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야, 김형욱!
  똑똑히 들어, 앞으로 한 껀만 더 터지면 너 끝장이야!”
  어느새 달려와 울상을 하고 서있는 김형욱을 향해 박정희가 을러댔다.
  “각하! 은혜가 망극하옵니다.
  말씀 뼈에 새기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형욱은 아직 붙어있는 제 모가지를 쓰윽쓱 문지르며 청와대를 물러나왔다.
  그는 정보부 요원을 총동원 국내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수류탄 투척범의 행방을 찾는데 눈을 까뒤집고 덤벼들었다.
  김형욱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동두천 미군장교 살해사껀도 아직 범인의 행방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수사가 개미 챗바퀴 도는 형식이었다.
  표면상으론 경찰과 중정, 김형욱과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박정희의 생각은 다르다. 청와대 경호실과 중앙정보부에 경찰통제권을 맡긴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실제로 경찰이나 검찰, 군헌병, 기무사 등 모든 사찰, 정보 권력기관을 경호실과 중정이 계속 지휘 통제하고 있었다. 특히 김형욱은 검찰총장, 치안국장을 제 종놈 부리듯 수사 지휘권을 전횡하고 있었다.
  동두천 미군장교 살해사껀은 고정간첩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심증이 가지만 아무런 물적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도통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것이다. 경찰 수사력이 자유당 때 수준만도 못하다는 세간의 평이 나돌았다.
  군발이들이 하도 설쳐대니, 경찰은 기가 죽고 사기가 떨어져 일이 안된다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일제시대부터 이십년 삼십년 경찰밥을 먹은 경위, 경감, 총경들이, 군대 중위 대위 끝발만도 못하다는 세평인 것이다. 이런 판국에 경찰이 무슨 힘을 내서 수사를 하고 범인을 검거할 것인가.
  이런 답답한 판에 또 일본인 관광객을 향한 수류탄 투척사껀이 터졌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참으로 난감했다. 박정희 똥끝이 타고 김형욱의 모가지가 위험상태였다.
  그런 거야 강욱철이 상관할 바 아니었다.

  지금 당장 강욱철의 걱정거리는 맹봉사령 고충석의 행방이었다.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스몄는지 고충석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었다.
  그의 선친 고재명대장은 신출귀몰, 대담무쌍, 피실격허(避實擊虛)전법을 구사했었다. 여기에 고충석은 허허실실(虛虛實實)전법을 보태서 빈틈없이 자기 임무를 수행했다. 강욱철은 고충석의 이런 전법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가장 가까운 윤창현동지도 고충석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원래 일을 담당한 일꾼들끼리는 서로 모르는 것이 많아야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깃덩이는 예민한 감각신경을 가지고 있다. 일이 잘못되어 고문을 당하게 되면 고기덩어리의 감각신경이 이성을 마비시킬 수 있다. 이런 때를 대비해 동지 서로 모르는 것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
  강욱철은 기쁨과 기대를 안고 궁금증을 참아야 했다.
  동지애가 깊으면 깊을수록 동지의 신변이 위급할 때 위급에 비례해서 궁금증이 상승한다. 당해 동지의 위급은 우리 모두의 위급이고, 당해 동지의 안전은 우리의 모두의 안전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 한숙이의 일은 공개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미군 수사기관에서도 참여하고 있다.
  한.미 합동 수사전담반이 편성되어 있었다.
  미국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1945년 이래 미군장교가 주둔 현지 민간인의 손에 피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렇기도 하고 식민 종주국으로서 위엄을 보여야했다. 솔직히 말해서 본 때를 보여야 하는 것이었다. 수사는 진척이 없었다. 아직 답보상태에 있었다.
  민간인도 아니고 현역군인인데 펜타곤에서도 독촉이 성화같았다. 국무성이라고 가만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 대사를 통한 압력이 또한 대단했다. 박정희가 가장 무서워하는 용산기지 미군사령관인들 어디 독촉이 없겠는가.
  미8군 사령관이야말로 박정희의 직속상관이다.
  한국 국방장관이니, 각군 참모총장이니 하는 것들 임명해 놓아 보아야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군 통솔이야 그런대로 대강 대통령 명이 먹혀 들어갔다. 그런데 그것도 미8군사령관의 묵인 내지 허락하에서다.
