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사회 성격’ 탐구] (8)

[본문요지] 한국의 상부구조는 1987년 이후 ‘헌정국가’ 체계가 수립됨에 의해, 한편으론 서구 선진국독자 사회와 마찬가지로 형식 민주주의가 성립한 반면, 다른 한편에선 '재벌 과두지배체제'에 조응하는 '폭압적 국가권력'이 여전히 유지됨으로써 양자가 맞서는 형국이 되었다. 우리는 이처럼 한국 국가권력의 특성과 관련하여서도 국독자의 일반적 특성과 신식민지적 특성이 결합된 한국사회 상부구조의 특수성, 즉 형식적 민주주의와 '폭압적' 국가권력이 병존하는 후기 신식국독자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 홍성담 화백의 2014년 광주비엔날래 특별전 '광주정신전'에 출품한 대형걸개그림 "세월오월" 일부  [사진 : 뉴시스]
▲ 홍성담 화백의 2014년 광주비엔날래 특별전 '광주정신전'에 출품한 대형걸개그림 "세월오월" 일부 [사진 : 뉴시스]

4. 후기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성립 (3)
 
1) 4가지 지표

(1) 대외의존성 
(2) 저임금구조
(3) 폭압적 국가
(4) 재벌체제

(3) 폭압적 국가

1987년 6·29선언을 계기로 한국사회에서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직선제와 지방자치제의 실시, 언론자유 확대 등을 핵심으로 하는 일련의 정치·사회적 개혁을 통해 한국사회는 이후 기존의 '개발독제체제'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도 서구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편화한 '헌정국가체제'로의 진입을 (명목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로부터 초래된 한국 상부구조의 변화는 상당히 전반적인 것으로,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모범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서구 '헌정국가'에 대한 일정한 이해가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서구 자본주의사회가 본격적으로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발전하면서, 그 상부구조에 있어서 중요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즉 이들 사회에 있어 소위 '헌정국가'의 출현이 보편화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형식 민주주의' 혹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은 이 같은 헌정국가가 갖는 특징의 한 측면을 일컫는 것이다. 헌정국가는 법학적 의미로 볼 때 인민주권 이념, 법치사상, 국가권력 제한이론 이상 세 가지 요소를 결합하였다고 할 수 있다.1) 

그것은 최고의 상위법인 ‘헌법’을 새롭게 도입하였으며, 이를 통해 국가권력의 이념, 구조, 운영절차, 선거방식 등의 기본 내용들을 법률적으로 명확히 규정하였다. 이때부터 자본주의국가에 있어 '선거'는 이전의 단순히 기술적이고 의례적인 절차를 넘어서 합법적 공권력이 탄생하는 중요한 절차로 새롭게 인식되었고, 헌법적 차원에서 특별히 단독으로 규정되게 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2)
이후 점차 '헌법'이라고 하는 최고의 상위법의 존재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서구 선진 각국을 중심으로 보편화 되었으며, 이에 따라 자본주의국가는 복지국가와 함께 본격적인 '헌정국가' 시대를 열게 되었다.

'헌정국가'로 표현되는 서구 선진자본주의의 새로운 민주주의의 발전과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의 발전은 자본주의적 '법치'의 완성물이라고 할 수 있다. 최상위법인 헌법 아래 그동안 각기 단독적으로 발전해온 공법과 사법 체계를 배치함으로써, 비교적 일관된 부르주아지의 법률체계가 완성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이 같은 법치의 제도화는 자본주의가 근대 시민혁명을 통해 봉건주의체제를 무너뜨린 후 상당 기간 정치적·경제적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였으며, 부르주아지의 통치 질서가 한 차원 더 성숙하였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전후 서구 국독자에선 '헌정국가'로 상징되는 법치와 형식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상부구조가 등장하였는데, 오늘날 현대 서구 자본주의는 이 같은 '헌정국가'를 떠나서는 더 이상 존립하기 힘들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의존도가 높다. '헌정국가'가 포괄하는 통치형식과 자본주의 일상 경제생활 규범에 대한 법률적 객관화는, 그것이 갖는 객관성과 합리성 ('법' 자체는 근대 이래로 '합리적 이성'을 상징하였다) 때문에 이후 부르주아 정치권력의 '합법성'을 강화시켜 주었으며, 이는 자본주의경제의 선천적 결함이라 할 수 있는 주기적 공황과 빈부격차 심화에 대한 상당부분 면책권을 부여하였다. 특히 자본주의 생산력발전이 거의 한계점에 도달해 경제위기가 만성화되고 있는 요즘, 서구의 헌정체제는 이들 국가들에게 여전히 '합법성'의 원천으로서 그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강력한 요인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전파로 말미암아 '복지국가' 이념이 일정정도 퇴색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보여 진다.

