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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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해서 이한숙이 사껀과 맹봉사령 고충석동지의 두 의거(義擧)가 한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권력 내부의 자중지란으로 범인 검거 범죄수사에 동력이 떨어지는 현상이었다.
  강욱철이 쪽에서 보면 일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는 느낌이었다.
불안하게만 생각되었던 한숙이는 잘 숨어들어 갔고, 귀신 찜쩌 먹을 고충석의 초현실  천연덕전법은 대성공이었다.
  일본인 폭사자 7명, 중상13명에 경상26명, 관광뻐쓰 3대가 반파되었다.
이런 대사껀의 폭파범이 통도 컸다. 사껀 현장인 선린동 호텔에서 한 불록 건너 불과 50여미터 떨어진 행길가 전봇대 밑에 구두닦이 왕초로 앉아있었다.
구레나룻은 면도로 밀고 머리는 단정하게 깎은 짧은 머리였다.
  원래 윤창현은 넝마주이 왕초였었고 고충석은 구두닦이 왕초였었다.
  강욱철을 비롯한 여러 동지들의 추정과 예상을 달리 고충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락산 암굴을 위시해서 여기저기 갈만한 곳을 찾아 헤맨 여러 동지들은 싱거운 웃음을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고충석의 대담무쌍, 허허실실 천연덕전법에 강욱철로서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중정요원이나 형사나부랑이로 보이는 행인들을 좇아가 구두를 닦으라고 능청을 떨고 성화를 대는 여유를 보였다.
  한숨 돌리는 틈을 타서 감옥에서 풀려난 황웅권동지 이문성 조용근 박홍수 이수용 최영식 정연우동지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들이 풀려난 것은 박정희가 인심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3선개헌문제로 뒤숭숭해진 민심을 무마하고 그들을 투옥한 전 정보부장 김형욱에게 더 나쁜 이미지를 씌우기 위한 심리가 작용한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니었다.
  저들이 권력안보를 위해서 어거지로 묶어 넣었을 뿐이었다. 괜스레 길가는 사람 발길로 걷어차 놓고 빨간약 발라주고 붕대 감아주는 격이었다. 이들이 죄가 있다면 4.19세대이고 4월혁명의 깃발을 끝까지 내리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군사도당의 입장에선 눈에 가시였다. 그러나 바로 때려 잡을 명분이 없었다.    4월혁명의 깃발은 푸른색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마침 이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외쳐대기 시작했다.
  기회가 온 것이다. 가자 북으로! 가 붉은 물이 든 구호라는 것이다.
  여기서만 그쳤어도 계속 이렇게 오래 감옥에 잡아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점점 간이 커져서 민족자주평화통일을 부르짖었다. 아니 뿐만이 아니었다. 남북협상, 인적물적교류, 국제운동경기 남북단일팀 구성을 주장했다.
  군사도당은 쾌재를 불렀다.
  사월패들이 부르짖고 주장하는 것들은 미국어른들이 적극 반대하는 것들이었다. 이제 이것들을 발로 밟아도 상관이 없고 때려죽여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감옥에 처 넣어 백년을 썩혀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미국어른들이 싫어하는 것만 골라서 주장을 하는 4.19세력이었다. 심지어는 양키고우홈도 외쳐대는 것이다. 협박, 회유, 돈을 준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민주, 민권, 민족 소리까지는 봐줄 수가 있다. 제발 그놈의 ‘통일’ 소리만 안하면 되는 것이다. 통일소리가 나오면 미국어른들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서는 것이다. 아주 질색이었다. 그런데 통일에다 ‘자주’까지 붙여서 소리를 질러대니, 아주 미국어른들이 경끼를 일으키는 것이다. 어떤 미국경제고문 한분은 4.19패들이 통일에다가 자주까지 붙여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심장마비현상을 일으켜 을지로6가에 있는 메디칼쎈터로 실려 갔다는 것이다.

  박정희로서도 골치가 아파도 이만 저만 아픈 존재들이 아니었다. 봐 주고 싶어도 어지간해야 미국 어른들을 설득을 하지 도저히 봐줄 처지가 못 되었다.
  이승만 박사가 주장한 북진통일, 멸공통일, 이 얼마나 시원스럽고 박진감 넘치는 구호인가.
  눈치도 없이 민족자주통일, 평화통일을 부르짖고 다니니. 미국 어른들이 아주 경끼를 일으켜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말이 안통했다.
  협박을 하면 무서워서라도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이 4.19패들은 아니었다. 협박을 하면 할수록 반항이 배가했다. 회유를 하면 설득을 당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은 주먹을 쥐고 삿대질을 하고 달려들었다. 세상에 그 좋은 돈뭉치를 준다고 해도 세상에 변절자처럼 더러운 놈은 없다면서 침을 뱉고 돌아서버리는 것이다.
  세상에 옹고집도 이런 고집이 없고, 돈도 싫다고 하는 바보 멍충이들이었다.
  그런데 이해가 안가는 면이 있기는 있었다.
  이들은 학벌도 좋고 허우대도 멀쩡하게 잘 생겼다.
  책도 많이 읽어서 머리에 먹물이 들어선지 이론도 정연하고 행동거지도 인격적이었다. 세상의 모든 이치에도 밝아서 자기대로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산다. 자기가 정립한 국가관과 세계관이 확고부동했다. 가족 이웃, 지역사회를 이해하고 협조적이다.
  동네어른을 보면 인사도 잘 하고 명랑 쾌활하여 인간친화력이 대단하다. 자유와 평등을 내세워 억압없고 골고루 잘사는 삶을 추구한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이다. 일반사람들로 부터는 선망과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다.
  이런 젊은이들이 무엇 때문에 편히 잘 먹고 잘 사는 길을 마다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권력 있는 좋은 자리를 준다고 해도 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저 혼자 잘 살면 되는거지, 기층민중, 도시빈민, 노동자, 농민은 왜 떠벌리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이 우리를 지켜주고 경제원조로 천사처럼 우리를 보호하고 살려 주는데 굳이 미국이 싫어하고 반대하는 일을 꼭 고집할 필요가 있는지 모른다. 일본도 쏘련, 중공, 북한을 반대하고 공산주의를 함께 막아내는 우리의 가까운 우방국이 아닌가. 그렇게까지 미워하고 반대할 일은 아닌 것이다.

