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사회 성격’ 탐구] (9)

[한국사회 성격연구] 마지막 글입니다.  그동안 집필에 수고해주신 김정호박사와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이후 더 좋은 기획으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요지] 국내시장의 위축과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도 심화는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해외시장 의존 → 저임금구조 유지 → 국내시장 위축 → 해외시장 의존'이라는 자기강화 기재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재가 작동되는 내면에는 또한 앞서 살펴보았던 현대제국주의, 폭압적 국가권력, 재벌체제라는 신식국독자의 세 가지 실체적 요소가 존재한다. 후기 신식국독자의 '구조화'를 더욱 확실하게 하는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일련의 조치들과 한미 FTA 협정(2007년)이며, 이 때문에 후기 신식국독자의 구조화는 일종의 가시적인 '법률적' 형식까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 삼성전자는 2018년 2월 23일 '화성 EUV(극자외선) 라인 기공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라인 건설에 착수했다고 밝혔다.[사진 : 뉴시스]
▲ 삼성전자는 2018년 2월 23일 '화성 EUV(극자외선) 라인 기공식'을 열고 본격적으로 라인 건설에 착수했다고 밝혔다.[사진 : 뉴시스]

5. 후기 신식국독자의 구조화와 전망, 의의

1) 후기 신식국독자의 구조화

후기 신식국독자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앞서 지적한 4가지 지표들을 모두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한국사회가 신식국독자라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지구화시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범람하는 신자유주의적 현상에 현혹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 기업들이 존재하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이들 글로벌 기업이 있는 한 한국경제도 언젠가는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앞 서의 4가지 지표가 보여주는 신식국독자의 특징들은 모두 일시적이거나 과도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러할까? 물론 우리가 어떤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려면 일시적인 특징들을 지적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그것들이 장기적이며 상당한 역사적 기간 동안 지속될 것임을 입증하여야만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경제의 대외 종속성을 '구조화' 시키는 내적인 자기 강화기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여 진다. 우리는 오늘날 한국경제의 현실로부터 그러한 기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경제는 199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 개방화에 동조함으로써 국제시장의 무한경쟁 속에 휘말려들게 되었다. 이 때문에 경제개발 초기부터 형성된 신식민지적 축적양식은 극복되지 못한 채 새롭게 구조화되는 길을 걷게 되었다. 한국의 재벌 기업들은 여전히 독자적 핵심기술력을 보유하지 못한 채 기본적으로 국내외 저렴한 노동력에 의존하는 것을 그 경쟁력의 기초로 삼고 있다. 다음 인용문을 보자.

"현재와 같은 투자주도형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 한국의 주도산업들은 이미 성숙산업 단계에 들어가서 후발자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예컨대 중국은 반도체 산업 등을 추격할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한국의 재벌체제에 못지않게 중국의 사회주의체제는 자금을 대규모로 집중 동원할 수 있으며 실리콘 밸리에 있는 중국계 인력 역시 언제나 동원될 수 있다. 반도체 설비는 한국과 똑같이 일본이나 미국에서 수입할 수 있다."1)