이제 한국사회의 헌정국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언급하도록 하자. 1980년대 후반 이후 기본적인 산업화 과제의 완수와 함께 본격적인 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하면서부터, 한국 역시 조금 늦긴 하였지만 종전 후 서구 선진국독자가 경험한 이상의 보편적인 정치체제의 변화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 기존의 개발독재적인 상부구조로써는 더 이상 대중으로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한국의 통치계급도 새로운 정치적 합법성의 원천을 찾게 되었다. 이리하여 한국에서도 이제는 '헌정국가'로 상징되는 일정한 형식 민주주의의 실현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점은 '헌정국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 국독자에 대한 보편적 요구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은 이때부터 정치 형식에 있어 직선제가 채택되고 언론의 자유가 확대되는 등 일정한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졌으며, 국가권력은 과거와는 달리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인정하고 노동조합의 설립을 법적으로 보장하였다. 노사 간에 사업장 분규가 발생하더라도 그 초기부터 자동적으로 개입하던 기존의 관행을 지양하였으며, 그 대신 필히 일정한 법적 절차를 통해 관여하는 방식을 취하는 등 자신이 노사관계 무대의 전면에 나섰던 방식에서 형식상으로 나마 얼마간 막후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리는 선진국독자와는 다른 한국 신식국독자의 특수성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서구 선진국독자의 경우 헌정국가의 수립과 절차적 민주주의는, 현장 차원의 노사대립에 대해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경우를 현저히 줄이고 이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는 국가의 폭력성도 함께 약화되는 양상을 동반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좀처럼 그러하지 못하였다. 한국의 국가권력은 실제 이 시기에 들어서도 전혀 '중립적이지 않은' 조치들을 계속해서 취하였다. 비록 법적 절차를 밟긴 하였다지만 현장 차원의 노사대립에도 관여를 계속함으로써 국가권력의 폭력성이 자주 대중들에게 노출되었다. 그동안 개정된 노동악법과 현장의 노사 간 분규에 대한 개입 사례 등을 보아도 이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정부는 1998년 IMF 사태를 빌미로 정리해고와 변형근로제 등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법률들을 통과시켰으며, 계속해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파업기간 중 무노동·무임금 원칙의 관철, 소위 '불법파업'에 대한 사업주의 손해배상청구제도의 관례화 등 일련의 노동운동의 숨통을 죄는 법적 조치들을 취하였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은 만약 자본가들의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할 경우, 형사상 구속뿐만 아니라 민사상으로도 막대한 손해배상청구에도 몰리게 되어 파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각오하여야만 하였다. 또 여전히 사회보장제도와 같은 사회적 안전장치가 미비한 상태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한 번 해고되면 그야말로 개인과 가정이 함께 파산하게 되는 생존의 절벽에 몰리게 된다. 이 때문에 일단 한 번씩 터져 나오는 노동자들의 저항은 격렬할 수밖에 없다. 2007년 쌍용차 '옥쇄파업'과 한진중공업 김진숙의 '309일 간의 고공농성'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노동자들의 이러한 저항 앞에서 한국의 국가권력은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전혀 중립적이지도 또 그 폭력성을 순화시킬 수도 없게 된다. 

