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17

  난리가 났다.
  어제 오후 한시였다.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길을 달리는 시내 뻐쓰 천장 공기통에서 반정부 삐라가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다. 열린 뻐쓰 옆 창문에서도 마구 뭉텅이 채로 살포되고 있었다.
  아주 도로와 인도 위를 하얗게 덮어버릴 정도였다.
  삐라를 뿌리는 숫법이 절묘했다. 뻐쓰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처음엔 뻐쓰 천장 공기통에서 거센 바람을 타고 삐라 뭉텅이가 마구 쏟아져내렸다. 낱장으로도 마구 펄럭거리며 하얗게 거리를 덮었었다.
  이어서 뻐쓰 옆 창문에서 하얀 도포를 입은 젊은 스님이 삐라뭉치를 밖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삼선개헌 무효!
  국민투표 무효!
  군사정부 물러가라!
  박정희 장기집권 결사반대!
  매판자본 경제침략 결사반대!
  일본인 매춘관광 결사반대!
  머리를 빡빡 깎은 도포차림의 젊은 스님이 주먹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신바람이 났다. 뻐쓰 지붕과 옆창문에서 하얗게 쏟아지는 삐라뭉치가 눈이 다 황홀할 지경이었다.
  백주대낮 서울 한복판 태평로 그것도 국회의사당 앞이었다.
  정사복 경찰들이 서로 눈을 번뜩이며 지나가는 행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가방을 든 젊은 학생들이나 수상해 보이는 행인들의 가방검사를 하고, 어깨 밑이나 품속이 조금만 불룩해 보여도 일일이 검색을 하고 있는 판이었다.
  이렇게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달리는 시내뻐쓰를 타고 기습시위를 감행한 것이다. 늦게사 교통경찰이 이를 발견하고 호르라기를 불어 댔었지만 뻐쓰는 계속 달리고만 있어서 속수무책이었다. 기동경찰 정사복 행인 감시경찰들도 닭쫓던 강아지 울타리 바라보듯 한동안 정신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해당 시내뻐쓰 기사는 우선 달리기에 바빠서 제빨리 상황파악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삐라를 집어든 어떤 시민들은 주먹을 휘두르는 젊은 스님을 향해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경비경찰이 철통경계를 하는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이런 소동이 벌어졌으니 일간 신문들의 좋은 보도거리가 생겼었던 것이다.
  어제 석간에 이어 오늘 아침 조간신문에 사껀 전말과 분석기사까지 실릴 정도였다.
근래에 드문 화젯거리였다. 사회 각 분야가 팟쇼군사통치로 얼어붙어 있었는데 매우 파격적인 반정부 시위여서 쎈세이셔널한 사껀이 되었다. 군사정권의 정보정치, 강압적인 탄압 앞에서 누구 하나 찍소리는커녕 짹소리도 못하고 엎드려 있었다. 이런 판국에 도포를 입은 스님이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에서 반정부 삐라 소동을 벌였으니, 일판이 요란스럽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화제의 스님 세정거사 곽세정은 시청 앞을 통과 남대문로 신호대에서 교통경찰에 붙잡히는 몸이 되었다. 일단 가까운 시 경찰국에 연행이 되었는데, 아마 지금쯤 남산 중앙정보부 지하에 있을 공산이 컸다.

  이왕 시작한 돌팔매질이다.
  강욱철은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방구가 잦으면 똥이 된다고 첫술에 배부르랴, 박정희 일당을 똥물에 튀겨낼 날도 멀지 않은 것이다.
  민심이 천심인데 땅이 움직이면 하늘도 흔들리게 되어있다. 민중이 일어나는 날 하늘이 땅이 되고 땅바닥이 하늘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돌팔매질 (소년 다윗의)로 꼴리앗(불레샛 장수)을 꺼꾸러뜨렸다고 역사책에 기록까지 해 놓았다.
강욱철의 돌팔매질도 이놈의 개똥세상을 뒤엎을 날도 멀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일당은 민중탄압에 팟쇼의 칼을 빼 들었다.
  민족정신이 강하고 뼈 있는 정치사회 지도자들을 잡아 가두고, 가차없이 사형에 처했다.
  미국은 이점을 높이 샀다.