위 인용문의 저자는 한국이 일부 산업분야에서 갖는 경쟁력 우위는 여전히 '대규모 투자'에 기초한 것이라고 규정한다. 국제시장에선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개념이 유행하는데, 그 시조는 1960년대의 IBM이다. 당시 이 회사는 대형컴퓨터시스템인 360시스템을 만들 때 '모듈화'라는 방식을 최초로 도입하였다. 이후 이 모듈화 생산은 지구화시대 들어 컴퓨터관련 영역뿐만 아니라 일반제조업 영역으로까지 널리 확산되면서 현재 국제 분업 상 대표적인 제조방식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생산방식에 따르면 표준만 잘 지키면 세계 어디서 만들어도 통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품의 표준화 속도가 빠르며, 이 틀 안에서 경쟁이 발생할 경우 기업들은 가격경쟁의 늪에 빠지기 쉽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인건비가 싼 나라가 유리하게 된다. 한국이 현재 국제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반도체산업이 바로 그 대표적인 분야라 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기술경쟁력도 따지고 보면 자체 일정 첨단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점 외에, 상당 부분 이 같은 국내외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인건비' 우위에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한국경제의 경쟁력은 머지않아 후발 추격자들에 의해 쉽게 위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국가적으로 탄탄한 기술기반을 갖추기 위해선 먼저 국내적 차원에서 유기적 분업관계의 구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국내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의 장기적인 육성정책과 함께 대기업과의 관계에 있어 건전한 원-하청관계의 정립이 요구된다. 그런데 이 또한 신자유주의하에서의 격심한 국제시장의 경쟁과 한국 증시를 주무르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영향 때문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한국경제의 장기적인 경쟁력 기반의 구축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되고 있다. 대기업들은 눈앞의 이윤 추구에만 급급한 나머지 한국사회는 값싼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상적인 비대화와 영세자영업자층의 지나친 확대로 중산층의 전반적 몰락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국내시장을 더욱 황폐화시키는 요인들이며, 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다시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높일 수밖에 없게 된다. 

이상의 사정은 국내시장의 위축과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도 심화가 최근 들어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후기 신식국독자의 구조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즉 '해외시장 의존 → 저임금구조 유지 → 국내시장 위축 → 해외시장 의존'이라는 자기강화 기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은 전기 신식국독자에서도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고 후기에 와서도 전혀 시정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재가 작동되는 내면에는 또한 앞서 살펴보았던 현대제국주의, 폭압적 국가권력, 재벌체제라는 신식국독자의 세 가지 실체적 요소가 존재한다.2)

후기 신식국독자의 '구조화'를 더욱 확실하게 하는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의 일련의 조치들과 한미 FTA 협정(2007년)이다. 이들은 모두 국제적인 협정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이후 번복하기가 쉽지 않다. 그중 후자에는 '역진방지조항'과 '국가제소조항'이 들어 있다. 이는 기존의 체결된 협약들을 반영구화시키는 효력을 갖게 하며, 이 때문에 후기 신식국독자의 구조화는 일종의 가시적인 '법률적' 형식까지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미 FTA 협정의 의의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때의 자유화 조치와 그 이후 한미 FTA 협정이 다른 점은, 전자가 아직까지는 '자본시장' 영역의 개방에 그쳤던데 반해 후자는 일반 서비스업을 포함한 경제 전반의 전면개방이 이루어졌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이는 한미 FTA 협정이 체결될 때 일견 예견되었던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본시장 개방으로 인하여 더욱 해외시장에 의존적이게 된 한국경제는, 한층 강화된 외부적 요소 때문에 더욱 주동적으로 내부 개방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까지 이러한 전면개방의 엄중함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미 FTA 협정의 효과는 현재보다는 미래에 점차 시간을 두고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며, 서비스분야의 개방, 지적재산권 보호의 강화, 투자자유화 조치들은 지금 당장은 한국경제에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미 간 상호 경쟁력 우위 분야의 차이 때문에 현재 한국경제를 주도하는 재벌들의 이익과 크게 상충되는 영역은 아직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미 FTA는 한국경제의 미래 경쟁력을 차단하게 될 공산이 크다. 투자자유화와 지적재산권 보호의 강화로 인해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및 우주항공 등 현재의 정보화시대 이후를 이끌어 갈 미래 산업분야에 있어 아직 유약한 한국 기업들은, 이미 이들 분야에서 상당한 실력을 갖춘 선진 자본들과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어느 나라든 유아산업은 자국의 일정기간의 보호 장치를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국내 재벌들은 자신들이 현재 얼마간 비교우위를 갖춘 전자와 자동차분야의 대미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중요한 미래의 이익을 헐값에 팔아넘긴 셈이다.3)

