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국정원이 이 사건을 조직사건과 이적단체로 부풀려 수사하다 실패했다는 점과 녹취록 조작에 대해
-고니시가 저에게 주었다는 스테가노그래피 판독용 SD카드, 즉 기본키에 대해
-수사기관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 관해
-제가 저술한 책에 관해
-앞으로 새롭게 전개될 격변의 국제정세에서 국가보안밥이 더는 유지가 불가능한 법이라는 점에 관해
-이런 북의 충격적 정책 변화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것이 국가보안법과 어떤 연관이 있는 지에 대해
-이러한 변화가 법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으로 한국-조선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며 반국가단체는 어디로 가는가
-헌법의 3조 영토조항 개정과 국가보안법이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
-재판을 끝내며 저의 소회에 대해
이정훈 연구위원(전 통일시대 연구위원)은 페루국적 ‘고니시’를 만난 협의로, 2021년 5월 21일 국가보안법상 통신 회합과 고무, 찬양 등 협의로 구속 기소되어 4년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4년전 국민들의 국가보안법 폐기를 위해 10만명 국민동의 청원투쟁이 고조되던 시기와 맞물려 공안당국이 의도적으로 기소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국보법폐지국민행동은 10만명 서명을 9일 만에 달성해 국회에 제출한 바 있으며, 이 사건 이후 정당, 종교, 사회단체가 망라된 ‘이정훈 대책위’가 광범위하게 구성되었다. 이 글은 9월 10일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1심 결심공판 최후진술 내용이다. 검사는 이날 이 연구위원에 대해 징역 8년을 구형했다. [편집자]

1] 이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제가 프락치라고 의심한 알 수 없는 사람과 만나서, 그의 신원을 확인하려고 알 수 없는 대상과 몇 차례 통신하다 그 통신이 실패하여 끝난 일입니다. 저로서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 국가보안법상 통신 회합 위반 사건으로 조작되고, 여기에 더해 공안기관이 이 사건과 무관한 저의 통일 관련 출판 저술 물을 이적표현물로 붙여서 2021년 기소한 사건입니다.
한마디로 이 사건은 국정원이 4년여 동안 공들여 수사했으나, 초기 수사 판단과 맞지 않아 송치하지 말았어야 할 사건이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당시 국정원은 폐기가 예정된 국가보안법 사건의 수사 권한을 되돌리려는 욕심과 실적주의가 겹치며 이 사건을 기소하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재판이 길어진 이유도 수사기관에 의해 방대하게 부풀려지고 짜맞추어진 수사기록과 증거에 대해, 검찰도 문제의식 없이 무조건 기소하는 관행 때문이라고 봅니다.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의례 그렇듯이 이 사건 공소장도 수사기관의 주관적 논리와 조작을 걸러내지 못하고 정해진 공식과 무리한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며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 제시된 주변 증거는 무수히 많으나 공소 내용을 증명할 결정적 증거가 없는 사건으로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사건은 공소장에 기술된 사건과 전혀 실체가 다른 사건입니다.
2] 4년에 걸친 긴 재판 과정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 재판 과정에서 증명된 게 무엇인지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알다시피 이 사건의 발단은 저로부터 시작된 사건이 아닙니다. 국정원이 고니시란 사람을 추적하면서 시작된 사건입니다. 국정원 수사기록에 따르면. 공안 당국이 페루 국적 고니시라는 북한 공작원이라고 추정하는 사람을 발견해서 추적 수사하던 중, 그가 한국에 입국하여 저를 만나자, 저를 북한 공작원의 포섭 대상으로 확신하고 이후 국정원이 거대 간첩단 사건을 기대하며 수사 규모를 크게 늘려 수사를 개시한 사건입니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 수사의 방향은 고니시라는 사람과 저 양 방향이었고, 사실 국정원은 저보다 고니시라는 사람을 이 간첩단으로 추정한 사건에서 더 비중 있게 다루었다고 봅니다. 그가 2017년 4월 서울을 다녀간 뒤 바로 그를 따라 필리핀과 중국으로 추적 수사합니다. 그의 집 근처까지 잠복하여 수사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당시 필리핀에 살았지만, 여권 국적은 페루입니다. 그래서 국정원은 페루까지 달려가서 그의 모든 신분 자료와 과거 기록을 초등학교 기록부터 추적수사 합니다.
