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1)

편집자주

앞으로 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과 관련된 경제전문가 분석글을 연재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은 임수강 블로그에서 필자의 동의를 구해 퍼 온 글이다.

지난달에 새로 바뀐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취임사에서 금융감독원의 역할을 “금융감독 서비스의 제공”으로 규정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감독 기관의 역할은 감독대상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감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금융감독원의 역할이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이를 파악하는 데에는 현재의 금융감독 체제가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금융감독원의 자리매김

우리나라의 금융감독원이 현재의 체제를 갖춘 것은 지난 1997년의 경제위기를 계기로 해서이다. 당시 국제통화기구(IMF)는 우리나라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여러 가지 ‘조건’을 달았는데, 거기에는 금융감독 체제의 개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그리고 당시 재무차관이던 립턴을 우리나라에 파견하여 사실상 협상 지침을 제시한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독립적인 통합 감독기구의 설립을 요구했다. 여기에서 ‘독립적’이라는 것의 숨은 의미가 중요한데, 이는 사실상 금융감독 기구가 정부에서 독립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다시 얘기해서 금융감독 기구가 민간 법인으로 설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IMF의 요구를 반영하여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에 “금융감독 기구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1998년 4월에는 의결기구인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를, 그리고 1999년 1월에는 집행기구인 금융감독원을 설립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정부 조직이고 통합금융감독원은 민간 조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금융감독 체제는 정부·민간 혼합 조직이라는 이중구조를 갖게 되었다. 

강조해야 할 사실은 금융감독원이 IMF가 바라는 대로 민간 조직으로 설립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금융감독원이 공적 성격을 갖는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기구의 성격은 공무원 조직이 아닌 민간 조직이다. 금융감독원의 민간 법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것은 그 운영 예산의 많은 부분을 금융회사들이 내는 감독 분담금으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간 금융기관들이 내는 감독 분담금이 금융감독원의 총수입 가운데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3분의 2를 넘는다. 

사실 조직 운영의 예산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은 조직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예산을 제공하는 곳의 성격이 예산을 받는 기관의 운영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운영 예산을 정부에 의존하는 조직과 민간 금융기관에 의존하는 조직의 성격이 같을 수는 없다. 민간 법인으로 설립되고 그 운영자금도 민간 금융기관에 의존하는 금융감독원이 공적 기구로서 성격보다 민간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기구로서 성격을 더 강하게 띠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민간 기구로서 금융감독원은 민간 금융기관들에게 ‘금융감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서 자리매김이 된다. 민간 금융기관들은 금융감독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금융감독 분담금이라는 이름으로 금융감독원에 낸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금융감독원이 금융기관들을 엄격하게 감독하는 공적 기구의 성격을 점차 잃어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금융감독 기구를 금융감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성격지움에 따라 금융감독상의 많은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의 카드대란,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터진 저축은행 사태, 수없이 많은 제조 기업들을 파산과 영업 위기로 몰아간 키코 사태, 2013년 동양그룹 채권 사기 판매 사태, 그리고 최근의 여러 사모펀드 사태 등은 모두 금융감독 기구이기보다 금융감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구로서 기능하는 금융감독원의 성격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IMF는 왜 금융감독원의 민영화를 요구했나?

그렇다면 IMF는 왜 금융감독 기구를 독립적인 민간조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까? 여기에는 국제 금융자본의 이해가 배어있다. 앞에서 우리는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여러 조건을 달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조건들 가운데는 금융 부문과 관련하여 금융감독 체제 개편 말고도 정책금리 인상과 금융·자본·외환 시장의 개방이 포함되어 있다. 국제 금융자본은 위기 속에서 값이 떨어진 자산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자산 가격을 떨어뜨리는 금리 인상과 우리나라에 외국자본이 더 쉽게 들어오기 위한 시장 개방이 필요했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자본은 좋든 싫든 우리나라의 규제에 따른 감독을 받아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 금융감독원의 성격이 어떠할 때 유리할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그들은 꼬치꼬치 따지고 간섭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금융감독보다 자율적이고 느슨한 금융감독을 원할 것이다. 그들은 공적인 조직보다 민간 조직으로 이뤄진 금융감독 기구가 민간 금융기관들의 영업 활동 자유를 더 많이 보장해줌으로써 그들의 기대를 실현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립적인 통합감독기구의 설립이 꼭 IMF의 요구만을 반영하여 이뤄진 것은 아니다. 외국계 금융기관이든 국내계 금융기관이든 금융감독을 헐하게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국내 금융기관들도 정부의 간섭이 최소한으로 줄어드는 것을 바란다. 따라서 독립적인 통합 감독기구의 설립은 별다른 저항 없이 손쉽게 진행될 수 있었다. 

사실 금융감독 기구의 역할 변화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기에는 여러 나라들에서 공공기관보다 민간 기업의 효율성이 더 높다는 이유로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의 민영화가 급속하게 추진되었다. 금융기관들의 공적 역할이 많이 남아 있던 개발도상국들에서는 금융기관의 민영화도 이 시기에 대대적으로 펼쳐진다. 이와 아울러 금융기관들의 영업 활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규제 완화도 적극적으로 추진된다. 

