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11)] 한국재벌형성의 역사① 적산불하와 재벌

한국의 재벌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들이 어떻게 부를 축적·확장하고 독점까지 하게 됐는지 알아본다. 한국재벌형성의 역사를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1) 적산불하와 재벌
2) 원조·차관경제와 재벌
3) 개방경제와 재벌
4)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제와 재벌

우리나라 재벌들의 토대가 된 것은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남기고 간 재산인 ‘적산(敵産)’이다.

일본이 패망 후 적국(敵國)인 일본이 남기고 간 국·공유재산과 일본인들에 의해 축적된 재산은 주인없는 재산으로 남았다. 이 적산은 미 군정에 귀속됐다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에 귀속된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일본인과 친일파들이 남긴 재산을 모두 국가가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산업을 국유화하고 국가의 통제로 민족자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우리 영토에 남은 재산을 민간인에게 헐값에 불하했다.

이승만 정부는 1949년 12월19일 귀속재산처리법을 제정·공포한다.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을 민간인에게 불하하는 법이다. 적산은 부동산 형태가 많았다. 땅, 집, 공장, 기계들이다.

당시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공장은 남한 전체 기업의 85%(27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귀속재산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했다. 이승만 정부가 이 적산을 민간에게 불하하는 기준은 1) 일제치하에서 해당기업의 주주나 경영인으로 있었던 자, 2) 그 기업의 관리인으로 있었던 자, 3) 그 기업에 돈을 빌려준 적이 있었던 자였다. 일본에 협조적인, 즉 ‘친일행적’이 우선순위로 작용했다.

적산은 거의 무상이라고 할 만한 가격으로 불하가 이뤄졌다. 상환기간은 짧게는 5년~15년까지 분할상환이 가능했다. 해방 이후 4년 동안 물가가 60배 가까이 오른 것을 감안할 때 거의 공짜로 가져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 지난 1월2일,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인사를 듣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적산을 차지한 사람들

그렇다면 미 군정과 이승만 정부에 의해 불하된 적산을 차지한 자들은 누구일까? 적산을 토대로 지금의 재벌·대기업으로 성장한 곳. 말만 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가장 대표적인 적산불하 기업은 지금의 SK그룹과 한화그룹이다. 일제강점기 선경직물의 관리인은 SK그룹의 창업주가 되었고, 조선화약공판의 관리인은 한화그룹 창업주가 되었다.

SK그룹 창업주 최종건은 10대 후반 일본기업 선경직물에 입사한다. 선경직물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군복의 안감으로 사용한 천을 만드는 회사였다. 즉 전범기업이었다. 어린나이에 선경직물의 조장(관리인)을 맡은 최종건은 해방이후 적산으로 남게 된 선경직물의 불하를 신청해 1952년 공장을 불하받는다.

오늘날 한화그룹의 모태가 된 것도 적산으로 남은 일제강점기 조선화약공판이라는 공장이다. 조선화약공판은 조선에 있던 유일한 화약판매 독점기업, 역시 전범기업이었다.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는 일제강점기 일본순사의 도움으로 조선화약공판에 입사해 관리인을 거쳐 29살에 공장을 불하받는다.

그렇다면, 재계 1, 2위에 올라있는 삼성과 현대가 궁금해진다. 

삼성은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과 동방생명을 불하받아 신세계백화점과 삼성생명으로 키운다. 삼성이 ‘한국 최초의 백화점’이라고 자랑하는 신세계백화점의 뿌리가 일본 백화점인 것이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1962년 동방생명이라는 회사에 불하되는데, 바로 다음 해에 동방생명이 삼성에 인수된다. 그리고 1989년 동방생명은 ‘삼성생명’으로 이름을 바꾼다.

현대그룹 정주영은 미군정 시기인 1946년, 서울시 중구 초동의 땅 200여 평을 불하받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고 사업기반을 닦는다. 지금의 현대제철은 1978년 인천제철을 인수한 것으로, 인천제철은 1938년 일본 자본이 출자해 설립한 조선이연금속 인천공장으로 출발했다. 이 공장은 해방 후 귀속재산으로 남아있던 것이다.

다른 기업들은 어떨까?

과거 두산기업의 주력상품이었던 OB맥주. OB맥주의 기원은 두산그룹 창업주 박승직의 아들 박두병이 불하받은 소화기린맥주다. 박두병은 소화기린맥주의 관리인으로 일했고, 창업주인 아버지는 이 회사의 주주였다.

이 밖에도 LG그룹의 창업주 구인회는 조선제련을 불하받아 LG금속으로 LG그룹을 키웠다. 쌍용그룹 역시 적산기업인 조선직물의 토지와 공장건물을 불하받아 금성방직을 세웠고, 이는 쌍용그룹을 세우는 발판이 된다. 또, 동양그룹 창업주 이양구는 소야전시멘트 삼척공장을 불하받아 동양시멘트로 키워 지금의 동양그룹을 만들었다. 나가오카 제과(영강제과)는 그 직원이던 박병규 등에게 불하되면서 해태제과를 모기업으로 했던 해태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적산을 차지한 기업들 모두 재계에서 손꼽히는 기업,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이다. 

▲ 일제강점기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의 모습(왼쪽). 미쓰코시 백화점의 현재는 명동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이다.

SK그룹은 2003년 창립 50주년을 맞아 창업주 최종건에 대한 평전을 낸다. 평전 제목은 ‘공격 경영으로 정면승부 하라’다. 이 책엔 “해방직후 청년 최종건은 선경치안대를 조직해 선경직물의 일본인 간부들이 무사히 일본에 돌아가도록 도왔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나 10년 뒤인 2013년 SK그룹 60년사에선 “최종건은 광복 후 혼란 속에서 선경치안대를 조직해 공장보호에 앞장섰다”라고 문구가 수정된 일화가 있다. 문구는 수정됐지만 최종건의 친일행적은 10년 전에 했던 고백에서 이미 드러난 후였다.

남의 땅을 침략해 35년간 호의호식한 적국(敵國) 일본이 물러나고 우리 땅에 남은 재산은 누구의 것이어야 했을까?

“국가의 통제로 민족자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독립운동가들의 주장대로 일본인들이 남의 땅에서 축적해 놓은 재산은 해방과 함께 민족의 자립경제를 건설하는 물적 토대,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기틀로 사용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상식적 주장은 상식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일제가 남기고 간 재산 대부분은 일제와 목숨바쳐 싸웠던 민족의 것이 되지 않고, 대부분 일본 가까이서 그들을 도운 사람들에게 넘어갔다. 재벌들은 스스로 ‘자수성가’해 자산을 키웠다고 주장하지만 알고 보면 그 기반엔 ‘적산’이 있었다. 그들은 손쉽게 차지한 적산을 토대로 대기업과 재벌로 성장했다. 한국 재벌의 시작은 안타깝게도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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