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11)
경상수지(상품/서비스 수지를 포함하는)에서 미국이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고 일부 주변국들이 지속적으로 흑자를 내는 현상은 글로벌 불균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 글로벌 불균형이 누구 때문에 생긴 것인가에 대해서는 서로 대립하는 주장이 있다. 주변 흑자국들은 미국이 달러를 과도하게 발행하여 주변국들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사들였기 때문에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곧, 미국 정부와 국민들이 저축을 하지 않고 빚을 내서 과도한 소비를 한 탓에 미국의 경상수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 흑자국들은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에서 미국이 달러 발행에서 절제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적자국인 미국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예컨대 미국의 버냉키(Bernanke S. Ben)는 2005년, 미국 연준 의장일 당시, 한 연설에서 주변국들의 과잉저축(Saving Glut)이 글로벌 불균형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에 따르면, 주변 흑자국들이 무역에서 벌어들인 많은 달러 자본, 곧, 과잉저축을 국내에서 적절히 소비하지 않고 미국으로 다시 되돌리기 때문에 미국이 과잉소비국으로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Bernanke S. Ben). 그는 내심 미국의 과잉 소비가 주변 흑자국의 과잉 저축을 어쩔 수 없이 반영하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글로벌 불균형의 책임이 미국이 아니라 주변 흑자국에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버냉키에 따른다면 글로벌 불균형의 책임이 주변 흑자국에 있고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할 주체도 그들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과잉저축론은 흑자국들이 환율을 조작하여 흑자를 많이 내고 있다는 논리를 함의한다. 이는 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들이 환율을 내려서 스스로 흑자를 줄여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실제로 미국은 이러한 논리에 따라 주변 흑자국들에 대해 환율을 내릴 것을(환율을 조작하지 말 것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 같은 버냉키의 논리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크루그먼(Krugman P.)이나 파이낸셜 타임스(FT)의 수석 논설위원인 마틴 울프(Martin Wolf) 같은 사람들도 동조를 한 바 있다.
달러를 발행하여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는 전략을 옹호하는 버냉키의 주장은 “글로벌 과잉 저축론”으로 불린다.1)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옹호하는 또 다른 논리는 “세계의 벤처 캐피탈리스트론”이다. 이를 주장하는 구린차스와 레이Gourinchas and Rey)에 따르면 미국이 과거에는 낮은 수익률을 높은 수익률로 바꾸어주는 “세계의 은행” 역할(대출 중심)을 했다면 이제는 세계의 모험 투자를 주도하는 벤처 캐피탈리스트 역할(증권투자, 직접투자)을 한다는 것이다(Gourinchas and Rey 2007). 그들은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를 넘는 대규모 자본을 끌어들이고 이 경상수지 적자분을 메우고 남는 부분을 대외 투자에 돌린다고 주장한다. 그들 주장의 핵심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든, 대외 투자든 이것이 달러 특권을 활용한 결과라기보다, 오히려 세계의 모험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구린차스와 레이가 세계의 벤처 캐피탈리스트론과 대비시키며 언급한 “세계의 은행론”은 벌써 1960년대 후반에 등장했다. 당시 미국은 국제수지 적자를 겪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적절한 설명 틀로 세계의 은행론을 내세우는 연구자들이 있었다. 세계의 은행론 주장을 간단하게 나타내자면, 미국이 국제수지 적자를 내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의 은행론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①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는 유럽의 높은 달러 수요 때문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불균형의 지표가 아니다.
② 미국이 장기자본 수출을 통해 공급한 달러가 단기의 달러 자산 형태로 미국 은행제도 속으로 들어온다면 미국은 일종의 국제 금융중개기관 기능을 수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곧, 미국은 장기로 대출하고 단기로 차입하는 세계의 은행(world bank) 역할을 수행한다.
③ 세계시장에 유동성 잔고가 많다는 것이 세계의 은행으로 기능하고 있는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 문제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기준은 아니다(Emile Despres, Charles P. Kindleberger, Walter S. Salant 1966).

세계의 은행론에서는 미국을 은행으로, 그리고 주변국들을 기업으로 간주한다. 은행과 기업의 차이는 은행은 신용화폐를 발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부채를 만기에 상환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파산해야 하지만, 은행은 부채를 화폐로 유통시킬 수 있고, 따라서 부채 지급을 미룰 수 있다. 미국은 신용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은행과 같기 때문에 국제수지 적자 문제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세계의 은행론에서는 국제통화 달러를 은행 신용의 화폐 형태, 곧 신용화폐로 간주한다. 킨들버거(Charles P. Kindleberger)는 달러도 어음에서 유래한 신용화폐라는 측면을 강조하면서 달러의 유통이 국제적 어음의 유통법칙을 따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미국의 달러 공급은 국제 상품 거래와 자본 거래라는 수요에 대응해서 신축적으로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이지 달러 과잉 발행은 없다는 것이다. 세계의 은행론자인 킨들버거가 얘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세계시장을 향한 달러의 발행이 주변국의 수요에 따른 것이지 미국이 달러를 전략적으로 이용한 데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과잉 저축론, 미국의 세계 벤처캐피탈리스트 역할론과 세계의 은행 역할론 등은 모두 미국의 달러 발행과 유통의 확대를 옹호하는 데 이용되고 있는 논리들이다. 이들 논리의 핵심은 미국이 달러 발행을 늘려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책임도 미국이 아니라 주변국에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본문 주석]
1) 버냉키는 2002년에 “미국 정부는 첨단기술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쇄기이다”고 말한 바 있다(Paul Mason(2016)에서 재인용). 버냉키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미국은 언제든 인쇄기를 돌려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
Ben S. Bernanke(2005), “The Global Saving Glut and the U.S. Current Account Deficit”, at the Sandridge Lecture, Virginia Association of Economists, Richmond, Virginia
Emile Despres, Charles P. Kindleberger, Walter S. Salant(1966), The Dollar and World Liquidity: A Minority View, Brookings Institution.
Pierre-Olivier Gourinchas & Hélène Rey(2007), “International Financial Adjustment”,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Vol. 115, No. 4 (August 2007).
원문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lecon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