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평가와 한국의 당 건설(15)

본문 요지
단위부대로서 규모가 크고 잘 조직된 대공장 정규직과, 전체로는 수자가 많지만 분산적인 비정규직이 하나로 결집될 때만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단일 계급으로서 최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비정규직운동이 획기적 진전이 없는 핵심 원인은 이 같은 ‘전략적 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때문이다.

4. 정규직-비정규직 ‘상생 연대조직’ 건설
1) 비정규직문제 해결의 열쇠
2) 상생 연대조직의 역할
3) 왜 기존 민주노총 체계만으로는 부족한가? 

4. 정규직-비정규직 ‘상생 연대조직’ 건설
   
1) 비정규직문제 해결의 열쇠
    ―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전략적 연대

일견 비정규직들은 가장 직접적이고 심각하게 재벌체제의 고통을 온몸에 받고 있기에 반재벌 투쟁의 선도적 주체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는 표면상의 모습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록 심각한 생활상의 고통과 열악한 작업조건에 처해 있긴 하지만, 약점 또한 적지 않다. 이들은 소규모 영세 사업장으로 분산되어 있고 유동이 심하다. 이 때문에 조직이나 의식면에서 대공장 노동자에 비해 상당히 뒤쳐진다. 당연히 이들의 투쟁역량 역시 그러하다. 단독적으로는 좀처럼 사업주를 굴복시키지 못하며, 그들 간의 연대 또한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이에 따라 한번 싸움이 벌어지면 투쟁이 장기화하고 역량 소모를 많이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 같은 약점은 비정규직의 존재적 특성으로부터 기인한다. 원래 자본은 비본질적이고 대체하기 쉬운 업무를 중심으로, 혹은 사고로 인한 정규직의 우연적 결원이나 일시적 부족을 메울 목적으로 비정규직 제도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비정규직은 자본에 의한 통제가 비교적 용이하다. 원청 자본은 하청업체에서 만약 노조가 결성될 조짐을 보이면, 기존 업체와의 도급계약을 즉각 중단하고 다른 업체로 쉽게 교체해 버릴 수 있다. 

비정규직들이 많이 고용된 하청업체 자본은 원래 이윤이 대단히 박약하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한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양보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이 때문에 하청자본은 설령 폐업을 할지언정 노조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비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하청 자본이 완강하게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비정규직 투쟁의 특성은 일찍이 2000~2001년 수도권 비정규직 투쟁 때 나타난 적이 있다. 한국통신 계약직노조가 517일간이나 싸웠지만 자본은 완강하게 버텼다. 이 같은 얘기치 않은 양상은 당시 투쟁을 지원했던 활동가들을 매우 당황하게 만들었다. 현재 안산공단, 대구 성수공단 등에서는 비정규직 지역노조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금속사업장이 집중되어 있는 공단지역의 경우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여전히 조합원 수는 몇백명 안팎에 머무르며 조직화 사업에 별반 진척이 없다. 그 이유는 비정규직들의 이 같은 특성에 기인한다. 이들 공단에 있는 비정규직들은 대부분 원청의 2차 이하 하청업체에 고용되어 있으며, 규모도 3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들이 많다. 그 때문에 이들 지역 하청회사는 이윤이 매우 박약해 노조가 생길 경우 차라리 폐업을 선택하지 좀처럼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이 점은 일본에서 지역노조가 비교적 순조롭게 정착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나마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되는 대기업 내 사내하청 즉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함께 일하는 정규직들의 도움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불파투쟁의 상징이자 나름의 정규직화라는 성과를 거둔 현대차는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독자적으로 설 수 있기까지에는 정규직노동자, 특히 대의원, 소위원(현장위원) 등을 비롯한 정규직 활동가들의 역할이 매우 관건적이었다. 이들은 2005년 1차 불파투쟁 당시 비정규직의 집단적 노조가입이 가능하도록 사측과 관리자들의 방해로부터 현장을 지켜주었다. 2월부터 투쟁의 중심인 5공장 농성장에 합류해서 끝까지 함께했던 윤성근 전위원장, 현장투 등 제 정파조직의 동지들, 당시 소위원으로 비정규직 잔업거부 때 라인을 정지시켜 해고당한 3공장 강병태 동지 (이 동지는 이후 비정규직 해고동지들과 함께 원하청 해복투를 구성한다)등 이들의 지원투쟁은 2005년 현대차 비정규직투쟁이 불꽃처럼 피어오를 수 있게 했던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그밖에도 비정규직운동 초기에 나타났던 2001년 기아차 화성공장, 2004년 창원 GM 투쟁 등도 정규직의 지원을 받았고, 학교비정규직도 전교조의 지원을 받았다.

