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의 지루한 평결이 끝났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일부 인사들은 불법 계엄 내란이 내전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한다. 바버라 F. 월터가 쓴 - 민주주의 국가위기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라는 책이 요즘 자주 인용되는 모양이다. 책 소개를 보니 2021년 미국 의사당 난입사건을 계기로 세계의 내전(분쟁)을 분석한 결과, 정치 갈등보다 종족·종교적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요지다.
글쎄… 미국 사람이 특히 중동 분쟁을 보면 종족과 종교 문제가 깊게 개입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동양에서 종교가 분쟁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중앙집권적이고 단일민족(성)과 유교적 전통의 우리에게 종족이나 종교가 변혁(내전)을 일으킨 적은 거의 없다. 우리 현대사 사례를 보면 입증된다.
나는 윤석열 탄핵 이후 고민하고 고쳐야 할 것은 있지만, 그렇다고 내전 상황까지 갈 것이라 보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극도의 양극화라고 하지만 그것은 단견이다. 일부 (정치)학자들이 직접 정치참여를 폄훼하고, 극우보수를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세력은 사실 얼마 안 되고, 무엇보다 특정 세력으로부터 ‘사주’ 혹은 ‘동원’되고 있다. 이들을 자발적이고 이성적인 탄핵을 요구하는 세력과 나란히 비교하는 것 자체가 현실을 정확히 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사회적 대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하지 못한(시도하지도 않은) 적폐를 청산하고 나라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 과제는 매우 여러가지다. 그러나 이번 불빛혁명, 즉 윤석열 내란 사태에서 보듯이 사회지도층의 문제이다. 특히 이번 사태는 대통령과 정부(내각), 헌법재판소 결정 등 ‘공적 정부기구’ 구성원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나는 대형 재난이 사회의 안전(보안)장치가 일시에 망가지면 발생하듯, 사회도 마찬가지라 본다. 선과 악을 판단하고, 정의와 부정의를 선별하고, 혼란기에는 갈등을 조정하는 ‘사회적 공기(公器)’가 있다. 그것은 대학·언론·사법·정부·정당(야당)·시민단체·종교 등이다. 사회의 주요 기능을 하는 이들 종사자는 지성인으로 존경받고 또 대우해 준다.
그러나 이들이 무능하고 부패해 제 기능을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패악을 끼칠 때가 있다. 이들이 오만해 사회적 책임보다 특권만 누리려 할 때가 있다. 그러면 결국 변혁, 더 심하면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 때 교학사•국정교과서를 만드는 역사왜곡에 동원된 역사학자, 이화여대는 최순실 딸을 부정 입학시키고 학점을 남발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았는데 병사라 사망진단서를 끊은 것도 서울대 병원이다.
박근혜 정권은 부정선거를 따지는 통합진보당을 해산했고, 민주노총을 와해하기 위해 쉬운 해고를 자행했다. 사법부는 청와대와 거래하고 헌법재판소 역시 정당을 해산했다. 야당은 박근혜와 밀당하고, 진보를 표방한 야당은 진보 정치인 체포동의안에 동조했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를 능멸하고, 민중총궐기를 불법 폭력집회로 매도한 언론이 있었다. 그들은 기레기 소리를 들어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시민단체는 종북몰이에 ‘나는 아니다’고 외면했고, 종교계(불교)는 공권력을 피해 온 민주노총 위원장을 옷을 벗겨 내쳤다.
이렇듯 한 사회를 유지하는 공기와 지성 모두가 제기능을 포기했다. 오히려 자기들끼리 카르텔을 만들어 짬짜미했다. 오죽했으면 외국이 우리를 ‘엘리트 부패 카르텔’이라고 질타했겠는가. 결국 민중이 촛불을 들고 일어섰고, 물대포에 맞아 죽으며 민중혁명을 일궈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의 촛불은 촛불정부를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촛불명령이 무엇인지 몰랐고,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기득권화된 586은 비겁했으며, 권력에 참여한 시민단체•학자들 역시 무능했다. 진보언론은 개혁을 거부하고, 진보를 참칭한 먹물 최장집은 “촛불혁명이 민주주의를 망쳤다”고 개혁에 제동을 걸었고, 강준만은 “적폐청산은 퇴마의식”이라 저주했다. 윤소영은 “좌파의 임무는 정권교체다”고 선동했다. 열패감에 빠진 학출은 ‘북 선제타격, 69시간 노동’을 주창하는 국민의힘 옷을 입고 정권교체에 동조했다.
