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평가와 한국의 당 건설(3)

본문요지

현재 논의 중인 당 건설 방식은 과거의 경험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채 조직결성에만 급급한 측면이 있다. 이는 자칫 과거 민주노동당의 전철을 밟기 쉬우며, 당에 관한 논의를 하는데 있어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순서이다. 현존하는 진보정당들은 대부분 좋든 싫든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1. 지금 왜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가 시급한가?

1) ‘변혁의 시대’에 진입한 객관 정세와 미흡한 주체역량 
2) 당 건설 관련  3가지 방안 (지난 호)
3) 민주노동당 평가의 필요성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변혁진영 활동가들은 여러 분파로 나뉘어 각자의 영역에서 ‘성채’ 쌓기에만 골몰하였다. 대중들이 2016년 촛불시위를 통해 박근혜 정권을 퇴진 시킨 데서도 볼 수 있듯이, 객관 정세는 이미 퇴조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정작 선두에서 대중투쟁을 이끌어야 할 활동가들은 여전히 퇴조기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는 2019년 초 레디앙에 발표한 <포퓰리즘과 자본주의 ‘전반적 위기론’>에서 활동가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정세 고양기에 대비하여야 한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그 중 일부를 소개하도록 하자.

“지금 문제는 활동가들에게 있다고 보여 진다. 정작 선두에 서서 대중투쟁을 이끌어야 할 활동가들이 여전히 ‘대중 탓’만 하면서 퇴조기적 관성으로부터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활동가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정세의 고양에 대비하여야 할 때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자체학습과 이론연구에 집중해 왔던 연구진 역시도, 그 연구방향을 일반·원론적 혹은 개별 정책적 차원에서 벗어나, 좀 더 직접적으로 ‘강령’과 ‘실천노선’을 내올 수 있게끔 방향전환을 할 때라고 보여 진다. 폐쇄된 연구실에서 나와 현실운동과 접점을 찾음으로써, 활동가들이 좀 더 과감하게 최전선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는 것이야 말로 지금 시기 한국 진보이론진영에 부여된 절박한 임무라 할 수 있다.”1)

그간 변혁주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왔다. 어떤 사람들은 기본 원리부터 되돌아보아야 한다며, 연구소를 설립하여 자본론을 강의하고 유럽 좌파 이론을 탐구하였다. 또 어떤 이는 노동현장에 들어가 묵묵히 노조활동에 전념하면서 언젠가는 찾아올 정세 반전에 대비했다. 
그러나 이처럼 기초이론에 대한 진지한 탐구나 현장사업에의 열중은 자칫 그 관성 때문에 객관 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경우가 있다. 여전히 90년대 초반의 소련과 동구권 붕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세 변화에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중국•베트남을 비롯한 국제 사회주의진영은 이미 위기에서 벗어나 전진을 계속하였으며, 반대로 자본주의진영은 전반적 위기가 다시 찾아오는 등 국내외 정세는 크게 변화하였다. 이 같은 사실을 간과한 채 여전히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기초이론’ 탐구나 개별 현장활동에만 매몰된다면 이는 이미 객관 정세에 크게 뒤처지는 셈이 된다.

▲ 총선 직후 노동자 정치운동 과제 토론회
▲ 총선 직후 노동자 정치운동 과제 토론회

그렇다면 당 건설을 위해서는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지금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앞서 소개한 3가지 당 건설 방안들을 보노라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들 ‘현실투쟁과의 결합’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기존 역량을 재조합 하는 ‘상층연대’가 주류라는 점이다. 예컨대 다들 코로나19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위기를 충분히 활용하고, 향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공동선대본과 공동단일후보 전술을 통해 통합 주체간의 연대를 공고히 하면서 대중적 지지도를 높이겠다는 방안을 제기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주로 거리에서 실행하기에 적합한 것들로, 일상적으로 현장 속에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같은 캠페인 식의 당 건설은 큰 확장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진보대통합당론과 좌파연합당론은 물론이고, ‘사회주의대중정당’을 주장하는 입장조차도 내용상으로는 상층연대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사회주의 대중화’를 현장 속에서 대중적 슬로건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장 밖에서 수행하는 ‘정책과 기획’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현장 대중에게는 밖에서의 이러한 외침이 잘 전해질 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사회주의대중정당론’ 역시도 결국은 기존 좌파단체 간의 통합논의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 건설 방식이 이렇듯 상층연합 위주이다 보니, 정책과 노선에 있어 서로 간의 차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지 ‘미봉’ 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큰 문제이다. 이는 자칫 과거 민주노동당을 통해 경험한 바 있듯이 심각한 내분을 초래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해 6월 21일 토론회에서 노동전선의 신재길씨가 제기한 다음의 문제는 음미해볼만 하다.

