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여기 장개 든 놈 손들어봐라!”
  “...???...”
  “모두다 몽당귀신들이구만.”
  “야, 강욱철 너는? 엉!?”
  모두가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어헛, 헛헛...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월패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모인 것이 얼마만인가. 여러 동지들의 출옥을 축하하고 앞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모두 모였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군대에 뛰어들거나 민족자주통일을 부르짖다가 연행, 체포 구속, 감옥소행이 대부분이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다가 끌려가서 매나 맞고 고문이나 당했었다.
  취직도 안되고, 신원조회에 걸려서 되는 일이 없었다.
  고등 룸펜이 되어 폐인처럼 거리를 헤매기 십상이었다.
  나중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국사껀이 터질 때마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기 일쑤였다.
  어떤 동지는 소식도 없이 행방불명이 되었고, 어떤 동지는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에 이상이 생겨 가자 북으로! 가자 북으로!를 계속 외치며 판문점으로 가다가 증발이 되어버렸다. 어떤 동지는 장가를 들어 차분하게 잘 살다가 무슨 간첩단 사껀에 연루되어 완전 폐인이 되었다. 본인이 문제가 아니고 아이 낳고 살던 아내까지 끌어다가 몹쓸 짓을 했다. 윤간을 당했다는 것이다. 아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느 사이 우리가 나이 삼십이야.”
  “야, 정확히 말해 난 서른하나야.”
  “야야. 난 조선나이로 서른둘이야, 내가 형님이야!”
  “그런 소리 말어, 저쪽에 계시는 정병효 동지 이창옥 동지는 서른 넷이야.”
  “이젠 우리도 철 들어야지, 저 두분을 형님으로 모셔야 돼...”
  “맞다, 맞어... 정병효동지 이창옥동지는 형님으로 모시고 너는 내 동생으로 내려가.”
  “아이구, 이것들, 언제쯤 철이 들래?
  느희 둘이는 만나면 쌈질이냐?”
  역시 이문성이는 시각이 객관적이다.
  양코뒷잡이라 양코를 앞으로 잡는데는 묘수가 없지만 사월패 질서 잡는데는 항상 성공적이다. 조용근이 하백만이를 보면 만만하게 을러대는 것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모두 감개에 어린 표정들이었다. 옛 학생시절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기도 하고 들뜬 기분이 되기도 했다.
  감옥에 있었더라도 살아있는 동지들은 이렇게 만나 우스개를 하고 떠들어 댈 수도 있는 것이다. 유명을 달리하고 행방불명이 된 동지들은 이제 영영 만나볼 수가 없게 되었다.
  서로 자리에 없는 동지들, 오늘 얼굴을 볼 수 없는 동지들의 안부를 물었다. 지병을 앓는 친구도 있었지만 감옥살이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걸을 수가 없어서 못 나온 친구들도 있었다.

▲ 4.19혁명 관련하여 1960년4월18일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며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했다.
▲ 4.19혁명 관련하여 1960년4월18일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며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고 학교로 돌아가던 중 괴청년들의 습격을 받아 일부가 피를 흘리며 크게 부상당했다.

  김국주동지 탁민규동지는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이다.
  호걸풍의 미남으로 항상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던 투사 이창홍동지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행적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북으로 갔다는 소리도 있었다. 북으로 가다가 중간에 붙잡혔다는 말도 있었다.
  강욱철은 매우 안타까웠다.
  이창홍동지는 명문 국립대학을 다니다가 ‘민족주의 연구회’ 사껀으로 옥고를 치르고 퇴교를 당했었다. 그는 학업을 포기할 수 없어서 늦은 나이에 강욱철이 다니는 장안대학에 편입을 했었다. 강욱철이 늙은 대학생으로 제대 후 8학년을 다닐 때 3.24데모 때부터 행동을 같이 했었다.
  사월패중 심세택동지와 가까웠던 서영철 임상수 동지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소식을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은 머슴아들이다.
  사월패, 혁명동지들이다.
  총을 들진 않았지만 혁명혼에 불타는 젊은이들이다. 이들 가슴 속에는 휴화산이 아닌 활화산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덩이를 안고 있는 것이다.
  강욱철과 황웅권, 황웅권과 김승국, 김승국과 이문성, 이문성과 심세택과 조용근, 조용근과 하백만, 최단복과 김중기, 조회완과 노웅선, 노웅선과 전시호, 전시호와 김승대, 여성동지로는 정혜선과 유선순, 성영숙, 신정애, 이외에도 여러 미더운 동지들이 서로의 뜨거운 가슴 속 불길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불암당쪽에서는 윤창현과 수락산 암굴도사 곽세정 동지를 대신해 자칭 산도적 동명(東明)스님이 참석을 했다. 암굴도사 곽세정 땡중은 중앙정보부에서 서대문 구치소로 넘어갔는데 아직 면회금지 조치가 미해제 중이었다.
  수류탄 저격사껀은 아직 엄중하고 민감한 분위기여서 일부러 고충석의 참석을 제한 했었다. 쩍하면 입맛이라고 윤창현의 불암당 관계 대강 설명(경과 보고)에 참석 사월패들의 열열한 성원과 지지가 담긴 박수를 받았다.

