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의 정치신문과 현대사회(7) - 1부 총괄
본문요지
정치폭로와 정치활동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지금까지 제정 러시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던 논의를 ‘현대사회’로 확장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민주주의 변혁단계를 거친 국가에서 여전히 ‘일반민주주의’ 과제가 제기되는 이유는 ‘계급국가’라고 하는 국가권력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민주주의 활동의 실질적 내용은 국가가 스스로 천명한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지위를 버리고 특정 계급•집단을 어떻게 편애하는지에 관한 ‘정치폭로’이며, 이러한 정치폭로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정치활동의 기본이자 정치지도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4. 러시아 혁명시기 레닌 정치신문 사상 총괄 (본문)
레닌의 정치신문 사상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신문은 ‘집단적 선동가’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 조직가’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레닌 사상에 입각한 정치신문의 공헌은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당 창건과 사회운동 발전에 있어 대단히 혁혁한 것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글머리에서 다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다. 하나는 레닌의 정치신문 사상이 1903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제2차 당 대회가 열리기 직전까지의 당 창건 시기에만 주요하게 적용되는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혁명 시기 전체를 관통했던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소위 ‘시간문제’) 다른 하나는, 레닌의 정치신문 사상이 당시의 제정 러시아에만 적용될 수 있는 특수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 있어서도 상당 정도 보편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이다.(소위 ‘공간문제’)
지금까지의 러시아혁명에 대한 고찰을 통해 첫 번째 ‘시간문제’에 관해선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즉 정치시문은 당의 창립 시기뿐만 아니라, 러시아혁명 전 시기에 걸쳐 당 사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당 사업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공간문제’, 즉 한국처럼 이미 민주주의가 상당 정도 이루어진 현대적 국가에 있어서도 레닌의 정치신문 사상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검토할 차례이다. 필자가 연재를 시작할 무렵 밝힌 바와 같이 사실 이 글의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공간문제’와 관련해선, 먼저 신문의 ‘집단적 선동가’의 역할과 그 의미를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 정치신문의 기본 기능이며, ‘집단적 조직가’는 그로부터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도 정치선동,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선동이 기초하고 있는 ‘정치폭로’가 정치활동의 필수조건이라는 점이 입증되게 되면, 정치신문의 나머지 기능 즉 ‘집단적 조직가’와 관련된 문제도 쉽게 풀릴 수 있다. 신문의 주변에는 어쨌든 지지층(독자층)이 결집하기 마련이며, 정치조직은 그들을 적절히 조직하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폭로와 정치활동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지금까지 제정 러시아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던 우리의 논의를 현대사회로 확장하는데 있어 중요한 단서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밖에도 정치신문의 구체적인 ‘형식’과 관련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오늘날 현대사회는 ‘종이신문’ 외에도 다양한 매스미디어가 존재한다. 특히 최근 ‘인터넷 매체’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각종 SNS가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데, 이 같은 기술적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종이신문이든 인터넷 매체든지 간에 그것들은 모두 크게 보면 ‘언론매체’의 범주에 속한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언론매체의 구체적 형식은 정치신문의 본질을 변화시키지 못하며, 오히려 일반 언론매체로까지 확장된 ‘정치신문’은 그 본래적 의미를 더욱 강화시켜 줄 것이라고 본다.1)

1) 레닌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가 남긴 문제
80년대 활동가들 사이에서 많이 읽힌 저작 중의 하나는 레닌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 (일명 ‘Task’)였다. 레닌은 그 글에서 처음으로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이 수행해야 할 두 가지 임무, 즉 ‘사회주의과제’와 ‘민주주의과제’를 제출하였다.