“사상적 공통부문이 있기는 한가? 중국만 보더라도 중국을 제국주의로 보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사회주의로 보는 입장도 있다. 이들은 홍콩사태에 대한 견해에 있어 정반대의 입장에 설 것은 분명하다. 한쪽은 반제국주의 민주화운동으로, 다른 쪽은 미제의 반사회주의 반혁명 책동으로 볼 것이다. 이들이 함께 할 수 있을까?  한다면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조직노선의 공통적 공감대는 형성가능 한가? 현재 좌파조직의 조직적 상태는 다양하다. 전위의식을 갖고 있는 부분에서부터 일상적 대중조직을 지향하는 조직, 느슨한 활동가 네트워크, 합법정당, 어느 정도 골간조직을 갖춘 정치조직 등등. 이들을 하나로 묶는 연합조직이 가능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그것이 사회주의연합정당일 수 있는가?…(중략)… 

사회주의 정당의 실패원인.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가장 큰 원인은 밑으로부터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지 못하고 상층에서 조급하게 선언하는 방식 때문이다. 상층중심 당 건설은 설사 성공적으로 건설을 이루어 낸다고 하더라도 정파 간 알력에 휩싸이거나 명망가 위주로 변질되었다.”2) 

현재 논의 중인 상층연합 위주의 당 건설 방식은 자칫 과거 민주노동당의 전철을 밟기 쉽다. 민주노동당 역시 제 정치집단 간의 연합정당 방식으로 건설되었으며, 당시 ‘국민승리21’을 통한 97년 대선 참여를 매개로 하였다. 과거의 경험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채 당면한 조직결성에만 급급하다보면 동일한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민주노동당이 탄생하기 이전과 민주노동당을 경험한 이후의 진보진영을 둘러싼 지금의 주체와 객관적 조건은 많이 달라졌다. 그간 여러 차례 선거를 경험하였으며, 의회 진출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도 어느 정도 축적 되었다. 그 단적인 사례가 현재의 정의당이라 할 수 있다. 5개의 의석과 10% 가까운 여론 지지율을 갖고 있는 정의당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진보대통합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다. 

따라서 지금 당에 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민주노동당에 대한 역사적 평가부터 하는 것이 순서이다. 과거 민주노동당에 대한 정확한 평가 없이 현재의 당 건설 논의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더구나 현존하는 진보정당들은 대부분 좋든 싫든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 인적구성, 활동경험, 사업작풍 및 대중 지지도를 포함하여 과거 민주노동당과는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민주노동당에 대해 평가해야 할 사항과 그로부터 얻고자 하는 교훈은 이하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당시 진보연합정당이 성립할 수 있었던 조건은 무엇이며 지금과는 어떻게 다른가? 1987년 이후 최초로 원내진출에 성공했던 민주노동당의 성과와 한계는 또한 무엇인가? 
둘째, 당시 민주노동당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패권주의, 의회주의, 출세주의 등의 문제점 및 상호 관계가 분명히 규명돼야 한다. 
셋째, 현재 논의 중인 진보대통합당, 사회주의대중정당, 좌파연합당 문제는 ‘당’에 대한 기본 인식이 서로 다른 점에도 기인한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를 통해 ‘당’에 대한 서로의 인식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즉 우리가 세우고자 하는 당은 어떠한 당이며, 당 건설이란 실제 어떤 과정인지에 대한 상이 공유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가급적 이를 실현키 위한 경로와 수단까지도 밝혀져야 한다. (계속)


 본문 주석

1) http://www.redian.org/archive/129690

2) 신재길, 2020년6월21일, “토론문”, [“사회주의 연합정당 건설의 경로” 토론회] 자료집. 신재길 씨는 이날 ‘미디어 협동조합 시그널 운영위원’ 자격으로 토론자 중 한 명으로 참가하였는데, 그는 또한 ‘노동전선’ 정책위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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