그러다, 돌연 2020년 2월경 고니시 부부가 필리핀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도 저는 체포되어 수시기관을 통해 처음 들었습니다. 국정원 수사기록에 따르면 그의 사망 증거는 필리핀 지역의 작은 인터넷 신문에 그의 사망 기사가 났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고니시는 누구이며 그는 왜 사망했을까요? 과연 부부가 동시에 무슨 연유로 사망했다는 것인가요? 저로서는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입니다.
여하간 그가 저를 서울에서 만나면서부터 저는 이 사건에 연루됩니다. 그런데 이 재판이 끝나가는 시점까지도 검찰은 고니시란 사람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니시의 정체에 대해 법정에서 증명된 것은 무엇입니까?
왜 공안당국은 고니시 부부가 필리핀에서 사망했다고 하면서, 그의 공식 사망 사실 확인을 재판이 진행되는 4년동안 사실상 거부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니시 과거 신원확인을 위해 페루까지 찾아 나섰던 국정원이 이에 대한 추가자료 제출이나 검증을 하지 않고 있으며, 검찰이 왜 필리핀과 사법 공조하여 사망 확인 증명서 하나 발급받는 게 불가능한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 재판이 끝나가는 시점에도, 고니시가 왜 사망했는지, 실제 사망했는지 공안당국이 그가 잠적해 사망 처리한 것인지, 아니면 무슨 알 수 없는 국정원과 고니시 사이의 내막이 있었는지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더구나 법정에 자신이 과거 공작원이었으며 30여 년 전에 그를 잠시 만나 신분세탁 했다고 기억하여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조OO 씨는 고니시가 그가 자신이 만났던 사람인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의 정체에 대해 재판과정에서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저 역시 서울서 2017년 4월 잠시 만났던 그가 누구인지 지금도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당시 저는 그가 공안기관이 저에게 접근시키는 프락치일 것이라고 주로 판단했습니다. 그가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하는데, 북한과도 사업상 연관되었다는 말을 먼저 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저는 그의 이야기에서 직감적으로 심상치 않은 조짐을 느꼈고 그래서 복잡하고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상태에서 그를 대했습니다. 일단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지식 정보 수준과 정체를 파악하려 했으며, 만약의 경우 그를 언론에 프락치로 폭로할 경우도 생각하며 그를 대했습니다.
그를 만난 경위는 이미 얘기했지만, 저는 당시 진보 인터넷 언론의 국제부 팀장이었으며, 해외인사들과 자주 소통하며 이분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종종 만나는 편이었습니다. 고니시라는 사람도 SNS를 통해 접촉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해외에서 사업도하고 통일운동도 하는 해외동포인데 한국 갈 일이 있어 한 번 보자고 해서 만났습니다. 고니시라는 이름은 체포 구속되어 처음 들었으며 그가 저에게 말한 이름은 사실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저는 재판이 시작되고 고시니의 생사여부에 대한 사법 국제공조가 이루어지면, 당연히 그의 생사여부와 신원에 대한 문제가 해소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의 사망도 사실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가 진짜 공작원인지 프락치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인물인지 정말로 저도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고니시의 본명은 무엇입니까? 그의 국적은 일본입니까? 페루입니까? 북한입니까?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잠적했는지에 대해서도 검찰은 확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가 페루에서 신분세탁을 했다는 것이 검찰의 주요 증거 요지인데, 만약 검찰의 증거가 사실이라면 고니시는 페루 국적의 사람도 아닌 것으로 됩니다.
3] 다음은 국정원이 이 사건을 조직사건과 이적단체로 부풀려 수사하다 실패했다는 점과 녹취록 조작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국가보안법 수사에서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으로 이어지는 잔혹한 사건 조작의 역사는, 민주주의가 전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전자처럼 남아있습니다. 국정원에서 경찰로 수사권이 넘어갔다고 이것이 저절로 사라지지 않으리라 봅니다.
이 사건 공소장을 처음 보면서 제가 가장 의아하게 생각한 부분 중 하나는 ‘세븐 조직’ 이라는 알 수 없는 용어였습니다. 제가 경찰 진술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면서도 도대체 그 질문이 무엇인지 내심 궁금했습니다.
공소장의 요지는 제가 무슨 지하조직 “세븐 조직”을 결성하여 북한의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노선과 유사한 방식의 통일 사업을 하였다고 기술하였습니다. 이는 국정원 초기 수사단계에서 저와 제 주변 동료들을 대남 지하조직 공식과 논리에 끼워 넣는 전형적인 조작 수사 방식입니다. 검찰도 이 논리를 대부분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러나 검찰도 실체도 없고 증명할 수 없는 이 조직을 무리라 판단했는지 이를 무슨 조직이나 이적단체로 기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이 아닌 표현은 공소장에서 당연히 삭제했어야 합니다.
