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적 경제민주화의 길(13)] 한국재벌형성의 역사③ 차관특혜 먹고 예속경제앞잡이가 된 재벌

5.16군사쿠데타로 다시 살아난 재벌

4.19혁명이 터지자 재벌은 부정축재자로 불리며 민중의 지탄을 받았다. 장면정권은 재벌들에게 부정축재재산 1백96억환의 벌금을 내도록 했으나 한 명도 그 돈을 내지 않았다.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처음에는 부정축재자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였으나 재벌들과 타협하여 부정축재환수액도 크게 깎아 주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재벌들은 1961년에 한국경제인협회를 결성하여 조직적으로 정경유착의 길을 닦았다. 지금의 전국경제인연합회 전신으로 초대회장은 삼성의 이병철이었다. 이들은 1960년대 이후에 물밀 듯이 들어오는 미국과 일본 차관자본을 독차지하고 박정희정권의 수출주도정책과 중화학공업 정책에 따른 특혜와 독점, 투기를 통해 불황과 호황을 가리지 않고 승승장구 성장한다.

미국 ‘원조에서 차관으로!’ 왜 전환했나?

한국전쟁 이후 미국은 1950년대 두 번의 경제공황으로 공업생산설비의 가동률이 낮아지는 등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달러 위기에 직면하였다. 미국은 1958년부터 무상원조를 크게 줄였고 1960년대에는 유상원조로 바꾸었다. 한국에 대해서도 무상원조 대신에 차관과 민간자본을 들이밀었고, 박정희 군사정권이 세워지자 ‘근대화’란 이름으로 외자도입정책을 실시하도록 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외자도입을 위해서 국토와 시장을 개방하고 원료와 인력을 제공하며, 외국자본이 맘껏 식민지초과이윤을 얻을 수 있는 투자환경과 특혜를 보장하였다. 차관은 ‘경제개발의 역군’인 양 가면을 썼지만, 그 본질에서는 제국주의 자본이 아무런 제재없이 한국민중이 창출한 초과이윤을 뽑아가는 굵은 파이프였다.

▲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 12월 17일 청와대에서 한일기본조약문에 서명하는 장면. 이후락(비서실장), 정일권(국무총리), 이동원(외무장관), 김동조(주일대사) 등 친일관리들의 모습도 보인다.

제2의 을사조약 ‘한일협정’과 대일의존성

미국은 일본을 끌어들여 대한국 ‘차관’의 일부를 분담시키고 미국, 일본 공동의 신식민지경제권을 형성하려고 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한국을 다시 침략하려는 야망 속에 한국에 투자를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은 미국의 입장에 장단을 맞추면서 경제를 근대화하려면 외국자본의 도입, 특히 일본자본을 많이 끌어들여야 한다면서 1965년 6월, 제2의 을사조약이라 불리우는 ‘한일 기본조약 및 제협정’을 체결하고, 일본독점자본의 한국침투를 합법화했다. 1965년부터 1969년까지 3억5천6백만 달러의 일본차관이 도입되었고, 상업차관도 무려 7천8백만 달러가 도입되었다. 한국비료와 쌍용시멘트, 한일합섬, 대한조선, 한국알미늄 등 47개의 차관기업체들이 건설되었다. 일본기업체는 60년대에 33개였던 것이 1970년부터 1974년까지 5년 동안에만 무려 230개로 늘어났다. 또한 마산을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하여 노동기본권까지 빼앗았다. 1970년대 말 일본독점자본은 한국 전기기기생산의 70%, 강판생산의 60%, 시멘트생산의 50%, 냉장고생산의 57%, 비료생산시설의 40%를 장악했다. 대일의존도는 높아갔고, 일본과의 무역적자는 나날이 늘었다.

‘차관자본’의 채무노예로 전락한 한국

외자도입은 외국독점자본의 경제지배와 정치간섭을 낳았다. 1959년부터 박정희정권 말기인 1979년까지 도입된 차관총액은 151억5천9백만 달러이고, 이 시기의 외국인 직접투자 총액은 15억6천9백8십만8천 달러였다. 이 방대한 차관과 외국인 투자에서 대부분은 미국과 일본 자본이었다. 차관에서는 국제금융기구차관이 20.7%, 미국과 일본자본 차관이 38%를 차지했고, 외국인 투자에서는 미국과 일본 자본이 77%를 차지했다. 한국은 미일 독점자본에 철저하게 예속되게 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국민은 미국과 일본의 채무노예로 전락되고 빚을 갚기 위해 해마다 수입억 달러의 외자를 더 끌어와야 했다.

차관자본으로 부정축재, 차관시설로 예속경제

부채노예로 전락해가는 나라의 현실과는 상관없이 재벌들은 차관자본을 통해 한 몫 챙기면서 재벌꼴을 갖추어갔다.

