 아버지 찾기 운동을 벌일까도 생각해 보았었다. 아예 그만두는 게 났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아이의 아버지로 지칭되는 두 어른은 일본제국의 괴뢰였던 만주국의 사관학교 출신들이었다. 왜놈들 방식의 군대훈련이 실시 되었을 것이다. 왜놈들 특성이 일본칼로 사람 쳐 죽이는 일이다.
  만약 아버지를 찾았을 경우, 두 어른들께서 서로 제자식이라 싸울 수도 없는 처지인 것이다. 가장 쉬운 해결방법이 그들이 군대에서 배운대로 일본칼을 사용하는 숫법이 동원될 공산이 큰 것이다. 서로 공평하게 절반씩 나누어 갖겠다고 나설 수 있는 인물들인 것이다.
  강욱철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요것들을 한 그물에 때려잡아야 한다.
  인간의 탈, 조선민족의 탈을 쓰고 요것들이 짐승짓을 골라서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요것들이 일본 상전으로부터 米英鬼畜(미영귀축)을 섬멸해야 한다고 배웠다. 요것들이 상전을 바꾸어 미국을 숭상하면서부터 米英鬼畜으로부터 그야말로 짐승짓을 정성을 다해 전수받은 것이다.
  미국CIA가 전수한 ‘3S정책’으로 남조선사회를 온통 짐승세상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쎅스, 스포츠, 스크린을 통해서 남조선민중 전체를 우민화(愚民化) 얼빠진 바보로 대중조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기생관광을 통해 성문화의 문란을 부추기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먹고 마시고 성을 즐기는 일에 더 탐익하도록 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렸다. 기생관광 붐을 타고 들어온 가라오케, 빠칭코문화의 범람, 맥주홀 카바레를 통한 춤바람 조장, 주택가 골목마다 들어선 여관을 통한 불륜문화가 대유행이었다.
  사람을 치고 패는 권투와 레스링 또한 남조선사회를 들썩들썩 아주 정신이상자들처럼 격투기에 열광하고 있었다. 전국 유수의 고등학교에 야구부를 만들어 야구대회가 열리면 밤잠을 안자고 편을 갈라 응원전을 펼치고 있었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시아대회나 올림픽 출전을 위한 경기는 물론이고 동남아 국가와의 친선경기에도 동대문 운동장이 만원사례였다. 운동선수들은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되고 십년 이십년 공장에서 일한 기술자들은 찬밥의 도토리 신세였다.
  전국의 극장들은 크고 작은 도시를 막론하고 모두가 성업 중이었다. 연극이나 창극(국악을 중심으로 한 악극단)은 극장가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전국이 일색으로 모든 극장은 영화전용관으로 바뀌었다. 극장하면 ‘영화관’을 뜻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값비싼 돈을 주고 외국영화를 수입해 오는 것이다. 말이 외국영화이지, 헐리우드에서 공급하는 미국영화가 전부 다이다. 영화를 안보면 문화인이 될 수 없다하여. 군청소재지는 예외가 없고 이름 있는 면소재지까지 영화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영화를 안보면 남녀간의 연애도 제대로 안되는 판이다. 총천연색, 씨네마스코프 스펙타클한 필림을 수입하여 가난한 남조선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고 허영심, 숭미사상등을 조장하여 정신을 다 썩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밥은 못 먹어도 영화는 봐야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민중의 혼을 빼고 정신을 썩게 하는 사이, 박정희는 미국이 시키는대로 의식있는 사람,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잡아다가 죽였다.
  소위 혁신계란 이름으로, 그러니까 억지 빨갱이를 만들어 다 죽였던 것이다.
  민족일보사장 조용수 처형을 비롯하여, 월간지‘靑麥사껀’ ‘人革黨사껀’ ‘徐珉豪의원 구속사껀’ ‘東伯林사껀’ ‘統革黨사껀’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간첩사껀과 시국사껀을 조작해 내었다.
  그리하여 이와 관련된 인사들을 고문 투옥 처형을 일삼았다.
  심심하면 간첩단 사껀을 조작하여 조총련계의 자금을 받았다고 덮어 씌었다. 아니면, 고정간첩 아무개와 접선 북괴공작금 미화 몇불 한화 얼마를 받고 김 아무개 이 아무개를 포섭, 사회불안 조성과 국가전복 음모를 꾸몄다고 사껀을 조작 어용언론을 동원해 크게 발표하기를 일삼았다.
