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이번 회로 소설 [가자 북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 동안 애독해 주시고 격려와 응원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곧 출간된 소설로 만나뵙겠습니다.
모든 숙지사항과 각자 맡은 바 임무는 낮시간 불암산에서 충분히 암기되고 인지되고 이해되었다. 저무는 해거름을 이용해 봉원사 뒤 안산 정상부 밑자락을 향해 끼리끼리 여러 방향에서 은밀한 동작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안산 정상부 밑자락에 도착한 인원들은 도착하는 대로 불암산에서 배당받은 빵쪼가리와 음료로 저녁식사를 끝내야 했다. 도착에서 전원이 식사를 끝내는 시간은 30분간이다.
오늘 동원된 총인원은 56명이었다.
사월패가 18명, 불암당 소속 넝마병단 17명, 딲어병단 21명이었다. 원래 넝마병단은 16명이었는데 지난번 청와대 특공조 3명의 희생으로 숫자가 너무 적다며 윤창현동지의 부인 서인숙 동지가 떨쳐 나서는 바람에 17명이 되었다.
동원된 인원에 비해서 개인화기가 부족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자란 대로 최대한 공평하게 분배를 해야 했다.
이미 보관중인 개인화기는 칼빙 2정과 엠완 1정이었다. 여기에 칼빙 30정 아식보총 10정, 엠완 5정이 보충되었다. 개인화기가 총48정이었다.
수류탄은 12개를 사용하고 5개가 남아 있었다. 42발이 보충되어 총 47발이 되었다.
가래떡 TNT는 6개 사용 74개가 남아있었다.
개인화기는 사월패와 넝마병단 딲어병단 각각 16정씩 배정, 이 중 인원이 적은 넝마병단 배정 엠완2정을 인원이 많은 딲어병단의 칼빙2정과 바꾸어 배정했다. 수류탄 배정은 사월패 16개 넝마병단15개, 딲어병단16개였다. 가래떡TNT는 사월패25개, 넝마병단 24개, 딲어병단25개를 배정했다.
이 외 공통사항은 4명의 여자대원에게는 수류탄 1개와 TNT 1개씩이 배정되었다. 교전중 부상자 치료와 치고 빠질 때 특수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모자라는 소총과 수류탄의 경우 넝마병단 딲어병단 대원에 비해 기동성이 떨어지는 사월패들의 자진 반납에 의해 대원수가 많은 딲어병단에 몇 개씩 재지급 되었다.
강욱철을 비롯해 황웅권 김승국 이문성 조용근 등은 무기가 없어서 만약의 경우 자폭용 TNT 한 개씩을 지참했다.
탄약 지급은 간단했다.
칼빙은 탄창3개(16발장전), 엠완은 탄창5개(8발장전), 아식보총6개(5발장전)씩이 지급 되었다. 나머지 칼빙 탄창7개는 역시 인원 많은 딲어병단 차지였다.
한 시간여에 걸쳐 총기와 실탄 지급, 각자 지급 받은 무기의 손질 점검이 끝났다. 군대 경험이 있는 사월패들에 의해 급한 대로 총기 사용, 수류탄 투척 등에 필요한 사항들이 재점검 전수되었다. 사전교육이 있었으나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격이었다. 녹슬음 방지를 위해 발라놓은 구리스 제거에 필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불암당의 넝마병단과 딲어병단 대원 중에는 아직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15,6,7세의 소년대원도 섞여 있었다.
이들에겐 사월패의 최단복 전시호동지들이 총기 사용 요령을 보다 자세하게 설명 전수했다. 특히 야간사격에 대한 설명에 중점을 두었다.
이제 대원들 모두가 신발끈을 다시 조여 매는 것까지 모든 출동준비가 완료되었다.
통행금지 시간인 밤12시가 지나면 모든 경비초소의 초병들이 야간근무태세를 완비, 신경을 곤두세운 경계근무에 들어간다. 뿐만 아니라 12시 통금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통행이 금지되어 대원들의 이동이 불가능하다.
늦어도 11시 30분까지는 현장에 도착 주위를 경계해야 한다. 건물이나 수목 등 은폐물을 잘 이용해야 한다.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경우, 총기를 외투 속에 거꾸로 걸메어 숨기고 일반시민으로 보이게 행동하라.
12시 정각 통금 사이렌 소리를 신호로, 공격을 개시한다.
공격 초기엔 기선 제압을 위해 파상공격이 아닌 집중공격을 감행한다. 공격로가 뚫리면 지체없이 적진지, 적의 근거지를 점령 박살을 낸다.
절대로 흥분하지 말라. 침착하게 조준사격을 하고 실탄을 아낀다. 공격을 할 때는 과감하게 화력과 병력을 집중시킨다.
