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죄가 많은 세속인들의 범접을 금하는 듯 빨간벽돌을 수직으로 높디나 높게 쌓아올린 건물이었다. 한번 쳐다보는데 고개가 아플 정도의 종탑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그 높은 꼭대기에 거룩한 십자가가 양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너무 높아서 수제비 한그릇으로 배를 채우는 서민들로선 처다만 보기에도 힘에 겨운 일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두분 성직자님!
마침 잘 되었습니다. 이렇게 두분이 함께 계시다니요?“
강욱철이 하는 일이 잘 되려는지. 이 나라 최고의 신(新) 구(舊) 교계의 지도자 두 분이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신구교계의 두 거두 목사님과 추기경님이 자리를 함께 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마 두 교계의 크나큰 관심사를 논의하기 위한 특별한 자리일 것 같았다.
아까, 천신만고 깊고 깊은 산문(山門)을 찾았다가 너무 큰 실망을 안고 돌아오는 길이어선지 새로운 빛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기뻤다. 검정 아라비아식 통옷을 입고 목에 길게 묵주를 걸고 있을 신부님만 생각하고 성당문을 열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감색 정장에 화려한 청홍색 무늬의 넥타이를 맨 개신교 거물 목사님을 덤으로 만날 줄이야...
이제야 고백이지만 한국에서 제일 큰 사찰 그 큰 절의 주지이신 만봉(漫峰)스님을 찾아 갔을 땐 정말이지 가슴이 뛰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부처님의 자비가 마구 흘러내리고 법륜(法輪)이 충만하신 큰스님의 결단과 중생구제에 대한 기대에 기대를 거듭하고 뛰어 갔었던 것이다. 얼마나 큰 기대를 안고 갔었으면 감격에 겨워서 몸들바를 몰랐었다. 너무 긴장을 해서 말실수를 거듭하고 있었다.
물론 카톨릭이나 개신교는 불교보다는 개방적이어서 처신하는데 부담이 덜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떨리기는 마찮가지였다.
“목사님! 신부님!”
강욱철의 목소리는 감개에 젖어 있었다.
“오늘 이렇게 제가 무례를 무릅쓰고 급하게 뵙고자 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옵니다.
오늘 이렇게 신구교계의 두 거두께서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래도 저 같은 소인이 헤아리기엔 너무 큰 논제(論題) 거대한 사안이 있는 듯합니다.
제가 이제 말씀드릴 사안도 너무 거대하고 또 거대한 인간구원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이렇게 체면 불구하고 황급히 찾아 온 것입니다”
현재 시간으로 보아서, 두 거두 성직자의 몸가짐으로 보아 거대한 협의사항이나 주요 논제는 이제 협의가 다 끝나고 만족할만한 합의에 이른 분위기인 것 같았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만 저는 가드와 여호와에 대해서 매우 무식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마리아님에 대해는 더더구나 잘 모릅니다.”
“....”
“....”
강욱철의 몸가짐이 너무 저자세를 보였는지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두 성직자께서는 여간 측은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두분 신부님, 목사님!
명성으로만 듣던 거룩하신 두 성직자님을 직접 뵙게 되어 더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여호와와 가드께서는 저 높은 하늘에만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저 같은 서민들은 우주선을 탈 길도 없고 어떻게 만나뵐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천만다행으로 두 분 큰 성직자님을 뵙게 되어 마음의 위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의 평생 소원 빌고 비는 일이 이루어질 것 같은 설레임으로 가슴이 벅차 오릅니다.”
“....?”
“....?”
“먼저 일생동안 장가도 안드시고 총각으로 늙어오신 신부님께 말씀 올리겠습니다.
대 신부님, 아니 참 제가 무식해서... 대 추기경님!
천주교는 글짜 그대로 하늘의 주인이신 가드 여호와를 믿는 종교로 알고 있습니다. 코가 펙삭하고 눈이 뺀작한 우리 종자중에 최재우라는 분이 있어서 ‘人乃天’ 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은 즉, 결국 종당에는 사람을 믿고 존중하는 것이 인간 삶의 진리라는 말로 이해가 됩니다.
하늘에는 하늘님이 살고 땅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 그렇다면 하늘과 땅이 마주치면 사람도 살고 하늘님도 사는 곳이라. 땅바닥이 하늘 바닥이고 하늘바닥이 땅바닥이라. 그래서 사람人짜 두 끝이 서로 받쳤는데, 하늘쪽 한끝(/)은 왼쪽(땅쪽)으로 내려오고 땅쪽 한끝(\)은 오른쪽(하늘쪽)으로 올라가서 한몸(人)이 된 것으로 사료 됩니다.”
“아니 젊은이?
사람이 하나님, 천주님이 되다니오? 이거 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노신부님 아니 대 추기경님, 크고 둥근 눈 알을 부라리시며
“천주님을 욕되게 하는 자 저주 있을진저...”
우리의 대추기경님 화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허허엇, 젊은이! 이기 무슨 망발이오?
세상에 하늘이 땅이 되다니오?”
오줌도 똥도 안싸고 살 것 같은 대목사님, 아니 원로목사님...