정규직 지원 없이 비정규직 투쟁이 성공을 거둔 사례도 물론 있다. 병원이나 학교, 도로공사 등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 톨게이트 수납원들의 투쟁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원청 사용주가 ‘정부’이거나 공공성이 강한 법인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그 때문에 개인 기업처럼 투쟁 사업장을 쉽사리 폐업시키거나 다른 협력업체로 전환시키지는 못한다. 거기에다 사회 각계각층의 지지방문 등 여론의 힘이 많이 작용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조건이 없는 일반 민간기업의 비정규직운동은 자력만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최근 현대모비스나 현대글로비스 하청지회에서와 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거의 독자적인 힘으로 노조 결성에 성공하는 사례도 하나 둘씩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도 자세히 보면 이들 사업장이 원청의 생산체계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독으로 노조결성에 성공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이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 조건을 한 번 보도록 하자. 대공장은 대부분 비정규직 하청 사업장과는 달리 국가의 핵심 기간산업 영역에 포진한다는 점부터 차이가 난다. 또한 재벌체제에 기초한 한국경제에 있어 대공장은 각 재벌그룹의 중심 사업장인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함부로 폐업을 할 수가 없고, 일단 노사 간 충돌로 장기파업이 발생할 경우 재벌은 막대한 손실을 입을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 전반에도 큰 타격을 준다. 아래 인용문은 대공장의 이 같은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대공장 노동자들은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사장이 정치권력으로부터 외면당해도 기업은 남고 생산은 지속된다. 천문학적인 과잉‧중복 투자로 서너 차례나 회사의 주인이 바뀐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주)의 경우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으며, ……대공장이 어떠한 이유로든 위태위태해지는 것은 곧 국가경제가 근저에서부터 흔들리는 것을 의미하며, 결국에는 현존하는 정치세력의 정치 기반을 위협하게 된다는 직접적인 연관관계 때문에 대공장과 국가권력은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1)

중소공장의 경우는 여차하면 투자 자본을 회수할 수도 있지만 대공장의 경우에는 그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대공장은 투자된 기계나 재료의 양, 덩치가 너무 커서 금방 어디다 팔아먹기가 힘들다. 거기에다 들어간 돈이 엄청나 본전과 이윤을 챙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대공장은 공장을 안 돌리게 되는 순간부터 자본가는 막대한 손해를 보기 때문에 가급적 노동자들과 타협하려고 한다.

이처럼 대공장은 하나 같이 한국경제에 충격을 가할 수 있는 전략적 역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량을 어느 쪽이 장악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노동운동의 성격이나 판도가 달라진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같은 자신들의 막강한 힘을 잘 알고 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우선 자신들이 오랫동안 박탈당한 정당한 권리를 되찾았으며, 지금도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하지만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도 약점이 있고 연대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얼핏 보면 현 재벌체제의 상대적 수혜자이기 때문에 결코 반재벌투쟁이나 비정규직 지원투쟁에 있어 적극적인 역량이 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역시 현상에 불과하다. 필자가 이미 한 차례 지적한 바 있듯이, 지금은 한국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후기 체제의 위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는 제4차 산업혁명의 성과가 날로 가시화되고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음에도 낡은 '재벌체제'로 인해 그 요구에 신속히 부응할 수 없다는 점, 그간 한국경제 발전의 견인 축이었던 중국이 이제는 두려운 경쟁상대로 급속히 전환한 점, 한국 재벌체제 유지에 있어 근간인 한미동맹이 미국 패권의 쇠락으로 인해 그 기축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현재 대기업 정규직들이 누리는 자본과의 ‘산업평화’는 그 기초가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재벌자본은 서구 선진국 자본과는 달리 대기업 정규직들의 요구를 끝까지 보장해 줄 수 있을 만큼 물질적 토대가 튼튼하지 못하다. 오히려 그들은 정규직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중이다. 궁극적으로 ‘정규직 제로’ 시대를 꿈꾸는 재벌에게 있어 문재인 정부가 천명한 그린뉴딜 정책은 ‘사업장 무노조’를 의미할 뿐이다. 노조가 없는 청정지대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지금도 사내 촉탁직을 늘리며 정규직 수를 줄여가고 있다.2) 이런 와중에서 심각한 경제위기라도 한번 닥치면 지난 98년과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의 광풍이 휘몰아칠 것이라는 불안감이 대공장 정규직의 뇌리 속에는 늘 상 맴돌고 있다.