  오늘도 자금책은 하백만이었다.
  소주 몇 병에 우유 빵봉다리, 마른 오징어 노가리새끼가 안주로 나왔다. 술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선 사이다와 오란씨 환타가 준비되었다. 눈깔사탕도 몇봉지 나왔다.
  사람 수는 많은데 돈을 벌만한 주머니꾼이 없었다. 모두가 다 하나같이 백수이고 룸펜이었다. 그래도 하백만은 종로학원 독일어 강사이다. 제일 확실한 돈주머니였다. 이리 저리 양옆을 다 둘러 보아야 용돈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직장을 가진 친구가 없었다. 불암당 자금책은 거리의 환쟁이 윤창현이고 사월패의 돈줄은 이러나저러나 하백만이었다.
  여기는 행주나루가 내려다 보이는 행주산성 한강쪽 비탈진 곳이었다.
  30도짜리 쓴 소주 몇 잔에 마른 오징어다리를 씹으면서도 이들은 의기가 양양했다. 기가 죽지 않았다.
  천하의 사월패가 아닌가.
  끼리끼리 모여 앉아서 세상이야기, 동지들 소식, 지난날의 반성, 앞으로의 갈길을 제각각 토론하고 주장하고 각오들을 다지는 자리였다. 빈 창자에 빵쪼가리 몇 개 쓴 소주 몇잔이지만 이들의 잔은 차고 넘쳤다.
  하백만은 언제나처럼 기분이 좋았다.
  학원 강사 푸닥진 월급을 그나마 가불을 한 처지이지만 마음은 미국 재벌 록펠러에지지 않았다. 한 잔 마시고 기염을 토하는 동지들의 모습이 미덥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살아있어도 산 목숨이 아니었다.
  사월광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월사자들은 거개가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죄의식, 그래서 사월패들의 목숨은 산 목숨이 아니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대일본제국군 중위 다가끼 마사오(高木正雄)의 군화발길에 목을 짓밟히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월패들의 목숨은 오래도록 살아있으면 살아있을수록 치욕이고 분노이었다.
  혁명의 거리 사월광장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못나게 총알을 피해 도망질이나 치다가 살아남았던 것이다. 기어코 고기값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장백산 칡뿌리 캐 먹고 천지 못물 켜고 만주대륙을 호령했던 흰옷조상들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고기값 하고 죽어야 하는 것이다.

  “으랐차차! 기달리라! 사월사자가 간다아! 박정희야아...”
  황웅권의 건배 선창에 스물다섯개의 소주잔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가자 북으로! 
  만나자 평양에서어!...”
  김승국의 감개어린 선창에 다시 또 스물다섯개의 잔이 솟구쳐 올랐다.
  행주산성이 들먹들먹, 한강물이 흔들거렸다.
  “오라 남으로!
  만나자 서울에서어!...”
  만나는 장소에 균형추를 다는 이문성.
  “민족은 자주통일! 통일은 평화통일!”
  5척단구의 심세택의 기염이었다.
  “박정희는 다가끼 마사오! 오까모도 일본군 중위!,”
  “백두산도 한라산도 우리땅 조선땅!”
  “한강은 평양껏, 대동강은 서울껏!
  다 합해서 조선 껏!.”
  머리 좋은 조용근,
  “아메리카는 양키 껏! 한반도는 우리 껏!
  둘 합해서 조선 껏!”
  유난히 큰 목소리가 튀어 올랐다.
  키가 큰 김중기 동지의 건배였다.
  “으와아! 최고다, 최고오!”
  전시호의 응원소리.
  “야아, 욕심 많다아!
  으핫,핫핫...”
  “으핫, 핫핫...”
  정병효 이창옥 동지의 너털웃음, 매우 통쾌한 웃음소리였다.
  아메리카를 먹겠다니, 통이 컸다. 아무튼 통쾌하기 그지 없었다.
  군화발길에 너무 시달려 기가 죽을 법도 한데 외려 더 팔팔해진 것이다. 의기충천 사월패들의 젊은 의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화살이 떨어지자 치맛자락에 돌을 날라 왜적을 물리쳤던 바닥백성들의 결사투혼, 중과부적, 고립무원의 산성수호에 의기가 서릿발 같았던 권율의 기개가 다시 살아 소리소리 지르는 것이다.
  “어이, 수락산 산도적!
  이리와서 땡중 곽세정 대신 만세나 한번 불러.”
  윤창현과 함께 있는 수락산 산도적 이동명을 강욱철이 불러냈다.
  “자! 자!
  모두 잔 비우고 소리높이 만세나 한번 부르자구!
  지금 서대문에 있는 세정도사 대신 수락산 산도적이다아!”
  강욱철의 고함소리...
  “여러부운! 이 땡땡이 중이 선창합니다아!
  위대한 사월패 만세에!”
  “만세에!!”
  “더 위대한 사월혁명 만세에!”
  땡중의 연창이다.
  “더 더 위대한 민족자주통일 만세에!!”
  “만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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