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평가와 한국의 당 건설(8)

본문 요지
민주노동당은 한편으론 87년 민주화와 대중적 노동운동의 초창기에, 다른 한편으론 소련과 동구권 해체로 야기된 이념적 혼란기와 변혁운동의 퇴조기 속에서, 정파 상호 간 노선상의 차이와 정체성 문제를 부차화하고 함께 열려진 제도권 공간을 활용할 필요성에서 성립한 한시적 전술이었다. 이제 그 같은 조건이 사라진 지금 민주노동당은 일단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였다고 볼 수 있다. 현 시기 노동자계급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과제는 ‘계급연합전술’보다는 ‘독자적 자기정립’ 이라 할 수 있다.

 

1. 지금 왜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가 시급한가?
2. 민주노동당 성립의 시대적 요인 (1)―정파적 측면
3. 민주노동당 성립의 시대적 요인 (2)―대중운동적 측면
4. 패권주의의 기원과 ‘의회주의’ (지난 호)

제5장 ‘진보연합정당’의 부활은 가능한가?

패권주의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그것은 정파 간의 자리다툼 외에도, ‘자기노선의 관철’을 위한 민주집중제의 실천이라는 원칙적 문제를 포함한다. 민주노동당 초기에 정파 간의 자리 안배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었지만, 나중에 그것이 무너지게 된 데에는 지금까지 언급한 ‘의회주의’ 문제 외에도, 노선 관련한 대립과 강력한 집행력의 필요성이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본질은 여전히 ‘의회주의’ 노선에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결국 정파 간의 노선대립이 자리다툼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은 의원이나 공직자가 되어야만 자신들의 노선을 가장 잘 펼칠 수 있다는 시각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패권주의의 또 다른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노선문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 아직 남은 문제—노선 차이
   : 민주집중제를 실천할 수 없었던 민주노동당

