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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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 12월 1일 일요일.
  정해진 시간에 태양은 다시 떠올랐다.
  라디오들은 일제히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아침 특종을 쏟아냈다. 전쟁이 터지면 제주도나 미국으로 도망을 갈만한 부유층들은 텔레비죤 뉴스를 보고 듣고 있었다.
  김신조부대의 박정희 목 따는 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 여파는 대단했다. 한강 이북 서울 땅값은 폭폭락을 거듭했다. 무학재에서 미아리 고개까지 북한산 위 아래쪽 밑뿌리에 있는 동네들은 집을 팔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땅값은 똥값이 되었다. 불광동 갈현동 구파발쪽은 대낮에 차를 타고 지나가도 등골이 오싹해진다는 것이다. 사람이 살 데가 못되었다. 최소한 우선 한강 이남으로라도 가야 산다는 것이다.
  인심이 매우 흉흉했다.
  너도 나도 한강이남으로 가려고 법석을 떨었다.
  전쟁이 터지면 1차 방어선이 서울 북방 의정부선이었는데, 그것이 한강 이남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한국군의 방어력이야 어차피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최근 미군 작전계획이 그렇게 변동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노량진, 대방동, 신길동, 흑석동, 동작동, 상도동의 복덕방들은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세상이 이렇게 뒤숭숭한 판에 밤중에 홍두깨가 아니고 낮잠 자다가 다듬잇돌이 이마에 떨어진 격이었다.
  지난밤에 무장공비 5인조가 청와대를 앞뒤로 공격 기습폭파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라디오 뉴쓰를 듣거나 텔레비죤을 보던 시민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부유층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권력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신조 부대가 쳐내려온 지가 며칠이나 되었다고 또 청와대 폭파를 시도했다는 말인가. 이거 원 무서워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서울시민들은 모두가 불안에 떨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있는 재산 대강 팔아서 미국으로 가든지, 제주도로라도 우선 집을 옮겨야 할 것 같았다.
  집 한 채도 없는 서민들도 덩달아서 한강 이남으로 피난 갈 준비를 서두르는 판이 되었다.
  서울 시민들의 불안 공포가 극에 달했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 수방사
▲ 수방사

  지난밤 0시30분 권력실세들이 긴급회동을 했다.
  청와대 지하벙커에는 박종규 경호실장, 중정부장 이후락, 수경사 윤필용사령관이 미리 대기 중에 있었다.
  국무총리, 내무, 외무, 국방장관 각군 총장들이 몰려들었다.
  박정희가 입을 떼지 않자,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앉아 있었다.
  보다 못한 청와대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앉은 순서대로 의견 개진을 해 주시죠. 순서는 국무총리부터 시계방향입니다.
  그런데 이 회의가 참 재미있었다.
  청와대 근처에 숙소가 있는 사람 외에는 수류탄 폭발음이나 다이나마이트 폭발음 소총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박정희는 비서실장 경호실장 중정부장을 대동하고 초저녁부터 궁정동 안가에서 질펀한 술자리를 벌이고 있는 판이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명색이 대통령이란 자가 밤마다 계집을 끼고 술타령으로 밤을 새웠다. 정보부에는 계집을 대령시키는 채홍사 임무를 수행하는 전담부서가 따로 있었다. 시내 모 여자대학 앞에는 정보부 검정찦차가 날마다 상주한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박정희가 이 꼬라지니, 아랫것들이라고 어디 제대로 된 것들이 없었다.
  내각을 관장하는 국무총리에서부터 각부 장관, 각군 참모총장에 이르기까지 술타령에 계집질이었다. 서울시내 경관 좋은 숲속에는 고급 비밀요정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궐처럼 으리으리한 고루거각을 짓고 수십 명의 미인들을 거느리고 성업중이었다.
  비상총회에 여기 모인 권력실세들이란 게 대부분 요정놀음을 하다가 불려온 고관대작들이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비상연락망에 의해 긴급소집을 당한 것이다. 영문을 알아야 발언을 할 것이 아닌가...
  박정희 자신도 궁정동 안가에서 계집을 끼고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판에 안가 창문이 폭발음에 들썩거렸다. 그제야 경호실장 중정부장이 뛰쳐나가 상황파악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국무총리에서 장관 각군 총장에 이르기까지 무슨 영문인지도 잘 모르고 불려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에, 또... 별 의견들이 없으시면?...”