십여년간 일상적으로 공개단체에서 함께 만나는 진보 활동가 모임이 무슨 지하조직이라는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국정원은 그 모임의 대화들을 비밀 감청하여 그 내용을 녹취록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그 녹취록 증거에서 대남 적화통일이나 북한과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고니시와 제가 미가참치 식당에서 만난 것을 감청해 기록한 국정원의 4월 15일 대화 녹취록의 조작은 매우 심각합니다.
박OO이 받았다는 대호명 “대봉산” 은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서 나온 말입니까? 물론 이는 국정원이 주관적 수사 욕심과 상상으로 조작해 삽입한 단어입니다. 고니시와 제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대화를 했다고 조작했는데, 논리적으로 만약 박OO 이 진짜 대호명을 받았다면 고니시가 그를 만나지, 왜 생면부지의 저를 어렵게 만나려 했다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이해가지 않습니다. 앞뒤가 안 맞으면 녹취록을 재검토해 수정하든지 그것을 그대로 두는 이유도 알 수 없습니다.
“태양절”은 또 무엇이며, 북에서 누가 누구를 소환했다는 것입니까? 지하조직 산하에 “재야조직과 연계되는 별도의 망”은 또 무엇인가요? 최수환, 이우식, 고선수는 또 누구입니가? 감청 내용이 안 들리면 그대로 두어 야지 왜 이렇게 소설을 쓰려는 지 모르겠습니다. 초기 1차 수사 녹취록을 이렇게 조작하면 후속 수사기관조차도 그것을 믿게 됩니다. 재판 과정에서 누가 그 녹취록을 작성했는지 확인하니 녹취록은 전문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수사를 담당하던 수사관들이 직접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법원 전문 음성녹취 업체들 여러 곳에 국정원이 제출한 증거자료를 다시 정밀 녹취해 달라고 의뢰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조작된 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과연 제3자의 입장에서 국정원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의뢰한 것입니다. 저는 그 결과를 취합하여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국정원이 잘못들은 수준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삽입한 단어와 내용들이라는 것을 저는 증명했다고 봅니다. 1차 수사기록과 녹취록을 이렇게 처리하는 것은 업무상 실수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범죄입니다.
수사기록을 보면 공안당국은 법원의 판결도 부정합니다. 지난 사건과 연관하여 대한민국 법원은 일심회라는 ‘조직’이나 이적단체가 없다고 최종 판결을 내렸는데도, 여전히 국정원과 검찰은 일심회라는 조직과 이적단체가 존재했으며 제가 이를 복구했다고 반복적으로 기술합니다.
진보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과거 사건 동지들이 다시 만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뜻이 맞으면 다시 활동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것을 공소장은 “조직의 원상복구”라고 기술하는데, 원래 없던 조직이 원상 복구되는 경우도 있습니까?
당시 관련자들은 대부분 다시 공개 단체 활동으로 하며 더구나 대부분 “보안관찰법” 대상인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일상적으로 인터넷, 전화 등 통신감청까지 당하고 평소 수시로 공안 관련 담당 형사들을 만나는 상태에서 도무지 원래 없던 지하조직의 원상복구가 가능한 이야기 입니까? 검찰이 대공 지하조직에 대한 상식이 있다면 처음부터 이런 황당한 논리나 짜맞추기 수사기록은 제외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더구나 이미 이 재판과 유사한 큰 국가보안법 사건을 이미 한번 당한 저 같은 사람에게, 다시 북이 저런 방식으로 접근해서 무슨 지하 공작을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면 부지의 사람이 저런 식으로 접근하면 과연 제가 아무 생각과 의심 없이 그것을 수락하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비유를 들자면, 고니시가 저에게 접근한 것은 마치 유죄 든 무죄 든 지금, 이 재판이 종결되고 나서, 고니시와 유사한 사람이 다시 내게 접근했을 때를 상상하면 쉽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저의 판단과 태도는 무엇일까요? 과연 제가 고니시와 같은 사람을 어떻게 대했을 까요? 만약 제가 그를 프락치로 확신하고 바로 신고했다면 이 사건은 또 어떻게 확대되었을까요? 사건을 초기에 크게 만들지 않고 좀 더 확인 후 신중히 처리하려던 것이 과연 잘못인가요?