똑같이 헌정국가를 지향하면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한국과 서구 사회에 있어 이 같은 차이가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헌정국가'의 동기통치 집단의 성격 두 측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먼저 헌정국가의 '동기' 측면에서 볼 때, 서구의 경우 이들 나라에 있어선 이미 사적독점이 충분히 발전함에 의해 노동자계급과 타협할 수 있는 '초과이윤'이라고 하는 경제적 기초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총자본인 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보다 중요한 과제는, 노동자계급의 혁명화(탈체제화)를 방지키 위해 이미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적독점에 대해 그 힘을 적절히 규제함으로써 노동자계급과의 타협이 가능토록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들 서구 국가들에 있어선 형식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가권력 폭력성의 약화는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 

한국의 경우 이와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한국경제를 주도하는 재벌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윤축적의 주요한 계기를 해외시장에 두는 관계로, 지난 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전히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자신들의 주요한 경쟁력의 기초로 삼을 수밖에 없다. 특히 신자유주의시대에 들어선 지금에 있어선 더욱 그러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을 악화시키고 임금 및 처우를 둘러싼 노자간의 대립을 격화시키게 되는 바, 총자본인 국가권력으로선 이 같은 노동자의 저항을 강제로 진압하는 것을 무엇보다 일차적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의 국가권력은 여전히 자신의 폭압적 성격을 기본적으로 약화시킬 수가 없다. 이리하여 한국에서 헌정국가가 갖는 동기는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권력의 폭압성에 합법적 절차와 형식을 더해주는 것 이상은 아니게 된다.

다음으로 '통치 집단의 성격' 면에서 볼 경우, 비록 서구의 선진국독자에 있어서도 국가권력은 그 지배집단인 독점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반영한다는 점에 있어선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겉으로 비슷한 독점자본주의의 상부구조라 하더라도 한국과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서구 사회는 종전 후 과거 금융과두정치를 낳게 했던 재벌체제의 해체를 이미 경과하였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독자들은 여기서 ‘금융’자본은 ‘금융업자본’이 아닌 ‘산업독점자본+은행자본’이라는 정치경제학의 고전적 개념임에 주의!). 이 때문에 서구에 있어 사적 독점자본은 과거 '금융과두체제'와는 다른 새로운 '과점적 경쟁' 질서 하의 그것이 되었으며, 비교적 많은 다양한 독점 분파들의 존재로 인해 그들 간에 상호 경쟁을 통한 일정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사적 독점집단 간의 경쟁위에서 그것들을 총괄하며 전체 독점자본가계급의 총체적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일반 사적독점의 상위에 있는 국가권력을 성립시킬 수 있었다. 

