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재난 위기 극복 민주노총 요구안 들여다보기
- ‘재난 시기 모든 노동자 해고금지, 사회안전망 전면 확대’ 요구
- 전태일법 제정, 재벌개혁 투쟁 나설 것
- 코로나로 전 세계 일자리 2억 개 상실 전망
- “전 세계 노동자 33억 명의 81%에 해당하는 약 27억 명, 근로시간 단축·임금 삭감·해고 직면”(국제노동기구(ILO))
- 한국은행 총재, “코로나 조기 진정돼도 올해 1%대 성장 어려워”
- 무너지는 자영업, 대출로 버텨… 3월에만 9.6조, 역대급 증가
코로나19 재난이 가져온 노동자, 자영업자의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언론 보도 내용이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회적 약자에게 그 위험이 집중된다.
그러나, 코로나19 가져온 경제위기를 틈타 전경련과 경총은 재벌과 자본의 이익을 위해 정부에게 잇달아 건의를 내놓았다. 이들은 생산성 하락의 주요 원인을 임금·세금으로 꼽으며 기업의 비용을 줄이고, 일상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유연화와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재벌과 자본이 경제위기를 틈타 손해 보지 않는 장사, 더 큰 이익을 추구하고자 할 때,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취약계층의 요구를 모아 행동을 시작한 것은 ‘제1노총’인 민주노총이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민주노총은 2018년 조합원 수 96만 800명으로 집계돼 조직률에서 한국노총을 앞섰다. 법외노조인 전교조와 정부통계에서 누락된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포함하면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더 많다.
지난 2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올해 투쟁과 사업계획을 확정한 민주노총은 코로나19가 가져온 경제위기 국면을 반영해 새로운 사업계획을 준비했다. 2500만 노동자들의 요구를 모아 ‘제1노총’으로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결심이다.
‘경제활력 제고’를 명분으로 정부와 자본이 벌이고 있는 각종 규제 완화 및 노동개악에 강력히 대응해 경제위기 속에서 노동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고통분담 공세를 막겠다는 것. 그리고, 중소영세 자영업자,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등 경제적 충격이 집중되고 있는 취약계층을 위한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민주노총의 역할로 상정하고 있다.
![▲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코로나19로 정리해고, 고용불안 위기에 놓인 항공, 공항 노동자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사진 : 뉴시스]](/news/photo/202004/10385_20849_396.jpg)
100만 민주노총 조합원만이 아닌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 ‘재난 시기 모든 노동자를 책임지는 민주노총’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민주노총의 요구는 ▲재난 시기 모든 노동자의 해고금지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과 사회안전망 전면 확대 ▲‘전태일법’으로 불평등·사회양극화 해소 ▲재벌개혁 등 4가지로 압축된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넘어 한국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고민에서 나온 요구들이다.
민주노총은 “재난 시기 해고를 금지하고 생계소득을 보장”하며,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안전망 확대”를 핵심 요구안으로 상정하고, 이를 올해 민주노총이 핵심과제로 선정했던 ‘전태일법 제정’과 ‘재벌개혁’을 위한 투쟁과 결합해 나갈 예정이다.
민주노총 요구안 첫 번째 특징 : 재벌과 자본 역할 촉구
민주노총 요구안 첫 번째 특징은, 재난이 가져온 경제위기에서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이 아닌, 정부는 물론 재벌과 자본의 역할을 촉구하는 내용이 핵심요구안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재난시기 모든 노동자의 해고 금지”에 대한 요구는, 말 그대로 재난 시기 모든 노동자들의 해고를 막고, 총고용을 보장하라는 요구다. 정부가 위기 타개책으로 내놓은 재정·금융 지원이 과거처럼 ‘기업 퍼주기’가 되지 않기 위해 재난 시기엔 해고를 금지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연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피해를 입은 기업이 정부의 금융 지원을 받을 시 해고금지를 의무화하고, 사전에 ‘고용유지서약서’를 제출해야 하며, 금융지원금 상환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임원연봉을 제한하고 주주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회사 경영이 어렵고 고용유지가 힘들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서 노동자는 해고하고, 지원금을 받을 만큼 회사가 어려운 처지에서도 임원연봉이 올라가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모습임엔 분명하다.

정부엔 모든 노동자 해고 금지 및 생존 보장을 위한 ‘재정정책 강화’를 촉구했다. 대통령령으로 해고 금지와 생존권 보장을 위한 긴급 재정·경제 명령을 발동해 한시적으로 코로나세와 부유세 도입해야 한다는 것.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시적인 과세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여기에도 재벌기업의 책임이 따른다. 재벌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유지하고, 재벌총수의 불법 이익을 환수하는 등 재벌의 곳간을 열어 총고용보장을 위한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청노동자의 고용보장 책임을 원천 사용자 책임으로 의무화하고, 기업의 해고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도 민주노총은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 살리기를 위해 증액한 예산은 158조 3천억 원, 이에 반해 고용·실업·노동자 관련 예산 증액은 1조 6천억 원이다. 이는 분명 기업만 살아남으라고 지급한 예산이 아니다.
재난 시기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계를 보장하는 대안으로는, 비정규·특수고용·중소영세·이주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에게 고용유지지원제도를 적용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 재난 시기 한시적으로 일하는 모두에게 고용보험제도를 전면 적용하는 것, ‘재난실업수당’을 한시적으로 도입해 실업급여 수급자격을 충족하지 못하는 모든 실직자 및 소득감소자(특수고용, 자영업자)에 실업수당을 지급하는 것, 재난 생계소득을 전 국민 1인당 100만원 보편지급(선별환수)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파견·용역·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노동조합이 없거나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해 위기에 가장 심각하게 내몰린 취약노동자 계층, 그리고 자영업자에 대한 실질적 지원책을 강조하고 있다.
