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평가와 한국의 당 건설(2)

김정호 박사의

"민주노동당 평가와 한국의 당 건설"을 새로 연재합니다.

이 문제처럼 견해차이가 뚜렷한 진보적 의제도 없을 것입니다. 본 연재는 본지입장이나 정리된 의견이 아니나 쟁점에 대해 공론의 장을 연다는 취지입니다.

필자가 진보진영에 던지는 문제제기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목차   
1. 지금 왜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가 시급한가?
2. 민주노동당 성립의 시대적 요인 (1)―정파적 측면
3. 민주노동당 성립의 시대적 요인 (2)―대중운동적 측면
4. 패권주의의 기원과 ‘의회주의’
5. ‘진보연합정당’의 부활은 가능한가?
6.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계급연합 전술의 성공조건
7. 당 건설은 어떤 과정인가?
8. 노동자 독자언론 건설에 대해

본문요지

현재 논의 중인 당 건설 방식은 자칫 과거 민주노동당의 전철을 밟기 쉽다. 과거의 경험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 채 조직결성에만 급급하다보면 동일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당에 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면 먼저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부터 정확히 하는 것이 순서이다. 현존하는 진보정당들은 대부분 좋든 싫든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으며, 인적구성, 활동경험, 사업작풍 등을 포함하여 과거 민주노동당과는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1. 지금 왜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가 시급한가?

1) ‘변혁의 시대’에 진입한 객관 정세와 미흡한 주체역량 (지난 호)
2) 당 건설 관련 3가지 방안 

그렇다면 요즘 논의되고 있는 주요한 쟁점은 무엇인가? 앞서 몇 차례 토론회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은 직접적으로 정세 개입력을 높여줄 수 있는 주체의 형성이 문제이며, 이를 위해 어떠한 당을 만들 것인지가 논의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3가지 방안이 제출되고 있는데, 진보대통합당론, 사회주의 대중정당론, 좌파연합당론이 그것이다.

먼저, ‘진보대통합당’론에 대해 살펴보자. 이 입장의 대표적인 주창자는 프닉스 소장이자 민주노총 정치국장인 김장민씨로, 그는 최근 각종 토론회의 발제자나 토론자로 참가하면서 당 건설논의에 있어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앞서 5월 7일 총선평가 잡담회에서도 소개된 바 있듯이, 한국사회의 양당체제를 깨트리고 현 ‘2강 체제’를 ‘2강 1중 체제’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범진보진영이 세력연합적인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자주파계열인 기존 민중당의 석영철씨 주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 좌파 특히 사회주의자가 먼저 연합하여 진보대통합당을 주도해야 한다고 하는 점에서 양자는 차이가 난다. 즉, “다양한 공산주의, 사회주의 세력은 이 범진보진영의 지도중심이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 “그 첫걸음은 범사회주의세력이 공통의 과제를 내걸고 하나의 세력이 되어야 한다. 일단은 주체의 사회주의자들과 국제사회주의자를 제외한 범사회주의세력이 뭉쳐야 하고, 그 이후 국제사회주의자들, 주체의 사회주의자들과 순차적으로 하나의 세력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1) 

여기서 그가 말하는 ‘주체의 사회주의자’는 민중당(현 진보당)계열이며, ‘국제사회주의자’는 구체적으로 ‘노동자연대’ 그룹을 지칭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자면 사회주의 정치조직은 노동자동맹→노동자당→사회주의연합정당→사회주의단일정당 순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현 수준에서 볼 때 현장조직을 기계적으로 결합한 노동자동맹은 너무 낮은 목표이고, 사회주의단일정당은 너무 높은 목표이기 때문에 지금은 ‘사회주의연합정당’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연합정당은 “강령적 조직적 통일성이 낮은 다양한 사회주의 정파들의 연합”이기에 “추상적 수준의 강령과 주요 정책인 이행기 정책에 합의한 정도”면 된다고 본다.2)