  잠시 뜸을 들이던 비서실장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또 입을 열었다.
  “아 예, 별 의견 없습니다.”
  중정부장이 헛기침을 해 대며 시답잖은 발언 들어보나마나 하다는 투로 비서실장을 거들었다.
  “무슨 큰 의견 있겠습니까?...”
  이어서 경호실장이 한마디 더 거들었다.
  “아, 네!
  저희 수경사 경비군의 맹렬하고도 신속한 작전 전개가 있었습니다.
  북괴의 남파 청와대 습격 침투조 일당 5명중 4명을 사살 이미 상황 종료 중에 있습니다. 총상을 입고 도주 중인 1명은 수경사 전 병력들을 총동원 포위 추격중이어서 사살 또는 생포가 시간문제입니다.
  이상입니다!.”
  별 세 개가 번쩍이는 수도경비사령관의 자신감 넘치는 상황보고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대강 사껀의 전말을 알게 된 국무위원들은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눈치였다. 개중에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발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자도 있었다.    분위기가 굳어져서 숨소리 하나 제대로 크게 내쉬려는 자가 없었다.
  수경사령관의 상황보고로 일단 안보 비상총회가 끝나는 분위기였다.
  이때였다.
  “추웅성!!”
  실내가 떠나갈 듯한 구령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상황보고를 마친 수경사령관 윤필용에 대한 충성 맹세구령이었다. 모두들 구령소리에 시선이 몰렸다.
  아까부터 육군중령복장의 장교 1명이 출입문쪽에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저 출입문 보초로만 생각했었다.
  아니, 이 지엄한 자리에... 대통령각하를 모신 자리에서 수경사령관에게 충성 맹세 경례를 올리다니? 이거, 격에 안맞게 기가 찰 일이었다.
  그런데 수경사령관 윤필용의 표정과 대통령 박정희의 표정이 이상했다. 윤필용은 만족한 듯 제법 고개까지 끄덕이고 있었고, 박정희는 귀엽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올리고 있었다. 격에도 맞지 않고 분위기로 보아서도 도저히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모두들 이 의외의 장면에 놀라고 섬짓하여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벼슬아치는 눈치 빠르게 어떤 음모라도 있는 것 같아서 한걸음 앞서서 허겁지겁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문제의 육군중령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한강변 동빙고동에는 박정희가 극비리에 창설한 기무부대가 있었다. 자신의 정권안보를 위한 친위부대였다. 소도둑처럼 생긴 문제의 육군중령은 윤필용의 추천으로 박정희가 직접 동빙고동 기무부대에 파견한 연락장교였다.

  날이 밝아서 아침 9시가 되었다.
  북악 스카이웨이 한 중심 수경사 청와대 외곽경비여단의 제1초소로 모두 모여들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중추 핵심 인물들이 빠짐없이 모여들었다. 3부요인을 비롯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계 인사들까지 모두모두 참석을 한 것이다. 박정희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시간에 늦을까봐 눈알을 히번덕거리며 부랴부랴 쫓아온 인물들도 있었다.
  정릉골짜기 국학대학에서 평창동 청운동 삼청동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의 북악터널은 통행이 차단되어 있었다. 정릉, 우이동, 진관동 비봉자락, 노고산, 송추등도 완전 계엄령 상황에 놓여 있었다. 수경사 산하 3개여단이 밀집경비를 맞고 있는 지역이었다.
  일부러 공포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박격포탄 터지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소총사격에 이어 양철통을 두드리는듯한 중기관총 소리가 북한산 릉선을 타고 넘었다.
  이런 초비상 분위기에서 영문도 모르고 숨을 죽이고 모두 서성이고 있었다. 얼룩무늬에 야전군복차림들이 행사장 주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미국정보기관 요원들인 것 같았다. 일백여명이 넘는 내외신 기자들도 불려와 있었다.
  이렇게 한참을 기다린 다음에 경호차량의 경적소리와 함께 대통령 박정희가 탄 검정 쎄단들이 나타났다.
  뒤이어 미국 대사, 미8군사령관, 미CIA한국책임자등의 얼굴이 보였다. 그 외 일본국대사를 비롯 각국 대사관 무관들도 참석하는 눈치였다.

  곧장 이번 사태의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청와대 습격사껀인데 경호실장이 아니고 수경사령관이 나섰다.