“그런 사특한 종교이론을 다 펴다니오?
세상은 말세라카이, 이단의 무리가 혹세무민하는 말세가 도래했구려.”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목사님, 신부님!”
강욱철은 두 팔을 휘저으며 자신의 진실을 들어 달라고 간절하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신부님, 목사님!
가드 여호와도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주만물을 다 만드시고도 사람이 없으면 쓸쓸하고 허전하다 하였습니다. 인간이 없는 우주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빚어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우주에는 지구가 있어야 하고 지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어요.
아,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는데도 놀랍지 않으세요?”
“....?”
“....?”
“우선 제가 급한대로 국내사정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시간 없으니까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60년대 이야기만 잠깐 하지요.
학생들이 앞장을 서서 피를 흘리고 이승만이를 때려 부쉈습니다. 박정희 군사도당이 사월혁명 정신을 총칼로 짓밟고 땡크로 뭉게버리고 정권을 탈취했습니다.
“이건 순전히 강도질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아니, 이 젊은이 목소리 좀 낮추시오.”
몸집도 좋으시고 혈색도 좋으신 대 추기경님이 겁은 되게 많아서 성당 출입구 창문 이쪽저쪽을 번갈아 보며 잔뜩 겁먹은 눈이 되었다.
“방송에선 날마다 군사핵맹이라카든데?
강도질이라카믄 좀 지나치구만....”
역시 허우대 크고 버틀 좋으신 개신교 원로 목사님의 표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군사도당들은 정권을 탈취하지마자.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이것들은 사흘이 멀다 하고 권력싸움으로 이른바 반혁명사껀을 조작해 내요. 자고 새면 체포 구속 똥별 떨어지는 소리가 우수수 조간신문을 타고 들어요.
하 요것들이 그러다가요,
일본놈들한테 배운 사무라이 큰 칼질, 미국놈들한테 배운 황야의 무법자식 헛총질을 마구 아무데나 해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쓸만한 정치인들은 구정치인 딱지를 붙여 감옥에 보내고 정치정화법으로 다 묶어버렸어요.
이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언론이었어요. 총칼은 즈희가 들고 있으니, 즈희들 구린 똥구멍 파대는 펜 끝이 제일 무서웠어요. 제일 먼저 때려 잡은 것이 ‘民族日報’ 폐간, 언론 즉결처분이었어요. 지금 살아있는 언론사들은 모두 어용언론 군사정부 찬양이예요. 각 신문 방송사엔 기관원들이 파견 상주하고 있거든요.”
“아 하, 젊은이 이제 그만합시다. 불안해서 이거....”
“그래요 그래, 그기 좀 듣기 거북하구만...”
“네, 네!
존경하옵는 목사님, 추기경님! 몇 마디만 하고 끝을 내겠습니다.”
강욱철은 머리를 몇 번 더 조아리고 두손을 합장해 보였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인데 어찌 케케묵은 생각만 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만 새롭고 참신한 이론을 펴면 진보진영 혁신계라는 딱지를 붙여 모조리 감옥에 넣거나 빨갱이라고 잡아다 죽입니다.
민족 자주통일을 부르짖던 인사들과 학생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거나 활동을 못하게 억압하고 탄압합니다.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인 노동3권을 보장 못받고 있습니다. 이 땅 노동자들은 최악의 노동환경에서 노동력을 착취 당하는 임금 노예입니다.
농민과 어민들은 춘궁기 죽음의 언덕 보릿고개를 넘느라 해마다 숨을 헐떡거리며 굶주림과 싸워야 합니다.
땅이 없는 농민들은 도시로 유입되어 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이들은 도시빈민이 되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파리목숨입니다.
이들의 자제인 청소년들은 구두닦이, 넝마주이, 날치기, 쓰리꾼 펨푸, 부랑아 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나이 어린 소녀들은 식모살이가 아니면 창녀촌의 윤락녀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세상이 이런데도 이 군사패거리들은...”
“아 아, 젊은이. 이제 그만 우리 함께 천주님께 기도합시다.”
대추기경께서 변설중인 강욱철을 가로막고 묵주를 들고 고개숙여 기도를 올리자는 것이다.
“어 젊은이, 추기경님 말씀대로 전능하신 주님께 기도를 올립시다.”
두 저명하신 성직자님들께서는 아무래도 이 젊은이가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담하게 군사정부를 비방하고 들 수 있다는 말인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쥐도새도 모르게 어디론지 끌려가서 증발해버리는 세상이 아닌가....
“존경하는 추기경님. 그리고 원로 목사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올리고 끝을 내겠습니다.