이러한 사회주의연합정당은 기층 현장조직의 상층부, 노동자당의 성격을 갖고 있는 현 사회변혁노동자당(약칭 ‘변혁당’), 변혁당 보다는 좀 더 폭넓은 당원 대중을 가진 합법정당인 현 노동당, 그리고 사회주의지식인 네트워크 등의 결합체라고 본다. 이들 집단들이 이후 공동실천을 통해, 그리고 진보대통합당을 통한 자유주의자들을 견인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연합정당은 점차 내부 동질성을 높여서 사회주의단일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장차 2022년도 3월 대선이 사회주의연합정당을 만드는데 있어서나 진보대통합당을 결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본다. 좌파진영은 이를 위해 먼저 ‘사회주의정당 추진위원회’를 결성한 후, ‘대선 노동자 공동투쟁본부 및 공동선거본부’를 진보진영에 제안함으로써 정세 개입력을 높여가도록 해야 한다. 100만 조합원을 가진 민주노총은 여기서 진보진영 대선단일후보의 성사를 위한 ‘압력단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사민주의 후보와 사회주의 후보가 자신의 비전을 경쟁하고 민주노총 100만 조합원의 총투표로 대선후보를 단일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여세를 몰아 이어지는 6월 지방선거에서 실제 거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예컨대, “2022년 3월 9일 대선 직후 6월 1일 지방선거에 대규모 사회주의 후보 이를테면 200명의 코뮌정치인을 출마시킬 필요가 있다. 이러한 후보 발굴 과정과 선거운동 이후 출마자를 중심으로 하는 코뮌정치 운동은 사회주의 지역거점을 만드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총체적 구상이다.

이처럼 김장민씨의 주장에는 진보대통합당론과 사회주의연합정당론의 요소가 섞여 있다. 하지만 원래 그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이 ‘2강 1중’ 구도를 실현키 위한 진보대통합이고, 사회주의단체들이 연합정당을 결성한 후에 결국 ‘좌‧우파 사민주의’ (이는 김장민씨의 표현으로 각각 정의당과 민중당 후신인 현 진보당을 지칭한다) 세력까지를 포함하는 ‘진보대통합당’을 만들어 그것을 주도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편의상 진보대통합당론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좌파 정치세력들 간의 우선적 통합보다는 진보대통합을 실현하는데 좀 더 무게 중심이 두어지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이와 비교할 때, 다음에 소개하는 ‘사회주의 대중정당론’은 소위 ‘좌우파 사민주의자’들과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분명하다. 이 입장은 최근에 ‘변혁당’의 공식 노선이자 정치방침으로 채택된 것인데3), 그들의 정세관과 조직 방침은 아래 인용문에서 잘 나타나 있다. 

“현 세계정세는 1920년대 이후의 경제-정치상황과 유사하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대중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자본주의경제 위기, 주류 정치의 위기, 군사적 긴장 고조와 전쟁위기 등이 결합된 총체적 위기 상황이다. 여기에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위기가 결합됐다. 정세는 사회주의(체제 전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이끌 사회주의의 정치역량은 취약하다는 것이 현 정세의 핵심 딜레마다.… (중략)…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진영이 모여 제3지대에 정치적 대오를 형성하고, ‘운동사회 내의 정파’를 넘어 대중에게 매우 현실적인 정치적-체제적 대안세력으로 자리 잡도록 하자는 것이다.”4)

이 같은 정세관에 입각하여 변혁당은 2022년까지 “체제 대안으로서의 한국사회 구조변혁안, 현실정치 대안으로서의 사회주의 대중정당 건설” 등의 내용을 담은 ‘사회주의 대중화 사업’을 추진키로 결의한 바 있다. 
이들도 다가오는 2022년 대선을 이러한 사회주의대중정당 건설을 위한 중요한 계기로 설정한다. 그를 위한 준비로 ‘총체적 사회주의 대안’을 정립하고,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사회주의 대안 정책 마련 △사회주의 의제별 운동의 확산 △사회주의 세력의 결집을 필수과제로 제기하며, 대중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 삶을 바꾸는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세운다.

구체적인 정치일정으로는 “2020. 사회주의 대중정당 추진위원회 구성→ 2021.5 창당준비위 발기인대회→2021.8 중앙당 창준위 건설 및 대선 예비후보 등록→ 2022.2 사회주의 대중정당 창당 및 등록”을 제시하고 있다.5)

마지막으로 ‘좌파연합당론’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주장은 지난해 9월 26일 프닉스 주최 토론회인 “유럽급진좌파운동과 한국의 사회주의정당”에서 발제자로 나선 박석삼(국제포럼 대표)씨에 의해 그 내용이 소개되었다. ‘공공운수현장활동가모임’(약칭 ‘공활모’) 내에서 다수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직 확실하게 공활모의 공식적 입장으로 채택된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고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 진다.

이 발제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6) 1990년대 이전의 유럽 좌파는 스탈린주의당, 트로츠키주의당, 유로코뮤니스트 등과 같이 모두 단일한 이념이나 정체성을 중심으로 모였다. 1990년대 이후 출현하기 시작한 ‘급진좌파당’은 현 시기 유럽 좌파당 운동의 가장 큰 특징을 보여주며, 사민주의 왼편에 위치하는 좌파 세력의 일부로 분류될 수 있다. 그들은 단일한 이념이나 정체성을 기준으로 모인 구 좌파당 운동과는 달리, 다양한 좌파가 하나의 당으로 결집한 새로운 유형의 당 운동이며, “본질상 지구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좌파통합당 운동”이다.