 
당내 다수파인 자주계열은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 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패권주의’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는 ‘의회주의’ 외에도, 그것만으로 치부될 수 없는 ‘민주집중제’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였다. 즉 자파의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당내 역량을 하나로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이를 위한 조직적 보장으로서 최소한 ‘당3역’을 자파가 장악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앞서 제4장에서 언급한 바 있기에 여기선 간략히 짚고 넘어가도록 한다. 
민주노동당은 2002년 지방선거에서 제3당으로 부상하였으며, 2003년 후반 전농의 입당 등으로 당원이 증가하고 당세가 확장되었다. 이에 따라 당의 이념적 성격을 명확히 하고, 일반 당원과  대중조직의 민주적인 참여를 보장하며 “지도 집행 체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최고위원제를 도입하는 등 여러 가지 제도 개선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들은 현실에 적용되면서 원래 의도했던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였다. 그에 대해 자주파는 자주파대로 평등파는 평등파대로 불만을 갖게 되었으며, 최소한 지도부의 입장을 통일시키기 위한 조직개편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다른 세력들에게는 ‘권력독점’ 내지 ‘패권주의’로 비춰지게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단순히 패권주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다. 분명 여기에는 당의 집행력 강화에 필수적인 ‘민주집중제’를 실현키 위한 지도력 강화의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당시 민주노동당 내부의 ‘이질적 요소’에 있었다. 그것은 민주노동당이 지향해야 할 ‘노선문제’가 아직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여기서 민주노동당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당과 계급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정파 간의 느슨한 협의적 관계를 계속하든지, 아니면 일정 정도 당이 깨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패권주의’로 갈 수밖에 없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민주노동당은 민주집중제를 실현할 수 없는 당이었을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조건은 또한 무엇일까?
원론적으로 볼 때, 서로 대립하는 노선이 분명히 존재하고, 또 상호 역관계에 있어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조건에서는, 단지 ‘연합적’ (협의적) 관계가 성립할 뿐 ‘민주집중제’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은 갖추지 못한다. 형식적 민주주의인 ‘다수결’ 원칙에 입각해서 억지로 민주집중제를 실현하려고 하다가는 자칫 패권주의를 낳고 ‘연합’은 파괴된다. 따라서 민주집중제 실현의 조건은 ‘노선대립’의 해소 내지는 무력화이거나, ‘압도적 우위를 갖는’ 혹은 ‘안정적인’ 다수파의 존재이다.
민주노동당에는 분명 이 같은 조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NL과 PD라 불리어지는 민주노동당 내 첨예한 양대 진영 간의 대립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내에는 원래 크게 3대 진영이 존재하였다. 민족해방계열의 자민통 전국모임, 사민주의계열(전진, 자율과 연대, 혁신 네트워크), 변혁적 계급노선 계열(노동해방실천연대, 다함께)이 그것이다. 이들 각 세력은 80년대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 시기부터 시작해서, 이후 90년대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으로 이어지는 오랜 자기발전의 역사와 뿌리를 지니고 있다.
우선 ‘PD’라고 불리어진 범(凡)좌파진영을 보면, 80년대 엄혹한 비합법조건 하에서 이들 상호 간의 본질적 차이는 많은 부분 감추어지거나 맹아적 형태로만 존재하였다. 하지만 87년 이후 민주화가 진척되고 정치 공간이 확대되자 그 차이는 분명해졌다. 특히 소련과 동구권이 해체 된 후 이러한 노선 차이는 더욱 확연해졌는데, 과거 인민노련 세력이 주축이 된 민주노동당 내 전진파는 ‘사민주의’ 노선을 분명히 하였으며, 이에 비해 노동해방실천연대, 노동자연대 등은 전통적인 변혁주의 입장에 좀 더 가까웠다. 
다른 한편, 이들 좌파진영 전체와 구별되게 소위 NL-PD 대립 구도가 존재하였다. 이들 간에는 한국사회의 성격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주요모순과 기본모순에 대한 인식 차이, 주요타격 방향, 계급모순과 민족모순 관계, 특히 보수야당에 대한 태도, 사업 작풍에 이르기까지 전반의 문제에 있어 깊은 골이 존재하였다.
이들 각 세력은 자신의 노선을 관철시키기 위해 일단 민주노동당으로 결집하였다. (혹은 민주노동당의 틀을 활용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어쨌든 각자 동상이몽을 갖고…) 이들은 기존의 차이를 간직한 채, 정세적 조건과 각자의 한계 때문에 ‘연합정당’ 전술을 강제 받은 측면이 강했다. 서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집안 살림’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들은 제2장에서 이미 언급한 바처럼, 그 어느 세력도 독자적 힘만으로는 선거나 의회연단을 활용하기 위한 제도권 정당을 결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이 점이 당시 민주노동당이라는 ‘연합정당’이 탄생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냉전체제의 해체, 미국과 서구 주도의 단일 세계체제의 성립에 의한 이념적 대립 요소의 약화, 90년대 이후 경제발전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실현 등 한국사회의 외형상의 급격한 변화는 이들 간의 전통적인 대립 요소를 약화시키는데 일조하였다. 당시에는 심지어 이미 기존의 정파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성급한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처럼 일견 완전한 ‘헤쳐모여’가 가능한 듯 보이기도 하였지만,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였다. 이후 사태의 진행이 보여준 바와 같이, 기존의 사상과 이론, 조직, 사업작풍, 전략전술의 차이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는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럽게 저절로 해소되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상호간의 노선차이가 전혀 극복되지 못한 채, 단지 ‘잠복’한 상태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결국 민주노동당이 외형적 성장을 이루어 갈수록 이 같은 차이와 갈등은 깊어졌으며, 해소되는 방향으로 나가기보다는 더욱 강화되고 마침내는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연합세력들 각자가 대중적 인지도, 선거 및 합법정당 창당•운영 등에 있어 일정한 경험을 쌓고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게 되자, 결국은 그들은 살림을 차려서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글 서두에서 밝힌 바대로,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의회활동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즉 민주노동당의 ‘의회주의’적 편향이 심각하였으며, 그것이 일차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출세주의, 패권주의는 이 같은 경향 속에서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었으며, 이로부터 당의 대중노선으로부터의 이탈을 촉진하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민주노동당 내부는 정파 간의 갈등이 심화될 수 있는 요인들이 많이 존재하였다. 원래 제 정파 및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계급•조직들이 함께 한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체를 주도할 수 있는 주도세력이 분명하지 않았다. 

