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5)

달러 자금 유통의 논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995년에 펴낸 한 보고서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20여년 동안 OECD 회원국가들 안에서 이뤄진 금융구조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여 정리한다. 곧, 규제(이자율 규제, 증권시장 규제, 금융기관들의 자금량 배분 규제, 금융기관들의 사업 부문과 소유 규제, 외국 금융기관의 진입 제한 규제)의 완화, 국제자본 흐름과 외환 거래에 대한 통제의 완화가 그것이다(Malcolm Edey and Ketil Hviding 1995). 이러한 금융구조의 변화는 미국과 영국에서 먼저 일어났고 차츰 주변국으로 확산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은 1971년에 외국 중앙은행들에 대해 달러를 더 이상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1) 이는 대외 상품수지 적자를 달러 발행을 늘려서 메우는 쪽으로 더 확실하게 가닥을 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실제로 미국의 상품수지는 금-달러 교환 정지 선언 이후 미국에 불리하게 나타나는 추세가 더 가팔라졌다.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 증가는 세계시장에서 유통하는 달러의 양이 증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으로서는 이 달러가 순조롭게, 그것도 확대된 규모로 유통을 해야 추가적인 달러 발행을 통해 상품수지 적자를 메울 수 있게 된다.

달러가 확대된 규모로 유통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달러 표시 자본이 나라들 사이의 경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달러 표시 자본을 받아들인 나라들에서는 달러와 그 나라 화폐가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투자 대상이나 투자 수익의 본국 송금에도 제한이 없어야 한다. 물론 이자율이나 환율이 자유롭게 변동하는 것도 달러 표시 자본의 유통을 더 확대시키기 위한 중요한 조건에 속한다.

미국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달러의 발행과 유통을 확대하는 전략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했는데, 위의 OECD 보고서는 그러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상품/서비스 수지 적자 증가에 따라 세계시장에서 유통하는 달러량이 늘어나고, 여기에 1980년대부터 실물 부문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사정을 반영하여 실물 투자보다 금융 투자가 증가하면서, 세계적으로 금융자산의 규모가 성장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실물 생산의 규모보다 금융자산의 규모가 훨씬 빨리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1980년에는 세계 총생산의 규모와 세계 총금융자산의 규모가 엇비슷했지만 이후 격차가 벌어져 2000년 무렵에는 금융자산 규모가 총생산의 거의 네 배에 이르렀다.

이러한 금융자산의 성장은 미국과 주변국 사이의 관계에서는 미국의 이익을, 그리고 국내 계급들 사이 관계에서는 금융계급의 이해를 보장하는 데에 유리하게 기능한다. 금융자산 성장의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금융세력의 목소리가 커진다는 것, 그리하여 소득과 부가 금융자본3)에게 유리하게 재분배된다는 것을 뜻한다. 금융자산의 성장과 함께 사회가 생산한 부가가치의 더 많은 부분이 이자, 배당, 자본이득과 같은 금융수익의 형태로 금융부문으로 옮겨간다. 노동자의 생활 조건과 관련된 돈, 예를 들어 주택 구입비나 생활비 가운데 많은 부분을 부채에 의존함에 따라 노동자들은 임금소득 가운데 일정 부분을 이자의 형태로 금융부문에 넘겨줄 수밖에 없게 된다.3)

금융자산의 성장은 금융투자를 매개로 주변부에서 중심부(미국)로 가치가 이전하는 메카니즘으로도 작용한다. 중심부(미국)의 이해에 이끌려 주변부 국가들에서도 금융이 성장하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뒤따른다. 먼저, 미국이 달러 발행을 늘려서 주변국의 자산(주식, 채권 등) 소유권을 확보해 나가면 그에 따라 이자, 배당금, 시세 차익 등 금융 채널을 통해 중심부로 이전하는 가치의 양도 그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둘째, 자본이동 자유화에 따라 자본 유출입이 증가하면 그에 대응하기 위한 외환 준비금도 증가하는데, 거기에는 비용이 뒤따른다.4) 셋째, 대외 투자나 외국인 투자가 과도하게 증가하면, 주변국의 금융시장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흐름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사실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가 외국인 투자가들에게는 초과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넷째,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 영향이 주변국에 미칠 수 있다. 그 영향의 크기는 대체로 대외 투자나 외국인 투자의 규모에 비례한다. 그런데 이 인플레이션은 달러 보유자의 가치 손실이 달러 발행자로 넘겨지는 메커니즘이다.

이처럼 달러의 발행과 유통의 확대가 미국에 기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미국은 그를 위한 메카니즘을 구축하는데 커다란 이해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메카니즘이 순조롭게 작동을 해야 미국은 지속적으로 달러 이득을 챙길 수 있고 경상수지 적자도 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미국은 주변국에 대해 금융·자본시장 개방과 규제 완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에 대해서는 1980년대 초반부터, 그리고 주요 신흥국가들에 대해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요구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물론 금융·자본시장 개방과 규제 완화 요구를 억지로 수용한 주변국들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비용을 치러야 했다.

