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박 6일에 걸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일정이 끝났다. 푸틴과의 정상회담뿐 아니라 연해주의 다양한 지역을 순방했고, 군사시설, 산업시설, 농업시설, 교육시설, 문화시설 등을 방문했다. 러시아 대통령만을 만난 것이 아니라 국방부 장관, 천연자원부 장관, 산업통상부 장관, 연해주 주지사 등 러시아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일정을 함께 했다.
푸틴이 평양을 방문하기로 합의했고, 10월에 러시아 외무장관이 방북하고, 11월엔 평양에서 양 정부간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연해주 주지사 역시 농업과 경제 분야 대표단과 함께 방북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평양과 블라디보스토크 사이의 정기 항공편도 곧 재개될 예정이다. 군사 분야, 산업 분야, 농업 분야, 관광 분야, 무역 분야 등에서 북러 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과 김 위원장의 연해주 순방을 계기로 북러 관계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다.

우리 사회 주류는 북러의 밀착을 불편하게 바라본다. 국민의힘은 북러 정상회담을 “악마의 거래”라고 표현했다. 언론들도 북러 밀착을 위험하게 보는 기사를 주로 내보냈다. 연합뉴스는 “북러 위험한 밀착”이라고 했고, 한겨레의 한 기사 역시 “냉전 시대 핵 협력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를 밀착”이라고 우려했다. 더 나아가 북러 밀착이 신냉전을 강화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한다.
북러 밀착은 위험한가? 과연 한미 동맹보다 북러 밀착이 더 위험한가?
북의 포탄 제공이 위험? 한국은 이미 포탄 보내는데....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이 러시아에 포탄을 제공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게 제기됐다. 러시아 소식을 종합하면 북러 회담의 의제 중 하나는 “한반도와 유럽 정세”였다. 유럽 정세에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군과 국민이 악에 맞서 승리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러시아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돕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이다.
다만 포탄 제공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일부의 우려처럼 북의 포탄이 러시아에 제공될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미국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했다. 한국이 미국에 포탄을 보내고, 미국이 그것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경로이다. 한국의 포탄 제공은 위험하지 않고, 북의 포탄 제공은 위험하다는 것인가?

북의 포탄이 러시아에 제공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위험하다면, 미국과 나토 그리고 한국이 이미 우크라이나에 수많은 무기를 지원하는 ‘현실’은 얼마나 더 위험한 행위인가.
북러 우주 협력이 위험? 미국의 우주군은 한미 군사훈련에 이미 참여
또 하나의 우려 대상은 북러 우주 협력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 장소로 우주 발사장을 선택했고, 푸틴이 직접 김 위원장을 안내했다. 크렘린궁 발표에 따르면 푸틴은 김 위원장에게 “우주 산업에 대한 협력”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의 답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아 구체적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우주 협력은 기정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2019년 우주군사령부를 신설했다. 2022년에 11월에 인도태평양사령부에 우주군이, 12월에 주한미군사령부에 우주군이 파견되었다. 비슷한 시기 우리 군 역시 우주작전비행대를 창설했다. 지난 8월 한미 연합 ‘을지훈련’에 미 우주군이 처음 참가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2024년에 주일미군에도 미 우주군이 파견될 예정이다.
우주기지를 방문하고, 우주 공간에서의 협력을 논의한 사실이 위험하다면, 우주군사령부를 창설하고, 한국에 미 우주군을 파견하고,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우주군을 투입하는 미국의 행위는 얼마나 더 위험한가?
북러 군사협력이 위험? 한미와 달리 북러는 연합 군사 연습을 한 적 없다
이번 연해주 순방에서 김 위원장은 군사 관련 다양한 시설을 둘러봤다. 전투기 생산공장을 둘러보고, 러시아군 비행장에 있는 극초음속미사일과 전략폭격기를 살펴보았으며, 해군 시설도 방문했다. 군 기지를 방문할 때 러시아 국방부 장관 쇼이구가 김 위원장을 수행했다.
북러 군사협력이 고도화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각에서 북러 군사훈련이 실시될 것으로 전망한다. 북러 군사훈련이 실시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지금까지 북은 단 한 번도 러시아(소련 포함), 중국 등 외국군과 연합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러 군사훈련이 시작되더라도 그것이 한미 혹은 한미일 군사협력에 비견할 것은 아니다. 이미 한미 양국은 1950년대부터 군사훈련을 해왔다. 1990년대 이후엔 한미일 군사훈련도 진행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미국의 전략자산이 수십 차례 한반도를 드나들었다.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수십 차례 한반도를 찾아온 것이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8월까지의 13개월 동안 한미 군사 연습이 진행된 날이 200일이 넘는다.