서구 사회가 이처럼 종전 후 과거 금융과두정치를 낳게 했던 재벌체제를 해체했던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재벌체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되었다.3)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극소수 상위 재벌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됨으로써, 2000년대 들어서는 마침내 이들이 정치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재벌 과두지배체제'가 성립되게 되었다. (이에 대해선 장차 2부에서 다룬다) 이에 따라 한국의 상부구조는 한편에선 형식 민주주의가 등장한 반면에, 다른 한편에선 '재벌 과두지배체제'에 조응하는 '폭압적 국가권력'이 이에 맞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듯 일견 논리적 대립을 보이는 '형식 민주주의'와 '폭압적 국가권력'이 충돌할 경우, 현실은 어떠한 모습으로 정리되는 것일까? 이 경우 국가권력이 본질적으로 그 지배계급 혹은 지배집단의 의지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당연히 양자 중 우위를 점하게 되는 것은 후자 즉 '폭압적 국가권력'의 측면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앞서도 언급하였듯 자신의 이윤축적의 계기를 주요하게는 해외시장에 두고 또 여전히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자신의 주요한 경쟁력 기반으로 삼는 한국 재벌집단의 이해와 직접적인 조응관계를 이룰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외형이야 어떻든 간에, 1987년 이래 한국의 국가권력의 핵심적인 영역에 있어선 변화된 것이 별반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국민 의무병제도를 통해 50여만 명의 거대한 정규군과 10만의 경찰병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같은 한국의 정규군 규모는 세계 8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한국사회의 인구와 국토면적에 걸맞지 않는다. 그리고 국군기무사4)와 국정원 등의 정보기구는 별도의 방대한 조직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그 업무의 대부분은 국민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채 베일에 싸여있다. 간혹 언론에 폭로되는 이들의 민간사찰이나 선거 개입 사례를 보면 이들 정보기관들이 지금도 주민감시와 진보운동의 탄압에 동원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이들 외에 무엇보다도 과거 군부독재시절 이래로 대표적인 악법으로 지적되어온 국가보안법이 소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시대를 거치면서도 별반 개정된 것 없이 그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래 두 개의 표(4-1, 4-2)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법은 민주화가 실현된 이후에도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을 탄압하는 데 있어 큰 몫을 하고 있다. 또 이 법은 통일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기도 한데, 2014년에는 한때 10만 명을 웃돈 등록당원을 가졌던 통합진보당이 이 법에 의하여 강제 해산당하였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의 후신으로 그동안 합법적인 공개정당의 신분을 갖고 활동하였지만, 단지 일부 당원이 친북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단체의 규정을 받았다. 이는 한국의 정치활동과 사상의 자유 수준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결국 '6‧29선언' 이래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많이 확대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여전히 핵심적인 알맹이가 빠진 그야말로 '형식적'인 것에 머무르고 있으며, 본질상 결코 '폭압적 국가'라는 그간의 오래된 오명을 떼어낼 수가 없다.
 
이상의 헌정국가와 관련된 논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한국 국가권력의 특성과 관련하여서도 국독자의 일반적 특성과 신식민지적 특성이 결합된 한국사회 상부구조의 특수성, 즉 형식적 민주주의와 '폭압적' 국가권력이 병존하는 후기 신식국독자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1745

 

(4) 재벌체제

한국 자본주의 발전이 아직 미성숙했던 전기 신식국독자에 있어 그 역사적 사명은 사적 독점자본의 육성에 있었다. 한국에서 이 같은 사적 독점자본은 '재벌'이라는 형태로 출현하였다. 그것은 형성 초기에는 부족한 외화벌이를 위하여 그리고 이후에는 자신의 과잉생산물의 소화를 위해, 기본적으로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시장을 중시하는 수출지향적인 외향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재벌은 한국경제가 대외의존성을 갖게 만드는 주범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재벌체제의 성립은 신식국독자 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지만, 일단 그것이 출현한 이후에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한국사회의 신식국독자적 성격을 유지하고 강화시키는 강고한 물적 토대로서 작용하게 된다. 한국의 재벌들은 정부로부터 갖가지 특혜와 국내에서의 독점적인 지위 및 저임금구조를 기반으로 국내외 시장을 통해 막대한 이윤을 획득하면서도, 그것은 결코 한국국민 전체의 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재벌 따로, 서민경제 따로”라는 새로운 현상이 확연히 자리 잡았다.
 
이 같은 한국의 재벌체제가 후기 신식국독자에 들어서서 더욱 강화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해체위기까지 몰렸던 한국의 재벌들은, 그 후 영향력이 약화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확대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추세는 몇 가지 통계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예컨대 2009년 국내 30대 재벌의 매출액이 전체 한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상회하였으며, 2005년 702개이던 계열사는 2010년 1069개로 연평균 73개씩 순 증가하였다.(재벌닷컴, 2010년) 특히 중요한 점은 재벌들 중에서도 상위 몇 개 재벌에 경제력이 더욱 집중되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경제와 사회 전반이 소수 상위 3~4개 재벌들에 의해 휘둘려 지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되지 약화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재벌문제와 관련해서는 2부에서 별도로 다룰 예정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후기 신식국독자를 입증하는 지표 중 하나로 재벌체제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강력히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언급하는데 그치기로 한다. 
 