현재 한창 진행 중인 4차 과학기술혁명의 특징은 '지식' 중심이라는 점에 있다. 이 같은 지식 중심의 과학기술의 발전은 그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며 포괄범위 역시 광범위하다.4) 이렇듯 빠르게 진보하는 현대 과학기술 앞에 지금 한국경제가 몇몇 제조업 분야에서 확보하고 있는 경쟁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질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미래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조치를 취했다라고 하는 것은 선진 사회로의 진입을 포기하고 신식국독자를 영구화하는 행동으로 밖에 볼 수 없다.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2월 2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 펑션룸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와 함께 한미 FTA 개정협정문 서명식을 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12월 24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 펑션룸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와 함께 한미 FTA 개정협정문 서명식을 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2) 다극화 세계와 신식국독자

신식국독자와 신국제질서와의 관계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식국독자는 현대제국주의 범주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일종의 ‘상대적’ 개념이다. 즉 현대제국주의 범주가 성립함으로써 신식국독자 개념 역시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연재 때 살펴보았듯이 현대제국주의는 쇠락 과정에 있으며, 그를 대신해서 세계는 점차 다극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 같은 국제질서의 다극화 추세가 한국의 신식국독자 발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다극화에 기초한 신 국제질서는 장차 한국의 신식국독자에 있어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그 내부를 관통하는 현대제국주의적 요소를 약화시킨다. 

첫째, 새로운 다변화한 시장을 제공한다. 미국은 달러패권을 기반으로 그간 세계 '소비중심'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주변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여 왔다. 한국사회가 미국에 의존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시장'이 한국 수출에 있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롭게 중국을 비롯한 거대 신흥시장들이 성장함으로써 미국시장의 비중과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수출에 있어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5.1%(2010년)임에 비해, 미국은 10.7%이다. 이점은 미국의 한반도에서 영향력이 감퇴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물론 대신 한국경제가 중국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문제점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한국경제에 있어선 또 다른 취약성이긴 하지만, 그것은 종속성이나 신식민지성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단순히 무역에 있어 대외의존성만으로 종속성 개념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며, 종속성은 현대제국주의와의 관계에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서 살펴보았듯이 중국과 '브릭스'로 대변되는 신흥 개발도상국들은 지금의 다극화추세와 신국제질서(아직 미완이긴 하지만) 수립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신국제질서는 현대제국주의가 주도해온 기존의 국제질서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며 그 대립물적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5)

둘째, 국내 금융시장의 안정에 기여한다. 현대제국주의의 핵심은 국제통화체제에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현대제국주의가 주도하는 국제통화체제와 미국의 달러패권도 2015년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투자은행(AIIB)'의 정식 출범으로 인하여 급격히 동요하고 있다. 이제 점차로 달러의 세계기축통화로서의 독점적 지위가 상실되고 이 분야에서도 다원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되는바, 그것이 한국 신식국독자에서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먼저 거시적 측면에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연계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금융위기의 고리를 차단시킬 수 있다. 그간 한국 주식시장을 외국인 투자가들(특히 달러를 많이 보유한 미국계 투자가들)이 주도함으로써, 이들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고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외환시장이 덩달아 불안해질 것이 우려되었다. 그러나 장차 세계기축통화가 다원화됨으로써 한국은 평상시 불필요한 막대한 달러를 보유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며, 이로부터 현대제국주의의 한국경제에 대한 거시적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만약 외환위기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미시적 측면에서도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의 한국 기업에 대한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설령 이들이 대량의 주식매도를 하고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비록 단기간의 주식폭락사태를 야기하긴 하겠지만 그것이 1997년 IMF사태 때처럼 곧바로 외환위기로 이어지면서 경제 전반을 흔들어 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차츰 연기금 등을 동원하여 소화시키면 된다.

