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11
강욱철은 마음이 몹시 바빴다
표현은 안해도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제일 좋은 방법은 현역을 동원하는 일이었다. 박정희도 김종필이 시켜서 육군 중령 한 20명 동원하여 쿠데타를 성공시키지 않았던가...
밤에는 아무리 큰 부대라도 중령급들이 일직사령 근무를 했다.
야간에는 일직사령 명령하에 부대가 움직인다. 안되면 중위 대위라도 움직여서 일직사령 옆구리에 권총 들이대면 되는 것이다.
참 대한민국 시시한 나라란 생각이 하루에 열두번도 더 들었다.
1948년 10월 지창수, 김지회 장군 지휘 아래 일어선 여수 14연대 봉기 이후, 이렇다 할 현역군대 반란사껀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조선 머슴아들 불알이 일백사십만갠데, 70만 군대라면 말이야..
강욱철은 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앉아서 죽을 순 없고 뱃속에 있는 말이라도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네말이 맞다, 네말이 옳다란 소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고 존경 받는 저명 인사들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중에 단 한사람이라도 생각이 같은 사람이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고 말이다.
제일 먼저 세상에 대고 큰소리 뻥뻥치는 야당 중진, 미래의 유망주들을 찾아 나섰다.
일곱사람 중 두 사람은 아예 면담 자체가 거부 되었다.
본적 주소 직업, 출신학교를 밝혔었다. 그래도 면회가 거부 되어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4.19때 이승만 하야 담판대표였다고 신분을 밝혔으나 역시 만나주지 않았다.
그 중 세 명은 만나 주기는 만나 주었는데, 강욱철 자신이 정신이상자도 아니고 사상이 삐딱한 사람도 아니라고 하소연을 해 보아도 그대로 믿어 주질 않았다. 정보부 염탐꾼(속을 떠보는 공작)이 아니면 빨갱이가 틀림이 없다는 것이었다.
또 나머지 두 사람은 뜻은 가상하고 갸륵하지만 자기로선 의회정치 의회주의자로 폭력에 의한 정부전복에 절대로 동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강욱철을 약간 맛이 간 정신 이상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정어린 눈빛으로, 젊은사람이 언행을 조심하라는 부탁을 꼭 꼭 덧붙였다.
맨 끝으로 만난 한 사람은 그래도 정상적인 대우를 해주는 것 같았다.
젊은이 같은 생각을 나도 한 때는 가진 적이 있다. 그러나 현실정치에 몸 담고 보니 그런 생각은 너무 급진적이고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남한을 지배하는 권력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치가 않다. 외세와 뿌리를 겯고 있는데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일본을 반대하는 건 그렇다치지만 미국을 나가라고 하는 것은 동의할 수가 없다라는 것이었다.
아, 강욱철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정치계의 고명하신 분들의 생각이 강욱철 자신이 가진 생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러고 보면 망할 세상 거꾸로 된 세상을 뒤집어 엎어야한다는 강욱철 자신의 생각이 전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닌가?
강욱철은 또 한번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 정치계의 고명하신 미래의 유망주들께서 당장 자신을 고발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생각해보면 토끼 용궁에 갔다 온 기분이었다.
강욱철은 그렇다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릴 수 없었다.
![▲ 김지하 시인의 담시 '오적'이 실린 '사상계' 1970년 5월호의 본문 232쪽에 실린 컷 그림. 김지하 시인의 사인이 있으나 이 컷 그림은 화가 오윤이 그린 것이다. [사진 : 인터넷 캡처한 것을 필터처리함]](/news/photo/202101/11260_23505_1655.png)
이번에는 인문사회 문화예술계와 종교계인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언론계를 둘러보았더니 찾아볼 만한 인물이 없었다.
사회의 목탁을 자처하는 언론계가 데스크에서 일선 민완기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죽은 목숨이었다. 정보부에서 파견한 조정관 손아귀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모가지가 아까워서 벙어리 뜨고 못보는 당달봉사 청맹과니들만 우글거리고 있었다.