  수경사령관의 브리핑을 돕기 위해 소도둑처럼 생긴 육군 중령 1명이 그림자처럼 사령관 주위를 맴돌았다. 지난밤 비상국무회의장에서 충성 맹세 구령을 울린 바로 그 군인이었다. 
  이날 브리핑 보조장교로 3명의 중령 1명의 소령이 동원 되었다. 이들은 모두 사관학교 동기생들이었다. 이들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미남형의 김복돌 중령이었다.
  김복돌은 5‧16당시 사관학교 생도대장이었다.
  단기4294년 5월 18일 꾸테타 발발 이틀만에 육사생 전원을 이끌고 군사꾸테타 지지 시청 앞 시가행진을 감행했다. 군사 꾸테타 지지선언 공로자였다. 뿐만 아니라 학교 성적도 우수하여 이들 네명중 항상 선두주자였었다.
  오늘 브리핑 보조에 동원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회였다. 대통령과 상급자 직속상관과 미군 관계자들의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허우대가 소도둑처럼 생긴 전두팔 중령은 제 역할에 기분이 좋아서 아주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브리핑통역을 맡은 김복돌의 표정은 어딘지 기가 죽어 보였다. 처음 계획엔 빠져있다가 갑자기 임시방편으로 그가 동원되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박정희의 특별계획에 의해 미국대사를 비롯 미8군관계자, 주한 각국대사, 미CIA를 비롯한 미군 정보관계자를 대거 참석을 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번 사태를 대대적으로 홍보를 하여 자신의 주가를 높일 의도였던 것이다. 영어에 능통한 전문통역이 필요했었다. 사안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청와대 경호실이 직접 나섰던 것이다.

  한국 최고의 국립대학, 석학들이 모인 곳이었다. 국제적으로 이름을 자랑하는 하바드나 옥스퍼드대학 출신 박사들도 많았다.
  직접 총장실에 연락을 했으나 한밤중이어서 불통이었다. 대학 당직실에 전화 학교비상망을 통한 박봉달 총장과의 통화가 가능했다. 경호실장이 직접 대통령의 뜻을 전했다.
  아, 이런 변이 있나?
  이 밤중에 이거, 야단이 난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 각하의 뜻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국립대학 총장은 문교부장관이 추천 대통령이 임명권자인 것이다.
  요즘은 특히 시국이 민감해서 학생들의 반정부시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판이었다. 대학관리가 어지간한 정치판보다 더 힘이 들고 어려운 형편이었다.
  정보부에서 대학을 관리 감독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었다. 특히 유명대학 학생들의 반정부활동은 사회에 너무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몇몇 유명대학에 반정부시위가 일어나면 곧바로 다른 대학에 영향을 주어 전국의 모든 대학들이 연달아서 시위에 떨쳐나서는 것이다.
  중앙정보부의 회유공작, 학생리더 데모주동자를 협박, 연행구속만으로는 이를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경찰의 방어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대학교수들의 힘을 빌리기 위해서는 어용교수 어용총장을 투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 대학가에선 어용교수 어용총장들의 역할에 대해 화제가 분분했다. 청와대로부터 영어통역 차출 요청을 받은 박봉달 총장 역시 어용총장으로 불명예 딱지를 받은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박 총장 입장에선 자신의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특별요청을 거절할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총장 임명권자가 아니더라도 절대권을 휘두르는 서슬 퍼런 군사정권 통치체제에서 대통령 각하의 특별요청을 등한시하거나 유야무야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청와대가 기습 공격을 당한 초 비상사태를 맞이해서 말이다.

  이렇게 입장 난처 입지곤란상태에 빠진 유명 국립대 박봉달 총장의 애제자 중의 한사람이 바로 사월패의 주요 멤버인 이문성이었다. 학부땐 영문과 주임교수였고 중도폐지한 대학원에 나갈 땐 담당지도교수였었다.
  이런 비상사태 현장통역에는 인문학 서적이나 번역하는 영어학자는 격에 안 맞는 것이다. 이공계나 예능계통 미학을 전공한 그런 골샌님 같은 영어박사들도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학, 사회학계 통의 영어박사들이 있지만, 이 분들은 학문은 깊기는 한데 언어표현력이... 사껀이 사껀이고 분위기도 분위기였다.
  사껀환경에 맞는 살벌하고 거친 군대식 한국어를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서구식으로 형상화하여 음성언어(영어)로 표현해 내야 하는 것이다.