△특수고용, 예술인 고용보험 가입 △유급 질병휴가 법제화 △유급 가족 돌봄 휴가 법제화 △재난에 대한 휴업수당 지급 법제화 및 재난긴급생계자금 지원제도 도입 △자영업자 긴급 지원책 마련 등을 위한 임시국회 개최로 재난위기 극복 관련 법 개정과 추경 대폭 확대도 촉구했다.
![▲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코로나19 극복과 감염병 대응체계 및 의료안전망 구축, 의료인 보호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news/photo/202004/10385_20850_4018.jpg)
민주노총 요구안 두 번째 특징 : 사회 공공성 강화
민주노총 요구안의 두 번째 특징은 ‘사회 공공성 강화’에 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미국, 유럽 등이 공공의료를 포기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모습에서 교훈을 찾았다. 전염병 재난을 겪으며 사회 공공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 도입’과 ‘사회안전망 전면 확대’에 대한 요구에 그 내용이 담겨있다.
재난으로부터 영세자영업, 취약 노동계층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선 공공일자리를 확대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사회안전망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수고용, 초단시간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등 취업자 절반은 고용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임시·일용직(전체 취업자의 28.4%), 자영업(23.5%), 무급가족 종사자(5.6%), 파악되지 않은 실제 사각지대를 감안하면 50% 이상이 고용보험 사각지대라는 것.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전면 가입, 그리고 실업수당 지급이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에 대한 내용이다.
기업지원이 아닌 노동자, 자영업자에 직접 지원하는 방법, 그리고 한시적 지원이 아닌 사회제도 마련에 그 의의가 있다. 이 역시 정부의 재정투입과 더불어 기업 규모에 따른 누진세 적용 등 재벌(대기업)의 기여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다음으로, 국가방역체계 강화와 공공의료, 공적 사회서비스 전면 확대 등 사회안전망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감염병 전문 공공병원 설립, 국립대병원의 보건복지부 이관 등 ‘공공보건의료체계 강화’와 공공병원 확충을 요구하는 한편, 감염병 치료제·백신을 국가가 책임있게 공급하고, 공공보건 의료인력 확충,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질병수당)도입, 건강보험 국고지원 확대, 국공립 장기요양기관과 돌봄시설, 사회서비스원 확충 등 공공적 사회서비스 전면 확대를 요구한다.

재난 시기 불평등과 양극화는 노동자와 자영업자, 취약계층에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사회 변화의 요구가 민주노총 핵심 요구에 담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기업중심 지원정책, 공고한 재벌체제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안들이다.
민주노총이 2500만 노동자를 대변하며 ‘재난 시기 모든 노동자의 해고금지’, ‘사회안전망 전면 확대’라는 두 가지 핵심요구를 내걸고 ‘전태일법 제정’과 ‘재벌개혁’ 투쟁에 나서는 이유다.
민주노총은 지난 2월 대의원대회에서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차기 21대 국회의 최우선과제로 제기하고 ‘전태일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결의한 바 있다. 특수고용·간접고용·플랫폼 노동 등 모든 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동법 2조 전면 개정’, 작은 사업장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이 전태일법의 내용이다.
재벌개혁도 맞물려 있다. 재난 위기에도 법인세·상속세 인하, 해고 요건 완화 등 자본의 이익을 위한 40개의 입법 개선을 요구하고 나선 경총 등 사용자단체를 상대로 재난 극복에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금융지원에 따른 해고금지 원칙 준수, 재벌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불법 이익 환수를 통해 총고용을 위한 기금(노동자기금)을 조성하는 것 외에도, 민주노총은 재벌의 하청·중소기업에 대한 갑질을 규제하고 가맹·대리점과 납품 중소기업들의 단체구성 및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납품 단가조정제도를 강화하는 것, 재벌에 집중된 경제력과 재벌총수의 사유화를 끊고, 일감 몰아주기 중단을 요구하는 투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 민주노총은 지난 2월, 70차 정기 대의원대회를 열어 올해 투쟁과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사진 : 뉴시스]](/news/photo/202004/10385_20853_4415.png)
민주노총은 다음달 1일 “해고금지, 총고용 보장, 사회안전망 전면 확대, 전태일법 쟁취, 비정규직 철폐”의 요구를 걸고 130주년 노동절을 맞는다. 수도권 및 전국동시다발로 진행되는 노동절 대회는 시작일 뿐, 5월과 6월엔 코로나19 정세에 따른 민주노총 요구안을 반영해 차별철폐 대행진을 벌인다. 매년 최저임금 투쟁과 노조가입 캠페인을 접목해 진행해온 ‘차별철폐 대행진’에 재벌개혁 요구를 담아 전국집중 순회 투쟁을 준비한다. 6월말~7월초엔 같은 요구를 걸고 전국노동자대회를 예정하고 있다.
일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보다 재벌과 자본의 요구가 반영된 한국사회 경제구조에서 늘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싸워 온 민주노총이다. 그래서 지금 민주노총의 요구는 새삼스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닥친 재난과 경제위기 속에 한국사회 경제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한계를 진단하고 바꿔나가야 할 기회다. 구조의 한계를 지적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앞자리에 서 있는 것 역시 민주노총이다.
올해 2020년은 전태일 열사 50주기, 민주노총 창립 25주년인 해이기도 하다.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 ‘재난 시기 모든 노동자를 책임지는 민주노총’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민주노총의 힘이 어떻게 발휘될지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