  만약 총선이나 대통령 선거 때 자기들이 불리하면 ‘북풍 전략’ 이라는 방법을 동원했다. 북한동향, 휴전선 상황 등을 부풀려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미국의 대북전략등을 자기 정권에 유리한 방향으로 조작하고 이용하는 수단이었다.
  하, 요것들이 꼴값을 하느라고 또 장기집권계획을 들고 나왔다.
  3선개헌을 하겠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군복을 입고 군정을 연장에 연장을 거듭하다가 어쩔 수가 없어서 민간복으로 갈아입고 대통령을 두 번씩이나 했다. 이제 권력맛에 입맛이 당겨 한 번 더 3번을 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을 고친다는 것이다.
  간덩이가 부어도 즈희 고향 선산 금오산 덩어리만하게 부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욱철이 밀정 밀대 이른바 사꾸라들의 눈을 따돌리고 어렵게 김승국을 만나고 있었다.
  “김동지 혈색이 좀 나아졌구만...”
  “어헛, 싱거운 사람... 다 강동지 덕택이야. 양키 쇠고기 통조림이 아주 별미던걸..”
  사실은 한숙이 덕택이었다. 강욱철이 무슨 재주로 쇠고기통조림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독립군 귀신들이 도왔구만... 참 아니다 김동지 선친께서 손을 쓰셨겠지. 얼마나 내가 바라던 바야?” 
  강욱철이 주먹을 불끈 들어보였다. 김승국동지의 건강에 서광이 보였던 것이다.
  “고마워...”
  지난 번에 비해 김승국의 얼굴에 알아보게 생기가 돌았다.
  “하백만동지, 역시 일꾼이야.
  이쪽 일꾼들 하고 어찌나 궁합이 잘 맞았는지 친화력이 대단해. 기본적으로 일을 아는 사람이야.”
  사월패쪽과 이쪽 불암당쪽을 오가며 강온 조절을 잘하고 잘 섞어서 끈적끈적한 아교풀을 잘 발라 놓았던 것이다. 이쪽 불암당 성원들은 억세고 보통 울퉁불퉁한 성격들이 아닌 것이다. 하백만동지가 아니면 여간 어려운 작업이었다. 김승국동지의 뇌세포가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끼워 넣는 요술을 부린 것이다.
  “저것들 이번 일로 내부 분열이 심각해. 김형욱이가 권총을 빼어 들고 김종필이를 협박했다는 거야.
  예춘호를 잡아다가 발로 밟고 몸둥이질을 했고 김성권이는 무릎을 꿇려 놓고 수염을 잡아 뽑아버렸다잖아...”
  “난 그것보다 정보부가 밀정으로 심어놓은 신민당 국회의원 거 세 놈 있잖아? 그것들 정체가 드러나서 재밌고, 그것들 뒤에는 왕사꾸라 유진산이가 있다는거야.”
  “어헛헛. 재밌구만... 종필이란 놈 제가 2인자로 차례 기다리다가 닭 쫓던 개신세 됐구만...”
  “그런데 말이야 김동지! 창피하고 분한 게 사월혁명 팔아먹는 새끼들, 사월혁명 동지회 그것들 어용단체가 이번에 또 3선개헌 지지성명을 냈단 말야.”
  “아 그래, 부상자회 애들은 다행히 빠졌어.
  그 걸레같은 예술문화단체, 대한 예수교연합인지 뭔지 참 종교인들이란 게 저질들이야. 혹세무민에 정치아부까지...”
  “사월혁명 동지회, 그 가짜배기 새끼들, 즈들이나 우리나 총 맞아 죽지도 못한 새끼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그 새끼들 아주 악질이고 더러운 새끼들야...”
  “그 중에 몇은 괜찮은 애들도 있는데. 공갈 협박 회유, 돈 땜에...”
  “씨팔 좆같은 소리하지 마라! 공갈, 협박, 돈? 독립군 유격대 출신들도 말이야- 진짜배기는 다 총맞아 죽고 어떨김에 따라다니다 살아남은 가짜배기들이 유공자니 뭐니, 동지들 피 팔아 먹는거야.”
  “핫핫, 누가 강철파 아니랄까봐 육두문짜야?
  이 모두가 다 우리가 정권을 못잡은 탓이야.”
