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거나, 친근함을 표현하거나, 딱히 인사말이 생각이 나지 않거나, 헤어질 때 인사말로 “나중에 밥 한 번 먹자”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 말은 대부분 인사치레인 경우가 많아 약속이 실제로 지켜질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 만큼 따뜻한 인사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오늘 누구와 몇 번의 “밥”, “술” 하자는 인사를 나누었나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몇 명의 사람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하고 나누는 음식만큼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먹고 떠드는 걸 좋아해 페이스북에 음식사진을 종종 올리는데, 대부분 힘든 일과 후에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시간이라 모든 음식에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요. 소소한 맛있는 먹을거리와 함께 나눈 사람들 이야기, 사연들을 나누고자 사람들과 나눈 밥, 술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의도치 않게’ 공단의 맛집들이 소개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독자들에게 드리는 선물이라 생각해주세요.
편하게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저와 밥, 술 한번 하시지요.
필자소개
엄미야
금속노조 경기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노동운동을 해왔고,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다. 낮에는 노동자들과 뜨겁게 만나고, 저녁약속이 없는 날은 집에서 나를 위한 혼술을 즐긴다.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고 배달음식도 좋아한다.
민중의 소리’와 ‘베이비 뉴스’에 칼럼을 게재해왔고, 지금은 잠시 글쓰기 휴지기를 갖고 있다.
![▲ 장칼국수 [사진 : 엄미야]](/news/photo/202107/11944_25175_3853.jpg)
경기도 평택 어연산업단지에 교섭을 다니면서 우연히 들른 공장 옆 칼국수 집, <장칼국수>
장칼국수라는 존재를 처음 영접했다. 면류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지락 칼국수도 아닌, 닭칼국수도 아닌, 이름도 낯선 장칼국수.
고추장과 된장을 풀어 장, 醬(장)칼국수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아이, 튀끄무리한 갈색 빛깔에 반전 매력이 있다. 다진 청양고추를 부어 먹으니 이열치열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땀이 뻘뻘, 전날 마신 술이 다 밖으로 나오는 것 같다.
공장 옆 식당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경우는 공장밥이 ‘더럽게’ 맛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곳 장칼국수집이 오늘도 바글바글 한 것 보면 오늘도 공장밥이 더럽게 맛이 없었나보다. 하긴, 이 시국에 얼마 전 닭개장 집이 바로 옆에 개업을 한 걸 보면 공장 옆 식당은 망할 일이 없다는 걸 자영업자들도 아는 게지. 경기가 조금 어렵다 싶으면 밥값 줄이고, 통근버스 없애고, 쥐꼬리만한 복지 줄이고, 결국은 노동자들 임금 손대는 것이 자본의 생리라고 줄줄이 개업하는 공단의 식당들이 항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주주들이 비용을 더 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분담이 없으면 회사의 미래를 보장받지 못합니다.”라고 지난해 매출이 창립 이래 최대치인 2000억이라는 그 공장의 상무는 말했다. “회사 규모는 커졌는데 속빈 강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대한 협박인지, 경영하는 사람들의 무능함을 고백하는 것인지, 아니면 회사 어딘가에 도둑놈이 있어 잡아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적지않게 헷갈렸다.
그래서 그는 노조가 양보해야한다고 말했다. 몇 년 전 600% 상여금을 죄다 반납하고, 법정 노동시간인 52시간도 훨씬 넘는 초과노동으로 꾸역꾸역 먹고 사는 노동자들은 더 이상 무엇을 양보해야 회사가 잘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긴 오늘 한 대선주자가 일주일에 120시간 ‘열나게’ 일하고 나머지는 푹 쉬라는 얘기까지 꺼냈다고 하지. 그러면 주 120시간 노동, 5일 동안 24시간 일하라는 것인데, 그 상무도 사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많이 벌고 싶으면 많이 일하라”고. 지금까지 우리도 당연히 그렇게 일해야 하는 줄 알고 살아왔으니. 노동자의 뼈를 갈아 넣은 성장을 우리 사회는 너무도 당연히 용인해왔다.
“우리 조합원들이요, 이제 다 알아요. 우리가 일주일에 70~80시간씩 일해서 이만큼 회사를 키워놨더니 이제와서 우리한테 주는 돈 아깝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좀 사람같이 살아보려구요. 주 38시간 노동을 말하는 세상에.”
바로 다음 날 그들은 생애 첫 파업을 앞두고 있었고, 눈빛과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어제와는 다른 내일이 그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 뜨거운 날 더 뜨겁게. 장칼국수처럼. 그들을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