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시계가 아침 9시 30분 정각, 시침보다 길다란 분침이 손목시계 아래쪽 한 중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드디어 ‘북괴 무장간첩 5인조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한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청와대 경비를 위한 주저항선을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북악산록을 깎아 큰 길을 닦았다. 새로 뚫은 북악스카이웨이 포도 위엔 다섯구의 시체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인민군 복장을 하고 있었다.
개인화기는 인민군이 사용하는 AK자동소총이었고 ‘조장’이라는 푯말이 있는 시체 옆에는 쏘련제 일명 때때권총이 놓여있었다. 단검이나 탄약 수류탄 모든 소지무기류는 쏘제 아니면 북한군이 사용하는 북한제였다. 심지어 속옷, 신발, 양말, 손수건, 군용 수첩이나 휴지까지도 모두 북한제 일색이었다.
미숫가루, 마른오징어, 고구마 말랭이, 갱엿토막도 전시되었다.
“에 또, 이들은 북괴 보위부 소속 특수 914군부대 소속 5인조 일당으로, 지난 11일 장단군 고랑포 북방 휴전선 대남루트를 출발하였다.
이들은 김신조일당과 달리 주간엔 철저하게 몸을 숨기고 야간 은밀행군으로 무려20일에 걸쳐 어젯밤 22시경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이들의 일차 목적지는 본 경비여단 제 1초소였다.”
얼굴이 벌겋게 닳아오른 윤필용 수경사령관은 매우 긴장되고 흥분된 표정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자리가 너무 엄중하고 분위기가 납덩이처럼 굳어 있는데다 윤필용 자신의 목이 걸린 행사(?) 이어서 그렇다.
지난밤 이른바 안보 ‘비상총회’라는 것이 끝나고 밤을 새워 정보부장 지휘하에 수경사령관인 자신이 이 행사를 주도 했었던 것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거짓이고 가짜이고 허위였던 것이다. 물론 박정희의 지령에 의한 거짓 가짜 허위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털끝만한 실수가 있어선 아니 되는 것이다. 만약 실수나 헛점을 보였다간 꼼짝없이 자신의 목이 달아나게 되어있었다.
조금 전 청와대를 출발하기전 박정희의 의미심장한 힐난이 있었다. 무려 3개여단 병력이 낮잠을 잤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색 행주 고양군 삼송면 선, 서오릉 노고산 송추 선에서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긴장 속에서 브리핑을 하다보니, 통역은 통역대로 여간 당황하고 힘이 들었다.
브리핑을 하는 수경사령관이 땀을 뻘뻘 흘리는 판에 미리 사전 약속을 한 통역에 대한 배려가 뒷전이 되었다. 사전에 되도록 ‘말무더기’를 짧게 하고 통역을 위해서 말을 끊는 비점(秘點)이 중간 중간에 찍혀 있었다. 이것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중차대하고 급박한 한국상황을 미국에 설득력 있고 효과적으로 외신기자들이 이번 사태를 비중있게 전세계에 널리 알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깊이 고려하여 한국제일의 국립대학에 인재(통역)추천을 의뢰 했었던 것이다.
이건 어찌된 영문인지 국립대학 박봉달 총장이 추천한 인물이 아니었다. 뜻밖이었다. 돌발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통역석에 서 있는 사람은 덩치가 소도둑 같은 전두팔중령과 사관학교 동기인 김복돌중령이 아닌가.
그렇다면 오늘 새벽 박봉달 총장이 애걸복걸 이문성이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그 일은 그만 허사가 되고 만 것이다. 박봉달 총장으로선 낙심천만이었다. 청와대 경호실은 경호실대로 또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경호실장 박종규의 입장이 보통 난처해진 것이 아니었다. 이를 지켜보던 정보부장 이후락이 수경사 윤필용과 협의 긴급대책을 세웠다. 시간은 촉박하고 다른 도리없이 가까운데서, 그것도 명령 한마디로 차출 할 수 있는 군대내에서 찾아내야 했다. 가장 속 빠른 방법이었다.
이에 생도시절 성적이 우수했고 특히 영어과목에 뛰어 났었던 윤필용 사령관의 직속 작전참모 김복돌 중령이 지목되었다. 김복돌은 미육군대학 출신에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근무 경력이 있었다. 영어 회화 실력이 만만찮다는 평이 있었다. 미국말 실력도 그렇지만 사실은 대통령 박정희의 질책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기에 그랬었다.
김복돌이는 5.16군사 꾸테타를 지지 육사생도 대장시절 생도들을 끌고 나와 시청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한 바 있었다. 박정희가 이것을 기억하지 못 할 리가 없었다.
이 브리핑장에 동원된 장교 중에 흐물흐물하게 생긴 노태이중령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역시 소도둑처럼 험상궃게 생긴 전두팔중령의 사관학교 동기였다. 탄독(彈毒)으로 퉁퉁 부어오른 피투성이의 시체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브리핑 순서 내용에 따라 시체들의 군모를 벗기고 인민군식 머리칼 모양을 보여 주기도 하고, 개개인의 소지장비를 하나하나 들어 보여 주기도 했다. 브리핑 진행 내용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한 보조장교였다.
