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만난 북러 정상 “반제 자주 전선 함께, 동지 관계” 친선 과시
김 위원장, 우주 발사장 돌며 로켓 추진력에 관심 보여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이 영접, 대북 제재 무력화 신호탄 될 수도
전투기 생산 공장 등 순방 일정 남겨둬
북러 정상이 만난 곳은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였다. 2012년 건설이 시작된 이 기지는 푸틴 시대 러시아의 우주 기술이 응축된 곳이다. 러시아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가 복수의 회담 장소를 북에 제시했고, 북이 우주기지를 선택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회담이 개최될 것이라는 다수의 언론 보도는 오보로 되었고, 미국이 회담 장소를 사전에 공개하여 급히 장소를 변경했다는 미국 측의 주장 역시 거짓말이 되었다.

4년 만에 만난 북러 정상 “반제 자주 전선 함께, 동지 관계” 친선 과시
9월 13일 진행된 북러 정상회담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는다. 공동성명이 발표되지 않았고, 기자회견도 없었다. 다만 노동신문과 러시아 방송 등을 통해 회담의 대략적인 윤곽은 파악된다.
양 정상이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북러 관계의 전략적 발전과 협조, 선린우호였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가 패권주의 세력에 맞서 정의의 위업을 벌이고 있다고 평가한 후 “언제나 반제 자주 전선에서 내가 러시아와 함께 있을 것”을 강조했다. 푸틴 역시 북러 관계가 “동지 관계, 선린관계로 지향되고 있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담 의제는 두 나라의 고위급 왕래, 여러 분야에서의 다방면적인 교류 협력, 상호 친선 및 협조 관 증진 등이었고, 특히 서로 관심사로 되는 중요문제들에 대해 폭넓고 깊이 있는 의견 교환이 진행되었다. 회담 결과 ▶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 강권과 전횡을 짓부수기 위한 공동전선에서 전략전술적 협력 강화 ▶ 국가의 주권과 발전, 지역과 세계의 평화, 국제적 정의를 수호하는 데서 나서는 중대한 문제들과 당면한 협조 사항이 논의되었으며, 이에 대해 “만족한 합의와 견해일치”가 있었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또한 푸틴의 방북이 합의되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회담 후 진행된 연회가 끝난 후 김 위원장이 ‘편리한 시기’에 방북할 것을 요청했고, 푸틴은 ‘쾌히 수락’했다. 푸틴은 2000년 방북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하고, ‘조러 친선·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바 있다.
김 위원장, 우주 발사장 돌며 로켓 추진력에 관심 보여
북이 선택한 회담장은 우주기지였다. 김정은 위원장은 공식 정상회담 전 푸틴의 안내를 받으며 우주 발사장을 돌아보았다. 운반 로켓의 기술 특성, 조립 및 발사 과정, 기지의 운영 및 건설 실태 등을 관심 있게 청취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은 우리 언론에도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영상을 보면 김 위원장이 “이 우주 발사대에서 발사할 수 있는 제일 큰 대형 로켓의 발사 추진력이 얼마인가”라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북이 자체로 개발한 운반 로켓과 러시아의 운반 로켓의 기술을 비교해 보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우주 발사장을 참관하며 방명록에 적은 문구는 “첫 우주 정복자들을 낳은 로씨야의 영광은 불멸할 것이다”였다. 또한 우주에로의 길을 개척한 러시아의 숭고한 정신과 전통이 계승되기를 바란다고 축원했다고 전해진다. 러시아의 우주 기술에 대한 김 위원장의 인식과 평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발언들이다.

크렘린궁 대변인에 따르면 북러 정상은 북의 우주비행사 훈련과 우주선 발사 가능성을 논의했다. 푸틴이 먼저 “우주 산업에 대한 협력 기회”를 김 위원장에게 제안했다는 것. 크렘린궁도, 북 매체도 김 위원장의 답변에 대해서는 말이 없어 구체적 논의 현황은 파악할 수 없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로켓 기술과 발사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정상회담을 마친 푸틴이 우주 협력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러 사이에 우주 협력이 본격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일부에서는 두 차례 실패한 북의 군사위성 발사지원 여부가 논의되었을 것이라고 관측하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우선 북은 이미 10월 중 3차 발사를 하겠다는 자체의 계획을 발표했다. 러시아가 기술적 지원을 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없다. 또한 자강력제일주의를 강조하는 북의 기질상 군사위성 발사는 자체의 기술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푸틴의 발언 역시 위성 발사 기술이 아닌 우주비행사 훈련과 우주선 발사 가능성에 대한 것이었다.
하산에서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이 영접, 대북 제재 무력화 신호탄 될 수도
김정은 위원장의 시베리아 첫 순방지는 북러 국경에 위치한 하산이었다. 9월 12일 하산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 등 러시아 정부 간부들의 영접을 받았다. 천연자원부 장관은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 영접을 위해 북중 접경지인 하산에 자신을 직접 파견했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많은 언론에서 천연자원부 장관이 국경을 넘은 김 위원장을 영접한 의미에 대해 간과한다. 러시아 천연자원부는 그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러시아에 풍부한 천연가스와 원유 그리고 광물 자원 등의 채취 및 판매를 총괄하는 러시아 중앙 부처이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를 향해 평양을 출발하던 9월 12일, 러시아는 북러 정상회담에서 인도적 지원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고, “필요하다면 대북 유엔 제재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는 2019년 이후 안보리의 모든 대북 제재 결의안을 중국과 함께 거부해 왔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기존의 안보리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북러 협력이 논의될 가능성을 러시아가 내비친 것이다. 김 위원장을 영접하는 특사로 외교부 장관이 아닌 천연자원부 장관을 보낸 것은 대북 제재를 넘어 북러 경제 협력을 강화하려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각별한 의지가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외교 무대에서 지각 대장으로 악명 높은 푸틴이 30분 전에 먼저 나와 김 위원장을 기다리는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 역시 북러 관계를 강화하려는 푸틴의 입장이 배어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러 관영 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국가부흥과 두 나라 인민들의 복리를 위한 앞으로의 발전방향”이었으며, 이 의제에 대해 양 정상은 “만족한 합의와 견해일치”를 보았다고 전해진다.
전투기 생산 공장 등 순방 일정 남겨둬
정상회담이 열리는 보스토치니 우주기지 인근에는 러시아의 전략적 산업 시설이 많다. 13일 정상회담이 끝난 후 푸틴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이후 일정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 태평양함대 방문 ▶ 블라디보스톡 소재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해양생물학 시설 방문 ▶ 민간 및 군사 장비를 생산하는 콤소몰스크온아무르 공장 방문 ▶"무언가 제공할 것이 있는" 러시아와 함께 농업 개발 관련 시설 ▶ 운송, 물류, 항구 분야를 포함하여 러시아와 할 수 있는 많은 흥미로운 공동 프로젝트 모색 등이다.
김 위원장이 16일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회담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의 일정은 최소한 14일과 15일에 걸쳐 위에 언급한 현지 순방 일정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푸틴이 언급한 콤소몰스크온아무르 시베리아의 대표적인 산업 도시이다. 수호이 전투기를 생산하는 전투기 공장뿐 아니라 잠수함 등을 건조하는 조선소도 있다. 철강 제조 공장, 목재 가공 공장 등 산업 시설도 즐비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이번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단지 푸틴과의 정상회담만을 위한 일정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 외에 시베리아 지역의 다양한 러시아 군수 및 산업 시설을 시찰하고 러시아의 경험을 북의 국방공업과 경제건설에 적용하려는 구상이 깃든 ‘시베리아 순방’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