경제계 역시 다 썩어서 부정정치자금 썩는 냄새에 권력자들 요정정치 오입자금 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큰 업체에선 이를 전담하는 술전무를 따로 두고 있을 정도였다. 남조선 경제계라는 것이 매판자본가들 뿐인데, 무조껀 외국 자본으로 배를 불리고 대신 친일 친미 차관경제 운영에 매달리는 것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저임금 노동자의 노동력 착취, 밀수와 세금포탈이다.
머리도 좀 식힐 겸 생각에 여유가 좀 있고 낭만도 있는 인문사회 문화예술계쪽에 눈을 돌렸다. 그래도 文짜나 藝짜가 들어가면 멋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개판 세상이지만 文짜가 들어가면 뭐니뭐니 해도 철학이 으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과학적으로 체계화 이론화하는 학문이 아닌가. 다행히 우리나라는 고대 희랍처럼 거리의 철학자나 길거리를 헤매는 음유시인은 없었다.
철학은 고고한 학문이다. 철학을 품을만한 곳은 대학 밖에는 없었다.
서울 시내 다섯 군데의 유명대학을 찾아다니며 고명하신 철학교수 몇 분을 만나 보았다.
이게 어찌된 노릇인가? 앞서 정치계 인사들을 찾아다닐 때 보다 더 황당한 느낌을 받았다.
정치계 인사들은 현실적인 데라도 있었다. 철학계 인사들은 권위의식만 대단하여, 무슨 제가 삼국시대의 도사(道士)라도 되는 것처럼 헛소리를 많이 했었다. 삼국시대의 도사연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었다.
이건 뭐 되지도 않은 프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오고 쏘크라테스, 에라스무스, 칸트 얘기도 나왔다. 뿐인가 데카르트, 니체, 하이덱거 얘기도 나왔다. 다 좋은데 이들의 주의나 사상이 지금까지 인간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현재는 어떻고, 미래엔 어떻게 인간생활에 작용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없었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 신에 대한 기존 관념을 어떻게 극복하고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우주모순으로부터의 인간해방에 대한 이론이 전혀 없었다. 당장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 몸을 구렁이처럼 칭칭 감고 있는 사회모순 민족모순에 대한 현실 타파 이론도 전혀 없었다.
헤겔이나 엥겔스, 맑스에 대한 논설은 매우 꺼리고 저어했다. 말을 하더라도 철학 용어가 아닌 정치용어로 격을 낮추어 일방적으로 폄하하고 적대시 했었다.
공허 했다.
역시 시정에 떠도는 말대로 한국의 철학은 철학 비스무리한 ‘철학같은’ 것이었다.
차라리 강욱철이 어렸을 때부터 신붕해 온 조껀없는 인간해방을 부르짖는 강욱철 자신의 개똥철학이 훨씬 더 철학다운 철학일 것 같았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창피하고 참담해서 안 할려고 했었다.
말을 안하는 것도 죄악이었다. 자신이 계속 줄기차게 주창해 온 정직인간, 인간 본성회복에도 안 맞는다. 강욱철의 개똥철학 제2조 1,2항 위반인 것이다.
유명대학 철학 교수중에는 이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분이 몇 분 계셨다. 북에서 내려와 제주도에 가서 총칼들고 셜쳐댄 공으로 미군정청 군사 고문단의 바짓가랑이에 묻어서 미국유학의 은전을 입게 되었다. 이런 교수들의 철학은 오직 한길 반공철학 밖에는 없었다. 세상의 으뜸 철학은 반공이고 반공만이 인간구원의 유일무이한 철학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만고 진리의 반공철학의 비조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것이다.
강욱철은 머리가 핑핑 돌았다.
반공이 철학이고 학문이라? 하기야 반공이 국시라는 것들도 있지 않은가...
강욱철은 이 핑핑 도는 머리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아름다움을 창조 표현해 내는 예술인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어서 한 시가 급한 마음이었다.