적의 막강한 화력이나 압도적인 병력 우세일 경우 절대로 정면 공격으로 맞서지 마라. 여하한 경우에도 병력 손실을 막아야 한다.
오늘밤 12시, 공격개시와 함께 우리는 고려 민족군으로 호칭된다. 우리는 유격군인 동시에 훗날 고려연방공화국의 정규군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전개되는 혁명작전의 성공여부를 떠나서 박정희정권과 남한 주둔 미국군대를 상대로 장기 유격전에 돌입한다. 제2의 작전 수행을 위해 내일 새벽 5시까지 이동 차량을 확보 동두천 근접 737고지 왕방산 북쪽릉선 약속지점에 집결해야 한다. 1명의 낙오자도 없도록 최선을 다한다.

이제야 여러 동지들께 기쁜 소식 한 가지를 전한다.
그동안 현역군대의 혁명봉기 사업에 힘을 쏟았으나 별무성과였었다. 48년 지창수 김지회장군의 여수14연대 봉기 이후 이렇다 할 현역봉기가 없었다. 울화통 터지는 일이었다.
드디어 철원 주둔 백호사단 안국광대위가 혁명봉기에 떨쳐 나섰다. 또 다른 혁명동지 임혁태대위와 함께 오늘 밤 12시를 기해 현역봉기의 봉화를 올릴 것이다. 군막사에 불을 지르고 탄약고를 습격 부대 탈출을 감행할 것이다.
안국광대위와 임혁태대위가 이끄는 2개중대 병력은 이틀 후 우리 고려 민족군대와 합류한다. 동두천 동쪽 포천 신북면 소재 754고지 국사봉이 집결 예정지이다.
우리 연합부대는 이 기세를 몰아 28일 02시 동두천 주둔 미군 데이비스캠프를 기습 공격한다.
이 공격이 끝나면 우리 민족군 부대들은 지체없이 휴전선을 돌파, 북상할 것이다. 우리의 조국은 하나이고 우리의 민족 또한 하나의 민족이다.
안국광대위가 이끄는 중대엔 자동소총은 물론 경기, 중기를 보유하고 있다. 수류탄과 탄약도 당분간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휴전선을 돌파하는데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한가지 더!
우리는 외롭지 않다.
거지대장 유대원동지가 이끄는 용두동 땅굴사단 25명이 용산 미8군기지 공격에 현장에서 합류 예정이다.
말을 끝낸 강욱철은 지체없이 민족군대의 출동을 명령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건곤일척, 적과 우리 사이엔 가파른 싸움이 있을 뿐이었다.
황웅권과 김승국에겐 박정희의 둥지 청와대 점령을 위한 좌우 합동공격을 맡겼다. 기동성이 필요했다. 사월패 대원8명을 빼서 넝마병단 딲어병단에 각각 4명씩을 배치했다. 대신 넝마병단 딲어병단원 4명씩을 빼어 부족한 사월패의 기동성을 보강했다.
용산 양코기지는 강욱철이 직접 맡았다.
죽든 살든 자신이 한번 결판을 내고 싶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흰 도포 차림이었던 곽세정거사와 수락산 산도적 동명스님의 도포색깔이 전투색깔로 바뀌었다. 검정색과 회색으로 야간 공격에 대비한 것이다. 곽세정 거사에겐 소총 배정이 안되었고 다행히 산도적 동명스님의 손에 엠완 한자루가 들여져 있었다. 현지에서 합류하는 유대원동지의 땅굴사단과 함께 두 스님은 강욱철의 직할지대에 배속 되었다.
초전 기습공격 처음엔 윤창현 고충석 부대들은 잠시 침묵이다.
강욱철의 직할지대인 땅굴사단이 후암동과 해방촌 사이 남산 발치에서 산발적으로 총성을 울리며 양동작전을 펼칠 것이다. 용산기지 경비병력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다. 성동격서(聲東擊西), 고전적인 유격전법으로 숫적 열세인 유격군이 쓰는 전술이었다.
이렇게 적진을 교란한 다음 한강로 삼각지 선의 윤창현 부대와 이태원 해방촌선의 고충석 부대가 벼락을 치듯 기습공격을 감행할 것이다.
24년 동안 짓밟고 억눌려도 양키고우홈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착한 식민지 남조선 땅, 용산기지 미8군사령관 메클레이드가 잠자리에 들었다. 대명절 크리쓰마쓰 축하주에 한잔 되어 뚱보 마누라의 엉덩이를 주물러 대다가 불두덩에 손을 얹고 있었다.
마악 장난질을 시작하려는 순간 남조선 특유의 현상인 통금 싸이렌이 울렸다.