4] 다음은 고니시가 저에게 주었다는 스테가노그래피 판독용 SD카드, 즉 기본키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찰은 중요한 증거인 이 기본키를 증거로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고니시와의 ‘미가 참치 식당’ 대화에도 나오지만, 이것이 없다면 웹하드의 어떤 파일도 제작하거나 해독하여 읽을 수 없습니다. 수사기관과 검찰은 엉뚱하게 제가 가지고 있던 일반 USB를 이 암호카드라 하고 제가 그것에 대해 비밀번호를 가르쳐주기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니시가 준 스테가노그래피용 SD카드는 사실 처음 테스트 당시부터 에러로 잘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았고, 테스트하며 보관하고 있다가 그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결국 오래전에 폐기하여 버립니다. 따라서 설사 외국계 웹하드에 누가 어떤 파일을 올려도 저는 그것을 읽을 수 없습니다.
국정원과 경찰이 제 집과 사무실 압수수색에서 고니시가 준 스테가노그래피 SD카드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제가 이미 알 수 없는 사람들과 연관된 그 찝찝한 물건을 오래전에 폐기했기 때문입니다. 또 검찰이 제시하는 문제의 해외 웹하드에서 추출한 증거 파일도 제 컴퓨터 제USB,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그 파일들을 제가 열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미 버린 기본키, SD 카드가 나올 리 없고, 받거나 열어보지 못한 파일이 저에게 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 재판에 제출된 파일 증거는 모두 국정원이 모대학 포렌식팀에 의뢰해 문제의 해외 웹하드에 들어가 수년씩 잠복하며 빼낸 것들입니다. 아마 그 작업도 나중에는 아무 반응이 없어 중지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 웹하드는 비번과 아이디만 알면 누구나 들어가 파일을 저장하고 다운받는 게 가능합니다. 그 웹하드에 수개월 수년간 일상적으로 상주하며 작업하고 감청한 자는 제가 아니라 국정원이었습니다. 초기에 고니시를 만났을 때, 그의 말을 확인을 위해 제가 테스트용으로 몇 개의 파일을 만들어 올린 적은 있으나, 검찰이 증거로 제출된 그 파일들은 2018년 11월 25일 다운로드 실패를 기록하는 일반 파일(download failure. Verification problem)과 하나의 파일을 제외하면, 누가 올렸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며, 직접 파일을 읽을 수도 읽은 적도 없는 파일 들입니다.
5] 다음은 수사기관이 ‘통신비밀보호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 관해 이야기 하려합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진척에 따라 국가보안법 수사에서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처럼 형사소송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 문제는 많이 줄었고 개선되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이번 재판을 받으면서 느낀 것은 신설된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형사소송법을 무시하며 지키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통비법을 만들어 놓고도 국가보안법 수사에서 제대로 적용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고니시가 페루국적 북한 공작원이라고 정말로 국정원이 판단했다면, 그리고 이 사안이 수사보고대로, 중대 사안이라고 판단했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통신제한 조치(감청 영장)에 해당하는 통비법 조항을 지켜야 합니다. 이 사건을 국정원이 처음에 어떻게 보고하여 감청영장을 신청하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당시 국정원이 법원에 청구한 감청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대상자들은 국적 세탁 후 1997.9.부터 2016.12.까지 3회에 걸쳐 국내에 잠입하였는데,과거 국적세탁 간첩사례와 이들이 부부간첩조로 의심받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잠입 목적이 단순 여행이 아닌 국내에 암약중인 고정간첩 검열과 동조자를 포섭하거나 국가기밀 탐지 수집과 같은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의심되고,그 의심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
특히 과거 10년을 주기로 국내잠입을 했던 대상자의 침투양상에 비추어 볼 때 2016.12.에 이어 4개월 만에 다시 국내잠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은,최근 대통령 탄핵정국과 조기 대선 등 복잡한 국내 분위기에 편승하여,대상자들이 국내 지하당 구축을 주 임무로 하는 北 문화교류국으로부터 특수한 지령을 받고 잠입할 가능성이 농후함에 따라,국가보안법 위반의 죄를 실행하거나 계획 중으로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
국정원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 사건은 전형적인 통신비밀보호법상 “제7조(국가안보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에 해당합니다. 이는 당시 국정원이 고니시를 추적하며 이 사안을 위중하게 보고 수사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국정원이 이를 수사하려면 전형적인 “통신비밀보호법상 “제7조(국가안보를 위한 통신제한조치)”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처리해야 했습니다.