또 한명의 보조장교가 있었다.
이 역시 전두팔중령과 동기였는데 머리가 좀 모자라는지 아직 소령을 달고 있었다. 월남 전쟁에 나갔다가 귀국한 지가 얼마 돼지 않아선지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린 모습이었다. 박정희를 많이 닮은 편이었다. 짜리몽땅한 체구에 찌그러진 우거지상으로 매우 고약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명찰에는 정호송이라 적혀있었다.
정호송소령이 맡은 일은 노태이중령보다 더 험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인민군 시체의 겉옷을 벗기고 속옷을 확인 시킨다든가, 신발을 벗겨서 북한제임을 확인시키는 일을 했다. AK자동소총이나 인민군 배낭을 들고 브리핑장을 한바퀴 돌기도 했다. 난수표 북조선 화폐같은 걸 들고 외신 기자들에게 가까이 다가 보여주는 일도 정호송소령의 담당이었다.
이렇게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브리핑홍보가 사십여 분만에 끝이 났다.
영어통역이 좀 매끄럽지 못해서 듣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런대로 체면 닦음은 한 셈이었다.
미국대사나 점령군 사령관 일본국대사 등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번 사태의 진정성을 잘 이해하는 표정을 보였었다. 국내 언론이야 말 할 것이 없지만 외신기자들도 부정적인 질문을 하거나 위장 조작된 이번 행사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박정희는 또 한번 제 위치를 다지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미국어른들의 자신에 대한 신임이 한층 더 두터워 지는 것이다.
한국은 확고부동한 대아시아 전략의 반공진지가 되고 박정희 자신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절대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다.
국내적으로는 북괴의 만행에 치를 떨게 하고 국가안보를 위해 사회통제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명분을 축적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정권안보를 위해서 북괴 남침을 핑계삼아 안하무인격으로 철권통치를 일삼아도 되는 것이다.
박정희의 친일 친미 큰 나라에 빌붙는 매국행위는 아주 타고난 재주였다. 그 재주를 무기삼아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군사팟쇼체제를 굳건하게 끌고 나가는 재주 또한 대단했다. 생긴 것은 잘못 빚어놓은 쑥떡처럼 생겼는데 사껀조작 권모술수에 능하고 계집질하는 재주까지 겹치기로 타고난 것이다. 최민구, 양춘식, 엄영길 넝마병단 특공3인조는 북조선에서 남파한 인민군이 아니었다.
애초 강욱철의 특공계획엔 북악스카이웨이 경비 제1초소 습격이었다. 윤창현 동지도 이 계획에 동의했고 그대로 3인 특공조에 전달되었다. 한마디로 치고 빠지는 유격전술의 기본에 해당했다. 인원 무기 기동성에 한계가 있는 작전능력과 작전요껀을 충분히 고려한 특공 계획이었다.
특공3인조에겐 소총이 지급된 바 없었다. 복장도 인민군복과는 무관한 남조선 젊은이들이 보통 입는 염색 작업복이었다.
미숫가루나 마른오징어 고구마 말랭이들도 지참 시키지 않았었다. 다만 저녁 한끼용의 주먹밥을 지참하였으나 이것도 행군도중 다 먹어버리고 없었다.
수경사 윤필용사령관의 브리핑에 의하면, 엄영길 조장은 자신이 소지한 때때권총 외에 경비초소에서 탈취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왼쪽 어깨에 부상을 입고 도주하다가 마지막까지 저항, 새벽 2시경 도봉산 만장봉 근처에서 생포되었다.
엄영길 조장은 어깨관통상의 과다출혈로 관계관의 심문 중에 숨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렇다치면 윤필용의 브리핑 내용은 엄영길 조장의 진술에 근거를 두었다는 말이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그에 근거해서 얼마를 속여 먹어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청와대 전면 입구 초소 공격 특공 2인조는 성공리에 수류탄과 다이나마이트 기습 투척을 끝냈다.
이들은 임무를 끝내고 뛰어든 효자동 입구 통의동 골목에서 애인 역할을 맡은 처녀들을 만나 아무 이상없이 신속하게 내자동골목을 빠져 나왔다. 그들은 다정한 연인들처럼 팔을 끼고 미리 지정해 놓은 술집에 도착 여유롭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은 통금 예비 싸이렌이 울린 다음 여유로운 모습으로 술집을 나와 청량리 이문동 뻐쓰 종점까지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었다. 자칭 고충석의 딲어병단 소속 청와대 전면 초소 습격2인조는 털끝하나 다친데가 없었다.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이 밝힌 브리핑에선 북괴가 남파한 무장간첩 청와대습격 5인조는 전원 사살 일망타진 되었다고 했다. 그 시체 다섯구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2구의 시체가 가짜였었다. 중앙정보부가 요술을 부린 것이다.
청와대 후면 공격 특공3인조의 무장은 간단했었다.