레닌은 거기서 러시아 사회주의자들의 실천 활동의 목적은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을 지도하는 것이며, 그 투쟁을 다음 두 가지 표현, 즉 자본가계급에 대항하여 계급제도를 타파하고 사회주의사회를 조직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적 투쟁’과, 절대주의에 대항하여 러시아에서 정치적 자유를 획득함으로써 러시아의 정치·사회체제를 민주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적 투쟁’으로 조직하는 것이라 하였다.2)
여기서 우리는 자칫 민주주의투쟁이 정치적 자유가 억압된 러시아적인 특수 상황 하에서 제기되는 과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레닌 역시도 “러시아의 정치사회체제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가 획득되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성공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3) 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마치 그 같은 해석에 힘을 더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한국 변혁진영의 많은 사람들도 실제 그렇게 해석하였다. 즉 레닌이 제기한 민주주의과제는 그의 ‘2단계 연속혁명론’과의 관련 속에서 최종목표인 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그 전 단계의 임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혁명 단계를 일단 거쳤지만, 러시아처럼 연속혁명으로 나아가는데 성공하지 못한 채 상당 기간 자본주의 틀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는 어떻게 되는가? 그런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과제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최종목표의 실현을 위한 선행조건인 정치권력의 획득을 위한 투쟁을 수행하게끔 하는 계기는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에서는 결국 정치권력을 장악한 계급이 최종적인 승리자가 되며, 이 때문에 투쟁하는 계급들은 모두 정치권력의 장악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상 그러하다는 의미이며, 저절로 각각의 계급 대중들이 정치투쟁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평상시에는 국가권력의 본질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위의 본질 규정과 현실에 있어서의 각 계급 대중이 정치투쟁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레닌은 노동자들의 정치투쟁을 유발하는 계기와 관련하여, 우선 노동자들이 경제투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정치선동의 계기를 거론하였다. 즉 “모든 파업에서 제기되며 노동자와 자본가들 사이의 어떤 충돌에서도 명시되는 경찰의 폭압에 대항한 선동”이 그것이다. 이는 매우 타당한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파업은 노동자학교”라는 말이 있듯이, 노동자들은 파업과정에서 공권력 투입 등 국가권력의 노골적 폭력에 부딪치게 된다. 평소 중립적으로 보였던 정부가 확실하게 자본가 편을 드는 것을 목격한 후, 그들은 비로소 국가권력의 본질을 파악하고 정치투쟁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그런 기회만으로는 너무 협소하다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선 공권력이 직접 개입할 정도의 큰 파업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아니며, 한국의 노동자들은 무노동 무임금, 손해배상소송, 직권중재, 고소고발 등 여러 가지 제약 조건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파업을 감행할 경우 자신들도 적지 않은 책임을 져야 하므로, 그들은 가급적이면 그것을 피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만약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직업적 이해와 관련된 투쟁을 통해서라야 정치적 각성을 높일 수 있다면, 그것은 하세월일 수밖에 없다.
레닌의 본뜻도 사실 정치선동의 계기가 단지 경제투쟁에만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는 경제선동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무한히’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컨대,
“경제적 영역에서 경제적 선동을 위해 사용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생활 문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영역에서 정치선동을 위한 소재로서 제공되지 않는 것은 없다.”4)
위 인용문은 정치선동이 ‘상대적 독자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정치투쟁’을 촉발시키는 정치선동은 나름의 독자적 영역을 갖고 있어서, 굳이 경제문제와의 연계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절대군주 하의 러시아적 조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선동이 이렇듯 독자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2) ‘일반민주주의’ 과제의 성립
국가권력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즉 국가는 원래 ‘계급국가’ 이지만, 마치 자신이 사회의 어떤 특정한 계급에도 속하지 않는 초월적 존재이자 ‘공정한 중재자’ 인양 가장한다는 것이다. 엥겔스는 일찍이 이 같은 국가에 대해 “사회로부터 태어났지만, 사회 위에 머물면서 또한 날로 사회로부터 멀어져가는 힘5)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바로 이 점이 굳이 ‘계급적 이해관계’에 기초한 경제투쟁을 매개로 하지 않더라도 직접적인 정치선동이 가능한 이유이다.