셋째, 정치적 측면에서 볼 때 국제질서의 다극화는 한반도의 긴장국면을 완화시켜 결국 한국의 '폭압적 국가권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탈냉전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의 긴장국면은 다름 아닌 미국의 '對 중국 포위전략'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이 날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즉 미국은 중국봉쇄를 최종 목표로 하면서 이를 위해 남북분단을 이용하여 한반도의 대치와 긴장상태를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다극화에 따라 미국으로 상징되는 현대제국주의 세력의 퇴조와 함께 동북아와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도 자연스럽게 감퇴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남북 간의 긴장완화는 필연적인 추세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간 이를 빌미로 유지되어온 한국의 '폭압적 국가권력'은 대폭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최종적으로는  신식국독자의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인 현 '재벌체제'의 붕괴를 가져오게 된다.

지금까지 국제질서의 다극화가 가져오게 될 한국사회 발전에 대한 긍정적 측면들을 열거해 보았다. 다극화는 이처럼 한국 신식국독자가 새로운 사회로 전환하는데 있어 유리한 조건을 제공한다고 보여 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신식국독자가 저절로 바뀌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현 시기 다극화는 그 본질상 진보적 의미를 갖지만, 그러나 그것이 곧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구화시대를 맞아 지금보다는 좀 더 '공정한' 신국제질서를 가져오는 역할은 하게 된다.6)

그렇다면 다극화 시대에 있어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많은 부분 우리 스스로 얼마만큼 빨리 재벌체제를 청산하느냐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제국주의의 쇠퇴에 따라 한국의 '폭압적 국가권력'적 요소 역시 동반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재벌체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도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결국 한국의 신식국독자는 '선진국독자'를 향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화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길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문제 제기는 우문에 불과하다. 신자유주의의 유행과 그것이 몰고 온 금융위기에서 볼 수 있듯, 선진국독자 역시도 내부적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높은 실업률과 거의 정체 상태에 가까운 생산력발전은 자본주의체제가 이미 역사적으로 수명이 다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다극화에 기초한 신국제질서가 확고해지면, 선진국독자가 내부모순을 외부에 전가할 길은 더욱 협소해지고 그 위기는 갈수록 깊고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할 때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진보세력은 새롭게 맞이하게 될 국내외 정세의 유리한 조건 하에서, '국독자'라고 하는 이미 수명이 다한 낡은 제도에 자신의 눈높이를 낮추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3) 현 시기 신식국독자론의 의의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는 의미에서 신식국독자의 역사적 위상부터 분명히 하는 작업이 필요 하겠다. 신식국독자는 시기적으로 보면 세계적으로 선진국독자가 그 전성기를 지나 후기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출현하였다. 이런 면에서도 신식국독자는 크게 보면 국독자의 범주에 속하더라도 고전적 국독자와는 다른 특수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신식국독자가 형성되던 시기를 구체적으로 보자면 선진국독자가 그 전기에서 후기로의 전환을 준비하던 1960년대 중반~1980년대 초이다. 이 무렵 서구 선진국독자에서는 케인스주의에 입각한 일국적 균형정책이 점차 한계에 부딪치면서 생산과잉과 자본과잉 문제가 서서히 전면에 대두되었다. 다른 한편 새로운 과학기술혁명의 전개에 따라 세계적 차원의 산업구조 개편이 일어나고, 기존 주력산업으로 군림하던 중화학공업은 점차 전자와 통신에 기반 한 신산업에 의해 밀리면서 낡은 것으로 변해갔다. 이 같은 생산 및 자본과잉과 국제적 산업구조 개편은 서구 선진국의 과잉자본과 과잉설비 일부가 개발도상국으로 이행하는데 있어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이리하여 신식국독자는 한국처럼 '국가동원체계(국가자본주의)'를 구축하여 이 같은 유리한 국제환경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춘 국가에서 비로소 출현할 수 있었다.7)

