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혁명소설


22

  강욱철은 꼼짝을 하지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 며칠을 지냈다.
  과연 나라와 민족은 나에게 무엇인가.
  왜 인간은 단 하나의 일회성 목숨만을 갖고 태어나는 것인가.
  동족도 적이 되어야하는 현실...
  왜 난 이자들과 동족이 되어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강욱철은 적들의 피를 제 손에 묻히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결단코 그 더러운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친일 친미 사대매국 역도들의 피를 자신의 거룩한 손에 묻히고픈 생각이 전혀 아예 없었다.
  동학혁명 때, 전봉준이 수하에 있던 동지의 연고를 찾아 순창땅 피노리에 몸을 숨겼다.
  전봉준의 머리에 걸린 보상금에 눈이 어두운 그 수하 동지가 배신을 한 것이다. 다리가 부러진 채 장군은 서울로 압송되었다. 처형된 장군의 머리가 서소문 언저리에 효수가 되었다.
  날짜가 지나고, 장군의 수급을 지키는 포졸들의 경계가 시들해지기를 기달렸다. 이 틈을 노린 농투성이 동학군 병졸 하나가 한밤중 장군의 머리를 수습했다. 대나무 석작에 넣어 걸머지고 몇날 며칠 눈을 피해 밤길을 쳤다.
  장군의 고향 전라도 고부땅에 도착했다.
  손으로 흙을 파서 야산발치에 머리무덤을 만들었다.
  강욱철의 머릿속에 농투성이 동학군 병졸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세 개의 머리무덤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성은 고아원 원장의 성이고, 이름은 고아원 직원들이 아무렇게나 붙여준 것이다.     엄영길, 최민구, 양춘식... 시체는 못찾는다.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가루를 만들어 내버리거나 무연고 행려사망자로 화장하여 바람에 날려버릴 것이다. 아니면 수도경비 사령부 졸병들을 시켜 아무데나 땅을 파고 한꺼번에 묻어버리고 말 것이다.
  어디에다 묘비명을 세워줄 데도 없는 것이다.
  오늘부터 조선팔도강산 너르고 너른 땅바닥이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저 푸른 조선의 하늘은 그들의 저녁 잠자리 따뜻한 이불이 되어 줄 것이다.
  이 땅의 역사는 그들의 아비가 되고 이 땅의 현실은 그들의 어미가 될 것이다. 해마다 세세년년 이맘 때가 되면 북악뫼 빨간 단풍잎 그들의 흘린 피 물들어 더욱 새빨갛게 빛날 것이다.

▲ 서울 안산
▲ 서울 안산

  강욱철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판장문을 열었다.
  십이월 초닷새 초겨울 햇살이 맑다.
  시간이 없다. 그는 마음이 바빴다.
  무너진 몸을 추슬러 또 뛰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해마다 사월이 오면 수유리 혁명묘지에서 사월전사들에게 맹세한 바가 있다.    염통에 피 한방울이 남아있는 한 싸우겠다고, 기필코 승리의 함성을 울리겠다고.
  강욱철은 다음 날 새벽 안산에 올라 무기와 탄약을 다시 또 점검했다.
  맹봉사령 고충석동지가 일본인 관광객을 향해 수류탄 2개를 사용했다. 이번 청와대 습격엔 10개의 수류탄이 소모됐다. 가래떡(TNT) 6개도 같이 쓰였다.
  현재 남아있는 수류탄은 5개이고 TNT는 71개이다.
  소총은 M1 한자루, 칼빙 2정 그대로이다.
  강욱철은 홍은동 국숫집 오대영동지를 어서 찾아가야 하고 철원의 안국광대위에게도 다시 또 한 번 더 격려 파발을 띄워야 한다. 코쟁이들이 좋아하는 그들의 대명절 크리쓰마쓰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청와대습격사껀 이전에 있었던 곽세정거사의 삐라살포사껀과 맹봉사령 고충석동지의 수류탄 투척사껀은 세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었다. 또 정의감에 불타는 민중 민족세력의 존재에 대해서도 새로운 눈을 뜨게 했었다.
  연이어서 감행된 청와대 특공작전은 단순한 일개 사껀 차원을 넘어 하나의 커다란 사태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군사도당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남조선 사회 전체에 던진 충격파가 대단한 것이었다.