  맞다, 미완의 혁명, 맞다 김승국의 말이 맞다. 

  혁명은 때려부수는 것만이 아니고, 뒤집어 엎은 다음 혁명목적이나 당시의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정권을 잡고 구체적으로 현실사회에서 정책이나 제도로 혁명정신을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사월혁명은 혁명의 주동세력이 공부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정권을 잡고 정책을 시행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었다.
  혁명은 직선이었다.
  왜곡된 것을 바로 펴는 것이었다.
  혁명완수의 책무를 위임 받은 허정과도내각이나 민주당의 장면정권은 미국의 지시에 의해 이승만 정권이 그려놓은 곡선궤도를 그대로 담습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백성들은 도탄에 빠지고 이에 따라서 사회불안 바닥인생들의 불만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남조선 민중의 불만을 해소시키는 척 그들이 우유죽을 먹여서 키운 정보장교출신 박정희 김종필 일당을 내세워 군사 꾸테타를 성사시켰다.
  미국은 이로 인해서 동아시아에서 더욱 굳건한 전략기지를 확보했고 외세 의존적이고 종주국인 미국에 더욱 더 충성도 높은 굴종과 예속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거의 안심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박정희에 대해선 여수14연대시절 전향서를 담보로 잡고 있었다.
  미국은 5.16군사 꾸테타 이후 남조선 통치에 자신감에 벅차 있었다.
  그동안 남조선 사회 각 분야를 모두 장악한데 이어 체계적인 국민 세뇌교육을 위해 국민학교에서 부터 각급학교의 교과서를 개편 외세의존 숭미교육을 철저하게 시킨 바 있었다.
  거기에 미CIA가 개발한 후진국 식민통치 각종 특효약(특별제도)을 남조선 현지 적용실험을 모두 완료했다. 중점적으로 시행했던 3S정책으로 백성 우민화에 크게 성공하여 앞으로 식민통치에 탄탄대로가 열린 셈이었다.
  특히 남조선 백성들은 미국식 투표제도를 좋아하여 속임수 통치에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앞으로 일백년 동안 양키고우홈 소리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증거로 근래에 남조선에선 국민투표제도가 대인끼리에 시행 되었다. 국민투표를 한다고만 하면, 모든 백성들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투표장으로 몰리는 것이다. 중환자실 환자가 링겔주사를 혈관에 꽂은 채 휠체어를 타고 달려오는 판이다. 치매를 앓는 90세 노모를 등에 업거나 경운기에 태워 투표장으로 몰려오기도 한다.
  투표 결과는 물론 군사정부 주장에 압도적인 찬성이다. 조껀도 이유도 없고 무조껀적인 것이다.
  아무튼 지구상에서 가장 식민통치에 길이 잘든 나라인 것이다.

  강욱철과 김승국은 밤늦게까지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짜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나 6.25조선전쟁 같은 대규모 전쟁, 국제적 집단군이 동원되는 그런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큰 전쟁이 아니면 전쟁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항공기가 뜨고 땡크가 동원되는 전쟁만 전투인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도 있었고 티토원수가 이끄는 유고슬라비아의 유격전투도 있었다. 멀리 갈 것 없이 홍범도장군, 김일성장군의 장백산 지구 독립유격대, 김원봉 무정사령관의 무장투쟁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의사의 단독 저격, 기습폭탄 투척 방법도 있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선 채게바라식 게릴라 전쟁이 효과적이었고 이 방법에 의해 큐바혁명이 성공한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었다.
  전면전에서의 승리는 물론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국지전에서의 승리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큰 것은 큰 것대로 중요하고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중요한 것이다.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라도 택해야 한다.
  더 이상 망서린다고 하는 것은 치욕이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한계에 왔다. 더 이상 썩어 문드러지게 방치하는 건 비겁의 극치다.
  사람이 두 발로 서는 것은 자랑스럽지만 두발 가지고는 언제나 불안하다.
그래서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말을 듣는지 모른다.
  황웅권이 없는 자리는 항상 허전했었다.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이 없었다.
  이번 3선개헌 국민투표를 앞두고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감옥문이 열린다.
황웅권 이문성 조용근 박홍수 최영식 정연우 등의 여러 동지들이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불안한 두 발보다는 세 발로 서면 안전하고 네 발 다섯 발일 경우 그만큼 여유가 생긴다. 사월패들의 사기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었다.
  강욱철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