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평가와 2022년 투쟁 과제
팽팽한 대결전이 펼쳐진 한해
올해 남북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답답한 답보상태’였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팽팽한 대결전이 펼쳐졌던 한해였다. 새로 정권을 장악한 바이든 행정부로서 한반도 문제는 마냥 뒤로 미뤄 둘 수 없는 문제였다. 북의 핵 무력 완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세력 관계는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항상 공격자의 위치에 있던 미국이 이제는 방어자의 위치로 변했기 때문이다.
원래 핵무장국가 상호관계는 대등한 군사력에 걸맞게 정치경제관계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등한 관계로 변화되어야 맞다. 그런데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기득권을 포기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것을 지킬 힘이 소진되었는데도 시대착오적으로 지키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러니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새로 집권한 바이든 행정부가 북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가 올해 관심의 초점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몇 달 동안 끙끙대더니 낡은 셈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대북정책을 새로운 대북정책이라 들고 대화를 하자고 북에 매달렸다. 하지만 북의 대응은 명백하였다. 새로운 변화된 조건에 걸맞는 새로운 대화법을 들고나오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양자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답답한 답보상태를 벗어날 수 없었다.

한반도 정세를 추동하는 힘의 근원
북의 핵무력 완성선언 이후 한반도 정세발전의 열쇠를 틀어쥐고 있는 쪽은 북이다. 2021년을 맞아 북의 김정은 총비서는 조선로동당 8차 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원칙적 입장을 천명했다.
대외정치 활동을 우리 혁명 발전의 기본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 누가 집권하든 미국이라는 실체와 대조선정책의 본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우리의 국가방위력이 적대세력들의 위협을 영토 밖에서 선제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선 것만큼 앞으로 조선 반도의 정세 격화는 곧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들의 안보 불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적대세력의 군사적 위협(무력 공격을 포함) 영토 밖에서 선제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고 천명한 것이다. 이것은 전시에 미 본토에서 병력과 물자가 한반도로 들어오는 것을 영토 밖에서 제압할 수 있다는 ‘불의 선언’이다. 미군의 모든 한반도 작전계획에는 전시에 미국 본토에서 증원 병력과 군사 장비의 신속한 한반도 전개를 전제로 하고 있다. 전시에 미 증원 전력의 한반도 전개가 불가능해진다면,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해보나 마나 패배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을 통해 한반도 정세를 격화시킨다면, 미국 자체의 안보가 흔들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제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실현될 수 없는 망상을 꿈꾸는 자해적 훈련으로 변질되었으며, 북에 대한 위협이 아닌 미국 자체의 안보 위기, 정권의 위기만을 낳을 뿐이다. 이것이 새로운 한반도 정세의 핵심 요체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미국은 군사력의 절대적 우세에 기초해 설계된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자체 안보 불안에서 헤어날 수 있다. 이제 미국은 무용지물로 되어 천덕꾸러기로 변한 주한미군을 자진 철거하여 명예로운 퇴진을 할 것인가? 아니면 자해적인 대북적대정책을 고수하여 끊임없는 안보 불안에 시달릴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북은 미국에게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고 천명함으로써 명예로운 퇴로를 열어놓고 있다.
정세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시대착오적 신냉전정책
미국은 명예로운 퇴진 대신 모험주의적 도발을 선택하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9월 2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5차회의 시정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오늘 세계가 직면한 엄중한 위기와 도전들은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보다 근본적인 위험은 국제평화와 안정의 근간을 허물고 있는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강권과 전횡이며 미국의 일방적이며 불공정한 편가르기식 대외정책으로 하여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구도’로 변화되면서 한층 복잡다단해진 것이 현 국제정세변화의 주요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새 미 행정부의 출현 이후 지난 8개월간의 행적이 명백히 보여준 바와 같이 우리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과 적대시 정책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오히려 그 표현 형태와 수법은 더욱 교활해지고 있다. 지금 미국이 〈외교적 관여〉와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저들의 적대행위를 가리우기 위한 허울에 지나지 않으며 역대 미행정부들이 추구해온 적대시 정책의 연장에 불과하다.
김정은 총비서의 언명이 아니더라도 한반도 정세가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가지 못하고, 답답한 교착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미국의 신냉전 정책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명백해졌다. 미국의 신냉전정책은 미국의 강대성의 표현이 아니라 그 반대로 패권 몰락의 반동적 산물이다. 세계 곳곳에서 반미투쟁기운이 확대되고, 다자주의의 물결이 확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조그마한 나라인 아프카니스탄 전쟁에서조차 탈레반 세력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하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했다. 미국의 패권 몰락은 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기본 추세로 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깨닫지 못한 채 시대착오적인 신냉전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지는 해의 최후의 발악! 이것이 신냉전정책의 본질이다.
미국의 신냉전정책은 세계정세를 극도로 위험한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대결과 전쟁의 먹구름을 몰아오고 있으며, 그 주된 표적은 한반도와 중국이다. 미국의 패권 몰락은 중국의 부상 때문이 아니라, 모든 나라와 민족이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자주적 열망이 폭발하는 자주시대의 필연적 산물이다. 대포와 달러를 갖고 호령하고 위협하던 시대는 갔다. 아프칸이라는 작은 나라, 탈레반이라는 조그마한 무장 집단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패배한 탓은 대포가 부족해서인가? 달러가 부족해서인가? 대포의 부족도, 달러의 부족도 아니다. 그것은 자주적으로 살려는 아프칸 민중의 열망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엉뚱하게 중국의 부상 탓으로 돌리며, 전 세계 나라와 민중들에게 반중전선으로 결집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직접적인 불똥을 맞고 있는 게 우리나라이다.
몰락해 가는 미국의 최후의 발악은 위험한 불장난을 동반하고 있다. 미국의 신냉전 정책으로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전쟁의 먹구름이 휘몰아쳐 오고 있으며, 한반도 역시 그 영향권 하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 그로 인해 이남에 대한 정치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압박이 도를 넘어가고 있다. 미국이냐, 중국이냐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한반도를 대중군사전선의 제일선으로 삼으려고 획책하고 있다. 중국과의 평화로운 경제협력을 단절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이러한 신냉전 정책은 실패를 면할 수 없다. 이남 민중은 종속과 대결, 전쟁이 아닌 자주와 평화를 갈구하고 있다. 미국의 압력은 이남 민중의 울분과 분노를 쌓아갈 것이며, 머지않아 부메랑이 되어 미국의 정수리를 쳐갈길 것이다. 미국을 향한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할 날이 곧 다가오고 있다. 이것이 현 한반도 정세의 특징이다.
대담한 투쟁이 절실히 필요할 때
올해 자주통일운동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완강하게 투쟁을 펼쳐왔다. 사드 기지 철폐 투쟁, 한미합동군사훈련 반대 투쟁,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통해 민중들의 반미자주의식과 자주통일의식을 고양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구도 변화를 반영한 투쟁전략과 전술이 뚜렷하지 못했다. 북의 핵 무력 완성 이전의 사고와 관점, 투쟁전략과 전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미국의 시대착오적 공세에 대한 방어적 투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어적 투쟁에서 벗어나 공세적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소심한 투쟁에서 벗어나 대담한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의 허세와 위선을 집중적으로 폭로하고, 천덕꾸러기로 굴러떨어진 주한미군의 가련한 처지를 집중적으로 폭로하고, 민중의 힘으로 주한미군을 강제 퇴거시키기 위한 대담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