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로 만난 윤석열과 한비자 (6)
1. 법은 인의변지(仁義辯智)와 예(禮)를 대체하는 것이며, 사(私)적인 것이 아니라 공(公)적인 것이다
2. 법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도량형적 측정과 평가의 수단이다
3. 법은 분명하고 엄정해야 한다
4. 법은 피치자에게 공개를 그 형식적 요건으로 한 제정법이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채형복 교수는 검찰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제왕을 꿈꾸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일까? 전국시대 법치주의를 주창한 한비자를 소환했다. 연재 ‘법치로 만난 윤석열과 한비자’를 14편으로 나누어 싣는다. 윤석열 검찰독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편집자]

한비자가 바라보는 법의 성질

“법은 명확히 드러날수록 좋고, 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다(法莫如顯 術不慾見).”(한비자 난삼 38:16)

“나라는 언제까지나 늘 강할 수도 없고, 언제까지나 늘 허약할 수도 없다. 법을 받드는 자가 강하면 나라도 강해지고, 약하면 나라 또한 약해진다.”(한비자 유도 6:1)

위에 인용한 문장에는 법에 대한 한비자의 기본 인식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지배하던 전국시대는 난세 중의 난세였다. 군주는 법을 밖으로 드러내고, 술은 안으로 감추고 숨겨야 했다. 즉, 법은 문서로 엮어 관부에 비치해 두었다가 백성에게 널리 알려야 하고, 술은 오직 군주의 마음속에 간직해 두고 여러 증거와 대조해가며 은밀히 신하들을 통제하는 방편으로 사용해야 했다. 군주는 법술세를 함께 사용하되 현실정치에서 공(公)과 사(私)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해야 하는데, 이를 공사지변(公私之辨)이라 한다. 한마디로 군주는 권세를 바탕으로 법과 술을 적절히 활용하여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고 통치하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 이처럼 한비자의 법술세에 의거한 법과 법치는 평화 시보다 특히 난세에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비자』가 ‘난세 리더십의 성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그렇다면 한비자가 바라보는 법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을까.

1. 법은 인의변지(仁義辯智)와 예(禮)를 대체하는 것이며, 사(私)적인 것이 아니라 공(公)적인 것이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예치(禮治)에 대하여 법치(法治)를 주장하였다. “서언왕은 인의를 행했지만 서나라는 망했고, 자공은 언변과 지모가 있었지만 노나라는 영토가 깎이고 말았다”며 한비자는 “무릇 인의, 언변, 지모는 나라를 지탱해주는 수단이 못 된다”고 단언한다. 만일 서나라와 노나라가 각각 서언왕의 인의와 자공의 지모를 버리고, 만승의 대국인 초나라와 제나라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길렀다면 두 대국의 야욕도 이내 펼칠 길이 없었을 것이라는 게 한비자의 생각이다(한비자 오두 49:4).

따라서 법치가 바로서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군주는 ‘법에 근거하지 않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군도(君道)다. 또한 군주는 반드시 공사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법제를 분명히 해 사사로운 온정을 물리쳐야 한다. 이것이 군주의 공의(公義)다. 군도와 공의는 오로지 군주만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신하가 사적인 행보로 붕우들에게 믿음을 얻고, 상을 내려 권장하며, 벌을 주어 금지하는 등의 권한은 행사할 수 없다. 이것은 신하들의 사사로운 사의(私義)이므로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만일 신하들이 사사로운 의리를 행하면 나라는 곧 어지럽게 되고, 공적인 의리를 행하면 잘 다스려진다. 공과 사의 구분을 엄히 해야 하는 이유다(한비자 칙사 19:6).