여기서 급진적 좌파는 ‘실천’이 아니라 ‘주장’을 기준으로 분류한 개념이며, “반자본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경로와 수단을 밝히지 않는 세력”을 통칭한다. 이러한 다양한 좌파가 하나의 당으로 결집하는 ‘새로운 유형의 당 운동론’이 출현한 데에는 다음 3가지 특별한 배경이 있다. (1) 1989-1991년 소비에트 블록의 붕괴로 절정에 달한 ‘사회주의 위신의 추락’ (2) 1968혁명과, “레닌주의 혁명모델의 난처함”으로 이어지는 포스트 포드주의사회와 복지국가의 성립으로 인한 ‘노동계급의 구성과 위상의 변화’(블루칼라의 축소와 신중간계급의 성장) (3) ‘신자유주의 지구화와 유럽통합’이 그것이다.

이처럼 유럽에서 비제도권 좌파가 수차례 변신을 거듭한 것은 “그들의 전투성이나 헌신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활동가 당을 벗어날 수 없었던 사정”에 기인한다. 이리하여 유연한 좌파강령으로 Syriza(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에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좌파는 대중정치에 개입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이런 점에서 좌파강령이 실패로 끝났을지라도 넓은 좌파당의 유용성은 부정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들의 이 같은 ‘대중성’에 대한 고민은 현 시기 한국 좌파들의 고민과 확실히 맞닿는 지점이 있어 보인다.

급진좌파정당은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환경•여성 등 다양한 좌파세력을 포괄하는 만큼, ‘반자본 사회주의’라는 지향성만을 밝힐 뿐 혁명의 구체적인 전략이나 수단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조직구성과 운영에 있어서도 그동안 정통 좌파정당이 원칙이라고 생각한 민주집중제를 채택하지 않고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고자 한다. 예컨대 덴마크의 적녹동맹(RGA)의 경우, 당의장이 없으며 집단지도체제이고, 전국집행위원, 국회의원, 시장, 당비서, 당사무직 등은 돌아가면서 맡는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선출직들은 최대임기를 7년으로 제한하며, 코펜하겐의 숙련노동자와 동일한 임금을 받고, 당원은 분파를 만들 권리를 갖는다.

공활모 소속 활동가들 상당수는 이러한 유럽 급진좌파운동의 원리를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보는 것 같다. 예컨대 공활모 대표인 김동성씨는, 현 시기 지구화된 신자유주의 시대에 있어 좌파가 선택 가능한 전략모델로는 (1) 혁명당-통일전선, (2) 반자본 통합당-반신자유주의 통일전선, (3) 반신자유주의 통합당, (4) 반긴축 범좌파당 이상 4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2) 반자본통합당-반신자유주의 통일전선 모델을 현 시기 한국사회에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또 “노동계급 중심주의 혹은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와 여성, 생태 등 신좌파 의제 등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불합리에 주목하는 자본주의와 인간 혹은 자본주의와 인민의 관계를 중심”에 놓는다는 발제문 내용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점이 그러하다.7) (계속)

         
[본문 주석]

1) 김장민, 2020년5월8일, “토론문”, [“문재인 정권 이후의 대안을 모색하자!” 토론회] 자료집. 

2) 김장민, 2020년6월21일, “사회주의 연합정당 건설의 경로”, [“사회주의 연합정당 건설의 경로” 토론회] 자료집. 이하 ‘사회주의 연합정당’ 관련한 내용은 모두 이 글에서 인용함.

3) 변혁당은 4.15 총선 직후인 2020년 4월 26일 전국위원회에서 11월에 사회주의 대중정당 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4) 이승철, 2020년2월23일, “한국사회 구조변혁을 위한 사회주의 대중화”, [“한국사회 전망과 노동운동의 과제”―현실사회주의 비교와 한국사회 미래 전망 시리즈3] 토론회 자료집, 

5) 상기 자료.

6) 이하, 박석삼, 2020년9월26일, “현 시기 좌파통합당 운동의 특수성”, [“유럽급진좌파운동과 한국의 사회주의정당” 토론회] 자료집에서 내용 발췌 및 인용.

7) 김동성, 2020년9월26일, “토론문”, [“유럽급진좌파운동과 한국의 사회주의정당” 토론회] 자료집.

김정호 약력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박사 학위 취득,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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