각각 수류탄 2개씩과 가래떡(TNT) 2개씩이었다. 아주 절제된 무력이었다. 특공조에게 소총은 필수적인데 소총을 지급할 수가 없었다.
첫째는 무기가 그만큼 귀하고 부족했었다. 다가오는 큰일을 위해서도 무기를 아껴야 했다. 다음으로는 정면 승부나 지구전이 아니고 상대를 전격적으로 치고 번개처럼 빠지는 유격전법의 일환이었다.
소총도 지급하지 않았고 생포시 자폭용 폭약도 지급하지 않았었다.
이것은 극히 제한된 기습 특공작전이었다. 북악스카이웨이 바깥쪽에 설치된 경비초소를 통과할 수 있다고 가정을 해도 청와대 본관침투는 불가능이었다. 이중삼중의 방어철조망엔 고압전류가 흘렀다. 월남전쟁에서 가져온 부비트렙이 대량으로 살포되어 있었다.
방어초소의 무장력 역시 대단했다. 초소마다 경기나 중기가 배치되어 있고 1개 초소간의 경비병력은 주야 공히 2개 소대가 3교대로 물샐틈없는 경계근무에 임하고 있었다. 이런 경비방어선을 뚫고 청와대 본관공격은 불가능이었다. 일퍼센트의 성공확률이 없는 공격작전은 만용이고 살인행위였다. 아무리 정신무장이 잘 되고 공격의욕에 불타는 특공조를 투입한다 해도, 그것은 상대에게 전승효과를 올려 주는 이적행위일 수 있었다.
강욱철의 이번 계획은 북악스카이웨이 경비 제1초소 기습폭파였다. 그리고 대원들은 신속하게 빠져서 되돌아오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다음 날 새벽 05시까지 재집결 장소를 지정, 숙지시켰었다.
특공 조장 엄영길은 평소에도 박정희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정의감이 강하고 야학에서 배운 사회개혁, 지배권력과 매판자본의 횡포,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남다르게 생각이 많았었다. 이번 특공조 지원 차출 때에도 제일 먼저 손을 들고 나왔었다.
막상 작전 현장에 투입되어 기습공격을 수행하다보니, 치고 빠지기 보다는 과감한 계속 공격쪽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특공작전에 지원할 때부터 치고 빠지는 전술에 응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가 만약 처음부터 치고 빠질려고 생각을 했었으면 살아서 돌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양춘식 최민구 역시 그렇다.
엄영길 혼자 두고 뒤로 빠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욱철은 충격이었다. 너무 큰 손실이었다. 최소한의 희생으로 적에게 최대의 타격을 주는 평소 자기주장의 실패였다. 불암당 소속 ‘넝마병단’ 3명의 죽음을 어떻게 보상해야 할지 강욱철은 또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였다. 윤창현동지 역시 충격이었다.
적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선 깜깜 무소식이었다.
철저한 보도관제가 실시되고 있었다.
지난밤은 하늘이 두꺼운 구름에 덮혀 칠흙처럼 어두웠었다. 특공조가 초소에 근접 접근이 가능했다. 또 엄영길 조장이 초소의 무기를 탈취 새벽 2시까지 저항했다는 것으로 보아 적에게 상당한 피해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수류탄이 여섯발, TNT가 여섯 개인데 수류탄 여섯 개는 거의 동시에 일차 공격으로 던지게 되어있었다. 이어서 적진이 혼비백산하는 틈을 이용 TNT를 투척하도록 훈련이 되어있었다.
TNT의 폭발력도 그렇지만 한꺼번에 폭발한 여섯발의 수류탄 공격에는 분명 초소경비 병력에 상당한 피해를 주었을 것이다. 브리핑 현장에서 바로 바라다 보이는 제1본부 초소건물이 전파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걸 보드라도 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청와대 전면 공격 효과도 전혀 알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2인조 전면 공격 특공대원들에겐 고작 수류탄 2개씩이 전부였다. 전면 공격은 완전 노출공격이어서 TNT는 사용 불가능이었다.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두 개씩의 수류탄을 내던지는 공격이었다. 상대가 언제 손쓸 새도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수류탄 세례를 받게 되어있었다.
여기에서도 초소건물의 반파 외에는 인명피해에 대한 발표가 없었다. 초소가 반파 될 정도의 명중률이었다면 경비실 병력에도 피해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이번 특공작전으로 박정희 일당에게 준 충격파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경사는 물론 경찰 정보부 요원들이 그렇게 철통경비를 펼쳤는데도 어떻게 외곽경비망을 뚫고 청와대 공격을 시도 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청와대 전면 공격은 그렇다 치지만 북악스카이웨이 제1본부초소 습격이야말로 예상 밖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기습공격이었다.
장기간에 걸쳐 고도로 훈련된 병력을 북에서 남파했는지 고정간첩의 소행인지는 아직 정확하진 않다. 고정간첩 냄새가 짙긴 하지만...
이것이 이번 사껀을 보는 정보부장 이후락의 관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