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많이 변했다.

흔히들 아날로그 시대는 가고 디지털시대가 도래했다고들 말한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새천년, 감격의 밀레니엄을 외친지도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해방공간의 혼란과 6.25전쟁시기의 공포와 슬픔의 시대를 겪었다.

박정희군사도당에 의한 억압과 폭압의 시대를 비롯한 수십 년간의 군사팟쇼 암흑의 기나긴 굴속을 뚫고나와 이른바 문민, 국민, 민주정부를 세운 지도 30여 년이 지났다.

米군정에 의한 외세 점령군 통치에 이은 친미사대 이승만 반공 백색정권이 무너지면 나라가 좀 제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4·19혁명 이후 변한 것은 없었다.

4월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역사의 큰 숙제가 되어 남았다.

군사팟쇼 정권이 부서지면 ‘멸공’ ‘반공’시대가 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민중 세상, 노동자·농민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고 모두 그렇게들 생각했었다.

김대중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김종필과 합작(DJP연합)을 하여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민주화운동에 의한 운동권 세력이 거머쥔 정권이었다.

근본이 모자란 철부지들의 열린당 놀음으로, 이명박근혜 따위들에게 10년 동안 정권을 내어 주었다가, 촛불봉기 덕택에 문재인이 같은 어정충이가 정권을 잡았다.

김대중 정부는 6·15선언과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얻어냈으나, 6.15선언의 핵심인 시대를 바꾸고 통일 성업의 길을 열어젖히는 주요 사업들은 입으로만 되뇌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기초를 닦고 첫길 첫 들머리 제일 관문을 열어놓은 김대중 정부에 이은 노무현의 열린당 정권은 北의 통 큰 양보로 10·4공동선언의 행운을 얻었다.

전체 8천만 우리 겨레의 숭고한 염원에 따라 ‘통일문제는 그 주인인 우리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해서 해결해 나가기로’ 굳게 합의한 6·15선언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 10·4공동선언이다.

8개 큰 항목과 30여 개의 작은 항목으로 이루어진 10·4민족선언이 발표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얻어낸 분에 넘치는 행운이었다.

실로 나라 분단 60여 년 만에 들려온 통일의 봄소식이고 시대와 역사 의지가 이른바 민주화운동세대에게 안겨준 민족사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복음(福音)이었다.

8개항 30여 개의 소목(小目) 중에는 분단 이후의 모든 민족현실 현안이 다 들어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6.15선언은 현실현안 우선 해결의 대원칙을 밝혔다면, 열린당 정부의 10.4선언은 구체적이고도 세부적인 현안 해결 방책(方策)들을 제시하고 있다.

너무 시원시원하고 통일의 앞날이 환하게 열려오는 설레임으로 남북 민족 모든 겨레가 기쁨과 환희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철부지 열린당 정권은 근본이 제대로 된 것들이 아니어서, 이 천재일우 반세기를 두고 기다렸던 통일의 봄 분단의 얼음벽을 깨부술 수 있는 해빙의 기회를 허송세월, 혓바닥 장난으로 끝을 내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의 2차 끝물 조무래기들이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그야말로 나라 민족사랑 분단 극복 통일 염원 하나로 뭉친 북녘 지도부의 대결단으로, 4·27판문점 선언의 한 축이 되었다.

5천 년 민족사에서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특별한 기회를 얻어 안았던 것이다.

그해 9월 문재인은 평양을 방문하여 파격적인 길거리 환영을 받았다.

북녘 동포들의 열렬한 환영은 그야말로 분에 넘치는 대접이었다.

뿐인가, 19일 저녁 대동강 변의 능라도 5.1경기장을 가득 메운 15만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문재인 일생일대의 영광이고, 남녘 동포에 대한 사랑이고 아니 민족사의 대변혁을 알리는 극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북녘 지도부와 평양 인민들의 나라 사랑 통일 염원이 얼마나 뜨겁고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절한 염원인가를 너무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다 떠안을 수 있는 민족적인 아량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능라도 5.1경기장은 통일 염원으로 용광로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

박수와 환호, 만세 소리가 평양의 밤하늘을 뒤흔들고 남북녘 하늘 널리 널리 천둥소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그 후 남쪽으로 돌아온 문재인과 민주당은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위해서 어떤 태도로 어떤 일을 얼마나 실천실행에 옮겼었던 것인가?