2)  민주노동당이 남긴 유산
    
민주노동당이 가졌던 한계, 즉 패권주의의 기원인 의회주의 그리고 노선차이 등을 알았으니 이제 다시 그것을 뛰어 넘는 새로운 ‘진보연합정당’ 창당은 가능할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단순히 ‘인식’ 상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형성’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제 계급계층과 정파 간 연합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은 일단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이 같은 진보연합당 건설로 표현되는 ‘연합전술’ 또한 일차적으로 자기 사명을 완수했다고 보여 진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특수한 시대적 조건의 산물이며, 그 같은 조건 속에서만 가능하였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한편으론 87년 민주화와 대중적 노동운동의 초창기에, 그리고 다른 한편 소련과 동구권 해체로 인한 이념적 혼란기와 그에 따른 변혁운동의 전반적 퇴조기 속에서, 잠시 상호 간 기존 노선상의 차이와 정체성 문제를 부차화하고, 그 대신 함께 단결하여 열려진 제도권 공간을 활용할 필요성에 입각하여 성립할 수 있었던 한시적 전술이었다. 
이제 그 같은 조건은 사라졌다. 민주노동당으로 결집되었던 각 정파들은 좀 더 분명한 자기 색깔과 정체성을 갖게 되었으며, 그에 입각한 일정한 대중적 영향력도 획득하였다. 보다 분명한 정치세력으로서 각자 성장•분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먼저 사민주의 계열을 대표하는 ‘정의당’ 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처음 민주노동당의 창당 초기에 주류적 위치를 점하였지만, 이후 자주계열의 정식 합류 후 그들에 밀려 비주류로 밀려났다. 그러나 분당 이후 진보신당, 통진당을 거쳐 다시 ‘정의당’으로 결집되는 과정에서, 이제는 명색이 다원화한 진보정당 중 최대 정당이 되었다. 이들은 심상정, 노회찬, 이정미 등 대중적 정치지도자를 배출했으며, 5~6명의 국회의원과 다수의 지방자치의원, 단체장, 그리고 7만여 명의 당원, 여론지지율 5~10%대의 제3위 정당으로서 비교적 안정세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그들은 확고하게 한국적 사민주의 세력으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그에 기반 한 지지층 및 대중적 지지도를 일정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처럼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한 정치세력이 다시 그것을 수정하고, ‘변혁적 원칙’에 동의하면서 새로운 연합정당에 참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자주계열 역시도 기존에 가졌던 자신들의 정체성이 전혀 바뀌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다. 민주노동당 내 중요한 대결에서 매번 나타났던 NL:PD 간의 집단적 대결구도,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의 우선순위나 배치에 있어, 그리고 한국에 건설되어야 할 당이 전략당인지 전술당인지 등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다. 그 때문에 향후 정치공간에서 자유주의세력과의 연합전술 등이 문제가 될 경우 과거의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자주파는 비록 제도정치권에서는 정의당에 밀려 분당이후 그 영향력이 일정 축소되긴 하였지만, 그 대신 민주노총 및 그 산하의 지역•산별업종 조직, 전교조 등 대중조직에 대한 조직적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여전히 변혁진영 전체에 있어 ‘최대정파’ 혹은 ‘다수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주파 역시도 자신들의 기존 노선을 스스로 수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현재 우세를 점하고 있는 조직적 영향력에 더해 ‘정치적’ 영향력을 보충하고자 하는 전술적 의미로서만 ‘진보연합정당’ 건설이 의미를 가질 뿐이다. 작년 4.15 총선 패배 후 민중당의 진보당으로의 재창당 행보는 이 같은 판단에 대한 근거를 제공한다.
나름대로 변혁적 원칙을 지향하는 좌파(변혁당, 노동당, 노동전선 등)는 의회주의에 반대하고, 노동자계급의 주도성과 현장 중심주의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앞서 두 정파와 차별성을 긋고자 한다. 하지만 ‘국제주의자’(노동자연대, 노동해방투쟁연대 등 트로츠키주의계열)의 사상적 영향을 받아 제반의 이론과 노선이 혼란스럽고 불명확한 점이 많다. 더구나 그들 중 일부는 최근 ‘서구좌파운동’을 학습하려는 새로운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1장 참조).
이들 사이에는 근본문제인 과거 소련식 계획사회주의 한계를 극복한 ‘새로운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이 아직 합의되지 못한 상태이다. ‘자유인의 연합체’니 ‘자치 민주주의’니 ‘민주적 계획경제’니 하는 여러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현 단계 인류의 생산력 발전 수준을 뛰어넘는 ‘공산주의적 요구’의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이들은 여전히 ‘공상적’ 요소가 강하며, 추상적인 강령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최근 국제정세를 변화시키는 관건적 요소인 ‘중국’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갖고 있지 못한 점이 치명적 결점이다.1)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그 특수성인 ‘신식민지성(종속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단지 추상적으로 ‘노동과 자본’의 이분법적인 대립 시각에만 머물러있다. 이 때문에 국내외 정세의 역동성과 세력관계의 복잡성을 제대로 파악 하지 못하며, 단조로운 ‘현장주의’와 ‘반신자유주의’ 만을 되풀이해서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종합적으로, 이들 변혁좌파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정당 건설이나 사회주의 대중화 등의 일면 긍정적인 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의 내용이 빈약하고 추상적 구호 이상의 효과를 낳지 못한 채 실제 현실 실천력은 매우 미약한 형편이다. 하지만 이들도 그간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틀 속에서 나름대로 자기 발전을 이루어 내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노동당과 변혁당의 경우, 나름 수천 명의 조직적 대오와 정당조직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공공운수노조와 같은 대중조직을 통해 일정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상의 각 정파의 자기정립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다시 과거 민주노동당과 같은 계급연합정당으로 결집하자고 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현실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설령 대선 등 일시적 정세적 요구에 의해 결집한다고 한들 과거 민주노동당 내에서 발생했던 파벌 대립을 재현하기 쉬우며, 전반적인 대중적 영향력도 그 수준 이상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사실 ‘연합전술’(그것이 합법정당 형식이든 아니든 간에)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특히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인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 그 운동 성장을 위한 하나의 전술에 불과하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그를 위한 필요성과 조건이 갖추어 진다면 추진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엔 스스로 발전해 가면 된다.
지금 시기 노동자계급에게 있어서 더욱 중요한 과제는 ‘계급연합’보다도 ‘독자적 자기정립’ 이라 할 수 있다. 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계급연합’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방해가 되고 심지어는 해롭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자기 정립을 지연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계급연합전술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노동자계급 주도성)가 관철되는 조건에서만 운동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노동자계급은 아직 자기정립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럴 경우 무엇이 급선무인지는 자명해진다. 지금 세(역량)가 미약하다고 해서 계속해서 ‘연합전술’에 의존하고 진보연합당 건설에 매진한다고 해서, 저절로 노선•실천•조직적 과제가 해결되고 노동자계급 주도성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지금은 노동자계급 주도성을 관철할 수 있는 주체의 형성, 즉 연합전술이나 연합정당 전술을 책임질 수 있는 진정한 주체의 형성이 더 시급한 시기이다. 그것 없이는 설령 형식적으로 연합전술이나 연합정당이 성립한 들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자기정립’이야말로 지금 시기에 있어 우선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본문 주석