우리나라 금융·자본시장 개방

<1997년 외환위기 이전>

우리나라의 자본·금융·외환 시장 개방 논의는 1980년대 후반부터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부터 미국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테이블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대해 경제 성장에 걸맞은 금융시장 개방을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처음에는 미국의 개방 압력에 방어하는 모양새를 보였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따라서 미국의 요구를 점진적으로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간다. 우리나라 안에서도 자본·금융·외환 시장의 개방에 따른 이익을 기대하는 세력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재벌들은 시장이 개방되면, 국내에서보다 낮은 금리로 외국에서 자본을 차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들이 내세우는 주요 논리는 미국의 개방 요구를 금융산업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내외 환경 속에서 우리나라는 점진적인 개방이라는 대원칙을 바탕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개방 계획을 발표한다. 먼저 1988년 12월에 “자본시장 국제화의 단계적 확대 추진 계획”을 발표하는데, 그 주요 내용은 외국인의 국내 투자 펀드와 주식의 직접 투자를 제한적,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것과, 외국 증권회사의 국내지점 설치를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1991년에는 주식시장 개방 추진 방안과 4단계 금리 자유화 추진 계획을 발표하기도 한다.

미국은 양자 협상인 “한미 금융정책 회의”를 통해 자본·금융 시장의 개방과 자유화의 확대를 더욱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미국의 요구를 담아 우리나라는 1992년 3월에는 “제1단계 금융자율화 및 개방 계획”을, 1992년 6월에는 “제2단계 금융자율화 및 개방 계획”을, 그리고 1993년에는 “제3단계 금융자율화 및 개방 계획(Blue-print for Financial Liberalization and Market Opening)”을 연이어 발표한다. 1995년 10월에는 외국기업이 국내에서 주식을 발행하고 상장도 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 자유화 방안을 발표한다. 1996년 9월에는 OECD에 가입하면서 주식시장 개방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또 다른 계획을 발표한다. 이러한 발표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외국인 주식 투자 한도는 점차 늘어나다가 외환위기 이후에는 한도 자체가 폐지되어 외국인이라도 국내에서 얼마든지 주식을 살 수 있게 된다.

환율제도와 관련해서 우리나라는 환율이 정부의 관리를 받는 환율제에서 시장에서 자유롭게 결정되는 자유 변동 환율제로 이행해 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1990년 3월, 환율제도를 “복수통화 바스켓 제도”에서 “시장 평균 환율제도”로 전환했다. 이후 환율이 하루에 변동할 수 있는 폭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 환율 변동을 허용하는 폭은 1995년 말까지만 해도 하루 2.25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1997년 12월에 “자유 변동 환율제도”를 채택한다. 외환거래와 관련해서는, 1994년 10월에 외환 제도를 사전 규제 체제에서 사후 관리 체제로 전환하는 외환 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한다. 이후 1997년 말까지 거주자의 국내 외국환 매각·예치 의무를 폐지하고, 실수요 원칙을 완화하는 등 외환거래 자유화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간다.

<외환위기 이후>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그동안 지켜 왔던 점진적 개방이라는 원칙을 버리고 단숨에 자본·금융·외환시장을 전면 개방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미국과 미국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에 구제 자금을 제공하면서 이른바 “자금 공여 조건”을 제시했는데, 그러한 조건들은 우리나라가 IMF 앞으로 작성한 “의향서(Letter of Intent of the government of Korea)(1997.12.3.)”의 부속서류인 “경제 프로그램에 대한 각서(Memorandum on the Economic Program)”에 구체적으로 담긴다. 미국과 IMF가 요구하여 경제 프로그램으로 작성된 사항들은 이후 우리나라 금융 구조의 틀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경제 프로그램에 들어 있는 내용 가운데 우리나라 금융 제도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준 사항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IMF 경제 프로그램들에 담긴 내용들이 미국의 달러 발행과 유통 확대라는 전략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자본계정 자유화에 대해 보면, 이것은 외국자본이 국내의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자산을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외국자본은 외환위기 국면에서 가격이 크게 떨어진 우리나라의 자산을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여서 거대한 시세 차익을 남길 수 있었다. 외국자본은 시세 차익을 재투자하여 지금까지도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 등 국내 경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외국자본은 특히 금융기관들의 지분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는데, 이를 통해 국내 경제 주체들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고, 금융기관들의 영업행태도 수익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급격하게 바꾸어 나갈 수 있었다. 기업들은 외국자본의 영향으로 예전보다 배당 비율을 더 높이고(배당 성향이 증가하고), 계속 기업(Going Concern)이라는 장기 목표보다 단기 목표에 중심을 두는 경영으로 점차 전환해 나갔는데, 이러한 변화는 기업 지분을 인수한 외국자본에게는 언제든 단기 차익을 남기고 떠날 수 있다는 면에서 유리한 방향이었다.