최소한 고니시에 대한 영장은 ‘고등법원 수석 판사의 허가’를 받거나 ‘서면으로 대통령의 승인’을 얻고 수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관행적으로 그러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통비법의 절차를 지키지 않고 취득한 이 사건의 주요 증거는 무효라 봅니다.
사건은 크게 부풀려 영장을 청구하고 영장에 필요한 법에 명시한 절차는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통신비밀보호법의 이러한 국가안보와 관련된 조항은 앞으로 어느 수사기관도 지키지 않을 것입니다. 수사기관은 국가보안법 사건 처리에 과장을 하지 말아야 하며 실제 중요 안보사건이라고 판단되면, 법이 적시한대로 합당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길어서 변호인 의견서로 대신합니다.
6] 다음은 제가 저술한 책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찰이 이 번에 기소한 책 ‘주체사상에세이’는 제가 지난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2008년 전주 감옥 수감 당시 정리한 원고입니다. 당시 편지와 노트로 내보낸 것을 출소해서 정리해 출판한 책입니다. 당시 교정당국의 검열을 받아 내보낸 원고입니다. 이 책은 당시 검찰측 증거자료를 참조하면서 쓴 책인데, 이것이 다시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지난 사건 당시에도 수사과정에서, 주체사상이 무엇이냐고 내심 진지하게 물어보는 수사관들과 검사들을 보면서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안당국조차 주체사상이 나쁜 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 딱지 외에 그 내용이 무엇인지 실제로 잘 모르고 있으며, 역대 국가보안법 공소장 인용문장을 그대로 따와서 공식대로 기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사정은 법조계는 물론, 학계와 진보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980년대 한 때 주체사상이 유행했던 적이 있으나, 주체사상은 국가보안법의 족쇄로 토론 금기어가 되어서 학술적으로조차 접근하지 못하는 사상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입니다. 조중동 극보수언론은 한국진보에 대해 ‘주사파’라는 레테르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실제 한국 진보진영에 이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집단은 거의 없다고 저는 봅니다. 여하간 저는 국가보안법이 주체사상을 봉쇄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봅니다.
주체사상은 맑스주의를 계승한 변혁사상이고 북한을 알려면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런데 한국 진보조차 국가보안법 때문에 이를 제대로 연구해서 무엇이 장점이고 무엇이 문제다 라는, 진지한 연구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라는 구호를 넘어 한심한 실태라고 봅니다.
저에게 기소된 주체사상에세이는 제가 무슨 계획적인 사상 선전 홍보를 위해 출판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감옥에 있으면서 진보활동가, 지식연구자로서 최소한 시대의 창피함이라도 피하기 위한 양심의 문제로 출판한 것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지나면 시대를 앞서 나가야 할 한국 지식인들이 어느 정도로 사상의 자유와, 북한문제에 대해 비루한 태도를 취했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북 바로알기 100문 100답’은 남북 교류 협력 차원에서 합법적으로 통일부에 신고하고 낸 책입니다. 북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북한(조선)입니다. 그래서 북 사회과학원과 합작으로 책을 내기로 기획했으나 여의치 않아 당시 연구원에서 단독으로 출간한 책입니다.
북미관계과 남북관계가 잘 풀렸다면 아마도 이후 남북 합작 도서가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책조차 국가보안법 기소대상이 된다면, 저의 유무죄와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설명하고 저술하려는 사람들은 전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것이 국가보안법 유무죄에 상관없이 국가보안법 기소가 유발하는 사상탄압의 간접적 효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7] 다음은 앞으로 새롭게 전개될 격변의 국제정세에서 국가보안밥이 더는 유지가 불가능한 법이라는 점에 관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국가보안법이 인간 내면의 사상, 양심, 표현의 자유 침해는 물론, 이 법이 목적하는 기능과 정반대로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려 생략합니다.
이번에는 최근 이 법을 둘러싼 남북 정치 환경과 북의 대남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해서 이 법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남북 공존과 대한민국 국가안보에 오히려 위해가 되고 차후 대한민국의 존망과 관련된 전쟁을 유발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 몇 가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국가보안법 공소장의 논지는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반세기 이상 내내 똑같으나, 남북관계와 국제정치의 현실은 수 차례 격변했습니다. 특히 제가 기소되고 이 재판이 진행되는 지난 4년간 북의 대남정책과 남북관계는 또 한 번 완전히 격변했습니다. 이는 저도 예상치 못한 매우 충격적 변화입니다. 최근 북은 대한민국 국가보안법 공소장의 핵심 근거가 되는 북의 통일정책과 남조선 해방 노선, 즉 전국적 범위의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 노선을 공식 폐기했습니다.