  미국의 두텁고 변함없는 지원과 신임에 힘 입은 박정희 팟쇼정권은 기고만장 장기집권 야욕을 밀어부쳤다. 미국의 신임을 등에 업은 박정희는 민중 무서운 줄 모르고 3선개헌을 강행하였다. 정보부장 김형욱을 시켜서 권총을 빼어들고 반대파의 입을 틀어 막았다. 한밤중 공화당 졸개(국회의원)들을 동원 새벽 2시 국회 제3별관에서 이를 통과시켰다. 쥐새끼들처럼 꼭두새벽 본회의장이 아닌 제3의 장소로 이동 불법적으로 변칙 처리했다.
  종주국 미국에만 충성을 다하면 된다.
  미국의 묵인하에 어떤 못된 짓을 다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동족의 인권이나 목숨 따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음은 ‘맹봉사령’ 고충석 동지 차례였다.
  세정거사가 삐라사껀을 일으킨 바로 다음 날 저녁이었다.
  세종로 태평로를 비롯, 종로 을지로 충무로 할 것 없이, 큰길에서 한발자국만 뒤로 들어가면 크고 작은 여관들이 즐비했다. 60년대 중반 일본관광객이 떼거리로 몰려오면서 생겨난 새로운 풍속도였다.
  선린동 골목엔 순두부집도 많았다. 순두부 골목에 큰 여관이 하나 있었다. 일본인 관광객 바람에 돈벼락을 맞아 크게 호텔을 지었다. 돈을 더 많이 벌려는 욕심에서다. 일본인 기생관광의 특성에 맞추어 객실 평수를 크게 하지 않고 그 대신 객실 수를 많이 늘린 것이다.
  저녁 때가 되면 일인 기생관광객을 태운 관광뻐쓰들이 몰려왔다.
  마악 저녁 해질녘 어두움이 깔리기 시작할 젠 골목을 통행하는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지는 시간이었다.
  이 때다.
  뻐엉! 뻐엉! 어디서 날아왔는지 수류탄 두 발이 연속 폭발이었다.
  관광뻐쓰에서 내린 일인 광객들이 여행용가방을 메고 들고 호텔로 들어가고 있는 판이었다.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비명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 일인들의 신음 비명소리가 선린동 골목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여섯 대의 관광뻐쓰가 골목을 매우고 서 있었는데, 그 수많은 관광객들이 비명을 지르고 우왕좌왕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이 소식이 청와대에 급보로 날아들었다.
  박정희가 저녁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다가 손이 떨려서 그대로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뭬야!?”
  난리가 났다.
  난리는 선린동에서 났는데 청와대에선 더 크게 난리가 난 것이다.
  “경찰은 뭐하고, 정보부는 뭐하고 있는거야!”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른 박정희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렇게 철통방어를 하는데도 두 번씩이나 뻥뻥 뚫리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정규 경찰 정원으로는 철통경비가 어렵다고 하여 엄청난 숫자의 기동경찰을 증원한 것이다.
  정보부에는 그 동안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지원했었다.
  밀수로 모은 돈, 주택공사를 만들어 엄청난 공사차액, 주식가격 조작으로 생긴 돈, 심지어 마약(메사돈) 제조판매 자금까지 지원을 했었다.
  이렇게 막대한 공작금으로 이런 일들 하나 못 막아내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경호실은 또 뭣들 하고 있는거야?”
  엉뚱한 경호실까지 불똥이 튀었다. 경찰청 관장을 잘못 했다는 것인데, 노발대발 화가 난 박정희가 아무데나 대고 고함을 질러대고 있는 것이다.
  여기 또 똥줄이 당긴 경호실장 박종규가
  “...3선개헌도 하고... 국민투표도 압도적이지 않았습니까?”
  목에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댓구를 하고 나선 것이다.
  불난데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뭬라구?
  들어간 돈 생각도 안해! 그동안에 들어간 돈이 얼마야?
  개헌, 국민투표 열번도 더해!...”
  박정희가 분을 못참고 잿떨이를 들어 던졌는데 빗맞아서 출입문 유리창이 박살이 났다.
  역시 안돌아가는 경호실장이었다. 불이 탈 때는 가만있으면 좋으련만 오줄없이 계속 기름을 끼얹었다.
  “경찰은 그래도 제가 조물조물... 중정은 김형욱이가 원체 돌머리라...”
  “어저깨 중놈은 배후가 없다고 했잖아?
  이번 이, 수류탄 던진 놈 반드시 붙잡아서 쥐어짜라고 그래!
  뒷, 배후말이야!”
  “넷, 알겠습니다! 실시!”
  “실시!”
