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태원에서 159명의 청년이 황망히 숨을 거둔지 어느덧 1년째. 하지만 유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갇혀있다.
참사가 벌어진지 1년이 되었음에도 불구, 정부는 어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여느 때와 같이 거리로 나와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해야 했다.
28일 오후, 시청 분향소 앞에서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1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유족들은 연신 눈물을 흘리며 애끓는 심정을 겨우 누르고 있었다.

"가슴이 턱턱 막혀...딸과의 기억이 고통이 될 줄이야"
고 김수진 씨의 모친인 조은하 씨는 여전히 딸을 떠올리는 것이 두렵다.
생전 김수진 씨는 엄마와 영화를 보거나 쇼핑하길 즐기며, 인터넷에 둔한 엄마를 곧잘 도와줬던 다정한 딸이었다.
그러나 딸이 떠난 데 이어, 그 이유조차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딸과의 추억은 고통을 더할 뿐이었다.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를 얘기하기가 너무 힘들다. 안 떠올릴 수도 없고,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턱턱 막히고...언제쯤 편하게 너를 생각할 수 있을까.”

“이제는 서울 하늘이 싫습니다”
고 김재강 씨의 부친 김윤백 씨 역시 아들을 향한 기억이 아프기만 하다.
윤백 씨는 “맘이 너무 아프고 공허해서 차분히 뭘 할 수가 없다”며 “일이 벌어지기 일주일 전만 해도 광주에 와서 여러 얘기했는데 그게 얼굴 보며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회환 섞인 편지를 낭독했다.
윤백 씨가 서울 생활 중이던 아들을 만나기 위해 상경할 때면 재강 씨는 역까지 마중을 나오곤 했다. 윤백 씨가 광주로 돌아갈 때면 재강 씨는 인터넷 예매가 서툰 아버지 대신 예매를 해주고 기차 안 좌석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기차는 아들을 만나는 설렘과 기쁨이 가득한 장소였다.
그러나 작년 10월 29일 이후 윤백 씨는 더 이상 기차를 타기가 힘들다. 윤백 씨는 “유가족 간담회를 위해 서울에 왔다가 내려가는 길에 기차 타는데 니 생각이 나 혼자 울었다”며 “이제는 기차 타기도 어렵고 서울 하늘도 싫다”고 전했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운 좋게 참사를 피했던 이들도 여전히 고통스러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향소와 참사 현장에 별 모양 한지로 159개의 조명을 만들어 설치한 김은주 공예작가는 “촉박한 시간임에도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의 주문에 응해 필사적으로 159개 조명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살아남은 사람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김 작가는 “작년 큰 딸이 이태원에 약속이 있다고 했었는데, 약속이 참사 하루 다음날 일요일로 잡혀있던 것에 안도했었다”며 “당시 안도감을 느낀 것 자체가 너무나 큰 죄책감이었다”고 고백했다.

"더 이상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자식들이 나오지 않도록..."
윤석열 퇴진 시국 법회 야단법석의 명진 스님도 추도사를 이었다.
수십 년 전 사고로 동생을 잃은 명진 스님은 “아들이 좋아했던 음식만 봐도, 딸이 입고 있던 옷만 봐도 가슴에 저릿저릿한 아픔이 온다”며 “그 또래 애들이 지나가는 것만 봐도 가슴이 무너진다”고 전했다.
명진 스님은 “이태원 참사와 윤석열의 행태를 보며, 이놈을 더 이상 대통령으로 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젊은이들이 무엇 때문에 어떻게 그렇게 죽어갔는지 밝혀지지도 않은 마당에 제대로 사과할 줄 모르는 놈은 사람이 아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 기독교 교회 협의회 김종대 목사는 추도사를 통해 “아직도 우리의 아들 딸이 우리 곁을 왜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며 “사과하는 자, 과오를 돌아보는 자, 책임지는 자가 없는 와중에 유가족은 진실규명을 위해 전국을 돌며 호소해왔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특별법 제정으로 진상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여 더 이상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딸이 나오지 않게 해야한다”며 “유가족의 의로운 여정이 한국을 안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 덧붙였다.
한편 29일 오후 다섯 시, 서울광장 앞에서는 이태원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1년 전 이태원 골목에 갇혀버린 희생자와 유가족의 시간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이 절실한 상황.
과연 국회가 유가족의 염원에 부응할지, 시민들의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