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어구이 [사진 : 엄미야]
▲ 장어구이 [사진 : 엄미야]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멘토링(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특정한 사람에게 지도와 조언을 하면서 실력과 잠재력을 개발시키는 활동) 책이 서점가를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얼마지 않아 “아프면 환자지, 청춘이냐?”는 식의 말들로 묻혀버리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꼰대’들은 이곳저곳에서 “라떼는”, “내가 해봤는데”, “그땐 다 그런거야”라고 ‘꼰대력’을 확인시켜주시곤 한다. 그리고 이는 노동조합에도 예외는 아니다.

서른 살쯤 되었나? 어느 날 현장 화장실에서 마주친 그 친구의 눈이 젖어 있었다. 노동조합 조끼도 입지 않았고, 늘 가슴 한편에 달고 있었던 ‘00부장’이라는 명찰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노조를 만들기 전 준비모임에서부터 함께 했고, 노조가 만들어지자 자연스럽게 간부를 맡았던 친구였다. 모든 일에 열심이었고, 모든 집회에서 만날 수 있었고, 노조의 모든 행사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시작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지쳤다. 쉬고싶다”고 했다.

“뭐가 힘드냐”, “더 어려운 일을 안 겪어봐서 그렇다”,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나도 다 겪어봐서 아는데” 같은 말이 훅, 하고 올라왔지만, 꼰대 인증을 할 수는 없는 터.

“이번 주에 언니랑 술 한잔하자. 무엇을 먹을까?” 물었더니 대뜸 장어를 먹자고 한다. “괜찮아요, 아무거나요” 정도의 대답을 예상했던 나는 앗, 허를 찔렸다. 이럴 땐 애써 담담하게 표정을 관리하며 “그래. 언니가 사줄게, 까짓 장어”라고 답할 수밖에.

그렇게 만들어진 장어 회동.

“통도 크다. 삼겹살이나 먹자고 할 줄 알았는데”라는 내 말에 “사주신다고 해서”라며 웃는다.

셀프장어집을 골랐는데도 소고기보다 비싸다. 그런데 맛있다. 아니 그래서 맛있다. 지금 이 친구에게 ‘내 말’이 용기를 주겠나, 이 ‘장어’가 용기를 주겠지. 라고 생각하니 “노동조합은 말이야”라는 백 마디 말이 필요한가 싶어 말이 줄어든다. 나이가 들면 입을 닫고 지갑을 열라고 하지 않나.

“처음 노조 만들 때 심장이 두근두근했어요. 원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이 아닌데. 저는 회사 다니면서 일이나 잘하자는 주의거든요. 너밖에 없다고 해서 간부를 어렵게 맡은 거예요. 물론 좋은 일이 많았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노조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요. 회사랑 싸우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랑 자꾸 싸우게 되니까. 저도 한다고 열심히 하는데, 맨날 욕만 먹고,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몇 시간을 우리는 사람들 뒷담화도 하고, 열심히 맞장구도 치면서, 술에 취해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면서도 깻잎을 깔고, 그 위에 장어 한점을 올리고, 생강채를 듬뿍 얹어 부지런히 입으로 가져갔다. 장어만 먹고 배가 불러서 마지막 남은 두 점을 서로 먹으라는 실랑이를 하는 사치스러움도 경험해 보고.

대리를 불러 떠나면서 나는 그 친구에게 말했다.

“노동조합도, 사회생활도 고달프면 쉬어가자. 너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네 편이야.”

그녀가 이 ‘말’은 잊어도 장어와 함께 내 ‘마음’은 기억해주겠지. 그뿐이면 됐다.

엄미야
금속노조 경기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노동운동을 해왔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낮에는 노동자들과 뜨겁게 만나고, 저녁약속이 없는 날은 집에서 나를 위한 혼술을 즐긴다.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고 배달음식도 좋아한다.
민중의 소리’와 ‘베이비 뉴스’에 칼럼을 게재해왔고, 지금은 잠시 글쓰기 휴지기를 갖고 있다.

키워드

#한끼 #엄미야
저작권자 © 현장언론 민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