국가권력이 이처럼 자신의 계급적 본질을 위장하는 것은,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한 지금까지 역사상 존재했던 다른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6) 자본주의 국가도 예외는 아닌데, 그것은 본질상 자본가계급이 통치하는 국가이면서도 마치 모든 국민의 국가인양 가장한다. 예컨대 한국의 경우 ‘삼성공화국’이 말해주듯 사실상 ‘재벌국가’이면서도 전체 성원의 국가인양 행세하는 것이다.
여기에 근원적 ‘모순’이 있다. 형식상으론 전체 사회 성원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특정한 계급 즉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편향성’이 존재한다. 다른 한편, 국가는 자신이 계급관계를 초월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자유•평등•박애’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고, 국가권력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도 나름대로 민주적 절차를 갖춘다. 그것은 국가에게 ‘합법성’을 부여하는 측면이 있지만, 다른 한편 그것은 자신을 구속하는 족쇄가 된다. 왜냐하면 어쩔 수 없이 지배계급에 편향될 수밖에 없는 ‘계급국가’의 본성상, 국가는 스스로 그것을 어길 수밖에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비참한 죽음을 비롯해 해마다 20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은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 이는 경제규모가 이미 세계 제12위에 올라선 한국으로서는 면목이 서지 않는 일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권, 행복권 보장을 천명하는 대한민국 ‘헌법’과도 모순된다. 또 2020년 11월 현재 쟁의행위와 관련된 손해배상가압류 소송 건수는 여전히 58건이나 된다. 이렇듯 쟁의행위에 관한 제한 규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헌법상의 ‘노동3권 보장’이 사문화 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또 삼성재벌의 계승자인 이재용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에 연루된 수많은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를 처벌치 못한 채 시간만 끄는 사법부를 보면서 ‘법 앞에 평등’이란 한낱 수식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 주변에는 이 같은 사례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이러한 국가권력의 ‘불공정성’ 문제는 민주주의 변혁단계 이후에도 ‘민주주의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국가는 결코 공정한 중재자일 수 없으며, 국가의 ‘중재’라는 것도 화해할 수 없는 계급간의 적대적 이해관계를 억지로 화해시키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많은 경우 폭력과 강제가 동원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의 이러한 ‘폭력적 중재’와 ‘불공정한 중재’에 대한 대중들의 저항은 결국 ‘민주주의’라는 깃발을 다시금 움켜쥐게 한다.
이리하여 일반민주주의 과제는 반봉건, 반독재 민주주의 혁명이 완수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국가권력에 맞서는 주요한 형식이 된다. ‘일반민주주의’ 과제가 성립하는 것은 결국 ‘국가권력’의 존재로부터이며, ‘계급국가’라고 하는 국가권력의 본질로부터 유래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한국사회의 경우, ‘국가보안법’과 같이 민주주의 변혁단계의 불철저한 수행으로 완수되지 못한 과제가 아직 남아있는 것도 현 시기 민주주의 투쟁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3) ‘일반민주주의’ 활동의 내용 — ‘정치폭로’
그렇다면 민주주의 활동의 실제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정치폭로’이다. 국가가 스스로 천명한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지위를 팽개치고 특정 계급과 집단을 어떻게 편애하는지, 또 그것을 위해 스스로 정한 절차와 규정을 어떻게 어기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폭로하는 것이 사실상 민주주의 활동의 실질적 내용이 된다.
왜 그러한가? 민주주의 변혁단계에서 이미 ‘제도적 요구’는 기본적으로 달성되었다. 예컨대 대통령 직선제, 언론 및 집회 결사의 자유 보장 등이 그것이다. 물론 국가보안법 폐지 등 아직까지 남아 있는 과제가 있긴 하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부차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자본주의체제 내에서의 제도적 개혁보다도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넘어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틀 내에서의 제도개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야 말로 중심적인 임무가 된다는 뜻이다.
