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평가와 한국의 당 건설(17)
본문 요지
현재의 민주노총은 ‘기업별 노조의 형식상 연합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은 ‘민주집중제’에 기초한 진정한 상급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대기업노조와 산별‧연맹 조직의 독단적 행동을 제어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정규직-비정규직으로의 분리가 더욱 정교화하고 고도화함에 따라 과거 전노협 당시보다도 훨씬 강력한 ‘연대체계’를 요구하는 시기이다.
4. 정규직-비정규직 ‘상생 연대조직’ 건설
1) 비정규직문제 해결의 열쇠
2) ‘상생 연대조직’의 역할
3) 왜 기존 민주노총 체계만으로는 부족한가?
3) 왜 기존 민주노총 체계만으로는 부족한가?
정규직-비정규직 연대의 실현을 위해 꼭 독자적인 연대조직을 따로 만들어야 할까? 산별노조나 기존 민주노총 체계를 통해서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이제 이 문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해 보도록 하자.
산별노조를 건설하게 되면 정규직-비정규직의 연대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견해가 한 때 노동운동 일각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실제 이를 위해 산별건설에 매진한 활동가나 연구자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대표적 산별조직인 금속노조를 보자면, 산별노조의 본연의 업무라 할 수 있는 ‘산별교섭’이 지금까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자동차 3사(현대차‧기아차‧GM대우)와 같은 대기업노조들이 모두 빠진 채 중‧소 부품사노조 위주로만 형식적 산별교섭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전체 규모도 2~3만 명밖에 안 되며 이는 금속노조 전체 조합원 18만 명의 20%도 못 미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 때문에 ‘무늬만 산별’이란 얘기가 나온 지 오래이며, 애초 기대했던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연대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위의 산별노조 건설 주장과는 조금 다르게, 민주노총 내 ‘비정규직 사업부’ 강화를 통해서 총연맹 내 비정규직 전국체계를 먼저 건설하고, 최종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 대단결을 이루어보자는 방안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이 역시 ‘산별 건설’을 통한 대단결보다 나을 것이 없다. 오히려 그 실현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보여 지는데, 왜냐하면 산별은 그래도 나름의 ‘직업적’ 내지 ‘기술적’ 동질성이 존재하지만, 비정규직은 신분상의 추상적 동질성 또는 처우상 차별받는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매개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직들끼리 일상적으로 공동투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또 일상적 공동투쟁을 생략한 채 곧바로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는 전국투쟁을 벌이기는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철폐’ 요구는 사실상 ‘재벌체제 타도’와 동일한 성격의 요구이며, 이 때문에 정치투쟁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정치투쟁은 오직 일상적인 비정규직투쟁의 탄탄한 기초위에서만 가능하기에 결국 순환논리에 빠지고 만다.
이처럼 산별을 통해서든 민주노총 비정규직 사업부의 강화를 통해서든 그것들이 잘 안 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 상층 노동조합 조직들이 그동안 밟아왔던 역사적 과정을 무시한 때문이다. 지금의 민주노총과 산별체계를 어떤 사람은 ‘의사(疑似)코포라티즘’이라고 부른다. 마치 한국노총의 1960~1970년대 체계와 비슷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의사코포라티즘’은 실력이 없는 상급단체가 하급조직에 군림하려는 일종의 관료주의적 경향을 지칭한다. 즉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은 기업별노조 수준에서 이루어져 상급조직이 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도, 상급조직은 하부조직에 대해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1)하려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같은 지적은 지금의 민주노총체계의 문제점을 상당히 정확하게 짚고 있다고 생각된다. 현 민주노총의 핵심 문제는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에 있다. 민주노총은 ‘기업별 노조의 형식상 연합체’라 할 수 있는데, 즉 ‘산별노조들의 총연합체’가 아닌 ‘기업별노조에 기반한 산업‧업종연맹들의 총연맹체’2)라는 점이다. 이 양자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궁극적인 권력이 연맹조직이 아닌 ‘기업별노조’에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현 민주노총체계의 구조와 운영 기제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총연맹인 민주노총은 산업‧업종연맹에 의존하며, 후자는 다시 소수 핵심 대기업 노조에 의존한다. 과거 한국노총 체계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뒤에 서술한 부분인데, 자본과 권력은 전체 노동운동을 통제하는데 있어 과거에는 상급조직인 관료집단만 통제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기층 핵심 대기업노조에 대한 통제 또한 필수적이다.
