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자 샘의 혁신교육, 길을 찾다. 14] 책사모 모임에서
2016년 12월 17일 8차 촛불집회.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홍영미님은 구명조끼를 입고 자유발언을 했다.
“세월호 참사로 별이 되어서도 이 자리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단원고 2학년 8반 이재욱군의 엄마 홍영미입니다. 우리의 미래였습니다. 우리의 희망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간절히 이 순간을 응원하고 있을 아이들이 있기에 엄마 아빠들은 오늘도 뚜벅뚜벅 이 자리에 있습니다. 풍찬노숙과 밤잠을 이루지 못한 세월이 3년, 무엇보다 엄마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을 재욱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너희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그날까지 이 엄마는 멈출 수가 없다고 날마다 날마다 재욱이에게 이야기하며 이 자리에 있습니다.”

재욱이 엄마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슬픔을 견디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가야할 길이 멀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잊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여전히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옆을 돌아보니 더 많아지고 더 강해진 우리가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십니다. .....”
“박근혜를 구속하고 한상균을 석방하라!” “한상균을 석방하고 부역자를 처단하라!”
촛불을 들고 함께 구호를 함께 외쳤다. 재욱이 엄마의 발언은 나에게 깊은 책임감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지난 봄 제주강정국제영화제에서 홍영미님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지난 12월 5일에 노원구의 상계 문화정보도서관에서 두 번째로 만났다. 그날은 노원구의 엄마모임인 ‘책사모’엄마들과 ‘공감과 성장’을 주제로 마을의 엄마들을 초대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초대하는 사람들도 엄마들이고, 초대받는 사람들도 엄마들이기 때문에 소제목은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라고 설정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들에게 공감능력과 성장을 일깨워줄 수 있는 초대손님으로 홍영미님을 초대했다.
노원구는 혁신교육지구로 부모교육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했다. 부모교육을 받은 엄마들은 정기적으로 만나서 책도 읽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는 엄마모임을 만들었다. ‘책사모’도 그런 엄마모임 중의 하나로 ‘책을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나는 여러 차례 노원구의 부모교육을 함께 해왔다.

‘책사모’ 엄마들은 먼저 책을 읽고 대화를 하면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책사모’ 엄마들은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엄마들과 함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촛불의 의미를 공유하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성장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공감과 성장’을 교육할 수 있으려면 세월호 유가족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욱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우리 프로그램의 의미와 진행과정을 설명했다. 함께 마을의 평범한 엄마들 속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엄마들에게 우리아이들과 우리사회에서 엄마라는 소중한 역할을 돌아보면서 공감하는 시간을 가져보자고 했다. 한 번도 리본을 달아보지 않았던 분들의 손을 잡아주는 마음으로 와 주시라는 당부를 하기도 했다.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 거대한 배움의 장을 안내할 것인가!’ 밤을 꼬박 세며 읽기자료와 활동지를 만들었다. 먼저 공감능력과 자존감에 대해 살펴봤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돌아오렴’이라는 책의 앞장을 함께 읽었다.
‘.....아이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동네에는 한 달이 넘도록 장례식이 이어졌다. 온 마을이 상가였다. 안산은 250여명의 아이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슬픈 도시가 됐다. 가슴에 통증이 계속 몰려왔다. 그 순간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영혼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생자들과 우리 하나하나는 뿌리가 같은 영혼의 나무처럼 서로 연결돼 있었다. ‘아, 한 사회에서 함께 산다는 건 이렇게 서로 깊게 연결되는 것이구나.’
도종환시인의 ‘화인’이라는 시를 낭송하고 난 후, 세월호 유가족들의 세월호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투쟁의 여정을 담은 화면을 보면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노래를 배웠다. 재욱이 엄마는 재욱이가 아주 소중한 존재였다고 이야기했다. 엄마들은 공감했다.
재욱이가 그렇게 떠난 것이 실감나지 않아서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진상규명을 해야만 한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모두 소중하다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행복하도록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더 많이 안아주시라고 했다. 엄마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들은 재욱이 엄마와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하는 노란 엽서를 쓰고 노란 리본을 가져갔다. 그리고 재욱이 엄마는 머뭇거리는 엄마들을 깊이깊이 안아주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미소로 엄마들을 위로하고 공감해줬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만을 들여다보면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를 보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또 다른 나의 모습입니다. 공감능력이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느끼는 능력입니다.”



박미자 샘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잠시 쉬며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로 있으며 담쟁이 조합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중학생, 기적을 부르는 나이’와 ‘중학생, 아빠가 필요한 나이’외 다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