  한국 제일의 국립대 박봉달 총장, 졸지에 빤스 하나 차고 밤새도록 궁리를 해도 알맞은 영어통역박사가 없었다. 사람에서 사람 못 고른다고, 잘못고르면 대학의 명예 자신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런 것은 다 그만 두드라도 사껀상황.. 아니 대통령 각하의 뜻 의도된 바가 잘못 전달 되면 그 뒷감당을 어찌할 것인가.
  그러잖아도 지난번 졸업식 때 총장인 자신이 단상에 오르자 졸업생 모두가 등을 보이고 뒤로 돌아 앉아버린 체면 망신사껀이 터졌었던 것이다. 어용총장 물러가란 무언의 시위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자신을 총장자리에 앉혀놓은 건 바로 대통령각하의 은혜였던 것이다.
  정해진 시간은 촉박하고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성격이 활달하고 대 사회 성향이 강하고 달변과 명강의로 성가가 높은 영어박사 몇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가 모두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용교수 딱지가 붙는다는 것이다. 학자로서 명예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같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날은 환하게 밝아오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였다.
  절망 속에서 환한 빛이 솟았다. 번개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영미문학사를 전공하던 영어천재 이문성의 얼굴이었다. 그가 한때 몸을 담았었던 합동통신 외신부에 입사할 때에 지도교수로서 추천서를 써 주었던 기억도 생생했다. 이후 이문성은 한국 제일의 신문사로 옮겨 한참 잘 나가다가 청년혁명당사껀으로 워싱턴특파원 생활도, 뿐만이 아니고 모든 출세의 길에서 멀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요란한 전화벨소리에 새벽잠을 자던 이문성이 잠에서 깨었다.
  “아이구, 선생님... 이거, 어찌된 일입니까?
  “어, 그래. 자는 사람을 깨워서 미안하구만...”
  “아, 아니옳습니다. 그동안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이문성은 잠이 덜 깬 상태였지만 오랜만에 듣는 옛 은사의 목소리에 감격하여 안부인사를 전했다.
  “나야 별 큰 변화없이 대학에 그대로 있다네...”
  “아, 네... 선생님 찾아뵙지도 못하고...”
  “세상사는 게 그렇지.
  몇 년 전 신문에서 자네 재판 받는 거 보고 걱정을 많이 했었네.”
  “아, 네.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닐세, 외려 찾아보지 못한 내가 미안하지.
  이군! 밀린 이야기는 나중 만나서 하기로 하고...
  우선 급한 일이 있어서 이렇게 꼭두새벽에 체면불구하고 전화를 했구만...“
  “아, 네...?”
  박봉달총장의 목소리는 무엇에 쫓기는듯한 다급하고 긴박한 것이었다.
  사안이 너무 급하고 특별한 것이어서 어쩔 수 없이 자네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자네의 능력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니 사정이야 어떻든지간에 기필코 수행해 주기 바란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리고 청와대에서 알려온 사껀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했다.
  아침 08시까지 청와대에 출두, 비서실 요원의 안내를 받아라.
  현장에 도착하면 수경사 요원의 자세한 행동지침 설명이 있을 것이다. 수경사 요원의 행동지침에 의한 영어통역이 자네가 해야 할 중대임무이다. 이번 임무를 실수없이 잘 치러내면 자네에겐 큰 행운이 도래할 것이다. 내(총장)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잘 실행해 주길 간곡히 부탁드리는 바일세... 운운...
  박봉달총장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긴박하고 다급하고 간절하기 그지없는 하소연이고 애원이었다.
  “어이구, 선생님! 제가 통역이요?
  그것도 청와대에서요? 네!?”
  이문성은 이문성대로 박봉달총장은 박총장대로 서로 ‘사람 한번 살고 보자는’ 아우성이고 애원이었다.
  이렇게 한참을 ‘제발 사양한다’고, ‘제발 부탁한다’고 서로 아우성을 치다가
  “이군!
  지금 시간이 06시일세, 앞으로 남은 시간이 별로없네.
  잠시동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보고 내 뜻에 따라주길 바라고 바라네. 이 박봉달이 한번 살려주게!
  이렇게 내 자네에게 두손 두발 싹싹 비네!”
  박봉달 총장의 마지막 하소연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아, 아! 선생님! 선생님!...”
  아무리 이문성이 전화기를 두들기고 아우성을 치고 흔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송수화기에선 삑삑거리는 통화 단절음만 울려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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