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14)

달러 지위를 둘러싼 논쟁

미국의 상대적인 경제력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달러의 운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사실 1971년의 금-달러 교환 정지 선언 때부터 있어 왔으며, 1980년대 중반 일본이 부상할 때, 1999년 유럽연합이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도입했을 때,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달러의 지위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부상으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는 논의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달러 지위가 여전히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달러의 지위를 둘러싼 논쟁의 한 가지 특징은 그것이 정치적인 입장에 따른 대립 현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보로 분류되는 연구자들 가운데서도 달러 지위 약화론의 입장에 서기도 하고 거꾸로 달러 지위 불변론의 입장에 서기도 한다. 보수로 분류되는 연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주류 이론가들 가운데 달러 지위 약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로 미국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의 확대를 든다. 예컨대 옵스펠트&로고프, 루비니 같은 연구자들은 지폐(달러) 발행과 투자 수익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는 체제는 달러 신인도에 문제가 생기거나 금리가 상승하면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달러 가치를 유지해주던 현재의 자금 순환체제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한다.

진보학자들 역시 미국의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 누적이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달러 지위 약화론을 주장한다. 예컨대 아리기(Arrighi G.)는 “축적의 체계적 순환(systemic cycle of accumula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 좀 독특한 주장을 편다. 그는 헤게모니 기반이 변하는 역사적 과정을 물질적 팽창 시기와 금융적 팽창 시기로 구분한다. 이는 각각 헤게모니 힘이 올라가는 시기와 내려가는 시기에 대응한다. 그에 따르면 20세기 후반 미국의 금융 팽창은 이어지는 세기의 미국 헤게모니의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19세기 말 대공황(1973~94)과 1970년대 이후(구체적으로 1973~93)의 지속적인 침체를 비교하면서 그 공통점으로 제조기업 이윤율의 하락, 경쟁 압력의 강화, 체제 전반의 과잉 축적에 따른 금융화의 진전을 든다. 아리기는 제조기업들의 수익이 하락하자 그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투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금융의 유동성과 금융 축적으로 자금을 돌렸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수익성이 떨어진 제조기업들은 마지막 피난처를 화폐 금융시장에서 발견하고, 그리하여 금융이 팽창하지만, 이는 한 나라의 중추를 형성하는 제조기업들이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 따라서 헤게모니가 황혼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금융화의 귀결은 수지 적자 증가에 따른 국가 채무의 증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아리기는 이 채무 문제가 결국 헤게모니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20세기 초반 영국의 헤게모니 쇠퇴는 19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금융의 팽창과 그에 이은 채무의 증가 때문이었다. 미국도 현재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이 아리기의 시각이다. 미국은 대외 채무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 세금을 더 걷는 방안은 사실상 대안으로 고려하지 않는다. 결국 미국에게는 대외 채무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국제통화인 달러의 지위를 이용해서 화폐를 추가로 발행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는다. 그런데 달러의 지위를 유로화와 위안화가 위협할 것이므로 그 결과 달러의 지위는 점차 약해질 것이라고 아리기는 설명한다.

미국의 수지 적자 누적이 제국의 특권적 지위를 증명하는 것이지 미국 헤게모니 약화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달러가 여전히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주류 이론 가운데는 미국과 중국이 운명 공동체이므로 쉽게 헤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닐 퍼거슨의 “차이메리카론”, 미국이 대외 자산보다 대외 부채가 많은 데도 투자 수익을 올리는 데는 미국이 가진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암흑물질(dark matter) 이론”, 현재의 달러 시스템이 과거의 브레턴 우즈 체제처럼 나름대로 안정적이라는 “브레턴 우즈 II론”, 세계 경제가 여전히 달러 트랩에 갇혀 있다는 “달러 트랩론” 등이 있다.

*** 차이메리카는 차이나와 아메리카의 합성어로, 중국과 미국이 운명 공동체임을 나타내기 위해 영국의 보수주의 금융학자인 닐 퍼거슨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 영국 파운드 지위 약화 과정에서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세계시장에서 영국의 산업적 우위는 기울기 시작했지만 거꾸로 금융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금융의 성장으로 영국 내의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18세기 후반을 기점으로 이 이전 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상승했던 실질 임금 수준이 그 이후에는 역전되어 전반적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임금의 하락과 때를 같이하여 영국 중심의 세계자본주의 체계는 위기에 마주쳤다(Giobanni Arrighi 2007).

여기에서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도 출신 학자인 프라사드(Eswar S. Prasad)의 달러 트랩론만을 보기로 한다. 달러 트랩론에 따르면 미국의 달러가 그 지위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근거로 1) 미국의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계 최대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 2) 거래의 단위이자 교환의 매개체로서 달러화의 역할은 장기적으로 줄어들 것이지만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달러화 지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점, 곧 미국 달러로 표시되는 금융자산, 특히 미국 국채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 3) 미국 국채는 여전히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점, 4) 외국인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 발행액의 절반가량을 보유하고 있는데, 미국의 달러가 약해지면 주변국들은 자국 통화가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주변국의 외환보유고가 늘어나 준비통화로서 달러화의 중요성이 오히려 강해지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Eswar S. Prasad 2014). 실제로 외환준비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최근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지금도 60% 정도를 차지한다[표 1].