이리하여 막상 싸움이 벌어지게 되면 그들은 전체적으로 볼 때 소수라는 약점이 그대로 노출된다. 자칫 평상시 따라다니는 ‘노동귀족’이라는 불명예가 치명적으로 작용함으로써 여론으로부터 고립될 수가 있다. 아무리 막강한 그들이지만 한꺼번에 100~200개 중대 병력을 투입하며 입체적인 진압작전을 펼치는 공권력을 막아낼 재간은 없다. 이 같은 곤궁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수적으로 다수이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동정을 받는 비정규직과의 연대에 평소 신경 쓰는 것이다. 

▲ 2019년 7월 정재범 부산대병원 지부장(정규직)과 손상량 시설분회장(비정규직)이 인터뷰 중에 서로를 바라 보고 웃고 있다.[사진 : 노동과 세계]
▲ 2019년 7월 정재범 부산대병원 지부장(정규직)과 손상량 시설분회장(비정규직)이 인터뷰 중에 서로를 바라 보고 웃고 있다.[사진 : 노동과 세계]

이처럼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간에 한국 노동자계급에게 남겨진 활로는 그리 많지 않으며, 양자 간의 전략적 연대를 실현하는 길이 유일하다. 단위부대로서 규모가 크고 잘 조직되어 있는 대공장 정규직이, 전체로는 수자가 많지만 개별적으로는 역량이 작고 분산적인 비정규직과 하나로 결집될 때만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단일 계급으로서의 최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비정규직운동이 획기적인 진전이 없는 가장 핵심 원인은 이 같은 ‘전략적 연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자의 ‘전략적 연대’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여기서 잠시 눈을 돌려 이웃나라인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참고하도록 하자. 중국은 중국공산당의 지도로 신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하고 1949년10월 신중국(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은 반식민지반봉건 사회이었는데, 5억 명의 인구 중 90% 정도의 절대 다수가 농민이고, 도시 프롤레타리아계급은 겨우 5%도 채 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절대 다수인 농민을 주체로 세우지 않고서는 중국사회의 변혁을 완수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에선 어떻게 이러한 거대한 농민들을 변혁의 주체로 세울 수 있었을까?

당시 중국 농민의 존재조건을 보면 일견 지금의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와 비슷한 점이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들이 현 재벌체제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존재인 것처럼, 중국 농민들은 당시의 반식민지반봉건 체제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한편으론 제국주의 침탈의 일차적 희생양이었으며, 반봉건적 지주제와 군벌의 가혹한 억압과 수탈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존재들이었다. 다른 한편 농민들은 전국 각지의 수많은 촌락으로 흩어진 채 고립되어 상호 연락이 어려웠다. 또 대부분 문맹이어서 의식상으로도 선진적이지 못했다. 이러한 농민들을 조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을 변혁의 주체로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다름 아닌 ‘계급연대’였다. 즉 도시 프롤레타리아트가 농민에 대한 집단적 지원을 수행함으로써 농촌에서 '토지혁명'을 본격화한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1927년 4월 장개석의 쿠테타로 제1차 국공합작이 실패하자 '홍군'이라는 자체 무장부대를 조직하여 농촌으로 들어갔다. 군벌의 힘이 잘 미치지 못하는 농촌에서 이들 홍군은 토착 지주들의 자경부대를 몰아내고,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면서 그들을 무장시켰다. 토지를 획득한 농민들은 다시 홍군에 지원함으로써 공산당이 이끄는 무장대오는 부단히 확대 되어 갔다. 이처럼 토지혁명을 중심으로 한 노-농 연대는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마침내는 저 유명한 '농촌에 의한 도시 포위' 전략을 실현함으로써 신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 같은 역사적 사례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중국의 변혁적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만약 개별적으로 농민들과 결합했더라면, 그 수자가 아무리 많더라도 아마도 그들은 광범위한 농민 속에 파묻혀 그렇게 쉽사리 농민을 변혁의 주체로 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그들은 먼저 선진적 계급인 도시 프롤레타리아를 통해 광대한 농민운동을 지원하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즉 선진적 집단을 매개로한 다른 계급에 대한 지원, 두 계급집단 간의 전략적 연대의 성립이 관건이었다.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문제를 풀기 위한 선진 집단은 다름 아닌 대공장 정규직이다. 한국의 전략적 연대가 중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농촌 농민과 도시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노동자계급 내부, 즉 대공장 정규직과 하청 비정규직 사이에서 성립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본질은 동일하며, 한국은 동일 계급 내에서 이루어지기에 중국보다는 성사되기가 용이할 수 있다.