  4.19세대 중에도 타협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실리적인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역 국회의원도 있고 정부기관 좋은 자리에도, 돈을 버는 사업가도 있다. 또 중앙정보부의 사회안정을 위한 ‘동화(同化)사업’에 적극협조하는 고마운 현실파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4.19때 국립명문대학의 학생회장(운영위원장)출신인 안영규, 선언문을 쓴 이주정, 황활운, 김형일, 또 다른 대학의 이세구, 박찬수, 김영서 등등이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아주 은밀하게 협조를 잘 하고 있는 것이다.
  6.3세대로는 도미중인 김숭태, 반이문, 홍삼덕, 서영석, 장이표 등등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각계 각 분야에서 정보부의 ‘동화사업’에 헌신적으로 열성을 보이는 젊은이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다. 전쟁 때 미국공보원이라 부르는 것을 미국문화원으로 바꾸고 문화사업을 하는 척 엿을 먹여 밀정 교육을 하는데 걸려든 친구들도 많았다.
  멀쩡한 미CIA요원을 ‘평화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남한 사회 각 분야에 침투 첩보 활동에 활용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포섭된 젊은 남녀들도 많았다. 속 모르는 사람들은 이들을 밀정이니, 밀대니. 비웃고 요즘은 또 ‘사꾸라’ 라고 냉소를 보낸다. 그렇지만 이들의 현실타협적인 안목과 애국심 때문에 정보부의 중점사업인 동화사업이 크게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현실타협적 동화사업에 헌신한 젊은이들은 지금 현재에도 잘 먹고 잘 사는 생활이 보장되고 앞으로도 능력에 따라 좋은 자리, 출세가도가 활짝 열려 있는 것이다. 돈과 권력의 단맛이란 토종꿀맛 저리가라 인 것이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이 ‘밀정장학생’ 서약이었다.
  단맛에 끌려서,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말이 있다.
  배가 고픈 김에 미국 유학이나 좋은 직장 보장, 우선 돈다발에 끌려서 밀정장학생, 이른바 사꾸라가 된 대학생, 혹은 일반 청년들이 많이 있었다.
  거, 홀어머니 밑에서 집안사정이 어려웠던 이병박이를 비롯 이재우, 김문우, 손학구, 안철구 등이 다 이에 속한다. 4.19세대는 밀정장학생 제 1호 원조이고, 6.3세대 3선개헌세대등 세대를 이어서 아주 체계적으로 공작관리 되고 있었다.
  세상은 모두 일신의 안일과 출세를 위해서 친구 이웃 동지를 배반하고 변절 밀정 밀대의 길을 간다. 이들에게 조국이나 민족은 배신 배반의 대상이고 미국이나 일본을 지지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냥 팔아먹어도 되는 하나의 자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조나 신념 사상은 허황된 겉치레일 뿐이다.

  해방 24년 만에 무섭게 변해버린 세상이었다.
  집집마다 무기를 보관하고 있고 각 개인별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미국, 총으로 쏘아 죽일 대상이 없이는 삶의 의미가 없는 사회인 것이다. 필수적으로 쏘아 죽일 적이 있어야만 생기가 넘치는 사회였다. 적이 있어야만 살맛이 나는 세상인 것이다.
  그래야 살맛이 나고 생기가 돈다. 사람을 죽여야, 전쟁을 해야 만이, 사회가 활성화되고 산업시설이 생산활동에 활기를 뛴다.
  돈이 돌고 자본이 형성된다.
  돈, 자본, 이것이 돌면 부가 축적 된다.
  부를 거머쥔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춤추고 여자를 산다.
  이것이 미국문화의 본색이고 특질이다.
  물밀 듯이 무방비로 밀고 들어온 미국문화, 이 문화의 흙탕물 속에서 우리가 살았다. 살벌한 전쟁문화, 먹고 마시고 여자를 사는 환락문화 세기말적인 흉악범죄, 폐륜살인, 막가는 문화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저질적 본능문화 직립인간 초기의 동물적인 본능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죽이고 빼앗고 강자본능 폭력 살인 문화가 아메리카합중국 문화의 본질이다.
  선량한 호양(互讓)문화 서로 살리는 상생문화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조선백성들은 제대로 살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것은 도대체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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