스트레인지(Susan Strange)로 대표되는 그람시학파 국제정치경제학 연구자, 그리고 파니치(Leo Panich)와 같은 진보 연구자들도 미국의 달러 패권이 건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의 핵심 근거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글로벌 수준 확산, G7와 같은 비공식 기구들의 활동, IMF나 세계은행과 같은 제도화한 기구 등을 통해 행사되는 이른바 “구조적 권력”과, 달러 이외에는 현재로서는 국제통화로 기능할 수 있는 대안 통화가 없다는 점, 그리고 영국의 파운드화 몰락과정에서 보듯, 국제통화로서 갖는 지위가 장기에 걸쳐 변화한다는 점 등을 든다.

논의의 평가

위에서 달러의 지위에 대한 전망과 관련한 논의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위 논의의 특징은 달러의 지위를 나라들 사이의 관계에서 주로 살펴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달러는 미국과 주변국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여러 조건들의 변화에 따라 지위가 결정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미국과 중국의 관계 변화는 달러의 지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미국과 주변국들의 노동 생산성의 상대적 격차도 마찬가지로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달러의 지위는 대내적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대내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달러 지위에 대한 전망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대내적 요인이란 달러 특권을 활용하려는 정책, 곧 달러 발행과 유통을 확대하려는 미국의 정책이 미국 내에서 불평등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 불평등 문제가 달러 지위의 발목을 잡는 근본적인 요인일 수 있다.

2014년 10월,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던 옐런(Jarnet L. Yellen)은 한 컨퍼런스에서 미국의 불평등 문제를 주제로 삼은 중요한 연설을 했다. 이는 3년마다 공표되는 ‘소비자 금융 조사(Survey of Consummer Finances)’ 자료를 연준이 정밀하게 분석하여 얻은 결과에 기초한 것이었다. 옐렌에 따르면 미국의 불평등 수준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나빠지는 추세를 보였다. 분석 결과는 지난 100년에 걸친 기간에서 현재가 가장 불평등이 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득을 기준으로 볼 때, 1989년부터 2013년 사이에 상위 5%는 38%가 증가했는데, 하위 95%는 10% 증가에도 미치지 못했다[그림 1].

부의 분배는 소득 분배보다 불평등 정도가 훨씬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그림 2]. 옐런에 따르면 미국 최상위 5%가 차지하는 부의 비중이 1989년에는 54%였는데, 2010년에는 61%로 늘어났다. 미국 양적완화 효과가 나타난 이후인 2013년에는 그 비중이 63%로 더 늘어났다. 하위 50%의 부는 1989년 3%에서 2013년에는 1%로 오히려 줄어들었고, 그 가운데서도 하위 20%는 부를 아예 보유하지 못했다. 금융자산만을 분리해서 봐도 전체자산과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2013년 기준으로 최상위 5%는 전체 금융자산의 3분의 2를 보유했고, 그다음 45%는 3분의 1을 보유했지만 나머지 50%는 2%만을 보유했다(Jarnet L. Yellen 2014).

옐렌은 미국의 불평등이 심해진 이유를 연설에서 밝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스티글리츠는 미국의 자산 불평등의 중요한 원인으로 금융정책을 꼽고 있다(Joseph E. Stiglitz 2016). 미국의 불평등 확대가 금융정책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최근의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자산 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폈는데, 이것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자산 가격 상승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양적완화 정책의 효과를 살펴보면 그것이 미국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에서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달러 발행과 유통에서 파생된 미국 내의 자산 불평등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가 달러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달러 정책이 주변 국가들에서도 자산 불평등을 증대시킨다는 점이 달러 지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달러 정책은 모순적인데, 미국이 달러 이득을 확대하려고 하면 미국 내에서 불평등이 증가하고, 따라서 달러의 지위가 약해진다. 거꾸로 미국이 자국 내의 불평등을 완화하려 한다면 달러 이득을 확대하는 정책(곧, 신자유주의 정책)을 포기해야 하지만 이를 전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참고 문헌]
Giobanni Arrighi(2007), Adam Smith in Beiijing: Leaneage of Twenty-Fist Centry, 김진아 옮김(2009), 『베이징의 아담 스미스; 21세기의 계보』, 도서출판 길.
Eswar S. Prasad(2014), The Dollar Trap, 권성희 옮김(2015), 『달러 트랩』.
Hausmann, R.&Sturzenegger, F.(2006), “Implications of Dark Matter for Assessing the US External Imbalances”, CDI Working Paper, No 137.
Joseph E. Stiglitz(2016), The EURO, 박형준 역(2017) 『유로』, 열린 책들.
Jarnet L. Yellen, “Perspective on Inequality and Opportunity from the Survey of Consumer Finances”, Board of Governors of the Federal Reserve System at the Conference on Economic Opportunity and Inequality, FRB of Boston, 2014.10.

원문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lec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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