서구 선진국들의 과잉자본과 과잉설비의 이전 및 시장 제공은 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이 신속한 산업화를 달성하고, 이후 국가를 대신해서 경제를 주도하게 될 사적(민간) 독점자본의 발전을 가능케 함으로써, 신식국독자가 성립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이 같은 서구사회의 과잉자본의 출현은 이들 사회가 국독자 전기에서 후기로의 이행을 본격화하고, 지구화와 개방화라는 신자유주의 경제조류가 세계경제를 곧 휩쓸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1980년대 한국에서 신식국독자의 기본 틀이 어느 정도 갖추어지자마자, 곧 이어서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물결에 노출되어 전면적 개방 압력을 받게 되었던 것은 결코 역사의 우연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1980년대 들어 이제 막 초기적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은, 그때까지 아직 일본이 전후 경제발전 과정에서 해결했던 문제들, 예컨대 국민경제의 튼튼한 내적 분업관계의 형성, 안정적 노-자관계의 정립, 상당수준의 독자적 기술력의 확보, 부의 재분배를 통한 일정규모의 국내시장 형성과 같은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경제개발과정에서 배출된 한국경제의 미시적 경제주체인 독점자본(재벌)은 그 형성과 성장과정 자체가 해외의 자본과 기술, 시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만큼, 신식국독자는 아직 이 같은 취약한 구조를 수정할 만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처럼 초기산업화 달성 이후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국내 기반의 재정비를 아직 완수하지 못한 한국 신식국독자에게 있어, 새롭게 밀어닥친 신자유주의의 개방화 압력은 저항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후기 신식국독자의 경제적 주도체인 사적 독점자본(재벌)은 신자유주의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으며, 오히려 이를 자신의 해외시장 기반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까지 간주하였다. 이리하여 한국 신식국독자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그에 대한 저항세력이 되기보다는, 반대로 그것을 전 지구적으로 확대 전파하는 적극적 요소가 되었다. 즉 한국 신식국독자는 사실상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지금까지 현대제국주의의 보완적인 요소로 기능하여 왔으며,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추진과 확장에 있어서도 일정한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이 때문에 신식국독자는 앞으로 현대제국주의와 그 운명을 함께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지금 시기 새삼스레 신식국독자이론을 제기하는 의의에 대해 정리해 보기로 하자. 그것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한국사회를 인식함에 있어 국제체계 및 현대제국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회복케 함으로써, 그간 부족했던 인식상의 '총체성'을 보완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그간 진보진영에서는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를 토론하는데 있어 이론계와 현실운동 모두 현대제국주의와의 관계가 많이 누락되거나 회피되어 왔다. 이는 현대제국주의가 여전히 국제질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도적 요소임에 비추어, 전체 국제체계와의 관련 속에서 국내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총체적 시각을 상실케 만드는 중대한 결함이지 않을 수 없다. 신식국독자론은 그 신식민지성 내지 종속성을 야기하는 주체인 '현대제국주의' 요소를 필연적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을 인식론적 범주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고, 양자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게 한다. 이는 한국사회를 국제체계와의 관계 속에서 올바로 규정 짓는데 있어 없어서 안 될 부분이다.8)

물론 한국사회의 작금의 문제들을 모두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이라는 존재를 간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 이들은 단순히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을 거론할 뿐, '현대제국주의'로서의 분명한 개념적 규정은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 양자 사이에는 큰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패권국가인 미국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단순히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도덕적으로 '나쁜 국가' 정도일 뿐이다. 이는 현대제국주의가 갖고 있는 규범성과 체계성, 지구적 공간성, 그리고 그것이 갖는 '역사성' 등을 모두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9)