2) 결론: 한국은 여전히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사회  
  
이상에서 신식국독자 초기형태로부터 도출된 4가지 지표를 통해 현재의 한국사회를 조명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신식국독자가 갖는 4가지 특징적 지표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신식국독자라는 결론을 도출하기는 아직 이르며 한 가지 절차가 남아 있다. 이제 초점은 이들 4가지 지표들이 최종적으로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성’ 혹은 '종속성'을 지지할 수 있는 지로 모아진다. ‘신식민지성’ 여부는 오늘날 한국사회 성격 논쟁의 핵심이며 사실 지금까지의 작업은 이를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앞서 전기 신식국독자와 관련한 논의를 통해 한국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특수형태로서 '신식국독자'가 설립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때문에 여기선 다시 '국독자'의 성립여부를 논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 진다 (신식국독자도 ‘국독자’의 한 형식이기 때문). 그보다는 1990년대 이후 그 초기형태의 필연적 전환 이후 과연 앞에 붙어있던 '신식민지'라는 거추장스런 수식어를 떼었는지가 관건이며, 그것은 종속성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결론지어 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먼저 '대외의존성'과 '종속성' 두 가지 개념을 정확히 구분 짓는 일이 필요하다. 무릇 일정한 연관을 갖는 사물 간에는 상호의존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대외의존적이라고 해서 막 바로 종속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쌍방의 의존 정도는 각자 다를 수 있는데,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이제는 단순한 의존성을 넘어 일방의 다른 일방에 대한 '종속성'으로의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즉 대외의존성 정도가 양적으로 일정한 선을 넘어서게 되면 종속성이라는 질적 전환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대외의존성’은 대체로 양적으로 지표화가 가능하다. 예컨대 국민경제에 있어 무역의존도는 우리가 현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지표이며, 우리는 이 같은 현상적 지표를 이용하여 '대외의존성'으로부터 '종속성'이라는 보다 추상적이고 포괄적 개념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으로, 그렇다면 정작 종속성 개념에 있어서의 핵심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 사물의 상호의존 관계에 있어 불평등 정도가 지나쳐서, 한쪽이 다른 쪽의 수단적 존재로 전락함으로 인해 자기발전의 주동성을 상실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 경우 물론 종속되는 쪽도 상대를 일부 이용할 수 있긴 하지만(이것은 상호의존 관계의 최소한의 전제이다), 그것은 국부적인 것일 뿐 진정한 주체로서의 자신의 온전한 발전은 손상당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필자의 생각에는 '종속성'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➀지나친 대외의존성. 이는 두 주체 간의 관계가 상호의존성에서 일방적인 의존성 즉 '종속성'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점에서 앞서 4가지 지표 중 제일 먼저 살펴본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 정도는 우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는 아직 현상적 차원의 고찰이라 종속성(신식민지성)을 규정짓기에는 부족하다. ➁자신의 내적 핵심요소의 희생. 대외의존적인 관계의 유지가 자신의 보다 근본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요소, 혹은 앞으로 주체의 잠재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희생한 대가로 얻어질 경우에 그러하다. 예컨대 한국경제가 지나친 대외의존성으로 인해, 저임금 구조에 기대어 인적자원의 개발을 소홀히 하고, 국내시장과 국내의 유기적 분업관계를 희생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한국경제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소중한 내적 핵심요소를 희생하는 것과 같다. ➂불평등 관계의 구조화. 대외 의존적 사회의 내부에서 이 같은 불평등 관계로부터 이익을 얻게 되는 ‘실체’가 형성되어 지고, 나아가 그것이 일정한 제도와 기재를 형성한 경우에, 지금까지의 바람직하지 못한 상호관계는 우연성이 아닌 연속성을 갖게 된다. 이것은 사회적 차원에서의 종속성 개념이 필연적으로 '자본'이라는 하부토대와 '국가권력'이라는 상부구조를 포함하게 되며, 경제적 범주를 넘어서 계급관계라는 정치적 범주로 확장되게 됨을 의미한다. 한국사회에 있어 '재벌체제'와 '폭압적 국가'의 존재는 그 같은 의미를 갖는다.