사실 이러한 일은 민주주의 과제가 달성된 이후라야 비로소 가능하다. 부르주아민주주의는 자유•평등•박애와 같은 추상적 가치를 내걸며 자신을 포장하는데, 그것이 아직 관념상으로만 존재할 경우에는 그에 대한 환상을 깨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민주주의 변혁단계를 거쳐 일단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실현된 이후에는, 지금까지의 관념과 실제 현실과의 괴리를 통해서 그 허구성을 드러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부르주아공화국의 허구성은 오직 그 ‘내부로부터’만 폭로될 수 있다. 그 좋은 역사적 사례가 러시아에서 1917년 10월 혁명 후 발생한 ‘헌법제정회의’(제헌의회) 사건이다.
당시 헌법제정회의 선거는 10월 혁명 전에 작성된 정당별 명부에 입각해서 1917년 11월에 실시되었다. 이 선거는 민중의 대부분이 아직 사회주의혁명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부르주아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이 남아 있던 상황에서 실시되었다. 사회혁명당 우파는 이 점을 이용하여 수도와 공업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방과 도시에서 예상 밖의 득표를 하였다. 그 당시 각 정파별 득표수를 보자면, 총 투표수 4170만 중 사회혁명당이 1700만표, 입헌민주당 200만표, 멘셰비키가 140만표를 얻었다. 볼셰비키는 단지 980만표 득표에 그쳤다. 다수파가 된 반혁명세력들은 이 제헌의회를 통해 소비에트권력을 무력화시키고 부르주아의회제를 수립할 것을 기도하였다.
제헌의회가 개회되기 전날 밤, 당시 소비에트 혁명정부의 내각 격인 ‘전(全)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는 레닌이 기초한 <근로•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을 채택했다. 이 선언은 국내의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에 속한다고 성명하였으며, 평화•토지에 관한 포고 등을 확인하는 한편, 소비에트정부가 행하던 모든 외교정책을 승인했다. 전 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는 1918년 1월 5일에 개회한 헌법제정회의에 대해 이 선언을 채택할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사회혁명당 등 제헌의회의 다수파는 ‘선언’의 심의를 거부하였다. 이로써 스스로 공공연하게 소비에트권력 및 인민 대다수 의지에 반대하는 자신의 반(反)소비에트적 본질을 분명히 드러냈다.
1월 6일 전 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는 이 부르주아적 헌법제정회의를 해산시켰다. 이에 대해 대다수 민중들은 특별한 반대 표시를 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대중들은 이 제헌의회가 그들이 절실히 바라는 평화와 토지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대중은 부르주아의회제에 대한 환상을 버리게 되었다. 제헌의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정책은 며칠 후인 1918년 1월 10일에 열린 ‘노동자-병사대표 소비에트’ 제3회 전 러시아대회에서 지지를 받았으며, 소비에트 권력은 이로부터 더욱 공고해졌다.7)
한국에서 과거 민주노동당을 통한 진보정당의 실천은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반성할 점이 많이 있다. 진보세력들은 처음에는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열린 합법공간을 적극 활용한다는 취지에서 제도정치권 진출을 꾀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의석수에 지나치게 집착하면서, 의회민주주의의 한계를 폭로하기보다는 ‘의회를 통한 변혁’으로 점차 개량화되어 갔다. 민주노동당은 결국 선거정당으로 전락하였으며, 공직자와 국회의원 자리를 둘러싼 자리다툼 끝에 스스로 분해되고 말았다.
당시 만약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 사업을 ‘의회전술’이라는 관점에서 올바로 수행했다면, 민주노동당은 한국 변혁운동의 발전을 위해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다. ‘의회전술’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하지만, 그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국가기구 중심에 ‘폭로 거점’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부르주아공화국의 허구성은 '내부로부터'가 아니면 폭로될 수 없다고 하는 원리와도 일치한다.