둘째, 한국은행 독립성과 물가안정 목표제에 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IMF의 요구대로 외환위기 직후 한국은행법을 개정하여 물가안정 목표제를 도입했다. 아울러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명칭을 금융통화위원회로 되돌리고,5) 위원들이 상근하도록 하며, 의장직을 재정경제원 장관 대신 한국은행 총재가 맡게 함으로써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했다. 그런데 미국과 IMF가 요구한 중앙은행 독립성 강화와 물가안정 목표제(인플레이션 타겟팅 제도)는 자산 가격을 상승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내 금융 세력의 이해뿐만 아니라 외국자본의 이해에도 유리하게 기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자본이 주로 지분에 투자를 했기 때문에 지분(유가증권) 가격의 상승은 당연히 외국자본의 투자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진다.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제와 독립성 강화가 자산 가격을 상승시키는 메카니즘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물가안정 목표제란 쉽게 얘기하면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이외의 다른 목표에는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의 목표에는 일자리 창출, 경제 발전, 공평한 분배 등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여러 중앙은행들은 정부와 협력하여 그러한 목표를 추구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물가 안정만을 중앙은행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이 제도에 놓여 있는 핵심이다.

물가안정 목표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만약 인플레이션이 낮은 수준으로 안정되어 있다면 중앙은행은 이를 근거로 정책 금리를 낮추고 화폐 공급을 늘릴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늘어난 화폐는 실물자본에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자산시장에서만 머물면서 자산 거래를 중개하는 기능만을 수행할 수 있는데, 그러면 자산 가격이 올라간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부터 선진 여러 나라들에서 실제로 나타난 바 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경험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중국, 인도, 동아시아 국가 등이 세계시장에 새롭게 참가하여 상품 공급을 늘린 데다, 노동조합의 힘은 약해져서 생산성 증가만큼 실질 임금을 인상시키지 못함에 따라 세계시장의 상품 가격 상승 압력이 낮아졌다. 이러한 사실은 19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상품 가격이 안정된 상태에 머무르는 배경이 되었다. 물가안정 목표제도를 채택한 나라들6)은 상품 가격의 안정을 근거로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면서 화폐 공급량을 늘렸는데, 이는 자산 가격 상승을 이끄는 힘으로 작용했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직후 물가안정 목표제와 나란히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제도들을 도입했다. 문제는 이 독립성이 누구에 대한 독립성인가가 하는 것이다. 미국과 IMF가 요구한 한국은행의 독립성이란 명백히 한국은행이 정부와 정치권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주류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것으로, 한국은행이 시장과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은행이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독립하고 시장의 목소리에는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미국과 IMF가 요구하는 한국은행 독립성의 내용이다.

그런데 그 시장이란 외국자본이나 재벌들의 힘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를 갖는다. 결국 미국과 IMF가 요구하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의 핵심은 한국은행이 재벌이나 외국자본에 더 우호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에 놓여 있다. 말할 나위 없이 외국자본이나 재벌은 자산 가격의 상승을 바라며, 실제의 한국은행 정책도 여기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진정한 한국은행 독립성이란 오히려 시장의 힘에서 독립하여 노동자들을 포함한 여러 경제 주체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데서 나온다. 그런데 미국과 IMF가 요구한 한국은행 독립성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셋째, 독립적인 통합 금융감독기구에 대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과 IMF의 요구에 따라 업종별로 나뉘어 있던 여러 금융감독 기구를 통합하여 단일의 금융감독원을 설립했다. 금융감독원은 법률의 통제를 받기는 하지만 엄연한 민간기구이다. 민간기구로서 금융감독원은 민간 금융기관에 ‘감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자리매김이 된다. 다시 말해서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공적 기구로서 성격보다 민간 금융기관의 활동을 지원하는 서비스 기구로서 성격을 갖는 것으로 규정된다.