한비자는 군주의 공사(公私) 구분과 법집행은 엄정해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한다. 『한비자』 「경문(經文) 2」 치강(治强)에서, “잘 다스려지고 강성해지는 것은 법이 제대로 행해지는 데서 비롯되고, 나라가 약해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은 법을 사사로이 행한 데서 비롯된다”며 “군주가 이를 명확히 알면 상벌을 바르게 시행하고,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인애(仁愛)의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군주는 “작위와 봉록은 공에 따라 얻고, 형벌은 죄에 따라 받는다”는 신상필벌의 기준을 명확히 세울 것을 강조한다. 신하가 이를 분명히 알면 반드시 온 힘을 다해 공을 세우고, 군주에게 사사로운 충성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비자가 말한다.

“군주가 평소 무자비할 정도로 법의 집행에 철저하고, 신하가 평소 불충할 정도로 공을 세우는 데 철저하면 군주는 가히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다.”(한비자 외저설 우하 35:2)

춘추전국시대라는 혼란한 현실에서 한비자의 이 말을 듣고 귀가 솔깃하지 않을 군주가 어디 있겠는가. 한비자는 군주들에게 법과 법치를 앞세워 신상필벌이라는 잣대로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론적·현실적 기반을 제공해 주었다.

2. 법은 사람의 행위에 대한 도량형적 측정과 평가의 수단이다

법은 상벌의 기준으로 군주에게 공적에 따라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는 절대권한을 부여한다. 군주는 이 권한을 이용하여 상벌을 보상과 제재(신상필벌)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 점에서 법은 상벌양정(賞罰量定)의 기준이다.

한비자가 바라보기에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고, 반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을 판단하는 잣대는 두 가지밖에 없다. 형벌을 무겁게 하고 포상을 남발하지 않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길이요, 정반대로 포상을 남발하고 형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길이다. 만일 이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고 시행하면 백성은 상을 받기 위해 목숨마저 바친다는 것이다(한비자 칙령 53:4).

이처럼 군주가 백성에게 형벌을 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군주가 백성을 미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형벌을 가하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인은 백성을 다스리면서 백성의 근본이익을 고려하는 까닭에 백성의 욕망에 따르지 않고, 백성의 이익을 앞세울 뿐이라는 게 한비자의 주장이다(한비자 심도 54:1).

일찍이 상앙은, “형벌로써 형벌을 없애면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이요, 형벌로써 더 많은 형벌이 생기도록 하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以刑去刑 國治 以刑致刑 國亂)”(상군서 거강 4:8)라며 법치의 기본원칙으로 이형거형과 이형치형을 제안하였다. 이형거형이란 가벼운 죄에 대해서도 중형을 내림으로써 백성들이 형벌을 무서워하여 쉽게 죄를 짓지 않을 것이므로 형벌을 쓰지 않으려는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또한 이형치형이란 무거운 죄에 대해 가벼운 형벌을 내림으로써 백성들이 형벌을 무서워하지 않아 쉽게 죄를 짓게 되므로 형벌을 써서 도리어 형벌을 내릴 일이 자꾸 생겨나게 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라 상앙은 이형거형과 이형치형에 따른 엄한 형벌을 부과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형벌을 집행할 때에 가벼운 죄를 중형에 처하면 형벌도 제거되고 일도 성취시킬 수 있어 나라는 강해진다. 무거운 죄를 중형에 처하고 가벼운 죄를 가벼운 형에 처하면 형벌을 내려야 할 일은 늘 나타나고 일도 생겨나서 나라는 약해지고 만다’라고 하는 것이다.

형벌은 힘을 생기게 하고, 힘이 생기면 강해지며, 강해지면 위엄이 생기고, 위엄은 은혜를 생기게 하며, 은혜는 힘에서 생겨난다.

