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특혜'는 사실 왜곡
"민주당 또한 역할 해야"

“애끓는 심정으로, 곡기를 끊는다”
군부독재 시절,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끌며 산화한 열사들의 가족이 단식에 돌입했다. 고령에 접어든 이들이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목소리 내는 이유는 민주화를 외치며 산화한 가족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함이다.
11일, 국회 앞에서는 민주유공자법 제정 촉구 및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부모님 단식 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자리에는 이들을 지지하는 인파가 몰렸고, 11시로 계획됐던 일정이 미뤄지기도 했다. 이따금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유가협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 민주공화국을 표방했지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은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침탈했다. 이에 학생, 지식인, 종교인 등으로 구성된 민주화운동 단체가 구성됐고 독재정권의 무수한 탄압에 맞서 민주공화국을 지켜왔다.
그 결과,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시행령은 4·19혁명을 비롯, 6·3한일회담 반대운동, 3선개헌 반대운동, 유신헌법 반대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4·19혁명과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약 5천 2백여 명의 희생자들이 민주 유공자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태일, 이한열, 박종철 열사 등은 유공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4·19와 5·18을 제외한 민주화 희생자들은 '관련자'로 분류돼 일회성 보상에 그치기 때문이다.
1986년 창립한 유가협은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명예를 국가가 나서 회복시켜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하지만 20여 년이 넘는 동안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해 1월,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아들 곁으로 떠났다. 이제 더는 늦출 수 없다고 판단한 유가협은 애끓는 심정으로 곡기를 끊고 국회 앞 농성에 들어갔다.

농성돌입 기자회견에서 한성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한 지가 1년 6개월, 522일이 됐음에도 그 호소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라며, "고령의 부모님들은 더 이상 지체할 수도 기다릴 수도 없다”라고 개탄했다. 이어 “한 분씩 세상을 떠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며 “민주노총이 부모님들의 절규와 호소를 받아 안고 민주 유공자법 제정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지난해 7월에는 민주당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을 추진하자,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을 맡았던 권성동 의원은 “운동권 신분 세습법”이라며 “셀프 특혜”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현재 국회의원 중에는 그 ‘특혜’를 받을 수 있는 의원은 없어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자회견 자리에 참석한 강은미 의원(정의당)은 “셀프 특혜 발언을 듣고 몹시 화가 났다”며 유공자 법을 반대하는 국민의 힘을 향해 “그들이 이룬 민주화 사회를 민주당 지지자나, 정의당 지지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누리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모란공원에 묻힌 최우혁 열사의 선배라고 밝힌 민주당 김성주 의원 또한 “국민의힘이 논의 자체를 지연시키고 기피한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우리가 오늘 누리고 있는 이 자유와 민주주의는 안치훈, 최우혁, 박종철 같은 젊은이들의 희생과 죽음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반드시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연로하신 유가족 분들이 단식을 멈추게 하겠다”고 전했다.
민주당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신미연 서울겨레하나 운영위원장은 “민주당 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결심하면 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임에도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일갈했다. 이덕욱 전태일재단민주정신계승연대 이사장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향해 “오늘 당장 민주당 당론으로 민주유공자법 국회 통과를 결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민주당 강민정 의원은 “입이 10개라도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며 “하루빨리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이 더는 단식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서 당당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