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2)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외환보유액

2021년 9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640억 달러였다. 지난해 말에는 외환보유액이 4,431억 달러였는데, 9개월 사이에 210억 달러가량 증가한 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은 1조 6,308억 달러(약 1,900조 원)였다. 외환보유액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7%에 이른다. 세계 수준에서도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큰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올해 8월 말의 절대액을 기준으로 세계 8위이다[표 1].

사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그림 1]. 외환위기를 겪은 직후인 2000년에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이 1,000억 달러가량이었다. 그 이후에 2004년에는 2,000억 달러, 2010년에는 3,000억 달러, 그리고 2018년에는 4,000억 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보수주의 경제학자인 프리드먼(Friedman M.)은 일찍이 변동환율제를 옹호하면서, 어떤 나라가 변동환율제를 도입하면 외환보유액의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환율의 흐름을 시장에 맡기면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금융당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므로 따로 준비금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논리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였다.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외환보유액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났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우리나라에서도 외환보유액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이었다.

외환보유액이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외환보유액의 증가는 바람직한 현상인가? 외환보유액은 상품거래와 자본거래의 준비금 역할을 하고 국제수지 변동에 따른 신축적인 대응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특히 외환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외환보유액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좋은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따라서 적정한 수준의 외환을 보유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부들은 외환보유액의 증가를 마치 자기들의 치적인 것처럼 홍보하기도 한다.

문제는 외환보유액이 큰 비용을 발생시켜 국민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외환보유액 때문에 발생하는 직접적인 비용으로는 첫째, 외국 화폐(또는 외국 화폐로 표시된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면 외환 준비금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의 3분의 2가량은 달러 표시 자산), 둘째, 외화표시 증권의 금리가 국내에서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의 금리보다 낮은 경우 이차(이자율 차이)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외환보유액을 유지하기 위한 간접적인 비용으로는 환율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는 데 따른 분배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점, 외환보유액의 증가가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외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점, 국내 화폐량 증가와 관련된 통화가치 안정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상승에 따라 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 밖에도 환율 안정을 위한 채권 발행 증가로 국가부채 비율이 증가함으로써 정부가 재정 운용에서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간접적인 비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우리나라의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규모는 2020년 기준 239조 원이다. 그리고 2020년의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1,900조 원이다. 그러므로 외국환평형기금의 규모는 GDP의 12%를 넘는다. 외평기금은 국고채를 발행하여 마련하기 때문에 그만큼 장부상의 국가부채를 늘린다. 그러나 외평기금은 외화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외화자산을 처분하여 국가부채를 상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국가부채는 아니다. 이렇게 대응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부채를 금융성 국가부채(대응 자산이 없는 적자성 국가부채의 반대 개념)라 한다. 외평기금은 실질적인 국가부채는 아니지만 공식 국가부채 통계에 잡혀서 마치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비율이 높은 것처럼 인식되게 한다. 그리하여 재정 보수주의자들은 통계상으로 나타나는 높은 국가부채 비율을 근거로 재정 확대를 반대한다.

외국환평형채권
외국환평형채권

외환보유액의 문제점을 또렷이 보여주는 외평기금 손실

이제 외환보유액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비용은 외국 화폐(주로 달러)로 표시된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데 따른 평가손실일 텐데, 이를 정확히 측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달러의 가치를 상대적으로는 측정할 수는 있지만, 예컨대 유로나 원의 가치에 대비한 달러 가치를 측정할 수 있지만, 달러의 절대적인 가치를 측정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달러의 절대적인 가치는 국제 금 가격을 통해 얼추 나타낼 수 있는데, 이의 추이를 보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인다. 다시 말해서 금 가격에 비해 달러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국제 금 가격에 대한 추이를 보여주는 한 자료(London Fix Historical Gold; London PM Fix, kitco.com.)에 따르면 2000년 무렵의 금 1온스 가격은 300달러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금 1온스 가격이 2,000달러 수준까지 올랐다. 20년 사이에 금에 대비한 달러의 가치가 7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달러 가치가 절대적으로 떨어진 셈이다. 그럼에도 달러 이외의 통화가치가 함께 하락하면 이들 화폐로 나타낸 달러의 상대적 가치는 떨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상승할 수도 있다. 곧, 환율 통계를 통해서는 잡히지 않는 외환보유액 손실이 대규모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 가운데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외평기금이다. 외환보유액은 크게 대외 상품거래를 위한 준비금과 대외 자본거래를 위한 준비금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외평기금은 후자의 성격이 강하다. 외평기금은 외국환거래법 제13조에 따라 외환시장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기금의 운영은, 기금을 통해 환율이 급하게 떨어질 때는 외환을 사들이고 거꾸로 급하게 오를 때는 외환을 팔았다가 환율이 제자리를 잡으면 반대매매를 한다는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금을 통해 외환을 사고 팔아 환율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이른바 “스무딩 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을 한다는 것인데, 정말로 외평기금의 기능이 거기에만 머무른다면 기금이 클 필요가 별로 없을 것이다. 환율의 오르내림이 번갈아 생기면 외환준비금도 그를 반영하여 늘어나거나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사고파는 상쇄작용에 의해 기금이 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외평기금의 규모는 끊임없이 증대해 왔다. 외평기금의 규모가 1998년에는 10.7조 원 규모에서 2020년에는 239.1조 원으로 커졌다[뒤의 표 3]. 이는 외평기금이 환율의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기능을 넘어 환율의 수준을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이끌고 있음을 의미한다.