대공장 정규직과의 조직적 연대는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 여러 가지 이점을 가져다준다. 우선 물리적 지원의 측면에서 볼 때, 대공장 정규직은 한국 재벌체제가 갖는 원-하청 간의 위계적 수탈체계를 역으로 이용하여 효과적인 비정규직 지원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 중소기업의 많은 부분이 대기업의 하청계열화한 현실적 상황을 감안하면, 원청 대기업은 이들 하청기업의 생산과정과 노무관리에 어떠한 형식으로든 간여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원청 대기업은 하청 중소기업에 대한 업무상 비밀들을 많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 같은 경영관련 정보들은 언뜻 사소한 것일지라도 하청 비정규직투쟁에는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 

또 대부분 원청인 재벌들은 하청 노동자들의 노조설립과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갖가지 탄압을 막후에서 지휘한다. 이에 대해 원청 정규직은 하청 노동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속에서 이 같은 재벌자본의 막후 행위를 폭로하고, 그 중지를 요청하며 견제활동을 펼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비정규직노조를 탄압하는 하청업자에게는 일감을 주지 말도록 압박하는 싸움도 전개할 수 있다. 그밖에 비정규직투쟁의 가장 큰 곤란 중의 하나가 '재정문제'인데, 그들은 영세하기 때문에 항상 투쟁기금의 부족에 시달린다. 이 경우 수적으로 우세한 대공장 노동자들의 재정지원은 큰 도움이 된다. 이들이 다만 몇천 원씩만 각출한다 해도 수백 수천만 원을 모금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정규직들은 또 필요할 경우 일반 노조원을 대상으로 ‘현장실천대’를 조직하여 집회와 시위 등의 직접적인 물리적 힘을 통해 재벌과 정권에 대해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러한 물질적 지원 외에도, 정규직 노동자들 중에 상당수 존재하는 선진 활동가들을 통해 비정규직에 대한 선전‧교육 등의 정신적 지원을 수행할 수 있다. 이 역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비정규직투쟁이 단순히 정규직화 요구를 넘어 '반재벌투쟁'으로 성장하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비정규직 조직률이 아직까지 3% 언저리를 넘지 못하는 통계수치가 말해주듯, 비정규직의 조직화 사업은 매우 지난한 과정이다. 그리고 그 핵심 원인은 투쟁주체들이 사업장 내에 채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탄압에 의해 속속 무너지는 취약한 '초기상황'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초기단계에서부터 물리적 지원과 정신적 지원을 결합한 대기업 정규직의 조직적인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본문 주석

1) 박윤배, 1990년, <대기업 노동조합과 파업>, 신평론, p19

2) 이와 관련하여, 현대차 내 한 현장신문의 다음 내용 참조. “현대차는 이미 사실상의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다. 매년 정년퇴직 인원만큼 공정을 대폭 없애는 작업이다. 회사는 이를 ‘공정개선’이라 부른다. 지난해 ‘개선’ 대상은 1041개 공정으로 모두 1572명분이다. 같은 해 정년퇴직 인원 1436명을 조금 넘는다. 1970명이 정년퇴직하는 올해는 1721명분의 공정이 없어질 전망이다. 인력 충원이 필요한 곳에는 신규채용 대신 시니어 촉탁제로 대응하고 있다. 현대차는 생산직 3만5000명 중 1만명 이상이 2025년 안에 퇴직한다. 신규 채용을 사실상 ‘0’으로 둔 현재 계획대로라면 2030년에는 생산직의 40%만 회사에 남게 된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5만 조합원’의 현대차 노조도 옛말이 되는 셈이다.” <민주현장>제219호, 2021년3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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