![▲ 새나라 자동차 사건 : 중앙정보부가 자동차공업을 육성시킨다는 명목으로, “새나라 자동차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하였으나 실제로는 일본제 자동차를 수입하여 판매하여 부당이득을 취득하고 국산자동차 산업은 물건너간 사건. [사진 : 인터넷 캡처]](/news/photo/202101/11276_23552_431.png)
김종필이가 앞장을 선 ‘새나라 자동차 사껀,’ ‘워커힐사껀’ ‘증권파동’ ‘빠찡꼬사껀’에 이어 ‘3분폭리(三紛暴利)사껀’ ‘메사돈(마약)사껀’ ‘사카린 밀수사껀’ 등 부정자금을 에워싼 금융비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긁어 모은 돈으로 군복을 사복으로 갈아입힌 ‘공화당 창당운영자금’ ‘부정선거 관리자금’ ‘야당정치인 매수회유공작금’ ‘정보부 밀정 밀대사꾸라 관리자금’ ‘민족통일세력 탄압자금’ ‘어용단체 관리자금’ ‘데모 주동학생 매수공작금’ 등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 외에 군사정권이 특별히 돈을 물 쓰듯 쏟아 붓는데가 두 군데가 따로 있답니다.”
이 때였다.
“므시! 돈을 돈 쓰듯이 안쓰고 물 쓰듯이 쓴다고요?”
부처님도 여자 뭤을 보면 웃는다고, 거룩한 대 추기경님께서도 돈 소리에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다.
“아하, 그 돈줄기를 우리 교회쪽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오호오 주님!”
그 풍체 좋으신 원로목사님도 당장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원로목사님 정신 차리시고 그 돈 물줄기가 어디로 흐르는가를 잘 살피셔야죠.”
강욱철은 돈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고 새삼스런 물건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돈 소리에 두 어르신께서 저렇게나 크게 관심을 보이실 줄은 꿈에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강욱철은 두 성직자님들의 의외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하여 말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니 젊은이, 와 말씀을 안하시는고?”
조금 전까지 강욱철의 하소연을 매우 못마땅하고 지루하다는 표정을 지으셨던 원로 목사님과 대추기경님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특별히 물 쓰듯이 쓰고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돈줄기의 행방에 대해 조급증을 보이시는 것이었다.
“.....”
강욱철은 순간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매우 한심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저렇게나 거룩하시고 지체가 높으신 원로 목사님과 대추기경께서도 돈에 대해서만은 관심이 크고 깊고 미련이 많았다. 그 대단하고 사람을 끄는 마력이 있는 돈에 대해서 죽기살기로 애정표현 한 번 못해 봤으니, 강욱철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고 두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던 것이다.
반대로 그런 파격적인 매력과 힘을 가진 돈이라는 물건으로부터 진한 윙크 한번 받아본 적이 없으니, 세상을 살아도 헛 산 것이다.
후회와 반성이 앞을 가리는 것이다.
“아하 아니, 이 젊은이 돈 얘길 하다가 말문이 막혔구만.
세속의 부정을 비판하고 정의로운 말만 골라서 하더니, 사실은 딴 생각이 있는게지? 설마 돈의 행방에 대해서 흥정을...?
역시 대추기경님께선 불쌍한 어린 양을 대하듯 강욱철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상대를 현혹하거나 거짓을 행해선 아니된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대추기경님. 대추기경님!
착각은 자유입니다만 저는 절대로 상대를 속이거나 거짓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오해 푸시고요, 제 말씀을 잘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
“?...”
원로 목사님과 대추기경님의 호기심과 기대에 찬 눈빛이 섬광처럼 빛나고 있었다.
“원로 목사님, 대추기경님! 그 돈줄기 하나는 4.19때 총에 맞지 않고 살아남은 사월사자들의 목을 조이는데 쓰이고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들을 이간질, 분리, 분열 시키는데 마구 돈다발을 쏟아 붓는답니다. 이렇게 돈 보따리를 풀어서 회유. 변절, 변질을 꾀하고 세뇌를 시켜서 이미 사꾸라를 다 만들어 놓았답니다. 진짜는 몇 명 남지도 않았다구요.
아, 그렇지만 남은 이들은 숫자는 적어도 특수 별종이거든요.
이 별종들은 귀신이 여러 가지 겹치기로 들린 젊은 사자들이예요.
잘 들어 보세요, 만주 집안현 국내성 귀신, 양만춘의 안시성 귀신, 정읍백산 동학대장귀신, 3.1만세 때 죽은 몽당귀신, 지리산 피아골 빨치산귀신, 사월혁명 수유리귀신이 모두 종합적으로 들렸다구요.”
“어허, 이 젊은이 참...”
“젊은 시람이 세상물정을 전혀 모르는구만...”
두분 성직자님들께선 연민의 정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아 네에, 박정희일당은 칼 든 사무라이귀신이 들려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구말구, 그 사람들은 순한 우리 종자가 아이라카이 왜종(倭種)이라카이... 쯧쯧...”
원로목사님께선 강욱철이 몹시 가여워 보이는 모양이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다른 돈줄기의 행방입니다.
대추기경님 말씀마따나 돈다발이 마구 폭포처럼 떨어져 내리는 곳입니다.
이 폭포는 쌍가랑이 폭포입니다.
한 갈래는 숲이 무성한 호화찬란한 별장요정, 삼청각, 오천각, 칠천각의 고루거각이고요, 다른 한 갈래는 청와대 지하통로로 통하는 밤이 오면 생각나는 그 때 그 사람네 읍습한 밀실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