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자 샘의 혁신교육, 길을 찾다. 13] 중고생시국선언

2016년 11월 5일 오후 2시.

광화문 광장에서는 백남기님의 영결식이 있었다. 백남기님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317일 동안 투병하다가 사망했다. 그리고 검찰의 부검시도로 사망한지 41일 만에 장례를 치르게 됐다. 박근혜정권의 살인적인 폭력으로 희생된 백남기님은 평화와 생명의 길을 실천해 오신 선량한 농민이었다. 세종문화회관 정문 계단에서 백남기님의 영결식을 바라보던 중고생들은 ‘박근혜 하야! 중고생 연대 시국선언’을 시작했다. 

중고생연대 시국선언문은 ‘교육의 주인이자 역사의 주역인 중고생들이여, 다시 한 번 일어나서 헬조선을 끝장내자!’는 구호로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중고생들의 삶은 어떠하였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기득권의 노예로 길들여지기 위해 의미 없는 입시교육만을 받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중고생들이 힘들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동안 박근혜정권의 비선실세 딸인 정유라는 고등학교를 28일 만에 졸업하고 이화여대를 한순간에 입학했음을 폭로했다. 시국선언문의 마무리단계에서는 ‘이러한 시국에서 중고생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라고 질문했다.

3.1운동과 4.19혁명 등 역사적 상황 속에서 중고생들이 참여했던 의미 있는 역할을 강조하면서 역사의 주역이라는 짐을 다시 한 번 짊어지자고 촉구했다. 중고생연대 시국선언문은 구호로 마무리됐다.

“중고생들이여, 함께 뭉쳐 헬조선을 끝장내자! 무능한 박근혜정권을 몰아내고 우리를 괴롭혀 온 교육체제를 갈아엎자!”

중고생들은 시국선언을 하는 동안 “# 하야하라 박근혜”라는 피켓을 들었다. 중고생들이 손으로 써온 각자의 다양한 피켓들은 그대로 중·고등학생들의 생활상의 걱정과 애환을 담은 내용이었다.

“내일이 시험이다. 시험이 대수냐. 나라가 미쳤다.”

“공부가 손에 잡히겠냐 박근혜 하야하라”

“양심 있냐?”

“저희가 배웠던 민주주의는 어디 갔습니까?”

“이런 나라에서 공부를 해도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참을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 헌정유린”

학생들이 들고 있는 피켓들을 읽으면서 학생들의 재치에 웃음이 나오는 한편 안타까움으로 목이 메어왔다. 우리 학생들과 함께 더 좋은 교육,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할 어른으로서의 무게와 엄청난 책임감이 밀려왔다.

학생들은 현재 896명의 청소년들이 중고생 시국선언에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11월 12일의 민중총궐기대회에는 민주주의를 살리겠다고 나서는 청소년들이 모두 모이는 청소년시국대회를 개회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대회를 마쳤다.

중고생들이 4시에 시작된 민중대회의 대열 속으로 들어올 때 박수와 함께 눈물이 흘러나왔다. 학생들이 걷는 모습,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하나 하나가 아름다운 꽃송이들로 다가왔다. 500여 꽃송이들로 시작된 중고생선언은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미래가 됐다. 

중고생들이 대열의 앞을 채우고 대학생시국회의 청년학생들이 어린 학생들을 감싸듯이 광화문을 가득 채웠다. 박근혜 퇴진 범국민대회는 왜 우리가 반드시 정의로운 나라,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광화문네거리에서 서울시청 앞 사거리까지 남대문까지 사람들이 가득 찼다. 밤늦도록 촛불은 출렁거리고 이글거렸다.

11월 5일, 중고생들은 광화문을 넘어 부산과 대구, 제주, 광주, 전주, 세종, 창원, 진주.....전국적으로 집회가 촛불집회가 있었던 모든 지역에서 참가했고, 당당하게 발언했다. 

중·고등학생들의 집회참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와 걱정을 한다. 그러나 많은 수의 중고생들이 내용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면 어른들은 우려와 걱정을 넘어서 감동을 하게 된다.

중고생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정의로움이다. 그리고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의감의 기준은 공평함에 바탕을 둔 상호존중의식이다. 사실 중고생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회와 정치활동에 관심이 많다. 기회가 생기면 적극적으로 실천

▲ 진주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있는 중고생들

하고 참여한다. 중고생들이 의혹을 갖는 문제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면 그들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탐색하고 질문한다.

세월호 참사로 많은 학생들이 사망했을 때, 중고생들이 가장 많이 울었고 안타까워했다. 이번에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사태’에 대해서도 청소년들이 많은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사회적 갈등이나 부조리한 현상들에 대해서도 자기들끼리 토론하면서 합리적인 문제해결방안을 찾아가는 능력이 있다.

이번 11월 5일, 중고생들은 중고생 선언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여러 날 고민하고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쭈뼛거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범국민대회에서 자신들을 존중하며 사랑하는 많은 어른들의 박수와 응원을 받으며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이 넉넉해졌을 것이다.

중고생이 어른들을 응원하고 어른들이 중고생을 응원하는 정의로운 광장에서 우리는 함께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었다.

▲ 지난 11월 3일 헌법책과 함께 한 중학생 토론수업
▲ 지난 11월 3일 헌법책과 함께 한 중학생 토론수업
▲ 지난 11월 3일 헌법책과 함께 한 중학생 토론수업

 

박미자 샘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잠시 쉬며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다.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 상임이사로 있으며 담쟁이 조합원이기도 하다. 저서로 ‘중학생, 기적을 부르는 나이’와 ‘중학생, 아빠가 필요한 나이’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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