민주노총은 우선 산업‧업종연맹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사업 결정권이나 집행의 실질적 권한은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사무금융노조, 병원노조와 같은 산업‧업종연맹이 가지고 있다. 예컨대,
“민주노총은 산업‧업종연맹을 통하지 않고서는 기업별노조에 대한 지원이나 지도는커녕 접촉조차 할 수가 없다. 의무금도 산업‧업종연맹을 통하지 않으면 민주노총에 납부조차 할 수 없다. 민주노총은 산업‧업종연맹이 움직이지 않으면 총파업을 결의도 집행도 할 수 없다. 그렇기때문에 민주노총은 인력, 재정, 투쟁, 사업 등 모든 면에서 산업‧업종연맹을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민주노총의 거의 대부분의 사안이 사전에 임원‧산별 대표자회의를 거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결정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러한 조직구조 때문이다.”3)
민주노총은 따라서 이들 산업‧업종연맹에 의한 과두지배체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시 이러한 산업‧업종연맹을 움직이는 것은 그들 내에서도 거대한 지분을 갖고 있는 ‘소수 대기업노조’이다. 1995년 창립 당시 민주노총은 총 907개 노조 중에서 조합원의 규모가 500인 이상인 161개 노조(17.7%)가 전체 조합원의 73%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중 조합원 규모 5000인 이상의 13개 거대 노조(1.4%)가 전체 조합원의 27%를 차지할 정도로 대기업 노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게다가 조합원 1000명당 1명의 대의원이 배정된 규약 때문에, 민주노총 창립에 참가한 861개 노조 중 최소한 3분의 2 이상의 노동조합이 대의원을 배정받지 못했다. 이 같은 조직 규약은 대기업 노조의 대표성을 과도하게 만들었으며, 그 때문에 자본은 이들 소수 대기업 노조만 잘 통제하면 전체 한국 노동운동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노총의 모든 문제는 결국 이 같은 단사 위주 조직구조에서 발생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이 ‘단사 중심주의’가 강한 이유가 이 때문이며, 이로 인해서 노동자들은 자본에 의한 대기업-중소기업, 원-하청 분리전략에 쉽게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일견 산별‧업종연맹이나 민주노총 같은 상급조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자칫 이러한 본질이 은폐되기 쉽다. 자본은 이런 현 민주노총 구조를 이용해 ‘대기업 이기주의’를 조장하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금의 구조가 와해되지 않도록 각별한 신경을 쓴다. 예컨대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상대적 고임금과 고용안정을 보장하면서, 대의원 이상 노조간부들에 대해선 일대일 밀착 관리와 매수‧회유를 통해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한다.