물론 21세기 초에 그 최전성기에 이르렀던 현대제국주의는 오늘날에 와서는 쇠락의 길로 들어섰으며, 국제질서는 점차 다극화의 추세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따라 한국 신식국독자에 있어서도 기존의 '신식민지성'이 일정 약화되고 있는 측면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전 지구적 차원에서 엄연히 존재하는 현대제국주의는 여전히 국제질서의 핵심적인 규정 요소의 하나인 바, 한국사회에 있어서의 '신식민지성'은 여전히 상당한 범위에서 존속되며 유효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종속성을 고려함에 있어, 한편에선 그것이 현대제국주의의 역사적 쇠락에 따라 점차 '약화'되고 있는 측면과 함께, 다른 한편에선 여전히 뿌리 깊게 존속하면서 특히 '자본시장 전면개방'과 한미 FTA를 계기로 한층 '강화'되고 있다는 일견 상반되고 모순된 양면을 동시에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모두 현대제국주의의 역사적 발전 추세와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서만 밝혀질 수 있는 문제들이다.

둘째, 신식국독자론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대외의존성 심화와 빈곤화 현상에 대해 보다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인식을 가능케 해준다. 현 시기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는 물론 신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본 연재 첫 부분에서 지적했듯이, 그것들을 신자유주의 일반의 문제로만 치부할 경우 자칫 각국 간의 양적 차이(즉 정도 차이)에만 주목할 뿐, 한국사회 고유 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측면을 간과하기 쉽다. 다시 말해서, 1990년대(이는 신자유주의가 본격화한 시점)를 경계로 사회문제들의 전후 관련성과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며, 1990년대 이후 새로운 조건 하에서 더 한층 심화 발전하고 있는 '역사성'을 놓치기가 쉽다. 예컨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한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 장시간‧저임금 노동, 재벌체제 문제가 바로 그러하다. 그것들은 모두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1990년대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문제들이지만, 그 이후 새로운 형식과 내용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해가는 중이다. 

한국 사회문제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해소되고 완화되기보다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측면 역시도 ‘신자유주의론’적 시각만으로는 이해되기 어렵다. 현재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내적기재와 내적요소가 있으며, 그들 간의 상호관계는 대단히 복잡하다. 한편으로 종속성(신식민지성)을 공고히 하는 요소가 작동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국제질서 다극화'처럼 그것을 해체시키고 약화시키는 요소 또한 작동한다. 이들은 모두 외부적 요인 즉 국제사회로부터 오는 것들인데, 이에 대해 신자유주의적인 지구화와 개방화 범주로만 다룰 경우 작금의 복잡한 한국사회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셋째, 후기 신식국독자론을 통해 작금의 한국사회를 재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는 1990년대 이후 단절된 인식론상의 변혁적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간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와 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지구화 물결 속에서 적절한 이론적 나침반을 갖지 못한 한국 노동운동과 변혁운동은 전반적인 침체를 면치 못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운동의 침체조차 일각에서는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세계적인 공통적 현상으로만 치부하며 스스로 안위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실운동진영의 무기력감은 우리를 더욱 실망 시키고 맥 빠지게 만든다.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국내의 계급대립을 애매하게 만듦으로써 현실운동에 적지 않은 해악을 끼쳐왔다. 이들에 따르면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국제금융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이다. 이럴 경우 한국의 노동계급이 투쟁해야 할 주요 대상은 국내의 독점자본가계급 즉 재벌이 아닌 국제금융자본이 되며, 이로써 전선의 설정은 아주 모호하게 된다. 

이제 갖가지 기회주의가 춤출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렸다. 왜냐하면 의도하든 안든 간에, 현재 심각한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들에 대해 국내 국가권력과 재벌들에게 일정한 면죄부를 주면서 그들과의 직접적인 투쟁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식국독자론의 복구는 과거 우리가 한때 익숙했던 옛 개념과 범주의 회복 차원을 넘어서, 더 중요하게는 그 '정신' 즉 '변혁적 전통'을 이론과 인식론상에서 계승하고 부활시킨다는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사회성격’ 탐구] 제1부 끝)

[본문 주석]

1) 김진업 편, 2001년,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형성과 해체>, pp208-209. 나눔의집. 굵은 글씨 강조는 인용자에 의한 것임.