또 다른 사례로 최근의 ‘검찰개혁’과 관련한 것이 있다. 노동운동과 변혁진영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이 한국사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 아니라, 조국이나 추미애 장관의 신변문제와 관련한 여야 간의 공방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두 사건에서 막강한 검찰 권력과 언론이 총동원되다시피 하고서도 결국 밝혀진 것은 사소한 몇 가지 ‘부도덕한 행위’ 밖에 없다.
이처럼 부르주아공화국에 대한 환상을 깨고 자본주의 틀 내에서 진행되는 제도개혁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은, 오직 변혁적 관점에 입각하여 내부로부터 꾸준한 정치폭로를 진행할 때만 가능하다.

4) 정치폭로와 정치신문
‘정치폭로’를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수단이 바로 정치신문이다. 그 이유는 정치신문만이 정치폭로에 필요한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현장성과 적시성이다. 레닌은 이에 대해, “범인을 현장에서 잡아서 모든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즉각 낙인찍는 것은 그 어떤 행동에 대한 ‘요구’를 제출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력적인 정치선동과 생생하고 인상적인 폭로가 수행되면, 대중에게 일부러 행동하라고 요구할 필요도 없이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누가 처음 그것을 요구했는지, 정확히 누가 이런 저런 시위 계획을 제안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8)
둘째, ‘전국성’이다. 국가권력의 불공정성이나 폭력성은 전국적 범위에서라야 종합적인 포착이 가능하다. 국가기구는 그 층차에 따라 도시와 농촌에서 각각 시•구•동, 도•군•읍•면 등으로 구분되어 분포되어 있다. 이들은 수준은 다르지만 국가권력과 관련한 각종 문제들이 발생하며, 특히 현대사회에 올수록 ‘복지국가’를 천명하는 이념 때문에 국가권력은 자연스럽게 고유한 정치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등 민중의 일상생활 전 영역에 걸쳐 침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각 행정 층차와 생활 영역 전반에서 권력의 불공정성과 억압 상황을 폭로할 때만이 ‘계급국가’의 진면목이 온전하게 그려질 수 있다.
5) 정치지도력과 ‘정치폭로’
끝으로 정치지도력과 정치폭로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도록 하자. 한국의 진보세력은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전히 소수파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일까?
레닌의 정치신문 사상은 그에 대한 일정한 해답을 준다. 그는 정치지도력을 얻고 싶은 정치집단은 무엇보다도 우선 ‘정치폭로’를 열심히 수행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예컨대,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현상화된 모든 불만을 활용하고, 모든 항의를 모아서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치가들’이 될 것이며 이름뿐인 사회민주주의자가 될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실제로 전국적 폭로를 조직하는 정당만이 혁명세력의 전위대가 될 수 있다.”9)
위 두 문장은 상호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즉 작은 불만들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세력만이 진정한 정치적 지도력을 획득할 수 있으며, 그를 위해서는 전국적 정치폭로를 잘 조직해야 함을 말해준다. 여기서 소위 ‘정치가’와 ‘이름뿐인 사회민주주의자’는 이렇듯 사소하지만 전국에 걸쳐 산재한 불만들을 제대로 이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것들은 비록 개별적으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정치폭로를 통해 조직되게 되면 전체로는 거대한 ‘분노의 강물’을 형성한다.
또 객관적 사실이 뒷받침 되어야만 그로부터 진일보한 정치적 해석과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는 측면에서도 정치폭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정치폭로는 그러한 ‘고차원적 정치선동’의 기초를 제공한다.
