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일본은 전쟁 전 세계 제7위의 공업국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전쟁 불장난으로 전국토가 쑥밭이 되었다. 한꺼번에 일백여대의 미군 대형 폭격기 B29가 출격하여 이른바 융단폭격을 감행했다. 도꾜를 비롯하여 큰 도시들은 거의 폐허가 되었다. 공업생산 시설도 초토화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전쟁의 전쟁수요에 따른 특혜를 크게 입었다.

그 결과 전쟁 전 수준의 경제복구가 아닌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물론 미국의 냉전전략의 필요에 의해서이긴 했지만 일본인들의 재주와 근면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여행에서 돌아온 한국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본의 경제발전 국력신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여행을 나오는 일본인들은 번쩍이는 세이꼬 손목시계에 목에는 케논이나 코닥 카메라를 매고 다닌다. 여행가방에는 쏘니 트렌지터나 쏘니 녹음기가 들어있었다. 이런 일인들의 모습에 한국인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한다.

문제는 이런 일본인들의 모습이 허장성세가 아니고 보통 일반 시민 월급쟁이 쎄러리맨들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일본 농촌의 농가에는 자동차, 그것도 탑승용과 짐자동차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냉장고 텔레비전은 기본이고 세탁기, 에어컨디쇼너도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시골 과수원 가는 길까지 모두 포장이 되어 있었다. 화장실도 모두 수세식이 되었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이렇게 잘 사는 일본에 비해서 미국은 더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한국사람들도 벌써 다 알고 있었다.

미국의 자가용, 자동차문화와 도로, 특히 하이웨이에 관해서 한국 신문들이 눈 알 튀어나오게 부러운 시선으로 특집 보도를 하고 있었다.

한국은 제국시대(일제) 때 울력으로 만든 신작로가 전부다.

진흙탕길에 그래도 자갈이 깔려있으면 좋은 길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동네사람들의 울력으로 산언덕의 돌덩이들을 캐내어 신작로에 깐다. 비가 내리면 돌덩이가 흙 속으로 다 밀려들어가고 겨울이 오면 얼부풀어 오른 신작로 바닥이 논바닥처럼 수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것도 농어촌 산골마을엔 길(신작로)이 없어서 짐자동차는 그만 두고 소달구지도 제대로 다닐 수가 없었다. 신작로라고 하는 것도 찍해보아야 자동차 두 대가 서로 마주치면 겨우겨우 한 대가 옆으로 비켜서야 다른 자동차가 옆으로 용케 비비고 지나가는 형편이었다.

한국 신문들이 선망의 눈으로 사진을 찍어서 미국의 하이웨이를 소개하는데, 공중에서 항공사진을 찍으면 한국의 도로는 너무 비좁고 흙탕이어서 잘 나타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미국의 도로들은 포장도로여서 빛을 반사해선지 하얗게 선명하게 표나게 도로사진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지만, 논스톱 입체교차로가 있어서 자동차들이 고속으로 마구 달려도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거나 멈출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매우 신기한 신문명 이야기였다.

아무리 머리를 갸웃거려도 얼른 이해가 안되는 대단한 교통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입체교차로를 설계하는 미국의 도로 설계사들은 그야말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유럽의 농업선진국 덴마크나 스위스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세계 제2차대전 때 그렇게 망해버린 서부독일이 또 라인강의 기적이랄 정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것도 매우 신기로운 것이었다.

참으로 한국사람들은 기가 죽고, 별천지 지구 밖 딴 세상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또 신문들은 황량한 모래밭을 옥토로 바꾼 중동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소개하기도 했었다.

우리나라(남한)의 강원도만한 넓이의 작은 나라라고 했다. 인구도 우리의 십분의 일쯤 되는 아주 작은 나라라는 것이다. 이 나라는 미국과 영국이 적극적으로 감싸고 보호하는 나라라고 했다.

그런거야 뭐 별 관심 밖이지만, ‘키브츠’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사막에서 농사를 지어 소득을 올린다는 것이다. 물 없는 사막에 물을 끌어들여 옥토를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호기심을 갖게 했었다.

아무튼 전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발전과 국력신장을 위해 정부와 국민이 함께 노력하고 힘을 합해 큰 성과를 내고 있는 현상이었다. 빈곤극복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국가사회건설에 총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비로운 것이 있었다.