결론적으로 볼 때 앞서 우리가 살펴본 4가지 지표는 한국사회에 있어 종속성 개념을 충분히 성립시키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마지막 '구조화'와 관련해선 아직 보충되어야 할 부분이 있으며, 이에 대해선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한다. 여기선 위 결론을 보강하는 차원에서 '복지국가'에 관해 조금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한국의 신식국독자와 서구의 국독자를 구분 짓는 한 가지 명확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후자가 보편적으로 '복지국가'라는 형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이는 우연적이거나 그냥 듣기 좋아라고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복지국가는 현대 자본주의에 있어 앞서 언급했던 형식적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헌정국가'와 함께 그 합법성의 양대 원천이 된다. 19세기 중반까지의 근대 자본주의는 '자유민주주의' 하나만으로도 그 합법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자본주의는 봉건제도라는 이미 역사적으로 수명이 다한 반동체제에 맞서 이를 분쇄하고 인류에게 새로운 진보와 희망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부르주아지의 지배체제가 전 세계적으로 확립되고 또 자본주의가 자유주의단계에서 독점단계로 진입하고부터는, 이 같은 형식적 민주주의만으로는 부족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때부터 그동안 잠재해 있던 자본주의사회의 빈부격차와 계급갈등이 본격화하고, 그리고 무정부적 생산에 따른 주기적 공황의 피해가 날로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다시 20세기 들어 자본주의가 일으킨 두 차례 세계대전과 그 후 소련을 대표로 하는 국제 사회주의진영의 성립은, 자본주의로 하여금 본격적인 '전반적 위기'의 시대로 진입하게끔 만들었다. 이렇듯 종전 후 커다란 곤궁에 빠진 자본주의를 건져준 것이 바로 다름 아닌 '복지국가'였으며, 자본주의는 자신의 핵심 가치에 있어 기존의 '자유민주주의'에 덧붙여 '평등' 이념을 추가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전후 서구 선진자본주의국가들은 하나 같이 '헌정국가'와 함께 '복지국가'를 자신의 표식으로 삼았으며, 이로부터 대중의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때문에 복지국가는 여전히 현대자본주의의 중요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서구 선진국들이 비록 대부분 신자유주의로 전환하였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여전히 국내적으로 '복지국가' 모델을 기본 틀로 간직하고 있다.5) 이들의 사회보장제도와 복지관련 재정지출이 신자유주의 하에서도 크게 변화하지 않은 것만 보아도 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 부분은 자본주의의 '마지노선'이기에 지구화의 진전과는 무관하게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여 진다.

이 때문에 만약 누군가가 한국사회는 이미 신식국독자의 성격을 탈피하였다라고 주장하려면, 그는 한국이 선진국독자의 기본 표식인 '복지국가'에 어느 정도 접근하였다는 점을 입증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여전히 복지국가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 있어 복지체제의 구축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비로소 본격화 되었다. 그것은 애초 외환위기의 후속조처인 정리해고를 본격 실시하기 위한 보완책으로 설계되었으며, 정부는 이에 대해 소위 '생산적 복지'라는 한정적 복지의 원리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이 같은 복지는 그 동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사회 전반이 요구하는 복지수요에 비하여 크게 취약한 것으로, "전통적인 가족복지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었다.6)

이렇듯 비록 초보적인 형태를 갖추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복지체계는 전반적으로 볼 때 매우 미흡하며, 앞으로 전망을 볼 때도 비관적이다. 현대적인 복지국가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자원의 투여를 필요로 하는데, 이를 위해선 반드시 국제 분업체계의 상위에 위치하여 초과이윤을 획득할 수 있든지, 아니면 강력한 금융자본의 실력을 바탕으로 국제적 경제잉여의 배분에 한 몫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은 이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다.
 