8천만 겨레와 역사 앞에서, 전 세계 인류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 입으로 약속한 선언을, 문재인과 그 추종 민주당 좀팽이들은, 미국 코쟁이 얼굴만 쳐다보다가 5년 세월을 빈손으로 다 보내고 말았다.

문재인이 좋은 말만 골라서 ‘엄숙하게’ 내뱉은(선언) 항목만 해도 무려 53개 항에 이른다.

문재인과 그 추종 민주당 조무래기들은 노무현의 정치적 정신적 사회이념의 계승자임을 자처 자임해 왔다.

김대중 정부의 6·15선언은 그만두더라도 노무현 열린당 정부가 선언한 30여 개 항목을 합하면, 그들이 실천 실행해야 할 민족통일 과업이 무려 일백 항목에 달한다.

민주화운동 동지들의 피와 땀을 가로챈, 사이비 가짜 민주화운동 어정충들이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벼슬 감투를 눌러쓰고, 아메리카 자본제국의 남녘땅 식민 통치를 합리화하고 원활하게 하는 합법적 협력자 노릇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만 신명을 다 바쳤다.

남북 하나 되기 위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를 하겠다고 맹세를 해 놓고, 돌아서선 UN 기구에서마저 폐기를 권장하는 반통일 살인 악법 국가보안법 하나 ‘살 처분’하지 못하고 말았다.

문재인과 민주당 떨거지들 믿다가 순진한 촛불봉기 통일세력들은 또 한 번 ‘죽 쒀서 개 주고’마는 꼴이 되었다.

4·19혁명, 촛불봉기, 모두 변혁의 주체는 헛물을 켜고 빈손만 털고 말았던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근본적으로는 이 땅에 태어난 바닥 민중의 사회의식, 의식의 척도, 의식 수준의 문제인 것이다.

민주화운동 시대는 갔다.

운동의 시대는 아날로그 시대 군사정권과 함께 사라져 갔다.

디지털시대 통일투쟁 시대가 새로운 지평 위로 떠 올랐다.

운동은 군사팟쇼 타도에 유효했고, 군사팟쇼도당은 식민종주국 제국주의의 앞잡이 정권 꼭두각시 조직 집단이어서, 운동 수단으로 타도가 가능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米자본제국 식민종주국인 외세와 직접 맞서야하는 투쟁의 시대를 맞이했다.

운동과 투쟁은 다르다.

운동은 처음부터 빈손으로 나서는 집단행동이다.

반면 처음부터 무기를 들고 무장을 하고 나서는 것이 투쟁이다.

근대적 개념의 운동은 톨스토이의 시혜적(施惠的) 자각(自覺)에 바탕을 둔 자본 해체운동과 인도의 간디가 주창한 ‘사티아그라하’ 또는 무저항(비폭력) 등의 소극적 집단 항의 행위, 우리의 3·1만세운동, 중국의 5·4운동에 그 기원을 둔다.

투쟁은 홍경래의 무장봉기, 전봉준의 동학혁명, 야산대(빨치산), 제주4.3항쟁, 여순항쟁 등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디지털시대는 고도의 전자 문명시대를 예고한다.

간악하고 강대한 외세와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통일 투쟁은 고도의 지혜, 지략, 용기가 필요하다.

간악하고 강대한 외세를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투쟁 수단과 초인적인 담력을 요구한다.

자비와 평화 비폭력은 내가 강자일 경우 그럴 때만 상대에게 베풀 수 있는 은전(恩典)이 되는 것이다.

식민종주국과 맞선 전면적인 약자인 우리 민중의 입장에선 염두에 둘 일은 아니다.

재래식 운동 수단만으로 통일 성취는 가능하지 않다.

통일 쟁취 가능한 투쟁 수단에 눈을 떠야 한다.

통일 세력은 통일 세력다운 면모를 가지고 일떠서야 한다.

땅을 기어 다니는 운동 세력의 구각을 벗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투쟁 세력으로서의 새로운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투쟁 대오, 대결단, 오늘의 통일 세력에겐 오직 한길 통일전선이 있을 뿐이다.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