동시에 후암동과 해방촌 사이의 용산기지 방어벽 무너뜨리는 폭발음 소리가 천지가 무너지듯 땅을 흔들고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강욱철은 국민학교 시절 그의 삼촌이 그려 놓았다는 지도 한 장을 본 기억이 있었다. 삼촌은 4283(1950)년 3월 읍내 농림중학 5학년이었던 큰집 준철이형과 함께 산으로 들어가서 죽었다. 광주 서중을 졸업한 수재였으나 동경유학을 할 가세가 안되어 잠시 집에서 쉬고 있었다.
삼촌이 그린 지도의 제목은 ‘합리적인 세계지도’ 였다.
국민학교 4학년인 강욱철이 ‘합리적’이라는 말뜻을 잘 몰라서 아버지 강남현씨에게 뜻을 물었었다.
‘이치에 맞는다’는 뜻이라고 일러주었다.
이치에 맞는 세계지도...
그런데 삼촌의 세계지도는 오대양육대주를 다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중국과 조선, 그리고 북아메리카주를 하얀 백로지 한 장에 나란히 그려 놓았을 뿐이었다.
왼쪽에 그려 놓은 조선지도엔 만주, 요동, 내몽고의 대흥안령산맥 동쪽 츠펑지방이 포함된 전성시대의 대고구려 전도였었다.
오른쪽에 그려 놓은 북아메리카 전도엔 적흑색으로 겹줄국경선이 표시된 3개의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들은 빨강, 흑색, 백색으로 3가지 색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태평양에 면한 쌘프란시스코가 있는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택사스, 네브라스카, 남북다코다가 모두 빨간색이었다. 네바다, 오리건, 콜럼비아분지, 몬태나, 아오이밍, 콜로라도, 유타주 역시 빨간 홍색이었다.
그리고 동으로 치우친 중앙부의 미네소타, 위스콘신, 아이오와, 일리노이, 킨자스, 미주리, 오클라호마, 아칸소, 미시시피, 앨라바마, 테네시, 인디아나, 일리노이, 위스콘신 등은 새카만 검정색이 칠해져 있었다.
하얀 백색의 땅은 미시간호 동쪽 디트로이트에서 애틀란타로 이어지는 선의 이동(以東)지방이었다.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등의 대도시와 펜실바니아, 버지니아, 켄터키, 남북캐롤라이나, 죠지아, 플로리다 반도에 이르는 동부지역이었다.
나중에 중학생이 되어서야 이 색깔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광활한 북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홍색인종 인디안의 땅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인디안의 본거지 서부평원 전체가 홍인종의 땅이 되어야 이치에 맞다는 뜻인 것 같았다.
중앙부의 검정색땅은 흑인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이치에 합당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짐승처럼 인간사냥으로 끌려와서 대대로 노예생활을 한 보상을 받아야한다. 최소한 집을 짖고 자식 낳고 살 땅을 보상 받아야 이치에 맞다는 주장 같았다.
이 지도 밑에 삼촌이 낙서(?) 비슷하게 써놓은 작은 글씨 몇 줄이 있었다.
이 글은 강욱철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그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아메리카 흑인들은 Revalution이란 단어의 뜻을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일까? 인디안들도 ...-
강욱철은 삼촌의 선견지명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삼촌의 포부와 안목, 기개에도 자연 고개가 수그러지는 것이다. 조선 사나이로 태어나 배포가 두둑했던 삼촌을 생각하면 강욱철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부끄러워 미안한 생각뿐이었다.
강욱철은 밤공기를 타고 남산 너머에서 들려 오는 폭발음을 듣고 있었다. 사월패가 주력인 황웅권 김승국이 이끄는 민족군대의 청와대 기습공격이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던 것이다. 역도 박정희의 잠자리가 박살이 나고 있는 판이었다.
강욱철의 눈앞에서는 미국군대가 점령하고 있는 용산기지 전체가 검붉은 화염에 휩싸여 불타오르고 있었다. 유대원의 땅굴사단, 윤창현의 넝마병단, 고충석의 딲어병단이 한꺼번에 용산기지를 향해 총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다.
피아의 총성 폭음이 천지를 뒤흔들고 싯뻘건 화염이 검은 밤하늘을 향해 무섭게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미리 파악 지목해 놓은 탄약고와 유류탱크들의 집중 폭발로 용산기지 전체가 완전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용오름 현상이 일었다.
옛날 4대문안 서울 장안에서 보면 한양성 남쪽 하늘에 뭉게구름이 솟아오르고 천둥벽력이 번쩍거리면 하늘에 용이 치솟아오르는 현상이 일었다.
이 용오름뫼가 바로 목멱산 남쪽 한강변의 용산벌이었던 것이다.
붉은 용이 거대한 불칼뿔을 휘두르며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일제 36년 미제24년, 실로 반세기가 넘는 60년동안 억압받던 조선의 붉은용이 하늘을 향해 높이높이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것이다. [끝}
전덕용
소설가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씨알의소리 창간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