힘 있는 자를 거용함으로써 용감하게 전쟁을 치르게 되고, 전쟁을 함으로써 지혜와 계략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상군서』 거강 4:8)

하지만 상벌양정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먼저 형벌과 포상의 한계를 명확히 정해야 한다. 한비자도 이 점을 인식하여 명확한 한계의 존재 유무는 나라의 흥망성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치고 법률을 제정하지 않는 자는 없다. 그럼에도 존속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망하는 나라도 있다. 망하는 나라는 바로 군주가 상벌을 행하면서 그 한계를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군주가 형벌과 포상의 한계를 정하면서 그 한계를 명확히 정하고 단일한 잣대를 쓰면 백성들이 법도를 존중하고, 크게 두려운 나머지 감히 금령을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법에 저촉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감히 과분한 포상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 상태가 되면 굳이 상벌을 시행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한비자 제분 55:2). 그러므로 군주는 벌주어 죽이는 형(刑)과 칭찬하여 상주는 덕(德)이라는 칼자루를 단단히 붙잡고 놓쳐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군주는 형과 덕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를 쥐고 휘둘러 신하와 백성이 자신의 권위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한다.

3. 법은 분명하고 엄정해야 한다

“엄격한 형벌은 법령을 철저히 수행케 하고, 백성들을 징계하는 게 목적이다.”(한비자 유도 6:5)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비자는 법은 백성이 행하기 쉽고 분명해야 하며, 또한 엄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에 관한 한비자의 법사상을 대표하는 유명한 말이 “법은 귀한 사람이라고 하여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모양에 따라 구부려 사용하지 않는다”는 ‘법불아귀 숭불요곡(法不阿貴 繩不撓曲)’이다. 한비자는 말한다.

“먹줄이 곧아야 굽은 나무도 곧게 자를 수 있고, 수준기가 평평해야 고르지 못한 표면도 평평히 깎을 수 있고, 저울로 무게를 가려야 균형을 잡을 수 있고, 되와 말을 사용해야 많으면 덜고 적으면 보탤 수 있다.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면 손을 들었다 내리는 것처럼 쉬울 것이다.

법은 귀한 사람이라고 하여 아첨하지 않고, 먹줄은 모양에 따라 구부려 사용하지 않는다. 법의 제재를 가하면 지혜로운 사람도 논쟁하지 못하고, 용맹한 자도 감히 다투지 못한다. 대신일지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형벌을 피할 수 없고, 선행을 칭송하여 상을 내릴 때 서민이라고 해서 제외되는 일이 없다. 그리해야 윗자리에 있는 자의 잘못을 바로잡고 아랫사람의 사악함을 문책할 수 있다.”(한비자 유도 6:5)

법불아귀 숭불요곡이란 말은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므로 법을 집행할 때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차별함이 없이 마치 자를 대어 먹줄을 긋듯이 공평무사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군주가 법술과 형벌을 엄하고 공정하게 시행하면 아무리 범 같은 신하일지라도 스스로 겁을 먹고 온순해질 수밖에 없다. 한비자는, 이처럼 법술과 형벌이 바르게 시행되면 범도 사람으로 변해 본연의 모습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한비자 양각 8:7).

현대법률용어로 법불아귀 숭불요곡은 ‘법 앞에 평등’으로 대표되는 평등주의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출신, 가족관계, 교육, 병역, 거주, 신념, 기타의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 법 앞에 평등은 법의 지배, 즉 법치주의를 통해 실현된다. 법치주의 아래서 국가의 모든 권력은 법에 의해 제한되고, 법 앞에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이 원칙은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한비자도 이 점을 인식하고 군주도 법에 구속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비자의 법치사상을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만민평등사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가 말하는 ‘법 앞에 평등’이란 모든 사람(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군주 앞에서 복종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즉, 한비자는 만민을 군주의 지배권 아래 하나로 묶어두기 위하여 형벌권의 대상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한비자는 법을 엄히, 그리고 공정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기본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엄형주의(嚴刑主義)라 한다. 법이 “곧바로 5리 범위 내에서 엄히 시행될 수 있으면 왕자(王者)의 칭송을 들을 수 있고, 9리 범위 내에서 엄히 시행될 수 있으면 강자(强者)가 될 수 있다”는 말에는 한비자가 바라보는 엄형주의가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만일 지척대며 엄형의 시행을 늦추는 나라는 영토가 깎이고 쇠약해진다(한비자 칙령 53:1).