그 이름조차 거창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국가기관과 국민이 힘을 합해서 노력하는 것이 단 한가지도 없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정부당국은 국민을 속이고, 통치의 대상, 일 시키고 부려먹는 착취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어쩌든지 못 살게 만들고 괴롭히고 학대해야 하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짓밟고 무시하고, 홀대하고 종처럼 천둥이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이런 습성이 정부당국자들의 일반화된 행투인 것이다.

정의는 한번도 승리할 수 없고, 정직한놈은 가난하고 사회의 조롱거리 밖에 되지 못한다. 거짓말 잘 하고 사기 잘 치는 놈, 요령 좋고 간사스런놈들만 잘 사는 세상이 되었다.

국민들은 권력자나 정부기관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권력자나 정부당국의 말을 믿었다가는 믿는 녀석만 골탕을 먹는다. 만사는 돈과 빽으로 통한다.

그러니까 ‘무전 유죄 유전 무죄’ 라는 말이 대한민국에선 천하의 진리이다. 돈이 없으면 죽은 목숨이고 빽이 없어도 산 목숨이 아니다. 오즉했으면, 6.25전쟁 때 돈없고 빽도 없는 농어민의 자식들이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을 때, 빽! 하고 죽었다는 것이다.

이놈의 세상이 썩어도 분수가 있고 못 되어도 체면이 있지, 이렇게나 썩고 못될 수가 있다는 말인가. 하루에도 열두번씩 탄식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강욱철은 ‘내가 어쩌다가 이런 막된 땅에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들은 밥먹고 살기에도 바쁜사람들이다.

얄밉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우리사회의 지배층, 식자층, 자본가들이다.

우리사회는 도둑놈, 사기꾼, 간상배 매국노 세상인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땅덩어리가 大짜값을 하는지 꾀나 무거워서 천만 다행이었다.

만약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면 지금으로부터 일천삼백여년 전에 벌써 들어다가 당나라에다 팔아먹어 버렸을 것이다.

요즘도 종로네거리를 걷다가 옷깃이 스치는 열 사람 중 일고여덟명은 이 땅덩어리를 일본 아저씨나 미국 아저씨한테 다 가져다 팔아먹을 사람들인 것이다.

생각하면 불쌍한 나라다.

지키려는 놈은 몇이 안되는데 팔아먹으려는 놈들은 구더기 끓듯 우글거리는 나라다.

이런 세상을 두고 뭐라고 말을 짓거리는 것 자체가 더러운 짓이다.

다른 사람들 생각이야 어떻든지 강욱철 자신은 어서 한시 바삐 죽어 없어지는 게 가장 솔직한 태도일 것이다.

꼭 죽어버려야 하는데 멀쩡하게 이렇게 살아있으니 한심이 아니고 두심하고 열세심한 물건이다. 다른 때는 몰라도 4.19 때는 꼭 죽었어야 했는데 병신처럼 총알 피해서 남의 집 담장이나 뛰어넘고... 벌써 9년 세월이라...

친미주의자 이승만이 나갔다고 해도 더 악독하고 더 적극적으로 나라 팔아먹으려 드는 박정희가 그 자리에 있다. 서울 한복판 용산땅에는 양키군대가 점령군으로 눈알을 부라리고 있는 판이다. 우리들 머리위에는 휴전선이라고 하는 거대한 역사의 바윗덩어리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같은 종(種)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왜 우리 종자들만 이렇게 불행한 것일까. 인간처럼 인간답게 살아보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살다가 죽어가야 하는 것일까. 밥만 먹고 똥만 싸다가 제국주의, 강대국의 경제식민지가 된 이 땅의 한줌 흙이 되어 사라진다?...

강욱철이 비싼 밥 먹고 이런 새삼스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즘 사람들의 입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리는 김구선생 암살범의 처벌문제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구선생이 암살된 지 만 20년이 지났다. 김구선생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조선독립을 위해 싸운 애국자이다. 애국자를 죽인 암살범이 살아서 20년 동안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 전쟁 때는 현역으로 복귀했다가 군복을 벗곤 군납업으로 돈을 벌었다. 도대체가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빤한 것이다.

이승만이가 혼자서 김구선생을 죽였으면 이승만이가 망한 4.19때 암살범 안두희는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어야 한다. 그래야 이치에 맞다. 이승만이도 안두희의 목숨에 손을 못댔고, 새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도 천하의 애국자를 죽인 암살자의 몸에 손을 못 대고 있는 것이다.

매우 신비로운 일인 것이다.