차관자본의 이자율은 공공차관 3~4%, 상업차관 6~8% 정도로 당시 은행금리 25~30%와 사채이자율 60~70%에 비해 파격적으로 낮아서 차관자본을 확보하기만 해도 금리 차이에 따른 이익이 엄청났다. 차관을 들여와서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갚지 못해도 국가가 보증을 섰기 때문에 재벌들은 갚을 걱정도 없었다. 차관을 들여와 산업분야에 투자하지 않고 은행에 넣어두고 금리차이에 따라 돈을 벌기도 했다.

한편, 재벌들은 차관으로 들어오는 생산시설로 상품을 생산하였다. 현물차관으로 들어오는 생산시설은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이미 수지가 맞지 않는 사양·불황·공해 산업의 생산시설들이거나 처치 곤란 중고품들을 받아들였다. 섬유산업시설은 제일합섬, 선경, 코오롱이 받아들였고, 70년대 1차 석유파동 때 유럽 대형조선소가 80% 감축한 생산시설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에서 도입하였다. 포항제철 제1기 공사는 대일 청구권 자금 1억2천만 달러를 골간으로 공사를 추진했는데, 일본제철공장의 기존 시설 중고품을 뜯어서 그대로 옮겨왔다. 석유화학산업은 공해산업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적으로 유치하여 필요 이상의 생산시설이 들어섰다. 이 생산시설은 일부 산업을 제외하고는 값싼 노동력을 동원한 단순조립상품만 생산하였다. 결국 시설을 건네준 나라의 원자재·부품과 결합해야만 제품생산이 가능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원자재·부품을 수입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구조적 예속경제의 뿌리가 되었다.

70년대 중화학공업진출로 재벌꼴 완성

주로 소비재 중심으로 한 경공업에 머물러 있던 대기업은 1970년대 경제정책의 변화와 함께 조선, 기계, 화학 등의 중화학 공업으로 진출한다. 중화학 공업도 수출주도 산업과 마찬가지로 다시 세금이나 금융 등 많은 분야에서의 특혜가 보장되었다. 중화학 공업은 재벌들의 새로운 전쟁터가 되었고, 재벌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문어발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확장일로를 걸었고, 독점까지 실현한다. 1978년 경제기획원이 발표한 [78년 독과점 품목 및 사업자 지정]결과를 보면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30% 이상이거나, 3개회사 미만이 60% 이상인 품목은 148개에 이른다. 이 148개는 분유, 라면에서 가전제품, 자동차, 철강까지 거의 모든 중요 상품이 들어 있는데, 어떤 재벌이 더 돈을 잘 버는가는 누가 더 많은 독과점 품목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수출<특혜>받은 재벌은 살찌고 한국민중은 수탈당해

한국은 연평균 30%에 이르는 수출신장률을 기록했다. 한국의 수출대상국은 주로 미국과 일본이었고, 이들 나라 기업이 요구하는 특정한 제품이나 반제품을 주문생산했다. 수출 상품 80%이상이 국산상표를 부착하지 못하고 OEM(주문자 상표 생산)방식으로 외국상표를 부착하고 수출되었다. 한국기업의 수출시장 개척은 국내에서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청으로 들어가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서 사실상 국제하청생산체계에 편입되는 과정이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 살 깍기식의 적자수출’이었다. 1970년대 수출단가는 제조원가의 42~59%수준이었다. 미국과 일본자본은 한국으로부터 헐값에 제품을 납품받은 뒤 제값에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엄청난 차액을 챙겼다.

수출에 혈안이 되었던 재벌들은 어떻게 무역적자를 감당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는가?
박정희 정권하에서 노동자 농민을 저임금, 저곡가체제에 가두고 가혹한 고혈을 짜는 것이 적자수출기업 이윤의 원천이었다. 또한 박정희정권의 각종 정책특혜를 통해 수출기업 손실을 메꾸고 이윤까지도 보장받았다. <조세감면>특혜로 수출소득세가 일정기간 50% 감면이 보장되었고, <수출금융>특혜는 ‘수출 1달러당 무조건 얼마‘로 보장하였다. 수출금융은 종류도 많고, 일반대출금리의 20~50%수준이었기에 재벌들은 특혜를 받기 위해 사활적으로 수출에 매달렸다. 수출로 인한 적자보다 특혜보장이 더 컸다. 그렇다면 정책특혜를 통해 보장된 수출기업의 이익은 도대체 어디에서 솟아난 것일까? 수출기업에 대한 조세감면은 수출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과 국민의 조세부담으로 메꾸었다. 국제하청경제로 전락한 적자 출혈수출은 결국 우리 국민 모두의 짐이 된 것이다. 수출을 통해 채워진 외국자본의 이윤은 우리민중들에 대한 수탈을 통해 실현된 것이고, 그 수탈에 조력했던 재벌은 정권과 정경유착하여 특혜를 보장받아 자신의 배만 불렸다.

대부자본수출형태의 하나인 차관은 국가가 당사자인 공공차관이건 개별 자본가가 당사자인 상업차관이건 경제를 막대한 빚으로 얽어매고 지배한다. 차관의 이러한 성격과 기능때문에 그 어느 수단보다도 미국과 일본의 지배와 예속을 심화시키고, 잠재적으로 외채위기를 키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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