2) 이 같은 신식국독자의 '구조화'에 관한 부분은 당연히 전기 신식국독자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예컨대 전기 신식국독자에 있어 이 같은 내적요소로는 현대제국주의, 권위적 개발독재국가, 재벌을 들 수 있으며, 자기강화 기재로서는 후기와 마찬가지로 '해외시장 의존→저임금구조→국내시장 위축→ 해외시장 의존'을 들 수 있다. 이들 요소와 기재로 인해 당시 한국경제의 대외 의존적 경제발전은 외자가 부족했던 시기의 초기적인 일시적 현상이 아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내재화 되고 강화되는 것이 되었다. 그런데 전기와 후기 신식국독자에 있어선 그 표면상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내용 면에서 일정한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국가’는 전기의 '권위적 개발독재국가'에서 후기에는 일정한 절차적 민주성을 갖추었지만 여전히 본질상 '폭압적'인 국가로 바뀌었다. 그리고 ‘재벌’은 전기의 단순한 사적(민간) 독점자본에서 금융자본(산업독점과 은행 등 금융업자본의 결합)으로 바뀌어 '재벌체제'가 정식 확립되고 강화되었다. 특히 이 양자(국가와 재벌) 관계의 변화가 두드러진데, 신식국독자가 전기에서 후기로 이행함에 따라 경제의 주도 주체는 국가에서 재벌로 바뀌었다. 물론 현대제국주의도 이 기간 자체 '전기'에서 '후기'로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연재 참조), 후기 들어 신자유주의라는 이념을 적극 표방하면서 지구화와 개방화를 선도하게 된다. 이러한 내적요소의 공통성 때문에 신식국독자는 후기에 들어서서도 자기강화 기재에 있어선 전기와 같은 형식을 그대로 유지할 수밖에 없다. 만약 후기의 자기강화 기재에 있어 한 가지 요인을 첨가한다면, '저임금구조'와 함께 자본시장 전면개방으로 초래된 '외국인주주배당'과 이로 인한 대량의 잉여유출을 고려할 수 있다. 즉 '해외시장 의존→저임금구조, 외국인주주배당→국내시장 위축→ 해외시장 의존'의 형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3)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에 따르면 2007년 협상 결과는 88개 쟁점 중 미국 안을 77퍼센트(64개) 반영하고 한국 안은 8퍼센트(7개)만 반영하였다. 특히 한미 FTA가 서비스부문을 ‘포괄주의 방식’으로 전면 개방한 것에 대한 우려가 높다. 이것은 미래에 새롭게 등장할 서비스부문을 포함해 협정에 명시되지 않은 모든 서비스의 개방을 의미하는데, 정태인에 따르면 이는 마치 "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부문에 걸쳐 IMF 관리체제가 도입"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관련 내용, 지주형, 2011년,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pp403-404, 책세상.

4) 중국과학계를 대변하는 두 기구(중국과학원과 중국공정원)의 권위 있는 원로와 기술엔지니어 등 100여명을 대상으로 2011년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인류는 2020년까지 그간 컴퓨터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혁명'을 일차로 마무리 짓고, 2020년부터 2050년 까지 '생명공학'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리하여 인류는 이 단계에서 생명의 연장법과 시간 활용법의 난제를 해결한 후, 2050년부터 본 세기 말까지는 본격적인 우주항공시대에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중]何传启 주편집, 2012년, <제6차 과학기술혁명의 전략적 기회(第六次科技革命的战略机遇)〉,과학출판사, 참조. 2015년에는 중국 과학자들이 3D기술로 '인공혈관' 제작에 성공했다고 하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는 위의 예측이 결코 꿈만은 아님을 입증한다. 이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인간은 심장이나 다른 기관 등 필요한 장기들을 필요한 만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며, 이 때문에 인간 수명은 지금보다 훨씬 연장될 것이다. 