그러나 한비자가 말하는 엄형은 자의적인 처벌과는 다르다. 한비자는 공과에 따른 상과 벌은 엄정하고 공정해야 한다며, 이를 엄형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신상필벌은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명한 군주는 공이 없는 자에게는 상을 주지 않으며, 죄가 없는 자에게는 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한비자 난일 36:8).

약육강식이 횡행하던 난세에서 한비자의 제안만큼 군주의 마음을 끄는 부국강병책이 있었을까. 한비자는 군주에게 강력하게 주문한다. 엄형과 중벌은 백성이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것이니 나라가 편안해지고 난폭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치를 시행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리고는 자신의 할 일은 다했다는 듯 이 말로 방점을 찍는다.

“나는 이로써 인의나 은혜로운 사람 등은 치국에 부족하고, 엄형과 중벌만이 치국의 방략으로 쓸 수 있음을 밝힐 수 있다.”(한비자 간접시신 14:7)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비자야말로 ‘피도 눈물도 인정도 없는’ 냉혈한 법률가의 전형이요, 강고한 법과 법치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4. 법은 피치자에게 공개를 그 형식적 요건으로 한 제정법이다

법 또는 법률이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이다. 국가 및 공공기관이 제정한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따위로 통상 이를 법령이라고 한다. 법령을 한마디로 개념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법령은 기본적으로 국가적·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주권자 또는 법령을 제정할 권한이 있는 자가 그 국가 또는 사회와 그 구성원에 대해 해당 법령의 준수를 강제하고, 스스로도 그러한 규범을 지킬 것을 전제로 일정한 목적 아래 구성한 성문(成文)의 규범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국가와 공공기관이 법령을 제정할 때는 고려해야 할 헌법 원칙이 있다. 비례의 원칙(과잉금지의원칙), 평등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소급입법금지의 원칙), 적법절차의 원칙, 과소보장금지의 원칙은 실체적 내용에 관한 헌법 원칙이고, 명확성의 원칙, 포괄위임금지의 원칙, 의회유보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조세법률주의는 형식에 관한 헌법 원칙이라 한다. 이 가운데 한비자는 법령의 형식에 관한 명확성의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법령은 행정과 사법(司法)에 의한 법 적용의 기준이 되므로, 명확한 용어 등으로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원칙은 규율 내용의 성격이나 기본권 제한의 정도에 따라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특히 형사법, 조세법, 침익적(侵益的) 성격의 법령 및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령을 입안·심사할 때에는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이 원칙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이다.

한비자는 기본적으로 ‘법규는 간략하고 명확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명확성의 원칙이란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비자의 법치는 시대를 거슬러 상당히 앞선 법률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대부분의 백성들이 대부분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한비자는 법규가 간략하고 명확해야 백성들의 다툼이 간소해지고 쉽게 해결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군주는 법률을 제정할 때 해당 사안을 상세히 규정해야 하고,(한비자 팔설 47:8) 문서로 엮어 관부에 비치해 두었다가 백성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한비자 난삼 38:16).

하지만 한비자가 보기에 군주에게 큰일은 ‘법(法)이 아니고 술(術)’이다. 법은 명확히 드러날수록 좋지만 술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다(한비자 난삼 38:16). 겉으로 드러내고 보다 분명해야 하는 법과는 달리 술은 오직 군주의 마음속에 간직해 두고 모든 증거와 대조해가며 은밀히 신하들을 통제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한비자 난삼 38:16). 따라서 명군은 법을 포고할 때 나라 안에서 비천한 노복까지 모두 들어 모르는 자가 없게 한다. 이는 전당 안의 사람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술을 구사할 때는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술은 친애하는 측근이나 가까이서 섬기는 신하는 물론 방안의 사람조차 들을 수 없게 한다. 이 관점에서 한비자는, ‘방안에서 말할 때는 방안의 모든 사람이 알아듣게 하고, 전당 안에서 말할 때는 전당 안의 모든 사람이 알아듣게 한다’고 말한 관중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비자에게 관중의 이 말은 “법술을 터득한 사람의 말이 아닌” 까닭이다(한비자 난삼 3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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