급기야 문재인 정권은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기용하는 오류를 범했다. 법무장관은 부하의 쿠데타에 무기력하게 당했다. 이런 가운데 심상정의 대선 완주라는 무모함이 결국 괴물 정권을 탄생시켰다. 사회적 혼란과 위기는 헌법이나 제도, 정치적 양극화와 개딸이 문제가 아니라 썩고 변절해 제 책임을 하지 않은 사회적 엘리트 아니 먹물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사회적 공기, 엘리트의 몰락은 윤석열 정권에서 더욱 극심했다. 아예 정부에 뉴라이트 세력이 포진해 노골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대학(숙대와 국민대)은 김건희 논문 표절을 묵인했다. 국민적 공분에도 침묵하던 두 대학은 윤석열 탄핵 이후 슬그머니 표절 판정을 내렸다. 천박한 기회주의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권은 대통령 처가 범법사실 숨기기 급급했고, 야당을 향한 사정작업은 2년 넘게 집요하게 이어졌다. 판사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내란수괴를 풀어주고 검찰조직은 항소조차 않고, 영장실질심사에 참석도 하지 않는다. 권익위·인권위에 포진한 법조인은 대놓고 법을 능멸한다. 황당무계한 윤석열 변호사는 법비(法匪)라는 이름을 얻고 조롱의 대상이 됐다.
이 와중에 기득권화된 야당 일부는 권력과 거래하다 당원에 의해 제거됐다. 일부 진보정당은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에 동의하다 결국 국민의 심판으로 원외로 퇴출됐다. 이들은 다시 개헌론에 동조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도 포용해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떼를 쓰고 있다.
종교 특히 개신교는 인간에게 위안을 주기는커녕, 갈등을 조장하고 극우세력 양성의 본산으로 패악질을 하고 있다. 종교의 정치화를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연동형비례제라는 황당한 선거제도다. 정치현장을 모르는 먹물이 만든 이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위성정당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이 제도는 또 정당을 양산해 정당정치를 농락하고 극우종교정당의 토대를 만들었다.
결국 가짜뉴스와 황당한 음모론에 빠진 윤석열은 불법 계엄을 단행했다. 윤은 법조인 출신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헌법에 무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상당수 국무위원, 고위 관료들이 국회로부터 탄핵당했다. 이들은 헌재로부터 탄핵은 면했지만, (헌)법을 위반한 것은 분명하다. 파면은 아니더라도 중징계감은 충분하다.
탄핵 위기에 몰린 윤석열은 자기 혼자만 살기 위해 임기 단축을 미끼로 개헌론을 던졌다. 여기에 일부 정치·사회학자들이 ‘제왕적 대통령제와 개딸이 문제’라고 제도와 민중을 나무라며 이 개헌론에 동조하고 있다. 특히 낡은 분석과 엉터리 이론을 설파한 (정치)교수들이 문제다. 김민전, 김영호, 김태효, 김근식, 최장집, 강준만, 윤소영, 진중권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은 물론 소신도 없다. 그러면서 주류 엘리트인 자신이 한국정치를 주도해야 한다는 오만에 빠져있다. 한자리 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천박한 권력욕에 차 있다. 보수언론은 교묘하게 이들을 활용하고, 일부 진보 언론은 멋모르고 이들을 키워주고 있다.
중앙대 김누리 교수는 바로 이들 ‘엘리트의 정신병적 오만함’이 파시스트를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열을 가리고 차별을 당연시하고, 선민의식에 가득 찬 우리의 교육제도가 파시스트 의사·판검사 법조인·윤석열 같은 정치인을 만든다고 했다. 교육이 문제이긴 하지만, 의사·법조인·정치인에게 우월한 특권을 준 사회적 공기를 잘못 구축한 정치에 문제가 있다.
‘빛의 혁명’ 이후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썩어빠진 사회적 공기(公器)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사회적 공기가 특권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공공에 봉사하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케 하는 것이다. 이들은 절대로 자신의 오류를 반성하거나 스스로 개선하지 않는다. 따라서 타율적으로 추방하거나 제거해야 한다. 이것은 보복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정상화하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