  
  이번 사껀으로 까딱하면 중정부장 김형욱의 모가지가 위험했다. 박정희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국회에서 정일권 국무총리가 김두한이가 던진 똥물까지 뒤집어쓰면서 이것저것 밀수를 감행했다. 이렇게 체면 불구하고 밀수를 감행한 것은 그만큼 막대한 비자금이 필요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5.16주체세력이라는 것들이 하나같이 다 똥별출신들이었다. 나라의 장래 걱정 애국심은 그만두고 인간의 기본 양심도 없는 것들이었다. 그져 요정에서 술이나 먹고 계집질에 빠져 돈,돈,돈 천박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공작금을 내주면 절반은 공적으로 쓰고 절반은 제가 먹는 놈은 양반에 속했다. 모조리 다 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마는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권을 강도질하고 저질 정치, 속임수 정치, 부정부패, 온갖 사회악을 같이 공모하고 나라 주권 자원 팔아먹는 일까지 공동 행동을 했었다. 그나마도 이들과 손을 잡고 세 과시를 해야 미국이나 일본어른들이 신임을 놓지 않는다.
  또 백성들도 위세에 눌려 통치가 수월해지는 것이다.
  앞으로가 큰일이었다.
  일본인 관광객들 머리 위해 수류탄 벼락이 떨어졌다.
  국가 외화 수입의 큰 돈줄 하나가 막히게 생긴 것이다. 월남 전쟁에 보낸 젊은이들 핏값으로 들어오는 돈줄과 함께 가장 크고 실속있는 돈줄이었다. 채워도 채워도 상시적으로 부족한 외화 보유고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국가 재정운영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일본 자민당 지도자들이 크게 노할 것이다. 자국 국민의 인명피해가 막대한데 가만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박정희로선 면목이 없게 되었다. 일본 선배어른들이 아이디어를 제공 기생관광 경험을 전수, 그대로 박정희가 시행 기대이상의 대성공이었다. 호사다마라고 이런 판국에 수류탄 세례라니...  
  또 미국 어른들은 얼마나 실망을 할 것인가.
  윤보선을 두 번씩이나 물을 먹이고, 3선개헌까지 장기집권을 허락해 주었다. 칠칠치 못하게 국내 치안 하나 제대로 감당을 못하여 귀하고 귀하신 미군장교 살해사껀이 발생했다. 일본하고 그만큼 잘 지내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는데, 돈을 뿌리려 온 일본인 관광객에게 수류탄을 던져 때죽음을 시켰다. 미 국무성이 진노를 할 것이다. 큰일도 보통 큰 일이 아닌 것이다.

  이 사껀이 제대로 보도가 되었으면 세상이 왈칵 뒤집혔을 것이다.
  이날 석간신문들이 깜깜 무소식이었다.
  이튿날 조간신문에도 기사 한 줄 보도된 것이 없었다. 라디오 역시 천연덕스럽게 일상 뉴스만 보도 되었다. 일본 관광객에 대한 수류탄 공격사껀은 국내 언론이 모두 침묵이었다.
  과연 한국 중앙정보부의 위력은 대단했다.
  돈을 먹어도 뭉텅이 돈을 먹을만한 자격이 있었다. 항간에 처녀 불알도 만들어 낸다는 말이 떠돌았다. 헛소문이 아닌 것이다.
  일본 언론과 외신들이 떠들어 보아야 그것이 국내에 알려질려면 한참이 걸린다. 그것도 일반 백성들이 제대로 된 사껀 전모를 알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보통 정보부에서 국내 언론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면 그럭저럭 유언비어가 되어 소문이 떠돌다가 그럭저럭 시간이 가고 김 빠진 맥주처럼 싱거운 사껀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더구나 정권당국자의 세뇌교육으로 얼이 빠져버린 남조선 백성들의 세상 일 건망증은 전 세계가 이미 다 아는 사실이었다.
  다만 일본 미국어른들의 눈과 귀가 문제인데 여기에는 한국 중정제약 반공보신탕이 특효약이었다. 고정간첩 당의정을 진상하는 방법도 있었다. 반공과 간첩을 들먹거려도 효과가 전무할 때는 박정희 특유의 대처 방법이 있었다.
  생긴 건 그렇게 조막손이처럼 생겼는데 사람 속이는 재주는 타고난 팔자였다.
  만주국 사관학교에 갈 때 써먹은 ‘輔國丹忠’의 혈서 쓰기, 여순사껀 때 변절 전향 동지들 이름 불기, 민정이양한다고 군복 벗을 때 ‘나 같은 불행한 군인’ 운운 손수건으로 눈물 닦기 등 가지가지의 쑈맨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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