이렇게 급한 마음을 안고 요즘 한창 쏀세이셔널한 영화 예술인들을 찾았다.
영화감독들은 자본주에 고용된 아무 권한도 없는 머슴살이들이었다.
메카폰을 들고 큰 소릴 치지만 자본주의 인형놀음이었다. 아무리 좋은 재주가 있고 천재적인 연출력이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본주의 판단에 의한 돈벌이 여부, 흥행 가능성에만 촛점을 맞춰야 했다.
본래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특성 종합영상예술로서의 예술성을 살리는 것은 뒷전이었다. 얼굴 반반하고 육체미 좋은 여배우를 빨가벗겨서 되도록 뱃드씬을 많이 촬영하는 것이다.
유명 영화감독 빛 좋은 개살구였다.
소신 신념 예술혼이 없었다.
영화배우, 흔히 하늘의 별에 비유된다.
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인 은막의 톱스타 몇 분을 찾아 보았다.
이 하늘의 별들은 강욱철 같은 서민의 면회 면담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들의 움직이는 동선을 미리 파악 촬영현장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국토분단을 알고 계십니까?”
“네? 잘 안들려요.
저 오늘 저녁 각하 시중 예약이예요.“
“나라가 통일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전 그런 건 별 관심 없구요, 모렌 국무총리님 독대 예약이예요.”
남조선 최고의 인끼스타 유명여배우의 응답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인끼스타 여배우들도 정신 없기는 마찮가지였다.
“군사정권 물러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 요즘 인끼 계속 상승이예요. 경호실에서 호출이 올거예요.”
두 번째 여배우는 애교가 철철 넘쳤다.
“아니, 얼굴만 예쁘면 다예요?
미국놈이 물러가야 통일이 될 것 아닙니까?“
세 번째 여배우에겐 강욱철이 화가나서 처음부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 어머나! 이 사람 미쳤어. 미국이 물러가면 우린 다 죽는거야...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구만.”
강욱철은 첫 번째 두 번째 여배우를 만났을 때는 용케 무사했었다.
세 번째 톱스타를 만났을 때가 문제였다. 미쓰 코리아 출신 최고의 미인 여배우가 소리를 지르고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문제가 터진 것이다. 여배우 잘못만도 아니었다.
미국이 물러가면 우린 다 죽는다는 말에 흥분한 강욱철이 불문곡직하고 여배우를 향해 돌진을 감행했다. 얼굴에 침을 뱉고 발길로 내차기 위해서 버둥거렸었던 것이다. 일단의 건장한 보디가드 청년들에 의해 강욱철은 강하게 제지를 당했다. 제지 청년들에 의해 주먹질과 발길질 세례를 받았다.
일이 여기서 끝났다면 좋았는데 결국 경찰이 출동을 했고 파출소까지 끌려가는 몸이 되었다. 아무래도 수상한 놈이라는 혐의가 붙었던 것이다.
파출소에서 끝나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경찰의 신원조회가 문제였다. 시국사범으로 전과3범이었다. 이것은 재판을 받지 않고 비공식으로 끌려가서 당한 것은 계산되지 않는 기록이었다.
전과3범이 문제가 아니고 시국사범이 문제였다.
꼼짝없이 또 남산6국신세가 되었다.
시국사범도 보통은 경찰에서 검찰로 넘기는데, 강욱철은 아니었다.
미쓰코리아 출신 여배우의 얼굴을 향해 침을 뱉으면서 미국놈들 나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소리를 질러 댄 것이 큰 탈이 되었다. 대한민국을 폄하하고 박정희를 욕하는 건 어느 정도 혹 묵인이 된다해도, 미국을 건드리는 건 신성시 되었다. 절대로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5박6일동안 낯익은 남산 지하실에 있었다.
이번엔 손발을 묶어서 철봉에 매달아 통돼지 고문을 자행했다.