2023년 12월 말, 북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8기 9차 전원회의 이후 북은 1945년 분단이후 근 80년간 유지하던 남조선 해방 대남정책과 통일정책을 폐기합니다. 이는 국가보안법 공소장에 항상 등장하는 “북한은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노선에 따라 대남 적화통일을 기본목표로 삼는다.”는 공식 문장의 근거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북이 추진했던 통일방안이 공안당국의 주장대로 원래 적화통일 노선도 아니었지만, 여하튼 북은 차후 남한 정부와의 어떠한 통일도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기조에 따라 북에서는 이미 작년부터 헌법 개정과 후속 법적 정비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은 38선을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북한(조선)의 남부 국경선으로 공식표현하고 있습니다. 북은 내년 초 열리는 제9차 당대회에서 이를 전면 공식화할 것으로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 북은 통일 관련 부서도 모두 폐기했습니다. 이 사건 공소장에 등장하는 통일전선부와 산하 문화교류국은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6.15 공동선언 북측실천위원회, 민족화해협의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 경제협력국, 금강산 국제관광국 등이 전부 해산 폐기됩니다. 한국 대상의 반제민족민주전선과 그 선전매체인 구국전선도 폐기해 사라졌습니다.
8] 이런 북의 충격적 정책 변화의 원인은 무엇이며 이것이 국가보안법과 어떤 연관이 있는 지에 대해, 피고이자 이 분야 전문연구자의 입장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이 그동안 남한과 분리하여 남북관계를 국가간 관계로, 즉 외국으로 분리하지 않은 것은 통일과업 때문이었습니다. 그동안 일관되게 민족통일 과제를 조선로동당의 제1국시로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북이 2024년 통일정책을 폐기하면서 남북관계를 민족내부의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 국가관계로 선언했습니다. 남북 통일의 한 당사자인 북이 공식적으로 통일정책을 폐기한다면 사살상 통일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최근 북과의 전쟁을 자극하고 유도했던 윤석열 정권에 대한 반발 같은 일시적 조치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극보수정권은 물론 민주당 같은 중도보수 정권과도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최종 결론을 조선로동당이 결정한 것입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미국의 간섭을 벗어나지 못하며 통일 의지가 없는 한국과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북의 최종 결정이라 판단됩니다.
미국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난 자주정부가 한국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북에서 이에 대한 입장 변화는 없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북이 가까운 장래에 한국에서 반미 자주정부의 등장을 예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본다면, 이는 대단히 장기적 정책방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심각한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들은 아직 초입 국면이라 이를 피부로 잘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법정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현재 북한과 연관되어 유지되던 국가보안법의 법적 근거가 모두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앞으로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내 집단이 아니라 외국으로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는 남북관계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이 한중 수교가 없었던 시절의 중국과 같은 외국으로 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한국이 중국을 반국가단체라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만약 한국이 중국을 자기영토라고 헌법에 명시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것은 앞으로 한국이 헌법과 국가보안법을 개정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국제문제이자, 전쟁을 부르는 주요 법적 제도적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북한이 대한민국내의 반국가단체라는 모순되고 기이한 논리도 더는 설자리가 없게 됩니다. 남과 북이 한국과 조선의 관계로 전환된다면, 한국 헌법3조(영토조항)과 4조(통일조항), 국가보안법은 자동 폐기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앞에 놓인 현실입니다.
9] 이러한 변화가 법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북이 국가나 정부가 아니며 ‘반국가단체’ 라고 규정하지만, 이 규정 역시도 한 나라안의 과도적인 남북의 특수관계, 즉 한 나라 안의 정치적 내전관계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런데 이 특수관계 마저 사라지면, 마치 건물의 기초와 기반이 무너지는 것처럼 한국헌법 영토조항과 국가보안법도 같이 허물어지는 관계로 됩니다.
그동안 반세기 이상 진행된 모든 남북관계 합의와 관련법은 남과 북이 민족내부의 특수한 관계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실제 남한 정부가 통일을 원하든, 원치 않든 통일지향과 남북관계의 특수성 인정한 것입니다. 박정희 정부의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노태우 정부의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정부의 2000년 6,15 공동선언, 노무현 정부의 10 .4 공동선언, 2018년 문재인 정부의4.27 판문점 선언의 기본 대 전제가 바로 남북 특수관계 인정입니다. 그런데 현재 이 모든 합의와 전제가 모두 2024년부터 폐기되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남북관계를 특수관계로 여긴다는 말은 남과 북이 서로 싸워도 향후 통일을 지향하며 최소한 하나의 나라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2개의 정부가 있다는 것을 남과 북이 함께 인정하는 방향에서 남북관계를 처리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북을 국가와 정부로 부정하는 한국 국가보안법은 폐기되지 않았고 하나의 나라에 두 개의 양립할 수 없는 모순된 법과 법리가 그동안 공존했습니다.
