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백문백답(50)

1)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의 발전

앞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주체철학의 역사관(이하 주체사관)을 설명할 때다. 다시 마르크스의 역사관으로부터 시작하자.

마르크스 역사관의 핵심은 앞에서 말했듯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경제결정론이다. 이는 달리 표현하면 정치투쟁이란 곧 계급투쟁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의 단계론이다.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등으로 역사가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마르크스 이후 많은 혁명가들, 역사학자들은 마르크스 사관에 함축된 의미를 더욱 심화, 확장해 왔다. 이미 앞서서 말했듯이 서구 마르크스주의자는 상부구조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레닌 그리고 마오는 인간의 능동적 행위를 통해 역사의 압축, 가속화(연속혁명)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했다.

이런 마르크스주의의 발전에 이어서 주체사관은 마르크스 역사관을 새롭게 발전시켰다. 주체사관에 대해 사관으로서 독특성만을 중점적으로 언급하자면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역사는 자주성의 실현이라는 주장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 속에서 주체 자신의 자기 혁명(인간 개조)이 강조된다는 것이다.

2) 목적론적 법칙 

우선 역사는 자주성의 실현이라는 말부터 검토해 보자. 이런 표현은 얼핏 보면 역사는 계급투쟁이라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엄청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계급투쟁이란 말에는 인과적 질서가 강조된다. 생산력이 생산관계를, 이것이 다시 사회구성체를 결정한다. 반면 자주성의 실현이라는 말은 어떤 목적이 현실에 실현되는 것이니, 목적론이다.

그런 목적론적 표현은, 역사는 자유의 실현이라는 헤겔의 표현과 유사하다. 그 때문에 주체사관은 마르크스의 사관으로부터 이탈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계급투쟁이라는 말은 일정한 시대 어떤 사회를 횡단하여 보는 공시적(共時: synchrony) 설명이다. 한 사회에서 생산력은 생산관계를, 토대는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반면 자주성의 실현이란 시대를 종단하여 통시적(通時: diachrony)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즉 역사는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를 거쳐 가면서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더 풍부하게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역사는 자주성의 측면에서 진보해왔다는 말이다.

주체사관이 계급투쟁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북쪽에서 나온 조선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선사는 원시공동체 사회(선사), 고대 노예제 사회(고조선), 봉건제 사회(삼국에서 조선까지), 자본제로의 이행기(1860 이후)로 편제되어 있다.

또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 대중은 노예소유자들의 완전소유물로, 봉건사회에서 농노들은 봉건지주들의 불완전한 소유물로 되고…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임금노동자는 보다 교활하고 파렴치한 자본주의적인 예속을 강요당하지만…”(<북한의 사상>, 태백, 1988, 68쪽)

이런 구절에서 주체사관은 계급해방의 역사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계급투쟁이냐 아니면 자주성의 실현이냐 하는 것은 결국 설명하는 방식의 차이였을 뿐이다. 

▲ 독일의 화가 오토 그리벨(Otto Griebel; 1895~1972)의 작품 <인터내셔널가>. 나치 지배 독일에서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의식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출처 : 구글검색] 

3) 계급투쟁과 민족해방투쟁

그러면 역사는 계급해방의 역사라고 하지, 왜 자주성의 실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이유는 자주성이 다음 두 가지를 동시에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내적으로 계급해방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대외적으로 민족의 독립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표현하려니 자주성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아래 구절을 보자.

“피착취 피압박 계급이… 계급투쟁을 벌이는 목적은 계급적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데 있다. 피압박민족들이… 민족해방운동을 벌이는 것도… 자주권을 가진 민족으로서 자유롭게 살아나가기 위한 데 목적이 있다.”(위의 책, 69쪽)

주체사관이 자주성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대내, 대외 두 측면을 단순히 동시에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이는 대내적 계급투쟁과 대외적 해방투쟁이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두 가지 사실의 상호관련성은 이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들의 역사 연구로부터 밝혀져 왔다. 마르크스의 <혁명사 3부작>이나 레닌의 <제국주의론> 등을 보면, 대외적 민족간 투쟁은 대내적 계급투쟁을 반영하고, 거꾸로 영향을 준다.

4) 정복전쟁과 종교전쟁

이런 연구를 역사학자들은 더 넓혀서, 심지어 고대나 중세의 전쟁도 그런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고대국가를 보자. 이 시기 타 민족에 대한 정복전쟁이 끝이 없었다. 왜 이런 정복전쟁이 벌어졌는가? 고대국가는 노예제 사회이므로 노예를 획득하기 위해서 전쟁은 그칠 수 없었다. 전쟁에 진다는 것은 곧 노예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이제 중세국가(봉건제 사회)로 들어가 보자. 여기서 전쟁의 중심은 항상 영주들 사이 투쟁이었다. 영주들은 자주 자기를 종교의 전사, 하나님이 대리인으로 위장했다. 하지만 그 투쟁의 진짜 목적은 토지였다.

중세 봉건제에서 토지는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었다. 영주들은 더 비옥한 토지를 더 많이 장악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정략결혼은 예사였고 지역 동맹, 역간 전쟁은 그치지 않았다. 비옥하고 넓은 토지를 가진 영주는 마침내 세계를 제패하여 봉건적 세계 제국을 수립했다.

자본제 사회에 들어오면 계급투쟁이 대외적인 관계, 전쟁과 평화조차도 결정한다. 이 점은 이미 마르크스, 레닌이 충분히 설명해 왔다. 나폴레옹의 혁명전쟁은 영국 부르주아와 대결하는 프랑스 부르주아의 시장 지배라는 목적 없이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19세기 전 세계로 펼쳐나간 유럽의 제국주의 침략이란 자본의 수출을 위한 전쟁이었다. 제국주의 열강간의 세계대전 역시 식민지 쟁탈전에 지나지 않았다.

5) 자주성의 실현

주체사관이 계급해방 대신 자주성의 실현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이런 지금까지 역사적 연구의 성과를 반영한 것이다. 이런 연구는 거의 대부분 주체사관 이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마르크스 사관을 확장하여 계급투쟁에서 자주성의 투쟁으로 정식화한 것은 주체사관이었다.

이제 주체사관의 또 하나의 측면, 주체의 자기 혁명이라는 개념을 검토해보기로 하자. 내가 보기에 주체사관에서 자주성의 실현이라는 개념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 바로 주체의 자기 혁명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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