일본 조총련계나 남한내 고정간첩과 선이 닿는 걸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주전자의 물에는 고춧가루가 없었다. 주전자의 찬물을 코에다 부어 넣는 고문이었다. 눈알이 튀어 나오고 고막이 터지는 물고문이다. 6국에 올 적마다 등짝 엉덩이 살갗이 터져 나가는 몽둥이 찜질은 기본으로 당했었다.
일이 이렇게 되는 바람에 남자배우를 만나는 일은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이름이 있는 남자배우들은 요즘 이중 삼중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인끼 남자배우 톱스타들은 역시 인끼 여우 톱스타를 데리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인끼 상승에 배우로서의 수명이 오래 간다는 것이다. 또 체면도 서고...
그런데 강욱철이 인끼 여우들을 만나 보아서 알 수 있었지만, 인끼 여배우일수록 정보부나 청와대 경호실 차출이 많다는 것이다. 총리실에서 차출이 올 때도 있다는 것이다.
각하의 시중을 들거나 정보부장, 경호실장과 술자리를 같이해야 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침실시중이 뻔한 것이었다. 어쩔 때는 대낮에도 호출을 한다는 것이다.
인끼 남우들의 고통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명색이 배우자라는 것들이, 차출이나 호출에 망설이거나 저항은 그만두고 날마다 정보부나 경호실의 호출을 기다리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남편인 남자배우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라는 것이다.
이것은 약과이고, 아내인 여배우의 밤늦은 귀가나 밤샘귀가에 싫은 기색을 보였다가는 큰 낭패를 당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대한민국 최고의 인끼 남자 배우에게 매우 곤란한 일이 생겼었다. 전혀 본인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미국 헐리우드 시찰이라는 명분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의 양 옆에는 기관원들이 지키고 있어서 싫은 표정 한 번 짓지도 못하고 정든 고국땅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또 다른 여자배우 하나는 밤이면 검정쎄단을 자주 타는데 차 번호가 중앙정보부 소속이라는 것이다. 이 여배우는 정보부장이 아예 데리고 산다는 소문이 돌았다. 야간 교통경비 경찰들은 권력자들의 자동차번호를 모두 암기하고 있어야 한다. 통행금지 이후의 세상은 권력자들의 세상인 것이다. 권력자들에겐 통행금지가 없다.
무법천지로 통금도로를 질주하는 권력자들의 차 넘버를 암기하지 못했다가는 교통경비 경찰의 목이 달아나고 만다.
어젯밤에도 통금도로를 질주하는 검은 쎄단을 향해 교통경찰이 거수경례를 올렸었다. 옆자리의 부장님 대신 그 이쁜 얼굴의 여배우가 당차게 거수경례를 받더라는 것이다.
강욱철도 강욱철이었다.
6국 유람으로 그렇게 당하고도 또 제정신을 못 차리고 덤볐다. 그건 마지막 목표로 정했었던 종교계 인사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남산유람 후 한 달 반 만이었다.
종교계라면 강욱철로서도 매우 조심스럽고 경건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어려서 할머니 손 잡고 절간에 갔다가 얼마나 혼이 났었는지 모른다.
절간 댓문을 지키고 서 있는 사천왕상을 보고 오금이 저려서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질 않았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저렇게 사천왕한테 벌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강욱철은 속으로 어른이 되면 절대로 죄를 짓지 않겠다고 거듭 거듭 다짐을 했었던 기억이다.
수염이 하얗고 눈썹까지 하얀 어른스님을 만났다.
사람들은 그를 큰스님이라 불렀었다. 큰스님은 출가 77년에 법랍이 70년이었다. 스님 앞에 마주 앉기만 해도 몸이 굳어지고 가슴이 뛰는 것이었다.
“스님, 지금 세상이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은 사람이 살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공부하고 도 닦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우선 살고 보아야 할 것 아닙니까... 땅 위에 사람이 살아야 나락이고 연옥이고 미래불이고가 필요하지, 인종이 없는데 절도 필요 없고 중도 할 일이 없는 것 아닙니까?”
강욱철이 말을 하고 생각하니 앗차, 싶었다. 큰스님 앞에서 감히 스님을 중이라 칭하다니, 큰 실수를 한 것 같았다.