총칼로 권력을 잡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대는 박정희도 김구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몸에 손을 못 댄다? 암살범은 건재하다? 이것은 박정희보다 더 무서운 칼을 쥔 놈이 뒤에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 한복판 용산 땅에 UN군의 탈을 쓴 양키군대가 둥지를 틀고 있는 한 안두희는 영원히 건재한다. 조선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천하의 애국자를 죽인 암살범도 미국이 비호하면 떵떵거리고 천수를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남조선 젊은이들을 월남전쟁에 보내는 일이다.

조선반도의 휴전선은 세상이 다 아는 휴화산이다. 언제 전쟁이 터질줄 모르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화약고인 것이다.

이런 휴화산을 뒤로하고 수만명의 한국군 정예부대를 베트남으로 빼돌린 것이다.

박정희는 뱃짱이 커도 보통 큰 것이 아니다. 대단한 영웅이다.

과연 그럴까.

용산 주둔 미8군사령관의 허락 없인 총 한방 쏠 수 없는 게 남조선 군대이다. 탄약고의 열쇠를 미군사고문관이 소지하고 있다. 병력이동 부대이동 명령권 역시 미 남조선주둔군 사령관의 소관이다.

박정희는 허수아비다.

가짜가 진짜 뺨치고 간사스런 졸개들이 호가호위하며 더 위세를 부리는 법이다.

이 허수아비들은 강대국을 등에 업고 일신의 영달과 재미를 누린다.

이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권세와 영화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칼자루 쥐었을 때 권좌에 있을 때 돈을 긁어모은다.

이들에게는 나라, 조국이 없다. 동포 민족도 없는 것이다.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 매국협정의 댓가로 그의 양아버지 오히라로부터 두둑한 엔화봉투를 들고 왔었다. 이런 공짜 뇌물로 받은 돈은 헤픈 것이다. 이 외교 뽀나쓰가 바닥이나자 그 잘 나가는 솜씨에 일본을 상대로 밀수를 시작했다.

이들은 꾸테타 초기부터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세상을 놀라게 할 대형 자금파동 사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다.

‘새나라 자동차사껀’을 필두로해서 미군 위락시설 건축자금을 부풀려 돈을 빼돌린 ‘워커힐사껀’ 이 있었다. 이어서 상장증권의 액면가를 조작 폭리를 취한 ‘증권파동’ 도박기계를 불법 반입한 ‘빠찡코사껀’ 설탕, 밀가루, 씨멘트 가격을 조작 세금포탈 엄청난 이익금을 가로챈 ‘삼분폭리사껀’ 이 있었다. 심지어 마약을 밀조한 ‘메사돈사껀’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난을 다했다.

이중에서도 한국 제1의 매판자본과 결탁한 ‘사카린 밀수사껀’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설탕은 서민들이 먹기엔 고급식품이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가난하고 돈이 없었다.

일제 때와 마찮가지로 설탕은 여전히 귀하신 몸이었다. 값비싼 설탕보다 몇십배 싸고 달기는 20배나 더 단 사카린이야말로 인끼 많은 식품이 되었다.

돈이 되는 것이다.

이에 눈이 어두워진 삼성의 이병철사장이 이 단맛이 엄청난 ‘돈가루’를 밀수로 들여온 것이다.

박정희한테 딱 걸린 것이다. 평소 정치자금을 주는데 좀 소홀했었던 모양이었다. 동아일보가 대서특필을 하고 세상이 왈칵 다 뒤집혔다. 중앙정보부가 가만히 있겠는가. 이병철사장의 옆구리에 칼을 드리댔거나 가슴에 권총을 겨누었는지도 모른다.

이병철사장이 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삼성이 사운을 걸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 건설 중인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사껀은 세월아 네월아 시간 끌기로 유야무야 되었지만 사회에 던진 파문은 엄청난 것이었다. 재벌이란 말이 아직 익숙하지도 않고 돈 많은 사람의 호칭 대명사가 보통 ‘회사사장’으로 통하는 판이었다.

남한에서 돈이 제일 많은 회사사장과 명색이 일국의 대통령이 맞붙은 싸움이었다. 매판자본으로 덩치가 커진 일등 재벌과 박정희의 샅바 조이기는 결국 총칼을 든 박정희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후 삼성은 돈보따리를 얼마나 갖다 바쳤는지 승승장구하였다.

그 대신 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자유당때부터 서울시내 고급 음식점의 네온싸인을 장식했던 ‘三鶴소주’가 비실비실 죽어가고 있었다. 서울 시민들이 좋아했던 유달산 맑은 물로 빚은 술맛이 박정희의 입맛엔 영 안 맞았던 모양이었다.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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