1) 그 대표적 사례로 코로나사태 하의 국제정세에 대한 좌파들의 인식 상 모순을 들 수 있다. 이들 좌파는 한편으론 현재 자본주의는 붕괴가 임박할 만큼 커다란 위기에 부딪쳤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 중국을 사회주의가 아닌 자본주의 국가로 분류한다. 만약 그럴 경우, 지난 해 코로나사태 하에서도 2.3% 플러스 성장을 달성하고, 금년에는 8% 이상 성장이 예상되는 중국경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덧붙이자면, 중국은 지난 1978년 개혁개방 이후 40여 년 간 한 번도 ‘경제공황’이 발생한 적이 없다.) 만약 한국 좌파들이 자신들의 ‘국가자본주의론’에 입각하여 중국을 자본주의국가로 분류할 경우, 자본주의는 전세계적으로 볼 때 전혀 위기적 상황이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 언론에는 별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은 최근 몇 년간 反빈곤 투쟁을 열심히 벌여왔는데, 그 결과 마침내 지난해 말 ‘빈곤인구 0%’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리고 2021년 말까지는 ‘전면적 소강사회(小康社會)’를 실현함으로써 본격적인 중산층 사회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또한 신중국 성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는 ‘사회주의 강국’을 실현한다는 목표를 수립하였으며, 이를 위해 과학기술, 사회보장제도, 문화예술, ‘일대일로’ 등 제 방면에서 실로 눈부신 성과와 매우 왕성한 의욕으로 계속해서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인구의 20%나 되는 14억 인구를 보유하고, 또 세계 각국에게 끊임없이 확장된 시장을 제공하고 있는 중국이 만약 자본주의국가라고 한다면, 자본주의는 아직도 상당 기간(수십년, 혹은 수백년?) 왕성한 생명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이들 좌파들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붕괴위기’와는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이 된다. 이러한 논리적 모순은 좌파들이 중국을 사회주의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현재 한국 좌파들에 있어 국제정세 인식 상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현실과 관념상의 이 같은 모순을 해소하는 길은 생각보다는 간단하다. 중국이 사회주의국가임을 인정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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