이렇게 본다면 다양하고 전면적인 정치폭로의 조직이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정치활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정치지도력은 광범위한 '정치폭로'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에 반해, 위의 ‘정치가’와 ‘이름뿐인 사회민주주의자’는 이러한 기본을 무시한 채, 조급하게 처음부터 겉으로 보이는 크고 그럴듯한 것만을 뒤쫓는다. 그 때문에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바라는 정치지도력으로부터 갈수록 멀어진다. 지금 한국의 진보진영과 변혁세력이 바로 이런 경우에 속한다. 우리의 정치활동은 여전히 보수언론이나 기껏해야 진보적 쁘띠부르주아 언론의 정치폭로에 기초하고 있다. 설령 스스로 직접 정치폭로를 조직한다손 치더라도, 우리의 수준은 보수 정치세력과 그들의 언론에 비한다면 너무도 미약하다. 폭로의 폭은 협소하고 다양하지 못하며, 시기성에 있어서도 선도적이지 못하고, '관점'의 문제가 심각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모든 원인은 무엇보다도 한국의 노동운동과 변혁세력이 전국적 영향력을 지닌 독자적인 정치신문을 보유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최소한 진보적 쁘띠부르주아 신문인 ‘한겨레신문’ 만큼의 영향력을 지닌 노동자 독자매체의 건설이 시급한 이유이다. (1부 끝)
본문 주석
1) 레닌은 일찍이 라디오 기술이 실험실 수준에 있던 1920년경, 라디오를 “종이가 필요 없고, ‘거리의 제한을 받지 않는’ 신문”이라는 의미심장한 표현을 하였다.(“블루웨이치에게”, 《레닌전집》 제49권, 인민출판사 1988년판, p244, 베이징) 당시 실험실의 기술요원조차 무선전신을 통해 언어를 발송하고 접수하는 실험을 단순히 무선전신 기술의 일반적 진전 정도로 간주하고 있을 무렵에, 레닌은 무선전화와 확성기를 결합한 미래의 활용 전망에 대해 예견하였던 것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 레닌의 정치신문 사상에 있어 ‘신문’은 그 본질적 의미에서 본다면 매체의 구체적 형식에 구애받기 보다는 “집단적 선동가이자, 집단적 조직가”라는 그 기능에 역점이 두어져 있다.
2) 그와 관련한 레닌의 설명을 부연하면, 사회주의적 활동은 “선전을 통하여 과학적 사회주의이론을 확산시키고 현재의 사회· 경제적 체제와 그것의 기초 및 발전에 대한 적절한 이해; 러시아사회의 다양한 계급들 및 그들의 상호관계, 그 계급들 사이의 투쟁과 이 투쟁에 있어서 노동계급의 역할, 쇠퇴하는 계급과 발전하는 계급에 대한 노동자의 태도, 자본주의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노동자의 태도 등에 대한 이해; 국제 사회민주주의와 러시아 노동계급의 역사적 임무에 대한 이해 등을 노동자들 사이에 확산시키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다. 민주주의적 활동은 “절대주의의 모든 표현들과 그 계급적 내용 그리고 그것을 뒤엎어야 할 필요성에 관한 이해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러시아의 정치사회체제에서 민주주의와 정치적 자유가 획득되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위한 성공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관한 이해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도 노력” 하는 것이다. 김탁 옮김, 《레닌저작집 1(1895~1901)》, 전진출판사, 1988년판, p49, p51 참조.
3) 위의 책, p51.
4) 위의 책, p51.
5) 엥겔스, “가족, 소유제 그리고 국가의 기원”, 《맑스•엥겔스전집》(제21권), p194, 인민출판사 1965년판, 베이징.
6) 중국 헌법 제1장 제1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계급이 지도하고 노농동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국가이다.” 라고 함으로써 국가의 계급적 성격과 사회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국무원법제판공실 편,<신편중화인민공화국 상용법률법규전서>,중국법제출판사, 2010년 판) 사회주의 국가가 이렇듯 자신의 ‘계급적 본질’을 명확히 천명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밝히듯이 노동자계급과 농민이라는 절대 다수자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7) 이상, 황인평 엮음: 1985년, 《볼셰비키와 러시아혁명Ⅲ》, 거름, pp24-25 참조.
8) 김탁 옮김, 《레닌저작집 1(1895~1901)》, 전진출판사, 1988년판, p223.
9) 위 인용문은 각각 위의 책 p235, p236에서 따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