  미군사령관이 한국 국방장관이나 각군 참모총장을 불러다 박정희 목을 따오라고 하면 곧장 박정희한테 총부리 거꾸로 돌려 댈 것들인 것이다. 임명장은 박정희가 주었어도 명령은 미8군사령관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이승만, 장면, 박정희를 막론하고 이들의 생사여탈권은 용산 주둔 미8군사령관 손에 달려있었다. 
  일의 내용이 이렇게 되어 있으니 요즘 박정희가 밤이면 악몽에 시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미국 어른들이 노발대발 박정희 목을 따라고 소리소리 지르는 것이었다. 아무리 꿈속이라 하지만 몸서리가 처지는 일이었다.

  이런 속 사정도 아랑곳없이 크라운중위 살해범 이한숙이의 행방은 묘연했다.
  겨우 신원파악은 되어 있으나 범행동기, 범행 후 도피 경로는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었다.
  막대한 인명피해를 낸 일본인 관광객을 향한 수류탄 투척 사껀 역시 수사에 별 진척이 없었다. 반정부, 반일행위에 빨간물이 들어도 시뻘겋게 든 자의 소행이었다. 기어코 잡아서 배후를 밝혀 내야 하는 것이다.
  박정희는 박정희대로 김형욱은 김형욱대로 퉁퉁 닳았다. 
  한시가 급한 일이었다.
  김형욱의 돌머리로선 우선 급한 김에 범인조작이 최선의 해결 방법이었다. 정보부 대공정보국에는 공안사껀 조작을 위한 예비인력이 차고 넘쳤다. 식은 죽 먹기는 이마에 땀이라도 나는데 공안사껀 조작에는 손바닥에 침 한번 바를 필요도 없는 것이다.
  미군 살해사껀은 몰라도, 수류탄 투척사껀은 북괴지령에 의한 공안사껀으로 그대로 조작이 가능한 것이다. 엉뚱한 인물을 가짜로 내세워도 누가 감히 다른 말을 할 수 없는 사껀이었다.
  폭발물 자체가 군사용이어서, 군부대에서 흘러 나와야 하는 것이다.
군용 폭발물을 정확한 목표장소에 투척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훈련된 자의 소행이 분명했다. 북괴 지령에 의한 공안사껀 조작에 필요한 조껀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것이다. 사회불안을 야기하기 위한 남파간첩의 소행이라고 발표를 하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지 않은가.
  이보다 훨씬 더 증거물이 모자라고 조작사항이 어수룩해도 얼마든지 공안사범 즉 가짜간첩, 간첩단사껀 같은 걸 조작해낸 경험이 풍부했었다. 조총련계 자금, 북괴의 공작금과 지령, 난수표 고정간첩과 접선. 같은 낱말을 넣고, 사회혼란, 정부전복사껀으로 몰아가면 딱 좋은 것이다.
  까짓 야당이고 언론이고 뭐 억누르면 되는 것이다. 만약 입을 뻥긋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야밤에 연행해다가 정보부 지하실맛을 보이는 것이다. 아니면 깡패 불한당 아이들을 시켜서 길을 걷다가 어깨 부딪쳤다고 시비를 걸어 반병신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선 며칠 새 행방불명이 되고 세상에서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김형욱은 제버릇 개 못주고 제 성질대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모가지가 떨어질까봐 조급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일본의 교또통신, 아사이신문, 마이니찌신문에 대서 특필된 선린동 수류탄 투척사껀 소식이 바람을 타고 솔솔 국내로 흘러들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AP통신 보도 소식도 입에서 입으로 입소문을 타고 암암리에 퍼져 나오기 시작을 했다.
  김형욱은 마음이 급한 김에 박정희의 재가도 없이 기자회견부터 열었던 것이다. 흥분된 상태의 김형욱은 의기양양하게 기자들 앞에 섰다. 사껀의 개요 전말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사껀 수사 결론부터 발표를 했다.
  선린동에서 발생한 일본관광객을 향한 수류탄 투척사껀은, 북괴가 밀파한 간첩단의 소행이었다는 것이다. 그 일당 3명을 모두 일망타진하였다. 그리고 그는 북괴 보위부소속 그 일당 3명의 신원을 밝히고 생포 간첩 3명의 얼굴을 언론에 공개 했다.
  김형욱 정보부장이 자신만만하게 ‘북괴 간첩단’ ‘일망타진’을 연발하는 단상 위에는 생포간첩 3명이 오랏줄에 묶인 채로 도열해 있었다. 머리칼이 쑤세미가 되어 까치집처럼 엉성하고 얼굴에는 상처와 핏자국이 얼룩진 채 고개를 떨구고 서 있었다.