복지국가에 이르지 못한 한국사회에 있어 통치계급의 합법성을 그나마 보완해주는 것은 남북 분단으로부터 비롯되는 '통일문제'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민족문제의 한 측면인데, 그 다른 측면은 미국으로 상징되는 제국주의(외세)문제이다. 그런데 원래 민족분단으로부터 연유된 통일문제는, 그 외부적 요인인 제국주의문제로 인하여 그 모순이 적대적인 것으로 변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지속적으로 증폭되고 악화되는 경향을 갖는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는 전 세계적 냉전체제가 종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끊임없는 전쟁과 긴장감이 감돈다. 이 같은 남북 간의 적대적 관계는, 기본적으로 산업화에 성공하였음에도 아직까지 복지국가와 헌정국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통치 집단에 있어 상당부분 그 합법성을 보충해 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가 주도의 경제발전이 사적 독점자본인 재벌 주도로 바뀌고, 또 형식 민주주의가 일부 실현되었다고 해도 한국사회의 신식국독자적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신식국독자가 갖는 4가지 지표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들 지표들 중 일부가 신자유주의적 현상과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한국사회의 신식국독자적 성격을 애써 무시하려 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인식을 신자유주의라는 모호한 추상적 인식으로 대체시키는 후퇴적인 태도에 다름 아니다.

[본문 주석]

1) [중]何勤华 주편집, 2005년, <20세기 서방 헌정의 발전 및 변혁>(20世纪西方宪政的发展及其变革),p529, 법률출판사.

2) 원래 상당히 오랜 기간 서구 각국에 있어 선거는 관념 및 제도 양 측면에서 볼 때 모두 그다지 성숙하지 못하였다. 예컨대, 오늘날 민주주의의 우등생이라고 하는 미국만 하더라도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선거는 엄밀한 관리가 매우 결여되어서, "투표용지의 인쇄와 제작도 선거에 참여하는 정당에 위탁하여 진행되었으며, 선거사무에 대한 관리도 참가 정당의 당원들이 담당하였다."고 전해진다. [중]王浦劬 주편집, 2006년, <선거의 이론과 제도>(选举的理论与制度),p18, 고등교육출판사. 대한민국 헌법에도 선거와 관련하여 단독으로 '제7장 선거관리'가 있으며, 그 속에 제114조~116조 세 개의 세부조항이 들어있다.

3) 독점자본의 형식과 관련하여 ‘재단’(소위 ‘00그룹’)과 ‘재벌’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양자는 비슷하기는 해도 똑 같은 개념은 아니다. 일정한 소유관계를 매개로한 ‘기업집단’을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재단과 재벌은 공통성을 갖지만, 그러나 특별히 자연인 또는 가족만이 아니라 법인도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설 수 있다는 점에서 재단은 재벌과 다르다. 재벌은 기업집단의 정점에 자연인(총수) 혹은 그의 가족이 서 있으며, 서구의 경우는 이와는 달리 ‘법인을 중심으로 한 기업집단’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에서 재벌사회가 아닌 것이다.

4) 국군기무사는 2018년 정식 해체되면서 2019년 이후 그 명칭은 ‘국가안보지원사령부’로 바뀌었다.

5) 다음의 인용문을 참조하기 바란다."1980~1990년대를 휩쓴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과연 복지국가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었는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스웨덴 등 북구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들은 부분적 조정이 있었으나 기본 틀은 크게 변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독일 등 보수주의 복지국가들도 상당한 조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전통에 맞는 가족 중심의 복지국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한국복지연구원 엮음, 2008년, <한국의 사회복지>,p14.) 이들 뿐만 아니라 사회투자국가로 부를 수 있는 영국이나 캐나다만 해도 여전히 "소득보장체제가 이루어진 복지국가의 범주에 들어간다." 위의 책,p31. 

6) 정성진 외, 2006년,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1987-2003>,pp101-102, 한울아카데미. 그리하여 이 인용문의 저자는 한국 복지체제의 위상과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복지정책은 경제정책의 도구라는 낮은 위치를 가지며, 포괄범위의 면에서 선택적이고, 권위주의 체제의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주된 동기로 하는 개발국가적인 복지체제의 성격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책,p102.

김정호 약력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박사 학위 취득,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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