그러던 대 전제가 2024년부터 모두 바뀌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 관계라는 용어, 즉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의미하는 용어가 사라지고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인 한국-조선 관계만 남고 통용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남북 평화공존과 번영, 통일의 역사적 기회를 놓쳤다는 냉정한 현실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이미 북한(조선)도 2021년 1월, 제8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당면목표와 남한관련 규정 변경에서 일련의 변화의 조짐이 보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처음으로 국가보안법 공소장에 반세기 이상 단골로 등장하던 ‘민족해방 민주주의 혁명’ 표현을 북은 삭제합니다. 대신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발전을 실현하는 것’으로 수정됩니다. 그러나 이 “전국적” 규정마저도 2024년 폐기한 것으로 됩니다.
10] 문제는 그러면 앞으로 한국-조선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이며 반국가단체는 어디로 가는가의 문제입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남한을 국가간 관계, 즉 적대적 외국으로 처리하는 정책을 정했다면, 앞으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것을 한국이 계속 부인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또 계속 한국이 북한을 대한민국 영토이고 반국가단체라고 한다면 남은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국가관계 단절’이나 ‘전쟁’ 두 가지 결과 밖에 없다고 봅니다.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적대정책을 폐기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회담과 남북 교류협력 제안도 망상이며 현재 불가능합니다. 현재 특수관계가 사라진 한국-조선 관계는 북한(조선)-일본관계 보다 못한 상태로 전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시다시피 북한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가 안된 상태입니다. 앞으로 한국-조선 관계는 이 보다 험악한 관계가 될 것입니다.
통일을 폐기한 북이 한국에 취하는 태도는 두 가지로 예상합니다. 하나는 서로 신경 끄고 더는 서로 시비 걸지 말고 남남처럼 살자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계속 시비 걸고 대북 적대 정책을 한국과 미국이 유지한다면 전쟁으로 대한민국을 점령, 평정, 수복, 편입하겠다고 공언한 것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북은 이 정책을 헌법에 명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철저한 핵 전쟁대비와 한국과 무교류, 무시외교 노선입니다. 이것이 통일이 사라진 후의 비참한 남북관계 현실입니다.
앞으로 한반도 전쟁은 무조건 핵전쟁입니다. 우크라이나식 재래식 현대전이 아니라 한반도는 전쟁 시작부터 무자비한 핵전쟁 양상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한미연합 군사훈련(작전계획5022)과 북의 대응 군사훈련 모두 선제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는 핵전쟁 훈련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훈련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재래식 훈련이 아닙니다.
설마 전쟁이 날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한 대립과 적대정책이 계속된다면 전쟁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으며 대한민국 국가 존망의 위기도 결코 비현실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미국이 있어 상호 핵전쟁을 못하거나, 핵전쟁이 나면 미국이 도와줄 것이라 한국사람들이 착각하지만, 과거와 다르게 실제로 전술 핵을 쓰는 전쟁이 개시되면 미국도 전략핵무기로 무장한 조선과의 핵 전쟁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남북 문제는 이미 국가간 문제로 전환하여, 남북 정상회담이나 남북 교류 같은 문제로 해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헌법개정 문제가 이제 한국 민주주의나 내부의 문제를 넘어 한국-조선간 외교 안보와 전쟁문제에 직결된다는 현실을 빨리 자각하고 직시해야 합니다. 한국이 헌법의 영토조항을 개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북과의 어떤 교류나 관계 개선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11] 그러면 헌법의 3조 영토조항 개정과 국가보안법이 어떤 관계인가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한마디로, 헌법의 영토 조항을 개정하여 남과 북의 국경을 새로 정의하면, 국가보안법은 연쇄적으로 해체되는 관계에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북을 반국가단체로 직접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한국 헌법 3조와 연동되어 북을 정부를 참칭한 반국가 단체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북한이 외국으로 규정되고 한국이 북을 국가와 정부로 인정한다면 국가보안법 제2조 1항의 반국가단체 규정은 북한, 즉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 대해 적용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존재 이유를 잃게 되며, 내란과 외환 등 한국내 반국가단체 문제는 형법으로 대체됩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헌법 개정과 함께 연쇄 폐기되는 관계에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공허한 평화 제안이나 남북미 정상회담을 미국까지 가서 어렵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헌법과 국가보안법 등 대북 적대관계 법을 대한민국이 선제적으로 폐기 수정하는 주동적이고 현명한 길로 가야 합니다. 한국 조선 관계에서 언행 불일치를 끝내야 합니다. 그것이 북(조선)과의 정상회담을 위한 전제로 되며 한반도에서 평화를 보장하고 전쟁의 근원을 막는 길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현재 한국-조선의 적대관계가 장기적으로 북일관계(조-일관계)와 같이 지속되는 민족적 불행도 막아야 하는 책무가 있으며 지금이 그 갈림길입니다.