결국 자본은 대기업노조를 통해 전체 한국 노동운동을 관리하고 있는 셈이며, 그 중간에는 이 같은 자본의 의도에 순응하게끔 만드는 ‘산별과 민주노총 체계’가 존재한다. 앞서 ‘의사코포라티즘’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자본은 밑으로는 핵심 대기업노조를 포섭하고, 위로는 상급조직을 통해서 전체 한국 노동자계급에 대한 관리를 실현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 한양대 전태일 기념제에서 단상에 등장한 전노협 깃발[사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news/photo/202104/11661_24549_2612.jpg)
현재의 민주노총 체계의 형성은 역사적 과정을 밟았다. 1990년 결성된 전노협은 ‘지역연대’에 기초했다는 건강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당시 막 탄생한 민주노조들은 무엇보다도 조직 사수가 일차적 과제이었다. 특히 중소 사업장 노조들의 사정이 절박하였으며, 그들 기업주는 대부분 영세자본인 관계로 재벌 대기업보다도 양보할 여지가 적었다. 또한 노조 규모가 작아서 기업주가 구사대를 동원해 침탈하기가 용이하였다. 이에 비한다면 대기업노조는 자본의 직접적인 정면공격이 힘들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이리하여 자본은 대기업노조에 대해선 회유와 매수 같은 간접적 통제 전략으로 전환하는 한편, 물적 토대가 취약한 중소기업의 민주노조에 대해선 직접적 탄압으로 나갔다. 이리하여 ‘지역연대’는 사실상 중소사업장의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전노협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집중 공세는 바로 이 같은 중소기업과 대기업 노조 간의 연대 고리를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만약 이 고리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 착취를 감행할 수밖에 없는 한국 자본주의의 특성상 통치세력은 끊임없는 ‘계급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밖에 없게 된다.4) 계급전쟁을 지역차원에서부터 허용함으로써 결국 전국적으로 그것이 일상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이 전노협의 필연적 좌절을 결정 짓게 만든 객관적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기업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연대 저지는 한국 자본가계급에게 있어선 사활적인 이해가 달린 문제였으며, 그 관건은 지역차원의 연대 고리를 차단하는데 있었다. 이 경우 전위정당이 부재했던 당시의 노동자계급 주체역량을 고려한다면 승패는 이미 결정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전노협은 와해되고 그보다는 좀 더 느슨한 전국적 연대조직으로서의 ‘민주노총’이 설립되었다. 이는 한국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이 찾아낸 일정한 균형점이라 할 수 있다.5)

되돌아보면 1992년은 민주노총 탄생의 분수령이 된 한 해였다. 그해 전국노동자대회 때 ILO 공대위로 묶인 노동자들이 총 40만 명이나 결집했다. 그것은 전투적인 전노협 세력에 대해 국가와 자본이 줄기찬 탄압을 퍼붓는 가운데 이룬 성과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처럼 노동운동이 끊임없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통치세력은 위기의식을 갖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그들은 전략을 바꾸었다.
“그들은 ‘분할지배전략’을 통해 전노협은 탄압하고 배제하는 대신, 대기업 사업장의 노조들은 실리로 유혹하고 사무전문직 업종노조들은 합법화시켜줌으로써 민주노조운동세력을 분열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전노협, 업종회의, 대기업 노조들이 연대하여 전국노동조합 대표자회의(이하 전노대)를 결성하고 이를 통해 민주노총의 건설로 나아가려고 하자, 국가와 자본은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미끼로 지역연대조직에 기초한 전노협을 청산하도록 유도했다. 그리하여 민주노총의 운동노선을 둘러싼 노선투쟁 과정에서 주도권을 잡은 사회개혁‧개량주의적인 세력들이 이러한 국가와 자본의 ‘민주노총 합법화전략’에 호응함으로써 전노협은 결국 청산되고 말았다.”6)
이상의 전노협 와해의 필연성을 불러온 객관적 조건을 따져 보자면, 그것은 다름 아닌 ‘재벌체제’였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대외 종속적인 수출주도형 경제체제 하에서 선진국 자본에 비해 기술상 열세에 처한 재벌로서는 이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내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를 필요로 하였다. 재벌의 이 같은 요구는 전체 노동자계급 내지는 그것이 어려울 경우엔 최소한 소수 대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대해 관철되어야만 하였다. 그를 위한 필요조건은 무엇보다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분리이었으며, 중소기업 ‘민주노조’에 대한 탄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재벌체제는 이 밖에도 산별·업종 조직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추상화하는 작용도 하였다. 자동차와 조선 등 업종 내 직업적 동질성은 확실히 객관적으로 존재하였지만,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 완성사와 부품사 간 분리 같은 ‘이질적’ 요소의 주입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산별적 단결’은 방해 받았다. 이들 ‘이질적’ 요소는 다름 아닌 ‘재벌체제’와 관련이 있었으며 그 지휘 하에서 공고화 되었다. 이리하여 한국적 현실에선 재벌로 인한 이질성이 산별적 동질성을 압도한다.