금융감독 기구의 역할 변화는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 변화 가운데 하나는 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성에 대한 강조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독립성이란 결국 금융감독 기구가 정부와 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성 강화 논리는 필연적으로 금융감독 기구를 민간 조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논의로 이어진다. 실제로 1990년대 들어서면 여러 나라들에서 금융감독 기구의 민영화가 진척된다.

예컨대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이 지역 국가들에서 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성 논의가 활발하게 펼쳐졌다. 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을 주장하는 논자(주로 미국 등 선진국 주류 학자)들은 동아시아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금융감독에 대해 정부가 너무 많이 개입한 데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 과정에 정치가 개입하는 바람에 부실기업을 제때에 정리하지 못한 것이 금융의 취약성을 낳았고 그것이 금융위기로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동아시아 위기 이후 구제금융을 받은 나라들에서 금융감독 기구의 민영화가 이뤄졌다. 

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성이란 통상 목표의 독립성이 아니라 수단의 독립성을 일컫는다. 금융감독 기구의 목표는 입법과정을 통한 법규에 의해서 정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독립성을 논의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성은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의 선택이나 집행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다면 금융감독 기구는 누구한테서 독립적이어야 하는가. 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큰 힘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정부나 정치에서 가해지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금융기관들이나 금융시장 참가자들에서 가해지는 힘이다.

사실 서민 대중의 위치에서 보면 금융감독 기구의 독립성에서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후자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금융감독 기구가 금융기관들에 의해 휘둘릴 때의 위험이 정부나 정치에 종속되었을 때의 위험보다 훨씬 크다. 그럼에도 동아시아 위기 이후에 후자만이 일방적으로 강조되어 금융감독 기구의 민영화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다시 덧붙이지만 이러한 금융감독 기구의 민영화 흐름은 대체로 금융 세력의 이해가 일방적으로 관철된 데서 생긴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방식의 금융 체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감독체제에 대해서도 공적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의 흐름이 엿보인다. 금융감독은 칭찬받기 힘든 업무라는 굿하트(Goodhart C.)의 얘기가 새삼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정은보 원장의 인식은 시대 흐름을 거스르는 측면이 있는 셈이다.

금융감독 서비스의 제공이 아니라 금융감독이 필요하다

금융업은 국가의 면허를 받아서 운영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규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금융업에는 다른 어떤 사업보다 더 많은 규제가 존재한다. 예컨대, 금융업에는 진입과 퇴출, 금융기관 소유 적격자, 금융기관 지배구조, 금융기관 영업행위, 금융기관 자기자본 등에 대한 다양한 규제가 있다.

금융업에 이러한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금융업을 시장 자율에 맡길 경우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융업은 네트워크로 묶여 있기 때문에 한 금융기관의 부실이 금융산업 전체로 퍼져나갈 위험을 안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 금융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이용자들이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금융 거래를 하여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금융 이용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 정부가 특정한 경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규제를 도입할 필요도 있다.

규제는 그 정의상 공적 기구에 의한 강제성을 동반한다. 따라서 금융감독 기구와 감독 대상 사이에 긴장이 흐르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그런데 민간 조직으로 구성된 금융감독 체제에서는 그 긴장 관계가 물러질 가능성이 높다. 그 대신 민간 금융감독 체제에서는 감독기구와 감독대상의 소통이 강조된다. ‘소통’이라는 단어는 보통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것이 감독기구와 감독 대상 사이에서 사용될 때는 본래 뜻 그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다. 소통이라는 것이 긴장 관계의 이완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금융감독 권한을 민간기구에 부여하는 것이 현행법 체계에 반한다는 주장이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헌법 제66조에는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정부조직법 제6조에는 행정기관 사무 가운데 국민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계가 없는 사무에 한하여 민간위탁을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금융감독은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무이기 때문에 이를 민간 기구에 위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반대의 주장도 있다. 

법적인 규정을 떠나 금융감독 기구를 민간 조직으로 운영하는 것은 규제와 감독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감독분담금은 금융기관들에 의해 감독기구가 휘둘릴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차라리 금융감독 기구는 이를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는 것이 낫다. 1년에 2,300억 원가량 걷는 분담금이 적지 않으나, 감독을 잘못하여 들어가는 예산에 비할 바는 못 된다. 예컨대 저축은행에 들어간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을 감독분담금과 비교해볼 수 있다. 

금융감독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 기구의 역할을 바꿔야 한다. 현재와 같이 금융감독 기구의 역할을 금융감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에 둔다면 앞으로도 대형 금융 사고를 막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금융감독 기구를 민간 조직으로 운영하는 현재의 시스템도 재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금융감독 기구를 민간 조직으로 운영하는 것과 그 역할을 금융서비스 제공에 두는 것은 밀접하게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 기구의 역할은 말 그대로 금융감독이어야 한다.

 원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polecono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