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백문백답(48)

1) 발전의 개념

앞에서 보편적 순환 개념을 설명했다. 보편적 순환을 보여주는 이미지는 무한히 뻗어나가는 직선이 아니라 한 점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원환이다.(헤겔은 전자를 ‘악무한’, 후자는 ‘진무한’으로 설명했다.)

보편적 순환 개념은 헤겔이 대논리학 1권 1부에서 양질 전환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개념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 상품 화폐론을 전개할 때 이를 사용했고, 나중에 엥겔스가 <자연변증법>에서 양질전환의 법칙으로 정식화했던 것이다.

이제 헤겔이 대논리학 3권에서 설명한 발전 개념을 설명할 차례이다. 이 개념은 엥겔스가 자연변증법을 설명할 때는 빠져있다. 왜냐하면 자연, 즉 물리, 화학적 과정에서는 이런 발전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헤겔은 생명의 진화를 설명할 때 이 발전 개념을 사용했으며, 이 발전 개념은 마르크스의 역사 서술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된다.

2) 자연의 층위

이제부터 어려운 이야기가 될 것이지만, 참고 들어주기 바란다. 최대한 단순화해서 말하고자 한다. 앞서 설명한 보편적 순환 개념이 자연을 설명하는 데 어떻게 이용되는가를 보자.

자연은 층을 이루고 있다. 소립자의 층 위에 분자의 층이, 분자의 층 위에 생물의 층이 있다. 이렇게 ‘층’ 개념을 사용하는 이유는 각 층은 이전의 층과 다른 새로운 물질의 층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몇 가지 성질이 바뀐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질을 지배하는 운동법칙 자체가 변화한다.

예를 들어 분자는 서로 관계하여 다양한 화합물을 만들어낸다. 각 화합물은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다. 동일한 탄소라도 화합의 방식에 따라 어떤 것은 연탄이, 어떤 것은 다이아몬드가 된다.

그러나 하나의 층 내부에서는 고유한 운동의 법칙이 있다. 화학적 작용은, 내가 기억하기로 원자의 전자가(주기율)에 의해 조절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생물의 층으로 가면, 과거와는 전혀 다른 운동법칙이 출현한다. 생물은 자기 보존의 원리나 종족 보존의 원리에 따라서 움직인다고 말한다.

3) 보편적 순환

자연의 어떤 층에서 이처럼 새로운 층이 출현하는 과정은 무엇인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앞에서 설명한 보편적 순환이라는 개념을 이용할 수 있다. 즉 상위의 층은 하위의 층에 있는 물질들이 상호 보편적 순환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출현한다는 것이다. 마치 상품이 보편적 순환의 관계를 맺으면 화폐가 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생명체의 기본운동인 광합성을 보자. 그리고 생명체가 복제되는 DNA 사슬을 보자.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대략 설명하기로 하자.

광합성이나 DNA복제에 어떤 순환이 숨어 있다. 즉 어떤 중심이 있어서 자기의 구성 요소의 일부를 외부의 요소와 대체한다. 주변 구성요소의 대체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은 여전히 동일하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나오면, 광합성이다. 이 과정에서 거울에 비치듯이 자기가 복사되면, 그게 DNA 복제이다. 좀, 엉성한 설명이긴 한데 참아주기 바란다. 좀 더 충실한 설명은 생물학 교과서를 참조하시기를. 

▲ 사진 : 위키피디아 커먼스

4) 자연의 경향성: 우연과 목적 

지금까지 보편적 순환 개념을 이용해 자연의 층위를 설명했다. 각각의 물질적 층위는 누적적 계단을 이룬다. 소립자의 보편적 순환으로 분자가 나오고, 분자의 보편적 순환으로부터 생명체가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철학의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가설을 하나 세울 수 있다.

물질의 층위가 발전하면서, 운동의 법칙이 변화하는데, 그 운동 법칙의 성격에 일정한 경향성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역학의 법칙은 엄격하게 결정론적이다. 반면 분자 운동의 법칙에 속하는 열역학의 법칙에는 이미 우연의 개념이 등장한다. 열역학의 법칙은 우연을 매개로 한 통계적인 법칙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층위가 상위로 올라가면서 우연성이 역할이 강화되는 경향성이 있지 않을까?

또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소립자나, 분자의 운동이 여전히 엄격하게 인과적인 운동이라면 생명체에서는 목적론적 운동이 출현하게 된다. 인과 관계에서 원인과 목적운동에서 목적은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은 이해하리라 믿는다.

과거 자연과학자들은 자연에는 인과적 법칙만 있지 그런 목적론적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요즈음 자연과학자는 예를 들어 유도탄과 같은 것이 있으니, 자연에도 이런 목적 운동이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즈음은 생물의 목적론적 운동도 일종의 유도탄과 같은 것으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자연의 물질적 층위가 이동하면서 인과적 운동은 점차 목적론적 운동으로 전환하는 경향성이 있지 않을까?

자주 생물의 진화에 경향성 또는 방향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논란이 벌어졌다. 다윈파는 맹목적 우연의 지배를 강조한다. 반면 창조론자는 자연의 목적, 즉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한다. 변증법적으로 본다면 두 가지 다 문제가 있다.

자연은 누적적으로 계단을 쌓으면서 발전하는데, 각 계단의 운동법칙을 비교해보면 거기에는 우연성과 목적성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경향성이 합치되는 곳에 자유라는 개념이 있다. 자연은 자유를 향하여 새로운 물질적 층위를 실현했다. 그것이 인간이다.

5) 자유로운 운동

여기까지는 대체로 자연과학이 지금까지 밝혀낸 사실에 속한다. 여기서부터 이제 사유의 모험을 결단해 보자. 지금까지 자연의 층위는 주로 소립자, 분자, 생명체였다. 이제 생명체 가운데서 새로운 물질적 층위가 출현했다. 그것이 바로 의식을 가진 생명체, 곧 인간의 층이다.

생명체 가운데 의식적 존재가 출현하는 것도 보편적 순환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신경이란 사지를 하나로 통일시키는 조직이다. 이런 신경이 다시 서로 결합하여 뇌가 형성되지 않을까? 척추나 소뇌 정도는 신경의 복합체 정도가 된다. 신경이 이제 일종의 순환적으로 조직되면, 그게 두뇌(신피질)이고, 여기서 의식이 출현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의식이 출현하면 이제 그 이전 단순한 생명체를 지배하는 운동법칙과 다른 운동법칙이 출현한다. 즉 의식적 생명체의 운동법칙이다. 생명체가 목적운동을 하더라도 마치 유도탄처럼 외적으로 조절되는 것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의식은 스스로 자유롭게 조절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자유의지 또는 자주성이 가능하다.

생명체처럼 외적으로 조절되는 목적 운동을 헤겔은 발전이라 했다. 인간 의식처럼 스스로 조절하는 목적운동은 자유로운 발전이다. 이 자유로운 발전이 인간의 역사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