  사월패 내부에서도 파문이 일었다.
  세정거사와 불암당 고충석동지의 대담무쌍한 투쟁모습에 마음이 설레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넝마병단이나 딲어병단에 비해 속물근성이 덜 빠진 사월패들에게도,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시절이 있었다.
  삼선개헌 후유증 무마를 위한 특별사면으로 감옥에서 풀린 사월패들의 투혼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맨 먼저 하백만 동지가 ‘부주전 상서’를 ‘아버님전에 올립니다’로 바꾸어 시골집에 편지를 띄웠다. 황웅권 이문성 김승국 심세택 김중기 정종익들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광주의 김시헌 부산에선 손명선이 힘을 보탰다. 강욱철도 죽기보다 싫은 ‘아버님전 상서’를 올렸다.
  가뭄에 며루까지 극성을 부려 폐농상태인 데다 입도선매(立稻先賣)자금으로 시달리는 아버지 강남현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욱철은 이빨을 물고 거짓말을 했다.
  이제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고쳐먹고 살 길을 찾아야겠다고, 샛빨간 거짓말을 했다. 왕십리쪽에 자그마한 가게가 하나 나왔는데, 미곡상을 겸하여 연탄가게를 차리겠다고 했다. 서울에선 쌀가게와 연탄장사가 가장 실속이 있다는 것은 시골에까지 다 소문이 나 있었다.
  소를 팔거나 논밭 몇마지기를 정리(賣)해야 이에 해당하는 돈을 올려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넝마병단 딲어병단 대원들도 궁색한 주머니를 털고 수제비로 떼우던 끼니를 한끼식 걸러 종이돈 몇장씩을 보탰다.
  이를 취합하여 노처녀 정민순의 손을 빌려 오대영동지 안국광대위에게 극비리에 전달을 끝냈다.
  나중 숫가락 젓가락을 옮길 때에도 노처녀 정민순의 손이 필요할 것이다. 그녀는 임기응변에 능하고 순간 판단이 빨랐다.