5) “현 시기 다극화는 제국주의 패권질서의 '대립물'로서 그 분명한 존재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국제질서에 있어 '독점'과 '패권'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며, 이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현대제국주의의 종식에 크게 기여한다. 다극화에 대한 이 같은 성격규정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현 시기 패권주의적 단극체제의 성립을 부정하는 주요 역량이 다름 아닌 그 일차적 피해자인 개발도상국 스스로부터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이점이 과거에 존재했던 모든 다극체제와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제5장 다극화와 신 국제질서③
http:// http://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286

6) 어떤 측면에서 보면 현대제국주의라고 하는 국제관계의 상부구조에 있어 '독점' 요소가 제거됨으로 인해 각국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비록 현대제국주의가 쇠퇴하더라도 한국에 있어 재벌체제가 존속하는 한, 한국경제의 지나친 대외 의존성은 단기간에 바뀌기는 힘들다. 그리고 재벌들이 계속해서 국내시장을 희생한 대가로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한, '수출의존→저임금노동' 이라고 하는 그간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악순환 구조 역시 끊기가 힘들다. 하지만 다극화의 전개와 그로 인한 현대제국주의의 쇠퇴는 한국 재벌체제로선 강력한 버팀목의 상실을 의미하기에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때문에 한국의 재벌과 보수 집단은 이 같은 자신들의 익숙한 축적방식을 고수하기 위해서라도 (최근의 '사드' 문제에서처럼) 한국사회에서 현대제국주의의 신속한 쇠퇴를 막으려 할 것이며, 그로 인해 한국 변혁주체들이 유리한 객관적 조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한국 신식국독자의 낡은 질서에 대한 청산작업은 매우 지루하게 진행될 수도 있다. 실제로 한미 FTA가 체결된 배경에는 이 같은 정치적 배려가 많이 깔려 있다. 예컨대 다음의 인용문은 이 같은 판단을 뒷받침 해준다. “최근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미 국무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주한 미 대사는 '한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한국을 미국에 묶어두는 상징의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한미 FTA의 정치적 효과를 지적하고 있다. 김종훈 수석 부대표가 말했듯이 '한미 간에 상호방위조약이 있다. FTA 체결은 경제동맹'인 것이다.”<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p405. 현대제국주의의 쇠락은 필연적이지만, 그것은 역사적인 과정으로써 비교적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사실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7) 신식국독자의 탄생에 있어 이 같은 국제적 조건은 매우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사회 내부조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소위 '권위주의적 개발독재국가'의 존재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왜 그렇듯 수많은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유독 한국만이 신식국독자가 되어 현대적 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는지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 같은 개발독재국가가 한국에서 성립할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선 학계에서 그간 활발한 논의와 적지 않은 성과가 있기 때문에 여기선 별도로 언급하지 않겠다. 

8) 사물의 본질과 법칙을 인식하는데 있어 총체성(혹은 전체성)의 중요성에 대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현상은 총체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총체적인 것은 법칙―본질적인 관계―을 그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그러한 한에서 만이다.....왜냐하면 현상은 본질이 현상화한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 이진경,1987년,<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2008년판),p52,그린비. 이러한 총체성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현재 한국의 진보적 이론진영은 “전체 사회의 본질적 관계와 거기서 확인되는 보편적 법칙으로부터 분리된 채 수행되는 소위 '현상분석' ”(위의 책, pp.52-53) 만이 남무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9) 다음과 같은 애매한 '종속' 개념은 ‘현대제국주의’에 대한 엄밀한 개념과 멀어졌기 때문에 출현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적 축적모델은 케인스주의적인 축적모델을 경과하지 않은 채 자본주의 발전 단계와 맞지 않는데도 추진되었고, 그러한 전환에는 외압이 중심적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그것은 종속적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김석준‧장상환, 2003)” 정성진 외, 2006년,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1987-2003>,p89, 한울아카데미.

김정호 약력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박사 학위 취득,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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