넷째, BIS 자기자본규제 비율은 금융기관들이 국채 등 안전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도록 하는 유인으로 기능한다. 미국은 주변국의 은행들이 안전 자산을 많이 보유하는 데에서 이익을 얻는다.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 표시 금융자산은 다른 어떤 자산보다 더 안전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주변국이 안전 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면 할수록 거기에 달러 표시 자산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은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달러 표시 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도록 유도하기 위하여 이미 1970년대부터 글로벌 대형 은행들이 안전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도록 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 수단 가운데 하나는 국제결제은행(BIS)이 주도한 은행 자기자본 규제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은행들의 위기 대응 능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대출금액의 일정 비율(8%)을 자기 자본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기준(바젤 기준)으로 정했다. 이 기준은 은행들로 하여금 위험한 기업 대출보다 덜 위험한 국채 구입과 부동산 담보대출을 선호하도록 했고, 글로벌 은행들에 대해서는 국채 가운데서도 더 안전한 미국 국채를 선호하도록 했다. 미국과 IMF는 구제 금융의 조건으로 우리나라 은행들이 바젤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는데, 여기에는 이와 같은 맥락이 작용했다. 이 바젤 기준은 우리나라 은행들로 하여금 기업대출보다 개인에 대한 부동산 담보대출에 주력하도록 하는 하나의 요인이었다. 그리고 이 부동산 담보대출의 증가는 부동산 가격과 부동산 관련 채권의 가격을 높이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다섯째, 노동 유연화에 대한 것이다. 외국자본이 지분증권에 투자한 다음, 단기에 기업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기업 규모의 축소, 특정한 사업 부문의 폐쇄, 나아가 기업 분할이나 통폐합과 같은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생긴다. 노동자들의 쉬운 해고는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기업에게는 전제조건이나 마찬가지이다. 구조조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해고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 미국과 IMF는 구제 금융의 조건으로 노동 유연화를 경제 프로그램에 포함시켰다.

덧붙여서, 미국의 달러 발행과 유통의 확대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외환자유화를 보자. 우리나라는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을 보장하기 위해 외환위기 이후 외환시장 개방을 더욱 재촉했다. 1998년 6월에 ‘제1차 외환자유화 방안’이 발표된다. 이 방안에 따르면 제1단계의 목표는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외 영업 활동 관련 외환 거래를 자유화하는 것과, 규제 이념을 허용 사항 외에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금지 사항 외에는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제2단계의 목표는 개인의 외환 및 자본거래까지 자유화하는 것이었다. 1999년에는 외환관리법을 폐지하고 외국환거래법을 제정한다. 2002년에는 ‘제2차 외환자유화 방안’을 발표하는데, 2002년부터 2011년에 걸쳐 3단계로 나누어 외환자유화를 추가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2006년에는 외환과 자본거래를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는데, 이는 일정보다 더 빨리 전면적인 외환자유화를 사실상 달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우리나라 금융·자본시장 개방과 그 이후의 운영에 달러 유통 논리가 규정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사정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본문 주석]

1) 미국은 1971년 8월에 금-달러 교환 중지를 선언했다. 그 이전에는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요구할 경우 미국은 35달러=1온스 비율로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주고 있었다.

2)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힐퍼딩(Hilfferding R.)은, 은행자본 가운데 현실적으로 산업자본으로 전환해 가는 자본을 금융자본(finance capital)이라고 정의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금융자본(financial capital)은 이와는 다른 개념이다. 오늘날 기업들의 잉여 준비금이나 개인들의 여유 소비기금은 금융 부문에 집적되어 유리한 수익 기회를 찾아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는데, 금융자본(financial capital)이란 이를 의미한다.

3) 전통적으로 금융자본은 산업자본에 자금을 빌려준 다음 이윤의 일부를 이자로 넘겨받았다. 1980년대 이후에는 금융자본이 임금 노동자에게 돈을 빌려준 다음 임금의 일부를 이자로 넘겨받았는데, 그리스 출신의 학자인 라피비차스는 이러한 현상을 신자유주의의 중요한 특징으로 보면서 이를 ‘금융적 수탈’의 한 형태라고 설명한다(Lapavitsas Costa 2013).

4) 로드릭(Rodrik, D.)은 외환 준비금의 사회적 비용이 GDP의 1%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Rodrik, Dani 2006). 이는 그만큼의 가치가 사실상 중심부로 유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큐즈(Akyűz Yilmaz)도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Akyűz Yilmaz 2008).

5) 1962년에 개편된 우리나라 중앙은행 체제의 의결기구는 금융통화운영위원회였는데, 재무부 장관이 의장을 맡고 한국은행 총재가 당연직으로 참여하는 구조였다. 한국은행법을 제정할 당시 의결기구의 명칭은 금융통화위원회였는데, 원래의 명칭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6)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법을 통해, 미국 같은 나라는 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운영의 묘를 살려서 물가안정 목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참고 자료]

한국은행, 『연차보고서』, 각 연도.

- Akyűz Yilmaz(2008), "Managing Financial Instability in Emerging Markets: A Keynesian Perspective", Turkish Economic Association Discussion Paper 4.
- Lapavitsas Costa(2013), Profiting without producing : How can Finance Exploit Us All, Verso.
- Malcolm Edey and Ketil Hviding(1995), "An Assessment if Financial Reform in OECD countries", OECD Economic Department Working Papers, No 154.
- Rodrik, Dani(2006), “Social Cost of Foreign Exchange Reserves”, NBER w/p No 11952.

원문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lec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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