2000년대 들어 본격화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리는 기존 중소자본과 대자본, 원-하청을 통한 노동자들의 분리를 한 단계 강화시키고 고도화(세분화, 정교화) 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 조류에 편승하고, 또한 정보통신과 모듈화라는 기술적 발전을 그 토대로 삼았다. 그것들은 ‘기업’ 단위로 조직되던 기존의 분업 및 작업 공정을 끊임없이 ‘재벌’의 요구에 맞춰서 재조직하였는데, 소위 ‘네트워크’ 식 조직, ‘기업 생태환경’ 개념, 현대차의 ‘직서열 생산방식(JIS)’ 등이 그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기존의 종속적 원-하청 관계에 더해 ‘사내하청, 외주화’와 같은 새로운 형식이 창출되고 보편화되었다. 이는 한국의 재벌체제하에서 본래의 ‘기술적 관계’가 노동자들 간의 ‘신분상 차별 관계’로 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진정한 산별 건설이 실패한 결과물이 지금의 민주노총 체제이며, 이 때문에 현재의 민주노총은 태생적으로 다음과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첫째, 진정한 산별 대단결을 저해하고 왜곡하는 재벌적 요인의 간섭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그것을 고착화시킨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 최근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의 분열이 그것이다.
둘째, 이 같은 기초위에서 설립되었기에 민주노총은 ‘민주집중제’에 기초한 진정한 상급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예컨대 현 민주노총은 일부 대기업노조의 독단적 행동을 제어할 수 없으며, 지역본부와 기업지부의 이중체계를 해소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이 같은 조직을 가지고서는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전략적 연대를 달성하고, 노동운동의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민주노총은 지금의 느슨한 논의구조와 집행체계로 인해 사업 효율성이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 중요 사안에 대해선 ‘대의원대회’를 소집하여 그 논의를 거쳐야 하는데, 1200여명(2019년 현재)의 대의원이 한번 소집되는 일은 쉽지 않으며 자주 무산되기 일쑤이다. 또 이 많은 인원이 어렵사리 모인다 하더라도, 지난해 2020년 1월28일 경사노위 참여결정을 위한 대의원대회가 보여주듯 하나의 결정을 내오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상집 혹은 중집 간부회의에서 결정을 내린다 한들, 현장의 동력이 뒷받침 되지 못하기 때문에 ‘뻥 파업’으로 끝나기 십상이다. 설령 어렵사리 연대파업이 성사된다 할지라도, 궁극적인 ‘집행권력’이 단위 사업장에 있기 때문에 끝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주요 대기업 노조들이 자기 사업장의 특수 사정을 들어 사측과 개별 ‘타결’을 하고 대오를 이탈하게 되면 전체 전열은 그대로 흐트러지고 만다.
이처럼 지금의 비효율적이고 취약한 민주노총 체계만 가지고서는 자본과 정권에 맞선 강력한 투쟁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매년 연례적 행사로 개최하는 몇 차례의 전국 집회, 병렬적인 사업 전개가 고작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투쟁력만으로는 노동법 개정, 비정규직 철폐, 재벌해체, 공기업화 같은 지속적 강도를 요구하는 투쟁을 책임질 수 없다. 지금은 정규직-비정규직으로의 분리가 더욱 정교화하고 고도화함에 따라 전노협 당시보다도 훨씬 강력한 ‘연대체계’를 요구하는 시기이다.