북 정상이 러시아의 무기들을 둘러보고 군사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위험하다면, 수십 년째 군사훈련을 진행하는 한미 군사훈련은 얼마나 더 위험한가.
북러 경제협력이 위험? 대북 제재가 한반도를 위험에 빠뜨렸다
북러 협력이 유엔안보리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킬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과 연해주 순방을 통해 북러 경제산업 협력이 강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대북 제재 효과가 상실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러시아 천연자원부 장관이 김 위원장을 영접했다. 천연자원부 장관은 천연가스와 원유 그리고 광물 자원 등의 채취 및 판매를 총괄한다. 에너지 분야의 북러 협력 가능성을 시사한다. 정상회담 직전 러시아 정부는 “필요하다면 대북 유엔 제재에 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은 “대북 제재는 유엔안보리가 선언한 것이고, 우리는 북한과 협력할 것이다”라는 말했고, 10월 방북하여 북러 경제협력위원회를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해주 주지사 역시 농업, 경제, 무역, 관광 분야의 전문가들을 데리고 방북할 의사를 피력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북러 경제 협력 고도화를 지향한다. 경제 협력의 고도화는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그런데 대북 제재가 무력화되면 무엇이 위험해지는 걸까? 대북 제재는 비핵화를 위한 수단으로 채택한 것이다. 그러나 북이 핵무기와 발사체를 완성함으로써 대북 제재를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은 이미 사라졌다. 러시아 외무장관이 “대북 제재들은 전혀 다른 지정학적 상황에서 채택됐던 것”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확인했듯이 대북 제재는 오히려 북미 대화, 남북 대화를 파탄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었다. 대북 제재가 완전히 폐기된다고 해서 그 자체로 대화 분위기와 평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북 제재가 유지되고 강화되어야 평화가 유지되고, 대북 제재가 무력화되면 평화가 파괴되고 한반도가 위험해지는 일은 없다.
대북 제재가 무력화되었을 때 위험해지는 것은 단 하나, 대북 적대 정책밖에 없다. 대북 적대 정책이 사라지면 평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따라서 대북 제재 무력화는 평화의 출발이 된다.
진짜 위험한 것은 따로 있다
진짜 위험한 것은 북러 밀착을 위험하다고 보는 사고이다. 현재의 북러 밀착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양국 발전이 재개되는 것이다. 독자적 주권을 갖는 두 나라의 발전을 위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그 나라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사고의 반영이다.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와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설정될 수 없다. 무관한 관계가 되거나 무관한 관계가 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필연적으로 충돌을 빚게 된다. 북러 양국은 우리와 무관할 수 없는 지정학적 관계에 있다. 따라서 북러 양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지금과 같은 시각과 사고는 군사적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 직후 우리 정부가 주한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북러 군사 협력 중단을 요구했다. 10월과 11월 북러 협력이 구체화하면 러시아 대사를 추방할 태세다. 이런 사고라면 윤석열 정부는 북중 협력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 것이다. 우리 정부의 외교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도 있다. 북러 밀착을 위험하다고 보는 순간 한미일 동맹은 강화된다. 이미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동맹은 구축되었다. 북러 밀착 이후 북중, 북중러 관계 강화는 예정된 수순이다.
더 빠르게, 더 강하게 한미일 군사 협력을 추진해야 하는 이유가 발생한다. 북중러-한미일 대결이 격화되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외교가 사라진 자리에 대립과 대결의 악순환 구조가 형성되면 그것은 바로 군사적 충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