그러자면 헌법을 개정하고, 핵 선제공격 훈련인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재명 정부의 첫 대외 정책 방향을 규정하는 선결 과제입니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는 변화된 국제정치와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며 어리석게도 미국에만 기대면 평화가 보장될 줄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제법으로도 맞지 않는 한국 헌법 영토조항과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한국-조선 적대 관계를 청산할 수 없다는 말로 됩니다. 그것은 한국이 앞으로 전개될 북중러 동북아 발전과 경제 부흥 계획에서 완전히 소외되며, 아시아 대륙과 분리된 섬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언젠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한국과 조선의 영토 분쟁과 전쟁을 스스로 방치 용인하는 것으로 됩니다.
12] 이제 마지막으로 재판을 끝내며 저의 소회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지난 2000년 남북 정상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을 발전시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남북관계를 평화와 공동번영과 통일지향 관계로 전환할 좋은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결국 통일은 폐기되었고, 북한(조선)이 외국으로 처리되는 비극적 과정을 현재 맞이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제 평생 소원이며 40년간 주장했던 연방제 통일도 더는 주장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이 결합되는 방식은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연방제 통일 방식이 유일한 방식이 아닙니다. 한국진보와 북한(조선)과의 사업은 이제 통일사업이 아니라 반제 국제연대 사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미국의 몰락을 매일 확인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설사 장래에 몰락하는 미국과의 조미대결이 마무리되어 북한(조선)과 미국의 관계가 정상화되어도, 한국과 조선이 결합하거나 통합하는 방식은 과거처럼 남북해외 3자가 연대해 남북 연방을 목표로 하던 시기도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여건에 좋아져도 한국에서 통일을 이룰 대중적 기반과 정권적 차원의 주체가 형성되지 못하면 통일은 성취할 수 없습니다.
북의 남조선 해방과 통일정책이 사라지면서, 한국진보의 정치노선도 자주, 민주, 통일에서 독자적 “자주화 민주화 노선”으로 전환되었다고 봅니다. 한국 진보의 당면 과제도 통일이 아니라 적대적 한국-조선 관계를 평화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봅니다. 한국진보가 사라진 통일을 다시 부활시키는 유일한 길도 이제, 6.15를 복원하자, 연방제로 통일하자 같은 공허한 말이 아니라, 중도보수 민주당을 능가하는 자주적 진보정권을 자력으로 수립하는 길 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돌아보면, 저는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86세대’입니다. 저는 우리 세대가 고생을 좀 하더라도 우리 당대에 통일하여 남과 북의 대결 과정을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를 대물림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다음 세대에게 가난을 대물림하는 것보다, 더 아프고 괴로운 것이 분단의 고통을 대물림하는 것이 라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스무 살에 시작된 투쟁이 환갑이 넘도록 끝나지 않을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스무 살 첫 국가보안법 사건과 투쟁에서는 기성세대와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 국가보안법 사건에서는 동료세대와 싸우고 있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제가 새로운 세상에 잘 살기를 그렇게 원했던 그 후배 세대와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죄가 있다면 통일에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못했으며, 우리 세대에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죄라고 봅니다.
한반도와 동북아에 또 한 차례 격동의 시대가 다가오면서 낡은 헌법과 국가보안법이 더는 세상의 상식과 순리를 거부하며 유지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한 시대를 옥죄던 국가보안법 사건들은 결국 머지않은 미래 어느 날 전부 특별법으로 재심 대상으로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재판을 공정하게 운영하려 한 판사님께 감사드립니다. 국가보안법의 부당한 적용을 막고, 절차를 무시하며 증거를 조작하는 수사의 폐해에 경종을 울리고,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인권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판결을 기대합니다. 긴 재판 과정에서 변론을 맡아 주신 많은 변호사님, 저를 지지해주시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