  박정희 일당이 제 정신을 못차리고 실정을 거듭하고 남조선사회가 불안에 떨수록 강욱철에게는 기회가 많았다. 느긋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1.21사태라고 하는 김신조부대 침투 이후의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1.21사태 이후 그렇게 경계태세를 강화했는데도, 북조선 무장간첩이 남조선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 습격을 감행하였다.
  강북 땅값은 똥값에 더욱 똥값이 되고 북이 언제 쳐내려올 줄 몰라 전전긍긍 불안하기 짝이 없는 서울이 되었다. 서울 민심이 뒤숭숭해지자 시골은 따라서 들썩거렸다.
  여차하면 도망갈 생각에 부자들은 지폐를 황금덩어리로 바꾸거나 미국돈 딸라로 바꾸느라 금값과 딸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큰 부자들은 김포공항에 자가용 비행기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장관 국회의원들은 아들 딸 사위들을 미국으로 유학, 핑계 좋게 미리 고급주택을 사놓고 있었다.
  한강 이북의 삘딩들은 헐값에 내놓아도 사려는 자가 없었다.
  돈없는 사람들도 덩달아서 불안 심리에 들 떠 있었다. 6·25때 피난지로 유명한 제주도나 부산 거주 친인척을 찾아 새삼스럽게 연줄을 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생필품 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어올랐다.
  이러나저러나 돈없는 빈민들 살기만 어려웠다. 권력 있고 돈 있는 놈들이야 이래도 잘 살고 저래도 잘 산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끼니 떼우기도 어려운 놈들만 죽어나는 것이다. 엄동은 다가오고 앞으로 목구멍에 풀칠하기가 더욱 어렵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뜻밖에 허를 찔린 권력 내부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수경사, 정보부, 경호실간의 책임전가였다. 평소의 안륵이 표면에 오른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반수사나 작은 사껀에는 힘이 실릴 수가 없게 되었다. 동두천 미군장교 살해사껀, 일본인 관광객 상대 수류탄투척사껀, 국회의사당 앞 삐라살포사껀등도 이에 해당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먼 남쪽 외딴섬에 안착한 이한숙이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처음에 소망했던대로 아주 작은섬 늙은 부부가 살고 있는 무인도(?)에 거처를 정했다는 것이다. 모처럼 사람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수락산 땡중 곽세정거사는 감옥에서 나와 뱃심 좋게도 사패산 근거지에 은신 중이었다. 산도적 동명스님의 보살핌 아래 다음 일을 위한 건강회복에 정진중이었다.
  사껀 초기 며칠동안 행방을 찾느라 애를 먹었던 맹봉사령 고충석동지는 변함없이 구두닦이 왕초자리를 잘 지켜내고 있었다.
  그동안 2,3년을 두고 연락이 끊겼던 용두동 땅굴 거지대장 유대원 동지와도 연락이 되었다. 천막학교 야학을 인연으로 윤창현 고충석 동지와도 친숙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유대원 동지의 땅굴사단의 힘도 기대를 모았다. 불타는 유대원동지의 투쟁혼과 강철같은 그의 땅굴정신에 강욱철은 항상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다. 청와대 전면 공격수 2명도 무사히 잘 있다. 깔끔하게 깎았던 머리모양이 더부룩해졌을 뿐 정해진 제자리에서 구두닦는 일에 열심이었다.
  이들 두사람은 안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체포 되었을 경우, 잘못하다간 사껀 전체가 거짓조작 되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정보부로선 잡아들여도 골치이고 내버려두어도 골치인 것이다. 언제 또 다시 이들이 공격을 시도할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조직규모, 공격력, 무장상태, 근거지 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무작정 수사를 미룰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이를 대대적으로 내놓고 수사를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진퇴양난이었다.     그러다가 날조된 사껀 전모라도 밝혀지는 날엔 정보부장 수경사령관 모가지가 문제가 아니었다. 정권자체가 뿌리째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미국대사관이나 미점령군 사령관의 암묵적 재가도 받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청와대 기습 5인조특공사껀 전모에 대해서 말이다. 단 남조선 주재 미 CIA책임자만은 뇌물도 많이 먹은 처지에 이심전심으로 그냥 그런대로 놓아두고 보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강욱철은 요 며칠 사이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크리쓰마쓰가 며칠 남지 않았다.
  남조선은 돈이 궁한 지구상 최하위권의 나라이지만 돈,돈,돈이 지배하는 돈판사회인 것이다. 돈이 없으면 죽은 목숨인 것이다. 돈이 사람을 살리고 돈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돈만 있으면 못 할 것이 없는 세상인 것이다.
  제 어미 탯집에서 더러운 세상 나오지 않을려고 악착같이 버티던 아이도, 여기 돈! 하면 응에-하고 튀어나오는 게 남조선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그 귀하신 종이다발, 피 같은 돈을 모아서 보냈다. 허리굽은 부모님들의 기름을 짜서 보내온 돈이었다. 일이 잘못 되어선 아니되는 것이다. 고난과 핍박의 땅, 외세의 압제와 빈곤에 찌들은 이 땅에도 밝은 빛이...
  강욱철은 강욱철답지 않게 마음이 급해진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는 자신을 타일렀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누그러뜨리느라 애를 먹었다.
  급하게 먹는 밥은 채하기 십상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군복을 벗은 오대영, 현역 안국광대위, 강욱철은 깊은 신뢰와 높은 기대를 거는 동지들이었다.
  강욱철은 무거운 마음을 털어버려는 듯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기필코 그들은 맡은 바 책무를 다 할 것이다. 지리산의 아들 오대영, 안암골 호랑이 안국광, 그대들의 가슴에 불타오르는 사월혼! 그대들의 가슴에 불타오르는 조국애! 겨레의 혼불...
  강욱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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