외평기금에서는 대규모 평가 손익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의 통화별 구성을 보면 달러 자산이 전체의 3분의 2가량을 차지한다[표 2]. 외평기금도 전체 외환보유액과 비슷한 통화별 구성을 보인다고 한다면, 달러의 가치 변화는 기금에 평가 손익을 발생시킨다. 외평기금에서 사들인 외화(주로 달러)자산의 가치가 올라가면 평가이익이 발생하고 가치가 떨어지면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것은 앞서 본 바와 같이 달러의 상대적인 가치 하락만을 반영할 뿐 절대적인 가치 하락을 반영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달러와 원화의 가치가 같은 비율로 모두 하락하는 때에는 두 통화의 상대적인 가치의 변화가 없지만, 달러의 절대적 가치는 하락한다. 이 경우에는 외환보유액에서 실질적으로 손실이 발생하고 있지만 회계상에는 그 손실이 나타나지 않는다. 곧, 외화자산 평가손익은 원화에 대비한 달러의 상대적인(절대적이 아니라) 가치 하락만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 달러의 상대적인 가치 변화에 따른 기금의 손익은 [표 3]의 외환 평가손익 항목에 나타난다. 외환 평가손익은 환율이 올라갈 때는, 곧 달러 가치가 상대적으로 올라갈 때는 이익으로 나타나고 환율이 떨어질 때는 반대로 나타난다.

한편 외국환평형기금은 국고채를 발행하여 마련하는데, 국고채에 대해 국내에서 지급하는 이자가 외국환평형기금을 외화자산에 운용하여 얻는 수익보다 많다면 이차손실(국내와 외국의 이자율 차이에 따른 손실)이 발생한다. 거꾸로 국고채 이자 비용이 외평기금 운용 수익보다 적다면 이차이익이 발생한다. 외환평가 손익과 이차 손익을 합하면 외국환평형기금 전체의 손익을 나타낼 수 있다. 1998년 이후 외평기금에서 발생한 누적 손실은 41.1조 원에 이른다[표 3]. 이는 전체 외평기금 규모 239조 원의 17.2%에 해당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수치에는 달러의 절대적인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 규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외평기금의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기금으로 외화 자산(특히 달러)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외평기금이 달러를 계속 사들이는 이유는 시장에서 형성되는 환율이 계속 하락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기업이 벌어온 달러가 국내에서 낮게 평가된다. 1달러를 벌어온 수출기업이 국내에서 환전을 할 때, 환율이 1,200원일 때에 비해 1,100원일 때는 100원만큼 덜 받는다. 따라서 정부는 수출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환율이 하락할 때 그것을 막기 위해 달러를 시장 가격보다 좀 더 높은 가격에 사줌으로써 그에 대응하려 한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있을 때 이를 좀 더 비싼 가격에 사주기 때문에 외평기금에는 구조적으로 평가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환율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외평기금을 통해 원화로 달러를 시장에서 사들이면 시중에는 화폐 유통량이 증가한다. 화폐 유통량의 증가가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한국은행은 통화안정채권을 발행하여 시장에 매각함으로써 시중의 화폐를 일부 회수한다(이를 불태화정책이라 한다).

통화안정증권
통화안정증권

통화안정채권의 발행량이 2020년 기준으로 150조 원에 이른다. 여기에 지급되는 이자가 많을 때는 1년에 7조 원이 넘었고 금리가 떨어진 현재에도 2~3조 원 수준을 유지한다[표 3]. 외평기금과 연관되어 있는 통안채의 규모와 그에 대한 이자 지급도 만만치 않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원문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lec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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