“....”
한참을 기달려도 큰스님께서는 반응이 없었다. 스님을 중이라 칭해서 화가 단단히 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스님, 아참 큰스님!”
이왕 내친김에 불호령이 내리드라도 할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박정희는 일본군 중위 출신인데, 지금 한일회담을 밀어붙이고 기고만장을 하여, 언론의 입을 틀어막고 야당 정치인을 회유 협박 매수 또는 투옥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정보원들이 제 안방 드나들 듯 학원의 자유를 짓밟고, 매판자본 차관경제로 국민생활은 진흙탕 속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
큰스님은 입을 굳게 다물고 두꺼운 돋보기 너머로 강욱철을 빤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일본놈들은 엔화 몇 푼을 들고 와서 기생관광에 보양식을 먹고 삼천리강산을, 아니 일천오백리 남한강산을 휘젓고 매춘관광 숫처녀 사냥질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해방되고 20여년 동안 양키 코쟁이들이 쓸만한 남한 가시내 다 조저 놓았는데, 지금은 왜놈들이 남한 숫처녀 씨를 말리는 중입니다.“
“....”
강욱철은 조금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역시 큰스님께서는 말씀이 없으셨다.
“스님. 아니 큰스님!
국고는 거덜나고 백성들은 먹고 살기에 숨이 차서 가쁜 숨을 헐떡거리고 있습니다. 일본놈들을 등에 업은 매판자본가들만 배가 터지지요. 미국 일본 유럽에서 차관 얻어다가 박정희일당과 매판재벌들이 반반씩 갈라먹기예요.
백성 머릿수, 노동력, 남조선 땅덩어리를 담보로 코쟁이들 한테서 빚 내다가 물 쓰듯 정치자금을 뿌리고 뭉텅이돈을 스위스은행 비밀구좌로 빼돌린다는 거예요.
불쌍한 백성들만 피 땀 흘리고 피똥싸다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스님!“
“....”
“큰 스님, 이것들을 다 때려 부숴야지요.
서산대사와 사명당께서도 왜놈들이 처들어 왔을 땐 기치창검을 높이 드셨다고 하는데, 스님께서도 총칼을 들고 일어 서셔야죠, 네!?”
강욱철은 기가 꽉 막혔다.
자신은 정성을 다해서 죽기살기로 하소연을 하는데 큰스님께서는 전혀 반응이 없으셨다.
“....”
“...?”
이 거 어찌된 노릇인가? 큰스님의 눈동자가 점점 촛점을 잃고 있었다.
“....”
스님, 큰스님!
사부 대중이 다 죽어가는데,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어서 총칼을 들고 떨쳐 나서야죠?!”
“....”
하 이거, 낭패였다.
존경하고 존경받는 큰스님, 수백만 온 나라 불자들이 우러러 모시는 큰스님... 그 큰스님께서 지금 크게 코고는 소리를 내며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스님, 큰스님!?”
어쩔 수가 없었다. 강욱철은 벌떡 일어서서 큰스님의 거룩하옵신 몸체를 잡고 마구 어깨를 흔들어 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큰스님께옵서 눈을 번쩍 뜨시고 큰소리로
“얘, 정각(正覺)아! 정각아!”
행자스님을 급히 불러대시는 것이 아닌가.
“네, 네! 저 여깄습니다! 큰스님...”
어디에 있었는지 당혹스러워하는 행자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으흠, 너 오늘 일주문(一柱門) 결산이 어찌 되었는고오?”
“네,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고 주말이어서 절문 출입객이 폭증하여 오늘 결산이 잠시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큰스님 조금만 기다리시지요.“
강욱철은 할 말이 없었다.
부양천지,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다. 말 한마디 못하고 한달음에 절문을 나섰다. 들어갈 때 지불한 입장료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되돌려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쇠뿔은 단 김에 뺀다고 이왕 시작한 것 강욱철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찾아 나섰다. 사실은 홧김에 서방질하는 격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