  취재 기자들의 후렛쉬가 터지고 판에 박은 듯한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 감히 제대로 된 질문과 제대로 된 답변이 있을 것인가.
  취재진으로 위장한 기관원들이 진짜 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샅샅이 감시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짜여진 각본에 의해 그럴듯하게 진행이 되었다.
  김형욱이 노리는 것은 깜짝쑈를 벌여 박정희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외신 보도에 의해 북괴정권의 잔학상을 폭로하고, 범인들을 신속하게 일망타진 국내 치안의 안전성을 과시하는데 있었다.
  그런데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 만만하기만 하던가.
  비서실장 이후락이 호시탐탐 김형욱을 노리고 있었다. 사껀 조작의 전모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후락의 손으로 넘어갔다. 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정보부 대공정보국은 물론 6국에도 이후락의 밀정이 박혀 있었다. 김형욱의 사껀 조작 실태가 고스란히 박정희에게 보고되었다.

▲ 미 프레이저 청문회에 나선 김형욱[사진 : 인터넷 갈무리후 필터링]
▲ 미 프레이저 청문회에 나선 김형욱[사진 : 인터넷 갈무리후 필터링]

  이후락은 천하 간물 김종필에 버금가는 친일 친미 끈이 두 개 달린 사람이었다. 박정희가 잘못 머뭇거렸다간 일본 미국에도 그대로 사껀 조작 전모가 넘어갈 수도 있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김형욱이 한 껀 했다는 표정으로 박정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뭬야, 잇 쌔끼!
  이런 게 다 있어?! 잇 돌대가리...”
  박정희의 발길이 사정없이 김형욱의 뱃때기를 걷어 찬 것이다.
  말 한마디 덧댈 경황도 없이 김형욱은 창문 밖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이날로 김형욱의 중앙정보부장 자리는 이후락이 얻어차고 앉은 바 되었다.
  이후 김형욱은 비밀리에 미국으로 도망하여 박정희의 온갖 비리를 폭로하고 다녔다.
  김형욱은 이것을 미끼로 박정희와 흥정을 벌였으나 이에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눈물 콧물을 흘리며 박정희의 자비를 구걸하였으나 별무효과였다.
  훗날 김형욱은 박동선사껀(코리아 게이트) 증인으로 미 국회 청문회에 나갔었다. 남조선의 부패상과 박정희의 비리, 김대중납치사껀 음모 등을 폭로했다. 이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은 김형욱은 박정희의 사생활 비리까지 대대적으로 폭로할 계획을 세웠다. 자서전 형식의 폭로수단을 동원하고 있었다.
  보다못한 박정희가 정보부장 자리를 차고앉은 이후락을 시켜 손을 썼다.
  어느 날 갑자기 김형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낯선 동양인과 함께 숙소를 나선 김형욱이 말 한마디 없이 증발해버린 것이다.
  빠리에서 어디론가 빼돌려 죽여버렸다는 설이 있었다. 산채로 생매장을 했다는 설도 있었다. 분쇄기에 넣어 가루를 만들어 뿌려버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외교행낭에 넣어 청와대까지 끌고 왔다, 그리고 박정희가 직접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분풀이로 쏘아 죽였다는 소문이 떠들기도 했었다.
  아무튼 김형욱은 땅 위에서 없어져버렸다.
  또 한 번 중앙정보부의 위력 앞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가 박정희의 신임을 받아 중정부장 자리에 6년 동안이나 앉아있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는 동안 수많은 사껀들이 터지고 수습되었다.
  인민혁명당(인혁당)사껀, 동 베를린 공작단사껀, 1.21사태(김신조사껀), 통일혁명당(통혁당)사껀, 3선개헌파동등 큼직큼직한 사껀들이 그의 손에서 주물러졌다. 이 사껀들의 처리과정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난폭하고 치졸하고 무작스런 인품을 가졌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겠다.
  흔히 세간에서 악명 높았던 일제 밀정출신 특무대장 김창룡에 비견되는 악당이었다. 김창룡 뒤에는 이승만이가 있었고 김형욱 위에는 박정희가 있었지만서두 말이다.
  김형욱이 증발사껀을 두고 시중에 떠도는 말이 흥미거리였다.
  김창룡이를 제거하는데는 코쟁이들이 동의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그런데 김형욱이를 없애는데는 코쟁이들 동의 없이 그렇게 감쪽같이 일이 처리될 수는 없을 것이란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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