끝으로 덧붙일 점은, 지금의 민주노총을 성립시킨 요인은 단지 외부적 강압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난 호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운동 내부의 호응 역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는 노동운동 내 기회주의 요소를 우리가 진지하게 감안해야 함을 뜻한다. 노동자계급이 수적으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자본과 권력은 정면의 압박만을 통해선 절대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킬 수가 없다. 반드시 내부적으로 기회주의세력의 협조를 얻어야만 하며, 이 측면에서 볼 때도 현 민주노총 체계의 개혁은 장기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노동운동 내에서 실질적인 역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혁신 주체의 형성이 필요하며, 이 역시 독자적인 ‘정규직-비정규직, 원-하청 상생 연대조직’을 건설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본문 주석
1) 원문의 전체 내용은 이러하다. (‘의사코포라티즘’은) “외형적으로는 산업별노조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여전히 기업별노조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조직형태를 의미한다. 사용자와의 단체교섭은 기업별노조 수준에서 이루어져 상급조직이 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도, 상급조직은 하부조직에 대해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상급조직은 하부조직을 ‘사고지부’로 규정하고 집행부의 재구성을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한국노총의 이러한 1960~1970년대식 산별체제는 국가에 포섭된 한국노총 상층 지도부를 통한 ‘위로부터의 통제’를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었다.” 임영일, <한국의 노동운동과 계급정치, 1987~1995>, 부산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7, 166쪽. 이 내용을 필자는 다음 책에서 재인용함. 김창우, 2020년, <애도하지 마라 조직하라>, 회화나무, p73.
2) 다음 내용을 참조함. “민주노총의 조직 형태는 산별노조들의 총연합체가 아니라 ‘기업별노조에 기반 한 산업‧업종연맹들의 총연맹체’가 되었다. 이후에 민주노총의 거의 모든 조직적인 문제들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토대인 기업별노조들의 산업‧업종연맹이라는 조직 형태로부터 발생한다.” 김창우, 위의 책, p55.
3) 위의 책, p56.
4) 1980년대 초반 한국 ‘재벌체제’가 성립될 무렵 이미 하청계열화가 40%이상 진행되었으며, 이후 중화학공업화의 더 한 층의 전개와 특히 자동차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에는 더욱 이러한 대자본과 중소자본의 원-하청 관계가 보편화되고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왜 한국의 자본과 정권이 이 같은 연대의 고리를 사활을 걸고 끊으려고 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단서라 할 수 있다.
5) 다음 인용문을 보면 민주노총은 전노협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건주의 노선에 의해 주도되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대중투쟁이 아니라 상층 간부들 간의 조직 형식 재편 논의를 통해 건설되었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모든 투쟁과 사업은 그동안 역사적으로 축적되어왔던 조합원들의 투쟁과 조직역량이 아니라, 산업‧업종연맹들 간의 조합원 수 비례에 따른 표 대결을 통해서 결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1995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금속연맹은 5000여 명이, 전국사무노동조합연맹(이하 사무노련)은 500여 명의 조합원이 참가하는 등 투쟁과 조직역량에서 양 조직 간에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은 창립 대의원수를 금속연맹에 49명, 사무노련에 60명을 배정하는 등 민주노총의 사업과 활동에서 투쟁과 조직역량보다 조합원의 수를 더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투쟁과 조직역량에 기초한 대중투쟁보다는 임단협 위주의 상층 교섭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업종연맹들이 조직의 근간을 이루면서, 그동안 하층에서 조합원들의 일상적인 투쟁과 조직의 중심 역할을 담당해왔던 전노협 시대의 지역노동조합협의회 같은 지역연대조직은 무력화되어 버렸다.” 김창우, 위의 책, p57.
6) 김창우, 위의 책, p.41. 만약 이 같은 판단이 옳다면, 1992년 ILO공대위 성립을 계기로 자본과 정권은 그전까지 민주노조 말살정책에서 ‘분할지배전략’으로 전환한 셈이 된다. 이는 시기적으로 보면 1993년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고 91년까지의 ‘공안탄압정국’이 일단락 된 시점과 들어맞는다. 이후 자본과 정권은 노동정책을 펼침에 있어 회유와 탄압을 병행하는 분할지배전략을 실천하였다. 일종의 주고받기식 즉 ‘교섭적’ 관행을 정착시키고 과거의 일방적인 탄압은 자제하게 되는데, 그 결과가 바로 전노협 청산과 ‘민주노총 합법화’로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